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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삶의 비밀 / 젠센 프랭클린

LNCK 2016. 9. 9. 10:51

기뻐하는 삶의 비밀 / 젠센 프랭클린 - YouTube

기뻐하는 삶의 비밀                         시16:11, 46:10, 1:8      TV설교젠센 프랭클린 213

 

The secret to joyful living / Jentezen Franklin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46:10

 

아래 설교의 핵심은,

-요즘 디톡(해독)’이란 말이 유행인데,

휴대폰, 인터넷 SNS 등을 다 끊고, 디톡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잠잠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죠.

 

-또 한 가지는, 한 가정의 가장은

골리앗과 싸운 다윗처럼, 자기 가정의 대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골리앗에 지면, 모든 가족이 다 마귀의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쾌락불감증 사회 속의 현대인

 

스트레스, 중압감, 현대 사회의 분주함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독특한 질병을 발병시켰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상태를 의사들, 심리학자들은 쾌락불감증 anhedonia’ 이라 부릅니다.

쾌락불감증은 의학적 용어로, 능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 숫자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기쁨과 행복을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찾지 못합니다.

감각이 무뎌지고,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일례로 아주 맛있는 맛집이나, 아주 고급 식당이 있다고 칩시다.

거기에 일주일 연속으로 가서 식사를 해 보십시오.

반드시 물릴 것입니다. 별 맛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쾌락불감증 anhedonia’은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an~이 없이 (without), hedone는 기쁨 (pleasure)입니다.

영어로 hedonism (쾌락주의)라는 말이 있죠.

 

오늘날 기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삶에 행복과 기쁨을 못 느끼며 살아가며, 생기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런 현상이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3영역이 있습니다.

 

1) 사회적인 쾌락불감증

즉 사람들이 함께 있지만, 서로 교감이 없다는 뜻입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너무 바빠지며, 그래서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가

자기에게 무덤덤하게 되고, 별 상관없는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낙도 같은데서 떨어져 있어보면, 그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되죠.

 

2) 흥미로운 것은 음악적 쾌락불감증도 있습니다.

음악에 지나치게 빠지면 이런 불감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더는 느낌이 없고, 전혀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음악을 듣다보니, 자신을 감동시켜 주는 것이 없습니다.

 

3) 성적 쾌락불감증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정신분열증 환자나, 마약중독자에게 나타났던 현상이라면,

최근 의학잡지에 게재된 의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21세기 현재 시대는 온전히 건강한 사람들이

점점 더 이 증상으로 진단받고 있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평범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기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1:8,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이때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지금 자기가 너무 많이 찾고 있는 것을, 더욱 줄여나가야 합니다.

절제가 필요한 거죠.

 

우리 뇌에서 기쁨을 느끼는데요.

행복을 받아들이고 행복을 느끼며 웃고 즐거워하는 원리는

뇌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생긴다고 합니다.

 

도파민을 배출하여, 사람을 행복하게, 기분 좋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휴가를 떠나게 되면 뇌에서 이것이 배출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발생하는 현상은, 우리가 이런 감정에 의존할 때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이 점점 더 발전하는 단계로 나아가면서

사람들은 평소에 안 하던 것을 찾게 되는 거죠.

더 자극적인 포르노에 빠진다든지, 마약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뇌에서 도파민이 배출되므로

기분이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또 중독되다가,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자극의 기준을 올리고 더 강한 것을 원하게 됩니다.

다른 걸 시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자꾸 더 애인을 찾게 되지요.

다른 애인을 찾고, 또 다른 애인을 찾습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다는 말씀처럼,

평소에 찾던 기쁨으로는, 더 이상 기쁨을 얻지 못하고

쾌락불감증에 빠지는 거죠.

 

의사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증가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과도하게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과학의 발전과 계발과 발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서, 우리 뇌는 24시간 내내 자극을 받고,

그게 1365일 계속 지속됩니다.

 

우리 손끝으로 조작하는 수많은 제품으로 인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그들과 교류하지 않습니다.

 

손에는 늘 스마트폰을 들고서, 또는 SNS를 들여다보면서

이것 저것 확인하고 보면서, 정보만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뇌를 쉬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채팅, 애플리케이션, 게임,

와이파이, 위성 TV, 여러 사진과 영상물 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으로, 뇌는 과도한 자극을 받습니다.

 

이런 현대의 이로운 기기들을, 제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말없이 밥만 먹거나, 가족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온 가족이 거실에 함께 모여 있어도,

각자 자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의사가 기술에 관해 이런 강력한 언급을 했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삶에 혁신을 일으키지만,

우리의 뇌를 파괴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작가이자 감독에게

어떻게 이렇게 화려하고 기이한 특수효과를 갖춘 영화를 제작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교육을 받길 원했고

계몽되고 발전되며 능력을 갖추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즐기길 원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질병이나 죽음이 아니라 삶의 지루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핸드폰 없이는, 화장실에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과장법)

아무 데도 못가죠.

현대인의 가장 두려움은, 죽음이나 질병이 아니라,

1초라도 조용하고 잠잠히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대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잠잠하라.’

모든 것을 다 끄고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46:10

 

자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봅시다.

우리는 과도하게 자극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고, 섬기는 것에 방해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이런 자극으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올 때에도 축 쳐진 몸으로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도 축 쳐져서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삶은 공허합니다.

우리는 과도한 자극을 받으며 살고 있기에

웬만한 것에는 감동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더 충격적인 것을 바라게 되는데요...

그러면 죄를 짓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괴로움과 방황과 후회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지만 주의 임재 안에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참 즐거움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는 이것을 두고 크리스천 헤도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연속되는 파티에도 없고, 클럽에 계속 간다고 있지 않아요.

다른 애인을 만들어도, 또 만들어도 다시 한 번 결혼을 더 한다 해도

결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참 만족은, 참 행복은

오직 주님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연결되어 있으면, 사람들과도 참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더욱 그분과 연결될 때, 자녀나 이웃을 더욱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 헤도니즘, 관계속에서 느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주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더욱 더 자극적인 세상을 원하게 되고,

세상 헤도니즘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결국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목회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감동을 주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감동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게 일상이 되어, 매너리즘에 빠져서, 미지근한 신자가 됩니다.

 

이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여야 합니다.

그 얼굴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42:5, 11.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나는 너무 멀리 떠났어요. 그리고 제 신앙은 식었죠.

내 안의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불을 다시 붙여야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기쁨을 가져올 수 없으며

다른 어떤 것도 삶에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일단 그렇게 불을 붙이려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46:10

전자제품부터 일단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설교시간에, 그분의 임재를 느낍니다.

정말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성령님을 환영하십시다.

성령님께 고백하십시다. 주님께서 제 마음과 중심과 이곳에 임하시길 원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기쁨이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것이죠.

뭔가 거창한 자극이 있어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았고

불이 있었으나, 불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은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임재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세미한 소리 still small voice 가 있는지라왕상19:12

 

처음에 엘리야는 이것을 놓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황폐해집니다.

세미한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서두르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 마음 가운데 진심으로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세미한 소리가 진정한 기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목적과 진정한 즐거움, 평화, 용서와 만족을 말이죠.

 

저는 이런 고백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제게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게 예수님을 주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낫습니다.’

 

*웨슬리가 임종 전에, 그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낫습니다.’

평소에 늘 그런 고백을 하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주님을 찾지 않다가,

임종 전에 간절히 찾는다고, 주님이 오시진 않겠죠.

 

 

현실적인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제게는 정말 멋진 17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정말 놀랍고 사랑스런 착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들에 대해, 요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 유일한 아들이라,

단 둘이 있게 되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계속 질문했습니다.

 

아들, 요즘 잘 지내니?’

네가 보는 것들은 다 괜찮은 것이니? 인터넷으로 보는 것들에 주의 하거라.’

 

내게 말해봐라, 내게는 어떤 것이든 솔직히 말해도 된다.

아버지한테 말하기엔 어색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말해봐.

원수는 다음 세대를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 교회 내 상담센터에서는, 점점 더 많은 가정이 결혼이 파괴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포르노와 같은 과도한 자극들 때문입니다.

점점 더 수위가 강한 것과 그런 느낌만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 정상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죠.

먼저는 생각의 영역에서 마귀에게 지게 되고,

그게 결국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어서, ‘마귀로 자기를 훼방하게하는 거죠.

*삼하12: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여러분이 아버지라면, 남자로서 이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을 위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서 만나 서로 싸우기 직전에

군대가 일어났다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전투를 하려 한 것이죠.

그런데 골리앗의 말했습니다.

 

우리는 군대 대 군대로 싸우는게 아니다. (아버지들, 귀담아 들어보세요)

한 사람을 택하여 내려보내라. 대표 대 대표가 나와서 싸우자.

나 골리앗은, 블레셋 대표로 나가겠다. 너희는 누가 대표로 나오겠느냐?

 

만약 우리 대표가 지면, 우리는 모두 너희 종이 되겠으며,

만약 너희 대표가 지면, 너희는 모두 우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아버지들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십으로서 목사들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싸우는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거인 마귀를 물리치지 못하면,

우리 아래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와 지도자간의 싸움이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가정의 지도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의 대표이며, 교회의 대표로서

골리앗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여러분에게 있던 권한이, 대적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주일에 이곳에서 교회 놀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그저 틀에 박힌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제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는, 우리를 점점 더 악함과 중상과 육신의 더러움과 부당한 것에

사로잡히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나와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여라

 

우리는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분주하고 황폐한 삶 가운데, 우리 마음에 무엇인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저는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제게는 당신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저는 교회에 와서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과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시편 16편의 말씀과 같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게 해 주소서

 

오늘 주께서 예배를 통해,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길 원합니다.

주의 임재 안에서 거하는 것,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입니다.

거기에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걸 찾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기쁨, ‘죄악의 잠깐 얻는 낙이 아니라요.

 

괜찮으시다면 이 시간, 모두 함께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같이 고백하겠습니다.

 

성령님, 저는 주인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의 임재 앞에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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