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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LNCK 2016. 8. 12. 19:55

◈두 증인                   계 11:1-13          출처

 


계 11:1-13본문을 보면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을 척량하지요.

이것은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서 사고 파는 자들을 내어 쫓은 것과 같아요.

같은 의미에요.

 

알다시피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을 기록하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초림 당시와 같이 성전을 척량하는 일이 있어요.

이는 곧 종말의 교회가 예수님 초림 당시의 교회와 같이 타락하였다는 말입니다.

도적놈들만 모였다는 말입니다.

 

누가 도적놈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는 놈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배를 채우는 자들이에요.

예수를 이용해서 이 세상에서 입신양명을 꿈꾸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어요.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배를 섬긴다고 합니다.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자들이에요.

 

이들은 성전에 온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에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하고자 왔어요.

그래서 도적이고 강도인 겁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돈이에요.

돈을 위하여 하나님을 우상숭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들이 누구랑 싸웁니까?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육신의 소욕을 좇아가는 자들을 말해요.

신앙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을 말해요.

 

그래서 두 증인들이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건 엘리야 시대 일어났던 일입니다.

엘리야 시대가 어떤 시대였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어떠했나요?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으로 둔갑하여서 섬기던 시대였어요.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어요.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에요.

바알 신전에는 남자 제사장이 있고 아세라 신전에는 여 사제가 있었어요.

부부가 사랑을 하면 자식이 생기듯이 신전의 제사장과 관계를 하면

많은 자식을 생산하고 풍년이 주어진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바알 신전과 아세라 신전에는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어요.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 이외 모두는 우상이에요.

이를 알고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신을 하나님으로 둔갑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바알을 하나님으로 둔갑을 시킨 겁니다.

여기에 궁중 선지자들이 합세를 하여서 백성들을 미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혹을 당하여서 거리낌 없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이럴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속에 바알 신앙이 팽배해 있었어요.

백성들은 바알이 복을 준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비가 오지 못하게 기도를 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때를 따라 비가 와서 농사를 잘 지으니까

그것이 바알의 은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비를 내리지 못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든 것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자 온 나라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러서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누구의 제단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지 확인해 보자고 합니다.

불이 내리는 제단에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각자의 방식대로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제단에 하늘에서 불이 내립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바알의 하나님은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가 백성들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몽땅 죽여 버립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비가 옵니다.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심으로서 너희가 그동안 풍요를 누리고 잘 산 것은 바알이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 주는 것인 줄을 잘못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엘리야가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는 바알이 풍요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것이 호세아에서도 나타납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남편의 돈으로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고멜이 바람피우는 돈이 모두가 호세아 돈이에요.

그래서 호세아가 고멜의 돈 줄을 막아 버립니다.

 

이것은 엘리야 시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든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고멜이 돈 줄이 끊기자 비로소 본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호세아가 고멜의 돈 줄을 막아 버린 것은 본 남편에게 돌아오게 하고자 함입니다.

 

결국 고멜은 돈이 떨어지자 본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고멜은 돈이 있으면 본 남편을 떠나고, 돈이 없으면 본 남편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하나님은 고멜의 돈 줄을 막아 버리는 일을 단행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골 골짜기로 인도하고서는

거기서 소망의 문을 삼게 하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호세아2장15절.

아골 골짜기는 지옥을 상징해요.

 

하나님이 지옥 같은 환경에 집어넣고서는, 하나님을 찾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을 삼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떠나요.

이건 인간의 본성이에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대로 드러나요.

항상 부요하면 타락 했어요.

그럼 하나님께서 이방에 붙여서 부요를 약탈당하게 합니다.

약탈당하고 나면 그 때 하나님을 찾아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부요와 타락과 징계와 회개라는 악순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본문으로 돌아가서 종말의 교회에, 두 증인들이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한다는

계시록 11장 6절 말씀은

종말의 교회들이 부요하여서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교회 안에서 두 증인들이, 엘리야가 행하였던 것을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하나님에게 무엇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는지,

하나님을 떠나게 한 그것들을 제거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바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회개 운동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복이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저주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요인들을 제거 해 달라고 기도해요.

이게 하늘을 닫아 비를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 시대 교인들은 하나님을 바알처럼 섬기고 있어요.

세상에 복주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어요.

땅에서 잘되게 해 주고 자기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어요.

이건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관이에요.

 

그래서 두 증인들이 엘리야처럼 잘못된 신관을 고쳐주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회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언제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릴 것이냐?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갈멜산 전투에서 바알은 거짓 신이고

엘리야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백성들 앞에서 증명해 보였습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가, 곧 유브라데 전쟁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이 사역을 할 때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땅에 거하는 자들과 싸우고 잘못된 신앙에서 돌이키라는 뜻으로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었지요.

베옷은 회개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어요.


마치 예수님 초림 때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종말에도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지요?

이는 강력한 말씀으로 회개 운동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늦은 비가 뿌려지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릇된 신앙에서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란?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종말의 회개는 타락된 교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계시록 18장은 음녀의 멸망 사건을 기록하고 있어요.

음녀가 누구인가 하면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말해요.

교회의 모습을 보세요.

 

2절을 보세요.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인 곳이라고 합니다.

 

종말의 교회가 예수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각종 장사꾼들이 모였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음녀를 일컬어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바벨론 화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할 당시의 성전 안의 모습과 일치해요.

 

에스겔 8장을 봅시다.

3절.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10절.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11절.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12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4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이 때가 언제인가 하면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에요.

성신이 에스겔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 안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이 가만히 보니까 성전 곳곳에 각양의 우상에 모습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우상에게 기도하고 있으며,

여인들은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고,

사람들은 동방 태양을 숭배하고 있어요.

이것은 전부 이방신들을 섬기는 모습들이에요.

 

이건 요한계시록 18장의 음녀의 모습과 같아요.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인 것입니다.

남쪽 유다가 멸망 할 당시의 구약 교회 모습과 예수님 재림 직전의 교회 모습이 똑 같아요.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귀신의 놀이터가 되었어요.

 

이 때 하나님이 빛난 놋 쇠 같은 분을 보내서 성전을 척량하게 하셨어요.

그리곤 성신으로 새로운 성전을 짓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약 교회를 심판하신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오순절 성령이 오셔서 새로운 성전을 성도들 안에서 짓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종말에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두 증인들을 보내서 성전을 척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강력한 말씀으로 회개케 하십니다.

예수님이 강력한 말씀으로 구약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셨듯이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강력한 말씀으로 성도들을 음녀로부터 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이 모습을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바벨론에 불타 버린 성전을 다시 짖는 자들이에요.

그런데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구약의 스가랴서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스가랴 4장을 봅시다.

12절을 보면 스가랴가 두 금관 옆에 두 감람나무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14절에서 이들은 기름 발리운 자 둘인데, 온 세상에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자라고 합니다.

 

기름 발리운자 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말해요.

이 두 사람은 당시 바벨론에 불타 버린 성전을 다시 짓기 위하여 파송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세우심을 입었어요.

그래서 기름 발리운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 식으로 말하면 성령의 감동을 입은 종들을 말해요.

이렇게 되면 바벨론에 의하여 불타 버린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누가 주도적으로 하는가 하면 성령이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합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가리키는데

스룹바벨은 유대 총독이며 여호수아는 제사장입니다.

이들이 바벨론에 불타 버린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합니다.

새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합니다.

이는 두 증인들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같은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두 증인들을 가지고 세속화되어서

바벨론에 불타 버린 성전과 같은 타락된 교회를 새로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짓는 것이 아니고 성신으로 지어요.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에 의하여 지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성전은 일차적인 의미로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성취가 되었어요.

 

예수님은 인간의 의가 난무하던 구약 교회를 허물었어요.

예수님께서 강도의 굴혈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는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시고 난 후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성도들 심령에 오셔서 새로운 성전을 짓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가 아닌 성령에 의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이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온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소는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을 말해요.

그 성전은 성령이 오심으로서 성도들 안에 지어지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지금 성령이 오셔서 지어지는 성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을 스가랴에서는 두 감람나무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짓는다고 하였어요.

스룹바벨은 왕이고 여호수아는 제사장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니까 새롭게 지어지는 성전은 왕이시면 제사장이신 분이 짓는다는 것입니다.

왕이며 제사장인신 분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에요.

그러니까 두 감람나무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고 있어요. 계시록11장 4절.

이는 두 증인이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나요?

타락한 교회를 허물고 새로운 성전을 지었어요.

 

그럼 종말에 나타나는 두 증인들도 타락된 교회를 허물고 새로운 성전을 짓는 일을 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맞아요.

종말의 교회도 예수님 초림 당시의 구약 교회처럼 강도의 굴혈이 되었어요.

 

이걸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는 교회 안에 각종 상고들이 가득하다고 하였어요.

상고란? 장사꾼을 말해요.

이 말은 곧 종말의 교회가 장사꾼 소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걸 예수님 초림 식으로 말하면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것으로 말해주었어요.

 

이 시대 교회는 예수님 초림 당신의 구약 교회와 똑 같아요.

목사들은 강도가 되었고 교인들은 장사꾼이 되었어요.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종말의 타락 한 교회를 일컬어 교회라고 하지 않고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녀가 뭔가요?

몸을 팔아서 사는 자를 말하잖아요.

교회가 누굴 팝니까?

예수를 팔고 있어요.

교회들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를 팔고 있어요.

쎄일하고 있다고요.

 

교인들은 마트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사오듯이, 자기가 필요한 교회로 찾아가요.

이 시대 교회 안에는 갖가지 예수가 포장 되어서 진열이 되어 있어요.

자기 입맛에 맞는 예수가 포장 되어 있는 교회로 찾아 가면 되어요.

 

떡 주는 예수,

병 고쳐주는 예수,

기적을 행하는 예수,

사업을 번창케 해 주는 예수,

사회 정의를 위하여 데모하는 예수,

갖가지 예수가 있어요.

골라잡으면 되어요.

 

마귀가 예수를 다양하게 포장해 놓은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지요?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앞 다투어 설교 하는 내용이잖아요.

주구장창 들리는 소리들이잖아요?

목사들이 마귀의 말을 하고 있어요.

 

거짓 종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증명 할 거야? 부자가 되어서 봐라,

나는 예수 믿고 이렇게 복 받고 잘 살게 되었다고 간증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잖아요.

물질만능 시대에 아주 와 닿는 말이 아닌가요?


그래서 목사나 교인들은 부자가 되면 예수 믿고 복 받았다고 자랑하잖아요.

교인들은 이런 사고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라고 전도하고 있구요.

 

마귀가 또 하나 내민 카드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최소한도 세상 사람들보다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교회마다 유명인들 자랑하기에 바빠요.

목사나 교인이나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람 나온다고 하면서 교회 알리기 마케팅을 해요.

 

유명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나, 유명 정치인이나, 유명 재벌이나,

유명한 교수나 의사나 법조인들이나 아무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자기 교회에 나오면 그걸 가지고 교회 홍보를 해요.

이게 이 시대 우리들의 교회 모습입니다.

 

마귀가 또 하나 내민 카드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는 기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적을 행하여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각인을 시켜 놓았어요.

그래서 교인들은 목사들이 신접한 여인처럼 무당 노릇을 하면 능력 있는 목사라고 하면서 추종을 해요.

마귀가 제시한 하나님 아들 상은 한마디로 자기존재감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영웅호걸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논리는, 땅에 가치로 하나님 아들다움은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본문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라고 합니다.

마귀의 소속은 땅이에요.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저주하셨어요.

그러므로 마귀는 땅에 것으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던 방식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귀가 내민 카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증인에게 작은 책을 먹이지요.

작은 책이 영원한 복음이에요.

창세전 언약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전 언약을 가진 성도가 진짜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두 증인들은 땅에 가치로 가득한 종말의 세속화 된 교회에 가서

하늘에 가치인 하나님의 언약에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러자 땅에 거하는 자들이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유브라데 전쟁이에요.

 

이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벌린 전쟁과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주셨던 그 능력을 주셔서 말씀을 증거 하는 기간 동안은

악한 자들을 이기게 하십니다.

 

두 증인들이 말씀을 전할 때 방해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해요.

영적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증인들이 그 증거를 마치는 때에는 힘없이 죽임을 당해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마치고 쉬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군대에서 제대 시킨 것과 같아요.

 

두 증인은 이 땅에서의 삶은 마치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과 동일한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증인도 예수님처럼 죽임 당했어요.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던 땅에 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육에 속한 자들이 예수를 죽였어요.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성전에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던 자들이에요.

 

이러면 두 증인들을 죽인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의 정체를 알 수가 있겠지요?

거짓 목사들이에요.

이들은 예수를 죽인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배를 채우던 자들이에요.

 

성경을 보면 답이 있어요.

구약에 선지자들이 누구랑 싸웠습니까?

그리고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였나요?

거짓 선지자들과 싸웠고 그들에게 죽임 당했어요.

 

거짓 선지자가 어디서 활동합니까?

교회에요.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등쳐먹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은 거짓 목사들을 폭로하고 있어요.

이들을 적그리스도 세력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 초림 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권력을 삼았어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의 돈을 갈취하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육에 속한 목사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공갈을 쳐요.

교인들을 협박해요.

자기들 말을 안 들으면 저주 받는다고 해요.

여기에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사람들은 다 속아요.

거짓 목사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어요.

 

영적인 일에는 인간의 똑똑함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해요.

그래서 거짓 목사들의 말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라고 하지 마세요.

그들이 우리보다 똑똑치 못하여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짓 것을 믿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들이 입에서 불이 나오지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불은 심판성을 말해요.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모습이 어떠했나요?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지요.

이는 성령이 감동으로 증거되는 말씀은 불 같이 심령을 변화시킨다는 말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 이야기를 해 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지요.

 

'말씀이 불같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거짓은 소멸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소성 시킨다는 의미에요.

 

작은 책을 먹은 두 증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 항상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어떤 이는 신앙이 힘을 얻고 살아나고 어떤 이는 그 반대로 심령이 강퍅해지기도 해요.

 

복음에 합당한 자들은 말씀을 들으면 회개하고 돌이켜요.

허물어진 신앙의 단을 다시 쌓는 모습으로 나타나요.

반대로 복음에 합당치 않는 자들은 점점 멀어지고 신앙의 단을 허무는 모습으로 나타나요.

게으름으로 나타나요.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면 감사해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쪽으로 나타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핑계로 그나마 하던 신앙생활도 안 하는 식으로 나타나요.

동일한 복음을 들었음에도 상반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의 차이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의 차이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육에 속한 자들은 신앙에 쌓았던 단을 허물어 버려요.

오히려 더 열심히 하여야 하는데 반대로 게으르고 악해져요.

이건 마치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 썩는 것과 같아요.

 

이 시대 이런 자들이 엄청 많아요.

복음 아는 것이 마치 모든 신앙인줄 알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어요.

복음을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여서 어떤 논리를 만들어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으니 우린 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신앙의 형식들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면 영에 속한 자들은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지만,

육에 속한 자들은 그나마 있던 신앙의 단들도 다 허물어 버리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면 율법 폐기론자가 되고 무 율법주의가 되어요.

이들은 복음을 자기 사욕을 좇는데 악용을 해요.

예수 믿으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하면서 자기 맘대로 살아요.

 

은혜를 옳게 받으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순종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건 사랑해 보면 알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듣고 싶어져요.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 있어요.

그게 사랑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그래요.

하나님 말씀을 더 순종하고자 해요.

비록 우리 몸이 연약하여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지향성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이걸 구약의 귀를 뚫은 종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은혜 받은 자들은 귀를 뚫은 종처럼, 자원해서 헌신하며 살게 되어요.

옥합을 드린 막달라 마리아처럼요.

 

분명히 말합니다.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 사람은 지금 성전 밖 마당 신자에요.

이방인과 같아요.

 

이방인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자기 몸에 사욕을 쫓아가는 자들이에요.

자기 몸뚱이를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에요.

그러니까 복음 안다는 핑계로 자기 몸뚱이 편한 쪽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나는 성전 밖 마당만 밟고 다니는 이방인 신자입니다 라는 것을 자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누구랑 싸우는 줄 아세요.

자기 몸뚱이 챙기는 육에 속한 자들과 싸워요.

저도 지금 이러한 자들과 싸우고 있어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자기 몸뚱이를 위하여 사는 자들을 말해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세요.

그 안에 자칭 유대인들과 자칭 사도 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어요.

자칭이란? 짝퉁이란 말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짝퉁 신자들이 많이 있어요.

이들이 복음을 훼방하는 자들이고 예수를 죽이는 자들이에요.

두 증인들도 이러한 자들에게 죽임 당해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난 후 사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전하자

두 가지 상반 된 반응들이 나타났어요.

한 쪽에서는 어찌할꼬!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개심이 가득하여서 이를 가는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누가 적개심으로 이를 갈았나요?

오늘 본문 식으로 말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육에 속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두 증인들이 교회 안에서 육적 신자와 영적 성도를 갈라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걸 유브라데 전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두 증인들에게 성전을 척량하라고 하셨는지 그 뜻을 알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 배경을 구약의 엘리야 시대나 바벨론에게 망한 때로 말하는지도 알겠지요?

이는 이 시대 교회가 그 때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건 이 시대 교회의 모습과 같아요.

거짓 목사들이 예수를 전부 왜곡시켜 놓았어요.

엘리야 때에 거짓 종들이 여호와를 바알과 아세라로 둔갑 시켰어요.


지금도 거짓 목사들이 예수를 바알로 둔갑 시켜 놓았어요.

세상에서 성공시켜 주는 예수로 바꾸어 놓았어요.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증거 되는 예수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에요.

 

예수님은 이러한 것으로부터 빼내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거짓 종들이 땅에서 부요를 주는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녀란? 몸을 팔아서 사는 여자를 말해요.

이 시대 교회가 예수를 가지고 사고 파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음녀이지요.

 

이러한 것은 모두가 말씀을 몰라서 그래요.

창세전 언약을 모르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땅에 것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서 땅에 복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빼내려고 오셨는데 말이죠.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합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말씀을 모르면 무식해져요.

 

신앙의 타락이란? 말씀의 왜곡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요.

하나님 말씀을 육적으로 해석 하면서부터 타락은 시작이 되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두 증인들에게 작은 책을 먹이시고

하나님 말씀이 왜곡되어서 전해지는 교회에 가서 다시 예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두 증인들이 죽지요.

두 증인들이 죽은 곳을 뭐라고 하는가요?

'영적으로 소돔이라고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고 예수님께서 죽으신 곳'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소돔이나 애굽이나, 예수님 초림 때 구약 교회나 종말의 교회나 다 같다는 말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고,

애굽 사람들은 떡을 위하여 살았고,

예수를 죽인 유대교는 겉치레만 화려한 외식 신앙생활을 했어요.

 

종말 교회는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요.

복음을 빙자하여 육신의 쾌락을 좇아가고 있으며,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예수를 이용하고 있으며,

경건의 이름은 가졌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아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종말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세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비친 모습은 어떠했나요?

예수님은 가련하고 헐벗고 가난하고 눈멀고 발가벗고 있다고 하지요.

 

두 증인들이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진단한 것처럼 종말 교회들을 진단 할 것입니다.

 

위선을 고발하고,

외식을 고발하고,

악을 고발 할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유대교를 고발한 것과 같아요.

그러다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죽임 당함으로서 그들의 악을 고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증인들을 예수님과 같은 프로그램에 동참을 시키셔서 부활을 시키십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처럼 살게 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두 증인들을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구원을 해 내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두 증인들이에요.

예수와 연합 한 자들이에요.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죽임을 당하여도 이긴 자들이에요.

 

사흘 반 만에 생기가 들어가서 부활을 하지요.

여기서 사흘 반이란? 삼년 반을 축약해서 하는 말이에요.


삼년 반은 다니엘의 70 이레 중에서 마지막 남은 한 이레의 절반을 말해요.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후부터 시작되는

신약의 전 기간을 함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두 증인들이 사흘 반 동안 있다가 생기로 인하여 부활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흘 만에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 한 것과 같은 의미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 시대에 복음 전하던 모든 종들이 70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인 삼년 반 후인

예수님이 재림 할 때 부활 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두 증인들입니다.

두 증인이라고 하니까 이걸 또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두 사람이라고 하면 안 되어요.


율법에 의하면 어떤 것을 증거 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두라고 하였어요.

그러니까 두 증인은 두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동일하게 증거하는 종들을 말해요.

 

예수님이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신약에서는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는 증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둘씩 파송 했듯이 지금도 파송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디로 파송 하던가요?

이리들이 있는 곳으로 파송하시지요.

이리 속에 가서 뱀처럼 지혜롭게 하라고 하셨어요.

 

양 잡아 먹는 이리들이 어디 있나요?

교회 안에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마리아로 가지 말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라고 파송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이 어디에 있나요?

타락된 교회 안에 있어요.

교회가 이스라엘이에요.

 

교회 안에 복음을 듣지 못하여 잃어버려진 양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두 증인을 교회로 파송 하여 성전을 척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 교회 안에서 잃어버려진 양들을 찾아냈듯이

종말에도 우리가 두 증인이 되어서 음녀로 타락한 교회 안에서 잃어버려진 양들을 찾아 내셔야 합니다.


주께서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들을 자에게 들려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각자 처한 교회 안에서 복음에 빚진 자 답게 뱀처럼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세요.

 

주님이 곧 오십니다.

그 때까지 잘 견디시고 이겨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듯이 말씀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으나

정작 들어야 하는 복음이 희귀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의 눈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마음을 열어서 복음이 들려지게 하시고

주의 일하심이 보여지게 하시고 창세전에 계획 되었던 새 언약이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작은 책 영원한 복음을 먹여 주셨사오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두 증인으로서 다시 예언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하오니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서 두 증인의 사역을 잘 감당케 하여 주옵소서.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들지라도 앞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께서 늘 동행하고 계심을 믿고 담대함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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