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뉴턴의 생애와 신앙 P1 출처
송용조 목사님의 강의 입니다. 아래 녹음의 처음 40분을 녹취했습니다.
◑먼저 존 뉴턴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고난과 고난의 연속이네요)
▲존 뉴턴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존 뉴턴의 생애가 이 찬송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그 외에도 <시온 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 없네>
<귀하신 주의 이름은 참 아름다워라>, <지난 이레 동안에 예수 인도 했으니>
이런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은혜스런 찬송들이 더 있습니다.
존 뉴턴은 1725년 7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어머니 Elizabeth와
상선의 선장인 아버지 John Newton Senior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30세 아주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존 뉴턴이 만 6세 경이었습니다. 충격이 아주 컸을 시기이죠.
마지막은 친척 집에 가서 요양을 하기 위해서 떠났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뉴턴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은 어린 시절을 상당히 외롭게 지냈습니다.
8~10세까지 2년 동안은, 기숙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습니다.
뉴턴이 일생 학교교육이라고 받은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후에 그는 목사가 되었지만, 신학교도 정규신학을 졸업을 못 했습니다.
그는 만 10세 때 (한국나이로 12세) 학교를 그만두고
선장인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배를 타고
어린 아들과 함께 항해하며, 선원/ 뱃사람으로서의 일을 가르칩니다.
아들이라고 봐 주지 않고, 아주 호되게 일도 시키고,
여러 가지 뱃사람으로서 익혀야 할 기술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뱃사람이 되었으니, 세상적으로보면 불행하죠.
뱃사람들은 굉장히 거칩니다.
배에서 난동이 일어나면 죽여서 바다에 빠뜨리기도 하는 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린 존 뉴턴은, 그 거친 선원들의 거친 행동과 상스러운 욕설과
무리한 행동들에, 자연히 물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그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던 신앙교육의 영향은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원으로서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
아버지 선장은, 다른 배에 아들을 정식 선원으로 취직시킵니다.
19세 되던 해, 뉴턴은 다른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중 무단 탈함합니다.
배에서 떠나서 해안에서 떠돌다가 영국 해군에게 붙잡히는데요.
그가 왜 배에서 떠났는지 그 이유로,
어떤 책에 보니까, 배에서 너무 힘드니까
아버지를 만나서, 조금 쉬운 배로 옮겨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탈함했다는 책도 있고,
또 다른 책에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집을, 몇 년 후에 십대 초반에 방문했습니다.
그 집에 가니까,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남자형제도 있고, 어머니 아버지도 있고, 굉장히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뉴턴이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은 못하고, 짝사랑했는데
그 여자아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탈함했다고 쓴 책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무단 탈함해서 해안을 떠돌다가
당시는 군대에서 강제징집을 할 때 였습니다. *한국도 625때 그랬지요
그래서 해군에게 붙잡혀서 강제징집을 당했습니다.
자기가 선원이라는 신분이 명확했으면, 강제징집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탈함을 했고, 또한 신분 증명도 명확히 할 수 없었던 터라,
말을 해도 믿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 영국 해군에 끌려갔습니다.
그는 선원 경험이 있어서, 1등 수병으로 징집되었습니다.
한국도 해군 군기가 아주 셉니다.
그런데 영국 해군은 굉장히 훈련도 엄격하고, 군기가 셌습니다.
엄격한 규율과 채찍질 때문에, 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배로 찾아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장교(부사관)으로 진급을 했습니다.
이 뉴턴이 탄 배는, 전함이었지만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고
스코틀랜드 해안을 오르내리거나 노르웨이로 다니는 상선을 호위하는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이 뉴턴은, 배에서 <사튜트에리의 성격론>과
또 무신론자이며 학식이 풍부한 제임스 미첼의 영향을 받아,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믿음을 완전히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완전히 불신자가 된 것입니다.
▲존 뉴턴이 타고 있는 군함 하이츠 호가, 5년 동안
동인도 제도와 희망봉(남아공)으로 항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존 뉴턴은 그가 사랑해서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폴리 캐틀렛 (애칭 Mary Catlett) 이란 여인이 있었는데
자기가 만약 5년 동안 영국을 비운다면,
그 기간 동안에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겠다는 염려 때문에,
휴가를 나갔다가, 며칠 후에 늦게 귀대했습니다.
또 그 후에 그가 탄 배가 정박 중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탈영을 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부사관의 계급도 박탈당하고, 동료들이 보는 가운데
상의가 벗겨진 채로 기절할 때까지 매질(96대)을 당하는 처우를 받았습니다.
이 때도 문제는,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탈영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뉴턴은, 선장을 죽여버리고
자기는 자살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선장을 죽이지도 못하고, 자살도 못 한 것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자살도 못했다고.. 책에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여러 번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어도, 결국 자살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살을 감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존 뉴턴은 매맞은 상처 때문에, 고통도 심했고,
추위와 폭풍과 심한 더위와 썩어져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과
온갖 이상한 질병들이 기승을 부리는, 그 해군의 환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영국 해군선에서 떠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노예선에서 ‘선원경험이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요청이 있어서,
해군선에서는, 존 뉴턴을 그 노예선으로 보냈습니다. 자기도 그걸 원했고요.
그래서 존 뉴턴은 해군선을 떠나서, 이제부터 노예선의 선원으로 다시 출발합니다.
그때 그 노예선에 옮겨 타자마자, 뉴턴은 사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게으르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입이 거칠었습니다.
그는 며칠 사이에 선원들을 부추겨서, 선장과 상급 선원들을 비판하고 반항하도록
배의 분위기를 아주 흐려놓았습니다.
그 배의 선장이 갑자기 죽자, 뉴턴이 조롱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항해사가
선장 직무 대행을 맡게 됩니다.
그가 선장이 되자마자, 뉴턴에게 복수하려고
항해 중에 처음 만나게 된 영국 해군에게
뉴턴을 넘겨줄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죽어도 해군선으로 가고 싶지 않았던 뉴턴은, 크게 위협을 느끼고는
그 배에 함께 타고 있었던 노예상인 클로위 Amos Clowe 가 있었는데,
그는 상당히 부자고, 영향력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뉴턴은 그 노예상인 클로위에게 부탁했습니다.
제발 자기를, 당신이 데려가서 노예상인으로 일을 시키든지,
아니면 다른 배에 선원으로 일을 시키든지.. 여기서 떠나게 해 달라고요.
그래서 클로위가 선장직무대행에게 부탁해서
존 뉴턴을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은, 이제부터 클로위를 따라서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을 수용하는, 한 섬으로 가서 지내게 됩니다.
그 섬은, 노예 매매의 중간기착지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를 수용했다가, 영국이나 미국에 팔아넘기는 곳이었습니다.
클로위는 뉴턴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섬에서 닭을 키울 땅도 주었고,
노예들로 하여금, 존 뉴턴이 먹을 야채도 심게 하고
또 거처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클로위와 함께 사는 그의 흑인 아내가
뉴턴을 보자마자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이 클로위의 흑인 아내는,
그녀의 부족에서는 높은 신분을 가진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과 자기 사이에
뉴턴이 끼어들어서 이윤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더군다나 존 뉴턴을 아들처럼 여긴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더 한층 뉴턴을 증오했습니다.
존 뉴턴이 열병으로, 클로위와 함께 배를 타고 출항하지 못하게 되자
그 흑인아내는, 병든 뉴턴을 집에서 쫓아내면서, 창고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뉴턴이 창고에서 열병으로 의식을 잃고, 헛소리로 물을 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하인들에게 물을 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뉴턴이 열병으로 죽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의 병세가 호전되자, 허기진 뉴턴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인들을 시켜서,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그녀가 먹다가 남긴
뼈다귀, 껍데기, 연골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굶주린 뉴턴은 그것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습니다.
그녀가 하루는, 뉴턴을 식당으로 오게 했는데,
식탁에는 닭고기, 쌀죽, 포도주 등이 잔뜩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뉴턴에게, 자기가 먹다남긴 닭 찌꺼기와 생선 뼈만 담겨 있는 접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뉴턴은 너무 기운이 없어서,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마룻바닥에 흩어진 음식 찌꺼기를, 그녀는 뉴턴이 무릎을 꿇고 혀로 핥아 먹게 했습니다.
남편이 없는 섬에서, 그 섬의 여왕이 된 그녀는, 뉴턴을 노예로 부린 것입니다.
그를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존 뉴턴은 노예들이 몰래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노예들의 동정을 받는, 노예보다 못한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자기 생명을 부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질병과 탈수, 굶주림과 심한 학대를 견디고, 드디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죽으면 안 되니까, 살려주신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클로위가 항해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내가 뉴턴을 악평하고 비난하는 말을 믿었습니다.
보디발처럼 자기 아내를 더 믿었습니다.
그래서 클로위가 장사하기 위해 다른 섬으로 떠나면서
존 뉴턴을 남겨두면, 자기 아내와 재산에 해를 끼칠까 해서
뉴턴을 데리고 갔습니다.
클로위는 모선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육지로 거래를 하러 나갈 때는
뉴턴을 배 난간에 묶고 자물쇠까지 채웠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음식은 흰죽 한그릇 뿐이었습니다.
그는 한낮의 열기와 밤의 추위로 몸은 더 허약해져 갔습니다.
클로위와 그의 아내는, 존 뉴턴을 대장간으로 데려가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살갖을 파고드는 무거운 족쇄를 채우고 감시했습니다.
무거운 족쇄를 차고, 햇볕에 타서 해골처럼 된 몰골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언제나 육지에서 사람들이 오면, 뉴턴은 부끄러워서 자기 몸을 숨겼습니다.
▲어느 날 영국 상인 한 사람이 섬을 찾아 왔습니다.
그 상인은, 백인이 다른 백인을 실제로 노예처럼 취급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습니다.
심한 학대를 받아서, 뉴턴은 곧 죽을 수도 있고,
또 백인이 백인을 노예로 삼고 있다는 나쁜 소문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클로위는 찾아온 상인에게, 뉴턴을 넘겨줍니다.
그래서 드디어 존 뉴턴은, 클로위와 그의 흑인 아내의 손에서 풀려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21살이었습니다.
그 영국 상인은 존 뉴턴에게 의복, 식사를 제공하고
또 그에게 재정관리와 그의 집안 일을 하게 했습니다.
존 뉴턴은 감사한 마음으로 아주 열심히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국상인은, 존 뉴턴에게 잘 해 주다가는
자기와 거래관계에 있는 클로위와 그의 흑인아내가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인은, 존 뉴턴을,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먼 섬으로 보냈습니다.
▲뉴턴은 거기서 젊은 영국인 한 사람을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사업을 시작해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업은 호박과 수박 재배를 감독하고, 또 상품과 노예를 교환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노예장사를 한 것입니다.
뉴턴은 아프리카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 되어서, 완전히 흑인처럼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흑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사업처에서 돌아와 집에 누울 때는
하인들을 거느렸고, 흑인을 부인으로 얻어 종처럼 부렸습니다.
이 무렵 존 뉴턴의 아버지는, 뉴턴이 서부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서부 아프리카 교역을 위해 출항예정이었던 한 배의 선장에게
자기 아들을 찾아서 안전하게 영국으로 데려오면, 많은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선장은, 그래서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존 뉴턴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존 뉴턴을 찾은 그 선장은,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으며,
찾아서 데려오도록 자기에게 부탁했다고 말했습니다.
존 뉴턴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고 있고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은 좋았지만,
그는 그곳에서 하는 일과, 흑인 아내와 함께 사는 일을 더 좋아했습니다.
비록 흙집에서 살지만, 하인들을 부리면서 지내는 편안한 생활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장은, 거짓말 까지 하면서 설득했습니다.
먼 친척이 죽으면서, 꽤 많은 유산을 뉴턴에게 남겨놓았다는 거짓말이었죠.
▲그래서 뉴턴은 흑인아내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겨주고
그레이하운드 호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기 아버지 부탁을 받은 그 선장이 타고 있는 그 배가 그레이하운드 호였습니다.
그 배는 노예상선이 아니라, 일반상선이었습니다.
존 뉴턴은 그의 아버지에게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을 적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때 존 뉴턴은 나이가 22살 경이었습니다.
그 배는 중간 항구를 거치지 않고, 영국으로 직항했습니다.
존 뉴턴이 그 배에 오른지 11개월 쯤 되던 1748년, 그러니까 뉴턴이 23살 때입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는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배가 이리저리 요동쳤고, 선실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뱃머리를 덮쳤습니다.
선원들은 배에 들어온 물을, 물통이나 큰 그릇으로 퍼냈습니다.
파도가 몰아치면 퍼낸 물보다 더 많은 물이 다시 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존 뉴턴은 9시간 동안 수동 펌프로 물을 퍼내고 거의 기진맥진했습니다.
그 뒤 그는, 11시간동안 또 그 풍랑에 침몰 직전인 흔들리는 배의
키를 잡고 배를 조정해야 했습니다. 기술자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는 배를 조정하면서, 거의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위기 상황에서 존 뉴턴은, 어린 시절에 기도했던 자신의 모습과
어머니의 말씀과, 아이작 왓츠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아이작 왓츠는 찬송가 작사자이며 목사입니다.
자기 어머니가 자주 다니던 교회에, 아이작 왓츠 목사가 와서 설교도 했는데
뉴턴은 아직 6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왓츠의 설교를 좋아했답니다.
아이작 왓츠가 지은 찬송도 참 간단하고 은혜스럽습니다.
설교도 아마 간단하게 인상적으로 잘 했던 것 같아요.
아이작 왓츠의 찬송도, 우리 찬송가에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7장, 구주와 왕이신 우리 하나님♪
♪나는 예수 따라가는 십자가 군사라♬
♬십자가 군병되어서 예수를 좇을 때♪
어린 뉴턴에게, 아이작 왓츠 목사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크면, Watts 목사와 같은 성직자가 되어서 설교하겠다고
한 때 그런 생각을 가졌을 정도였는데,
그러다가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왓츠의 설교와 교리 문답을 통해 들었던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혼란스런 인생 가운데서 잊어버렸던 성경구절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마침내 폭풍은 잠잠해졌고,
뉴턴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 날 폭풍 속에서 구원해주신 그 은혜,
또 이 폭풍 때문에, 어릴 적 신앙을 다시 되찾게 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해서
그는 평생 이 날을 자기 생일은 안 지켜도, 이 날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잊지 않고 기념일로 지켰다고 합니다.
마침내 폭풍은 잠잠해졌고, 존 뉴턴은 폭풍속에서 살아남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는 선장의 선실 선반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약성경도 읽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읽던 그 성경에,
그 동안 그가 가졌던 모든 의문과 의심에 대한 해답이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께 배웠던 모든 것이 다 다시 회상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존 뉴턴은 현저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그의 입에서 욕설이 사라진 것입니다.
언어가 제일 늦게 변한다는데, 뉴턴은 언어습관이 제일 먼저 변했습니다.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폭풍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나서야, 존 뉴턴이 탄 배가 육지에 닻을 내렸습니다.
육지에 내린 첫날, 뉴턴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과, 과거에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용서를 구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배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적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여 주님께로 다시 돌아온 것과,
아버지는 신앙이 별로 좋지 않은 영국 국교회 신자였는데,
그래도 아들이 신앙을 도로 갖게 된 것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탕자처럼, 아버지인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뉴턴 선장은, 아들 뉴턴을 만나기 전에, 런던을 떠나 캐나다로 가야 했습니다.
존 뉴턴은 영국 리버풀에 도착해서, 노예무역선인 브라운로 Brownlow 호에
1등 항해사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선장 다음의 위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잠시 노예를 사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존 뉴턴은 노예매매가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다시 찾은 신앙이, 그로부터 다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의 배가 아프리카에 도착한지 두 달이 지나
브라운로 호는 플렌테인 섬에 도착했습니다.
클로위(옛날에 자기를 고생시킨 상인)와 거래를 하기 위해
존 뉴턴이 파견되었습니다.
클로위와 그의 부인은, 이번에는 그를 고객으로 환대해 주었습니다.
며칠간 거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존 뉴턴은 자신이 2년 전에 살았던 그 작은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거기서 또 원주민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완전히 회개는 안 한 거죠.
풍랑 속에서 완전히 회개를 못한 거죠.
참 변화가 이렇게 더디고 어렵습니다.
(변화의 어떤 계기, 모멘트는 있지만) 갑자기 확 바뀌는게 아닌 것 같아요.
바로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간섭이 나타납니다. 채찍을 때리시는 거죠.
처음에 클로위 집에 있을 때 앓았던 것 같은 심각한 열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뉴턴이 배를 탈 수 없으니까, 선원들은 병든 그를 남겨둔 채 브라운로 호로 돌아갔습니다.
클로위와 그의 흑인아내는, 뉴턴을 잘 간호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뉴턴이 그들에게 중요한 고객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점차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시 동안 정신이 맑아지면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근처 동굴에 들어가서 땅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는 원주민 아내와 이교도적인 생활을 모두 버리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완전히 회복되어 브라운로 호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가 육지에 상륙하기만 하면, 그때마다 숲속으로 들어가서
나무 사이에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으며, 라틴어 공부도 새로 시작했습니다.
▲존 뉴턴이 일하는 브라운로 호는, 노예를 실어나르는 노예수송을 전용으로 하는 배였습니다.
이 배에서 노예들은 움직이거나 돌아누울만한 공간도 없었습니다.
마치 숟가락처럼 모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남자 노예들은 둘씩 사슬에 묶여 지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까봐 그럤던 것 같습니다.
노예들의 고통과 참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존 뉴턴은 아직도 노예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브라운로 호는 218명의 노예를 싣고 출발했는데,
그 중에 62명이 항해 도중에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노예들은 노예시장에서 팔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권리도 자유도 없이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슬프게도 존 뉴턴은 이런 참상을 보면서도, 별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브라운로 호가 영국으로 돌아온 얼마 후에 존 뉴턴은
그가 사랑하고 있는 폴리 캐틀렛(애칭 메리) 여자와 아주 힘들게 결혼합니다.
왜 힘들게 결혼하는가 하면,
이 폴리 여인이, 전에는 여자는 좋아했는데 부모가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일등항해사니까 또 선장이 될 사람이니까 직업이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부모들은 결혼을 환영했는데, 이제는 폴리가 거부했습니다.
왜냐면 서아프리카에서 뉴턴의 생활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흑인 여자하고 살았던 과거.
또 잠시 잠깐 틈이 있으면 또 원주민 여자를 아내로 삼고 지냈던 것,
그래서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고,
말하자면 자기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못 믿을 사람이다..
이래서 폴리는 뉴턴과의 결혼을 심하게 거부했는데,
결국 뉴턴은 아주 힘들게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3개월이 지나서, 1750년 5월, 존 뉴턴은
<아질 공작 Duke of Argyle> 호의 선장이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4살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시련을 겪고, 훈련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24살에 선장이 되면, 상당히 일찍 세상적으로는 출세를 한 겁니다.
선장으로서 어느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항해일지도 쓰고, 성경도 읽고,
라틴 고전과 시를 읽고, 영어로 그것을 번역도 했습니다.
선장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으니까요.
주일이면 언제나 오전 4시에 기상해서, 갑판을 거닐면서 묵상을 하고,
선실로 돌아와 성경을 두 세장 읽었습니다.
그리고 길게 기도한 다음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 11시에 선원들의 아침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존 뉴턴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오후에는 여러 차례 기도를 했습니다.
오후 4시에는 선원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들을 갑판에 집결시켰습니다.
성경공부가 끝난 후 갑판을 거닐 며 묵상하다가,
오후 6시에 선실로 돌아와서 개인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날씨에 상관없이 그 일을 계속 했습니다.
선원들은, 선장의 경건생활을 불평했습니다.
*P2에서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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