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질투 출20:1~7, 34:14 출처보기
The Jealousy of God
by David Wilkerson
복음의 핵심은, 자기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에 감동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출34:8
그 하나님의 사랑은, 모세를 예배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모세처럼 예배자가 됩니다.
아들을 보내신 사랑,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하신 아버지를 예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같은 출애굽기 34장에, 덧붙여 이런 말씀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 이심이라” 출34:14
질투는 항상 사랑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또한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사랑으로,
흠 없는 당신의 신부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마음이 사로잡히셨다는 것을 아시나요?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과 깊은 사랑에 빠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참으로 사랑스런 존재입니다.
주님은 자기 피와 생명을 지불하시고, 신부를 사셨습니다. 즉 구속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신부를 계속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신부와, 열정적인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부에 대해 열정적으로 질투하십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의 관계에서
불성실한 것을 참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주님은, 어떤 ‘속이는 사랑 cheating’도 참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딴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잠입한
어떤 다른 사랑이 끼어드는 것도, 참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부가, 다른 이들을
쳐다보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오직 너만 바라본단다. 너도 나만 바라보기 바란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신부가, 어떤 다른 사랑이나
다른 관심이 들어와서
주님을 향한 관심을 잃게 된다면
하나님은 시기하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신부와의 특별한 사랑의 관계에 대해
매우 질투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애써 지켜나가시고, 힘써 보호하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그 사랑을 지켜나가십니까?
성령님을 통해서, 신부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신부와의 사랑의 관계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 자신에게만 헌신하기를
권위를 가지고 요구/명령하십니다.
부탁하듯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시며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5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시간’을 차지한 어떤 것
여러분의 ‘생각과 관심’을 차지한 어떤 것
그것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질투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62:5
*참고로 여기서 ‘신부, 여인’은, 한 번 버려졌으나 다시 택함 받은 신부를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여러분을 신실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속이고 배반하셨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혹시 불성실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부 사랑에, 절대적으로 완전히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89: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출34:6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나는 죄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며 회개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나는 자비롭다.
내게 헌신하고 나만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자비롭지만
죄 있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그 자손 삼사대까지라도 반드시 보응할 것이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의미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위 7절에서, '과실과 죄와 악행'이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악한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혼란하게 해서
하나님의 질투심이 불타오르게 만듭니다.
불 같은 질투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삼사대까지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가 아주 강력한 것을 뜻합니다.
악행하는 사랑의 배신자에 대한, 질투심입니다.
그 ‘악행’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출20:7
‘사랑에 소원해지는 죄’를 짓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정情이 점점 더 식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고
늘 새로운 사랑, 마음의 새로운 관심을 찾아해맸습니다.
즉, 하나님께 싫증 난 것입니다. 신랑에게 지루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의 우상을 쳐다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뭔가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현실적이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신을 원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질투’가 언급될 때마다
‘우상숭배’와 연관됩니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 (우상)>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신32:16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주님의 질투를 격발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 들어온 우상들을
제 월커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우상들을 우리가 사랑함으로 인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질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1) ‘자기 라는 우상’은 self-help
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환란의 때에도 그러합니다.
‘환란의 때에 내가 너를 찾았고, 내가 너를 도왔다.’
‘네 모든 문제와 어려움에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내가 갖고 있는데..
너는 나 만을 의지해야 한다.
너는 또한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자다.
나는 너의 공급자이다.
너는 사람을, 또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아라.’
2) 두 번째는 ‘원망의 우상’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잠19:3
여기서 ‘원망’이란 단어는,
‘어떤 것에 사로잡히다’는 뜻입니다.
‘원망하다’는 단어는
‘상황이 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고 불평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원망의 반대는 신뢰 trust 입니다.
‘신뢰’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사랑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즉, 원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신뢰가 없다면,
진정한 사랑의 토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온전히 주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것은 고귀하고 거룩한 경배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연적인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영적인 눈으로 보고 깨닫게 되길 원합니다.
3) 세 번째로 ‘두려움과 근심’의 영을 섬기는 것은
악한 우상숭배입니다.
‘원망 또는 걱정’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 삶에 관여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의 평안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일의 성공여부를, 신실한 창조주께 다 맡기십시오.
여호와를 신뢰하고, 다 맡기고
자기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그 일도 지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그 약속을 능히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걱정하며 앉아있습니까?
가정과 삶의 근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여러분은 계속 그렇게 살면서도
이렇게 항변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저도 인간이에요.
당연히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죠.’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그것은 주님 앞에 가증된 행위입니다.
그런 걱정, 염려는, 주님을 매우 질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면 모든 상황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이 앞으로 되어질 일을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장 주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볼 수 없을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시간에,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단지 주님의 품에 머물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반응하여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일하시게 하십시오. Let Him do the work!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시나요?
예수님만으로 완전히 만족하고 채워지며
항상 예수님이 나의 전부라고 고백할 수 있나요?
제가 주님보다 다른 것에, 다른 우상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을 가장 질투하시게 하는 것을
제 심령으로 늘 느낍니다.
우리가 매일, 언제나 주님께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주님은 몹시 질투하십니다.
내가 기도에 게으르고
주님의 임재 앞에 머물지 않으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을 장황하게 하든지
어떻게 고상하게 찬양하든지
내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홀로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반대는, 그 반대입니다.
The Jealousy of God
by David Wilk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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