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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시85:8 출처
찰스 스펄전 / Peace: How Gained, How Broken P3
◑우리는 왜 평안을 잃어버리는가요?
자, 이제 여기서부터는 어떤 것들이 이 놀라운 평안을 방해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그가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임이라.
그러나 그들로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시85:8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평안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누리는 데는 개인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물론 거룩한 유업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항상 유업의 열매를 즐기진 못합니다.
믿음이 강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환난이 닥치면 믿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 고난과 싸웠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병으로 인해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병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집어삼키거든요.
때때로 사람의 마음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것 때문에 쇠약해집니다.
육체의 연약함은 영적인 평안을 쉽게 무너뜨리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육체 모두가 무너져 내려도
우리의 마음에 힘을 돋우어 주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분깃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내적인 갈등도 우리를 평안에서 멀리 떼어놓곤 합니다.
죄와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 예전의 습관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타락한 성품이 너무도 강하게 작용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원하는 만큼의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저도 사실 그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죠?"
여러분들 대부분은 이렇게 묻고 싶으실 것입니다. 예, 대답드리죠.
저는 제가 싸우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평안을 찾았습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면
죄를 대항해 고된 싸움을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원수 마귀를 대적해서 죄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가 죄의 종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넘치는 평안을 느꼈습니다.
그러함에도 역시, 사탄의 공격 아래서 평안을 누리기란 참으로 힘들더군요.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진저리를 칠 때까지 집적대는 방법을 씁니다.
마귀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우리 머릿속에 주입시키고는,
우리가 그 생각의 창시자라고 몰아붙여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주입한 것이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 내 원수야 나를 대적하여 기뻐하지 말라. 내가 쓰러진다 해도 일어날 것이요,
내가 어두움 가운데 앉을지라도 주께서는 내게 빛이 되시리라』 (미7:8)
주님께서는 그분의 얼굴을 숨기실 때, 우리는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타락의 길로 내려가고 있을 때, 우리의 평안은 급격히 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을 찾아가자, 가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자!"
그분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다시 찾기까지,
그분의 성실한 자녀들 사이에 다시 들어가기까지 우리에게 평안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평안을 잃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이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리석음이겠습니까? 여기서의 어리석음이란 죄와 잘못,
그리고 신성한 지혜에 반하는 모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그 어리석음의 다양한 국면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1. 우선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보지도 않고, 그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 버린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루시는 것에 관해 성급하게 잘못된 판단을 내린 적은 없습니까?
"이건 무언가 잘못 된 거라고. 정말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럴 순 없는 거야.
무언가 잘못 되었어."
그러나 후일 당신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성급한 판단은 명백한 어리석음의 소치였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깨달음이 있은 후에도 연이어 이런 어리석음을 범한다면
당신은 분명 평안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이 무한한 지혜를 당신의 유한한 판단 기준으로 성급히 판단하려 들지 마십시오.
영원한 목적을 시계 속에 갇힌 사고로 판단하려 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재판관이 되어서 주님을 고소하는 순간, 우리의 평안은 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길들을 살필 때는 긴 시간을 두고 숙고하여야 합니다.
그분은 영원 속에 거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판단은 영원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원칙들을 알아야 그분의 길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드는 우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작은 어린아이가 되는 순간, 우리는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어리석음이란, 불평과 가장 높으신 분과 다투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창조주와 다투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잔디가 낫과 다투거나, 지푸라기가 화염과 다투는 건
그냥 웃을 일일지는 몰라도, 사람이 하나님과 다투려 들면 나서서 말려야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당신이 누구이길래 감히 하나님과 다투려고 듭니까?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롬9:20)
하나님과 다투려 드는 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야곱처럼 격심한 타박상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순종의 자세를 취하십시오.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실 것입니다.
가시 채를 발로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갓 멍에를 메기 시작한 황소는 자신을 모는 몽둥이에 심하게 반항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옆구리에 몽둥이질만 더 불러들일 뿐입니다.
소를 모든 농부를 조금만 두려워했더라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가시채를 걷어차는 것이 네게 고통이라』 (행9:5)
하나님과 다투어서 득 될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며, 그의 다스림은 영원의 원칙에 의한 것입니다.
돛단배가 바위를 보고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전진한다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무릎을 꿇는 자세에 있는 것이며,
거만한 자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거만과 교만은 가장 천한 어리석음입니다.
▶3. 사람들이 자주 빠져드는 어리석음 중에는 <의심이나 불신>이 있습니다.
평안은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며 믿음이 사라지면 평안도 사라집니다.
주님을 의심하는 것보다 더한 어리석음은 없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저는 그분을 신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강같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죽어 가는 자리에 누워서도 그러한 평안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본다면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자넨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뭐가 그리 행복한가?"
그러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온전한 평안을 주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그의 평안을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의심과 두려움들, 즉 가시채를 걷어차던 옛날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중에는 옛 의심들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면서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개 믿는 사람일 것이나, 개중에는 의심하는 자도 간혹 섞여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하늘나라에 관해 설교를 해도 만일 불신의 습관이 있다면
그는 제 말을 귓등으로 받아칠 것입니다.
주님을 의심하고, 그분의 약속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분의 섭리를 신뢰하지 않는 자 중에 주님께로부터 무언가를 얻었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주님은 신실하시며, 스스로를 부인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을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의 말씀을 의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4.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어리석음도 있습니다.
바울도 갈라디아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 사악함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가운데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채로 너희의 눈앞에 분명히 제시되었는데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누가 너희를 미혹하더냐?』 (갈3:1)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온전해지려 하느냐?』 (갈3:3)
자신이나, 자신이 하는 일을 가지고 평안을 얻으려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자아란 것은 기껏해야 메마른 샘에 불과 합니다.
자신의 헌신이나 성화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자신의 성화를 그리스도의 자리에 갖다 놓음으로
그리스도의 반대자가 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1:16)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사람 자신의 의를 신뢰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얼마만한 거룩함에 이르렀건 간에, 심지어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욥의 현명한 말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온전하다 할지라도 내가 나의 혼을 알지 못하리니...』 (욥9:21)
우리의 지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 위에 있습니다.
그 지반을 떠나면, 당신은 얼음 위에 올라서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바닥이 녹아내리지 않더라도, 쫄딱 미끄러질 것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에 어떤 행위를 섞으려 든다면, 당신은 다시 어리석은 길로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그 어리석음이 예전에 당신에게 큰 멍에가 되었던 것처럼,
돌이키는 순간 다시 당신을 짓누르고 억압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오직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십시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키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께 기대를 두는 그 순간, 당신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입니다.
▶5. 지적인 탁상공론에 빠져드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들 중 몇몇은, 한때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공중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행복한 삶을 살다가, 사악한 책을 몇 권 접하고 나서는
지난날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빠져들어 그들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닥친 난관들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해 주었을 것 같습니까?
제가 그들이 했던 것처럼 그 책을 읽고 그들과 똑같은 질문을
눈앞에 고정시켜 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또 다른 책을 읽고 또 다른 의심만 가득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설사 그 모든 질문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해적들이 그들의 마음의 해안으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해치우고 또 해치워도 끝이 없는 무리들 말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눈앞의 모기들을 모조리 잡아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뭐 하러 합니까?
수십 마리를 잡아 해치워 본들, 놈들은 다시 몰려올 텐데.
그냥 모기향으로 쫓아 버리거나 모기장에 들어가 자는 게 제일 좋습니다.
지적인 난관이란 것도 이와 같습니다. 몇 가지 해결했더라도,
더 지독한 놈들이 청소된 빈방으로 기어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애매모호한 말을 하며 살며시 다가서는 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새로 나온 책 읽어 보셨어요? 충격 그 자체예요."
그러나 전 그 책이 제 마음을 까딱도 하지 못할 것을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저는 믿지 않는 자들이 하는 말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내용일 지라도 저는 약간의 호기심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믿어 왔고, 또 지금 믿고 있는 분을 잘 압니다.'
저는 성령께서 무오한 말씀을 통하여 제게 가르치신 것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의심하는 자들이 써 놓은 책을 읽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유해한 독약들을 충분히 맛보았고, 이제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책은 뭐든지 다 읽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저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 줍니다.
저녁 성찬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식탁 위에 상한 음식이 올라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는 거기에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프로 건드려 보면 악취가 풍길 것이 분명하므로,
저는 그 음식을 절대로 제 접시에 옮겨 담지 않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먹어온 달콤한 복음의 성찬이 내 앞에 놓여 있는데,
제가 무엇 하러 개먹이로나 적당할 상한 음식에 손을 대겠습니까?
성경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욕되게 하는 책은
불쏘시개로나 쓰는 게 적당합니다. 읽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들 중에는 과거에 '현대 사상'에 취해 비틀거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리로 돌이키지 마십시오.
성경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성경을 너무 많이 읽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면,
다른 책을 읽는다고 해도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께서 쓰신 성경을 손에서 놓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매일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돌이켜 무오한 책을 대적하고 완전한 책을 비난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로 돌이키는 어리석음에서 자신을 지키는 자들에게
평안을 지속시켜 주십니다.
▶6. 그러나 가장 큰 어리석음이란 뭐니뭐니 해도 <죄>입니다.
성경은 거듭거듭 죄인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실로 그들은 그렇습니다.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임이라.
그러나 그들로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시85:8)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눈앞에 폭풍우가 울부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하여 마음의 안정이 없이 너무도 황망한 상황은 아닙니까?
그럼 제게 잠깐만 귀를 빌려 주십시오.
누군가가 아무 까닭도 없이 당신을 이 폭풍우 속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렇죠?
폭풍우를 일으킨 원흉은 누구겠습니까? 그는 배에 타고 있는 정상적인 선원이 아닙니다.
그는 선장이나 항해사가 아닙니다. 그는 한낱 나그네입니다.
배 밑층에 내려가 보십시오. 거기엔 요나란 자가 자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혹시 폭풍의 원인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예요. 뱃삯을 냈는 걸요."
아닙니다. 그가 바로 재앙의 원인입니다. 어서 요나를 배 밖으로 내 던지십시오.
그러기 전에는 폭풍우는 절대 멎지 않습니다. 그를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다가 다시 잠잠해 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죄들을 숨기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은 반역자를 숨겨둔 그들을 향해 싸우십니다.
요압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고 있던 당시,
세바는 아벨에 있는 성읍으로 도망해 들어가고, 요압은 그 성읍을 포위합니다.
그러자 한 지혜로운 여인이 백성을 위해 요압에게 탄원합니다.
요압은 그녀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해명하기를,
자신은 성읍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반역자를 쫓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자만 넘겨주면 내가 성읍에서 떠나가리라』(삼하 20:21).
그러자 사람들은 세바의 머리를 잘라 요압에게 던져 줍니다.
그리고 요압은 나팔을 불고 군사들은 성읍에서 물러나와
각자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시험과 곤고함으로 당신을 포위하시고,
그분의 군대를 당신의 성벽을 대항해 배치시키실 때는
당신에게 평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반역자, 즉 죄를 처단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당신에게 어떤 특별한 반역자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는 반드시 성벽 너머로 던져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의 전사들은 물러갈 것입니다.
악한을 지목하고, 그를 고소한 후, 돌을 들어 그를 내리쳐야 합니다.
살피고 또 살피십시오! 숨어 있는 원수를 철저하게 수색하여 찾아내십시오!
※내 속에 요나, 요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화살 겨누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네게 작은 것이냐? 너에게 무슨 비밀스러운 것이 있느냐?』(욥15:11)
하나님은 이 아침에 우리의 성스러운 수색 작업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침입자를 찾으면 그를 철저하게 부셔버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 누구도 어리석은 데로 돌이키지 맙시다.
우리가 한 번 하나님의 평안을 맛보고, 그분과 교제를 나누어 보았는데,
왜 땅에 속한 즐거움을 찾아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무안하신 사랑의 향연을 맛보았는데,
뭐 하러 다시금 죄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전에 죄악들이 우리에게 안겨 주었던 슬픔들을 상기해 보십시오.
그 독사를 두 번 다시 가슴에 품지 맙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알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비통해 했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습니까? 다시 그리로 돌이켜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리석음이 어떤 결과를 낳았으며, 주께서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 주시기 위해
얼마만한 대가를 치르셨는가를 항상 염두에 두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어리석음에서 구하시기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가벼운 일입니까?
숙고하시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천상의 길을 따라 가십시오.
우리가 왜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하심에서 돌이켜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앞에 놓인 길을 보십시오.
그 길의 끝에는 황금의 거리와 마르지 않는 강들,
그리고 영생의 열매를 맺는 나무와 끊임없이 노래하는 하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어리석은 데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거룩한 길에서 지켜주소서! 주님의 평안을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가득 부어주시고,
그 평안을 지켜주시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평안은 능히 우리를
어리석은 데로 돌이키는 것에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어리석음들을 물리칠 힘을 줍니다.
형제들이여, 마음에는 주님의 온전한 평안을 지니고,
얼굴은 부싯돌 같이 해서, 끝없는 화평이 있는 저 항구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갑시다.
주여, 우리를 이 길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아멘.
원출처:http://www.lloydjones.org/technote3/read.cgi?board=C307&y_number=4&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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