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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심을 유지하십시오 / 케네스 해긴

LNCK 2016. 12. 15. 13:28

부드러운 양심을 유지하십시오             딤전4:2, 잠12;18           출처


케네스 해긴 Kenneth E. Hagin

 

당신이 만일 부드러운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영적인 것들이 불분명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양심이 당신의 영의 음성이며

양심 즉 당신 영의 음성은

하나님의 영이 성령 깊은 곳을 통해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당신의 마음에 연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신들의 양심에 화인을 맞은 그리스도인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2)

 

30대 중반에 나는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고,

보통 주일 밤에는 어떤 89세의 할아버지 집에 묵곤 했습니다.

 

우리는 8시 경에 둘이서 아침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나는 커피는 마시지 않았는데 이 노신사는 커피를 즐겼습니다.

 

당신은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보지 않는 이상은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구식의 커피 주전자를 - 그때는 193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나무 때는 구식난로 위에다 놓고 커피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잔 위로 김이 펄펄 나는 너무나 뜨거운 커피를

크고 두꺼운 잔에 다 부어, 그대로 들어서 단숨에 전부 다 마셔버렸습니다.

 

제가 처음에, 그가 그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내 입과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는 그렇게 펄펄 끓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실 수 있었을까요?

 

내가 그랬다면 아마도 내 입의 안쪽, 내 입술의 조직, 나의 목과 식도는

너무 연해서, 차 숟가락 하나만큼으로도 식도까지 화상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커피 한 잔을 전부

입에서 떼지도 않고 다 마셔 버렸습니다.

 

그도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그의 입술과 입과 목과 식도가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그렇게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연하고 부드러운 양심을 유지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당신이 잘못을 하는 순간 당신의 양심이 당신을 정죄하면

그 순간 바로 고치는 법을 배우십시오.

당신이 교회 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즉시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바로 말하십시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당신의 영을 연하고 부드러운 상태로 유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의 특징

 

Kenneth E. Hagin

 

사랑은 부정과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공의와 진리가 드러날 때 기뻐합니다.

그에게 닥치는 어떤 것들도 참아내는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의 최선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고전13:6, 7

 

사랑은 그에게 닥치는 어떤 것들도 참아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하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해 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의 최선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자연인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의 최악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사역을 위해 미국을 여러 차례 횡단했습니다.

나는 목사님들이나, 사람들, 또는 찬양 사역자들에 대해

수많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에 관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최선을 믿습니다.

 

자녀들에게는, 그들의 가정에서 이런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자라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인생의 싸움터에 나갔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늘 자녀들의 최악을 보며 늘 그들에게

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당신이 말 한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 안의 최선을 바라보며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 안의 최선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혀는 병을 고친다

 

당신은 병자를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까?

또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러한 적이 있다면 그들이 왜 아프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12:18절은 위대한 계시이며 훌륭한 진리입니다.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자도 있으나 현명한 자의 혀는 병을 고치느니라" 12:18

 

당신이 입으로 건강을 말하기 전까지 당신은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세뇌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미 부정적인 생각들이 주입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1:1).

당신은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니라."

 

이제 2절을 주의해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당신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고

변화받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서 12:2절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들을 하지 말라"인데,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러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먹는 것 같이 먹고, 잠자는 것도 그들과 똑같이 합니다.

이 구절은 본질적으로 세상이 하는 대로가 아닌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나는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여자들이 긴 소매 옷을 입고

긴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하기 전까지는 지옥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세속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주일 아침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토요일 저녁에 설교 말씀에 대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런 방법으로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어떤 설교를 해야 할지 설교 내용을 알았을 때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관해 진정으로 나를 다루셨습니다.

그 날 아침,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말했습니다.

 

"이 교회는 내가 지금까지 설교해 본 중에 가장 세상적인 교회입니다!"

 

이것은 마치 젖은 행주로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 지를 뽐내는 그 교회에서

나는 그 교회가 가장 세상적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이 도시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 당신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것도 하지 않고

저런 것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어떤 다른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결코 본 적이 없는 부정적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아직까지도 세상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질병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생각하고,

의심을 생각하고, 좌절을 생각하며, 실패를 생각합니다.

꼭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당신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하십시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놀라서 죽을 뻔했어." "무서워 죽겠어."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무섭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무섭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두려움의 유혹을 받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두려움아,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거부한다!"

나는 두려움을 거부합니다.

 

만일 의심이 온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의심아,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거부한다!"

 

나는 의심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의심이나 두려운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마귀는 당신 마음에 온갖 생각을 다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들의 산물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당신의 건강과 치유가 혀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혜로운 자의 혀는 병을 고친다"(12:18)는 말을 주의해 보셨습니까?

 

나는 결코 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질병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건강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자의 혀는 병을 고친다"라고 했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질병을 가져온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건강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치유를 믿으며 건강을 믿습니다.

나는 결코 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결코 질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건강과 치유를 이야기합니다.

 

나는 결코 실패를 이야기하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나는 성공을 믿습니다.

나는 결코 패배를 이야기하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나는 승리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한다면 그것이 나의 성공인 것을 믿습니다.

 

로마서 831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해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한일서 4:4절에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더 크신 이(하나님)가 당신 안에 계신다면

어떤 일에 부딪히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낙담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결코 걱정이나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담배 피우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떤 사람은 술 마시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이 흡연이나 음주보다 더 큰 죄,

즉 걱정의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자랑합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더 큰 죄로부터 해방받기를 원합니다.

걱정의 죄, 이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것입니다.

흡연과 음주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걱정은

이 두 가지보다 훨씬 나쁜 것입니다. 걱정은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걱정합니까? 바로 상황입니다.

그들은 내일을 걱정합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나도 내가 직면해 있는 상황과 내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기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문제들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웃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보다 크신 이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웃고 있는 동안 상황은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더 큰 이가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안에 있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

 

할렐루야! 나는 패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입니다. ''입니다.

내가 지난 60년 동안 해온 말은 바로 이런 종류의 말입니다.

 

   내 속의 믿음 때문에, 내가 믿음의 말을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내가 믿음의 말을 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