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oIZ327XrVVs&feature=youtu.be
◈하나님의 해결책 - 칭의와 중생 사53:10 출처
God's solution-justification & regeneration
폴 워셔 (구원시리즈 2번째 영상)
◑인간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기 전까지는 많이 이야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인간의 첫 번째 문제점은 바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죄의 영향력입니다. 이제 이것들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첫째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선하신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아래 놓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러한 판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악인의 입장에 놓여있는 우리가
의인의 입장으로 탈바꿈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사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공정(공의)하시다면 그는 당연히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면
그는 당연히 우리를 용서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까짓 꺼 왜 용서가 안 되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로크와 같은 윤리철학가의 영향이거나
성서를 더 이상 의무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의는 정의를 요구합니다.
여러분의 사회는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가족 전체를 죽이고
여러분이 그를 붙잡고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그를 구치소에 데려가고 몇 개월 안에 그를
판사 앞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여러분의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사랑이 많고 동정심이 많은 판사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석방입니다.”(땅땅)
이렇게 된다면 이 사회 전체가 들끓어
그 판사에 대항하고자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뉴스기사를 부르고 심지어는 대통령, 의회에도
이렇게 항의의 편지를 보낼 것입니다.
“범죄자를 그냥 석방해버린 네브라스카에서 가장 부패된 판사가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러할 권리가 있으십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사회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정의를 행하셔야 하고, 더구나 그는 항상 옳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는 그 분의 속성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십니다. 즉 공의로우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공정하시다면 어떻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면서도
그분의 의로우심을 유지할 수 있으실까요?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그분의 의로움 안에 있는, 그분의 분노가
우리들의 죄들로 인하여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남들에게 죄를 숨기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죄들이 모두 낱낱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분노와 증오심이
죄인인 우리에게 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를 구원케 하십니다.
심지어 사회에서 경멸당하는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 율법(도덕법)을 어긴 죄로
여러분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여러분을 죄인이라고 선고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오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려면 다른 누군가 와서
그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대신 죽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인간보다도 더 완벽한 인간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분이 대신 죽으셔야 가능합니다.
인간의 몸을 가지신 동시에 죄는 없으신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마리아를 통해 동정녀(처녀)탄생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에 완벽하게 흠 없이 사셨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따라서 예수님은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날 부활절에 많은 설교자들이 이것에 대해 설교하지만
문제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십자가에 대해 들어봤으며
이러한 설교 중 어떤 설교가 진정으로 마음에 와 닿으십니까?
여러분은 로마사람들과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 것에 대해 듣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사람의 형체를 못 알아 볼 정도로
매 맞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듣습니다.
그의 머리에 가시왕관이 씌여진 것을 듣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사람의 형체가 아닐 정도로
매맞음을 당하신 것도 듣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정확히 팔 앞쪽과 팔목사이에 못이 박히셨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설교자들은 또한 여러분께
예수님이 옆구리가 창에 찔리셨다는 것도 말합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결국 질식사로 돌아가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고난당하신 것이
어떻게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는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그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고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오늘날 설교에서 이것에 대해 너무도 적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거의 전부입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여러분의 죄가 그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impute(전가)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말하자면
여러분의 죄를 그대로 그리스도께 옮기셨습니다. 즉 전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있는 예수님을 성경에서는
“그는 우리를 위해 죄 자체가 되셨으나 그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가 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의 성품이 부패되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죄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 그대로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53:10절에 기록한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을 원하셨고
성부하나님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유대인과 로마사람이 예수님을 핍박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오늘 밤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여러분을 대신해 유죄한 자로 선포하시고
그에게 여러분들이 당해야 할 형벌을,
즉 여러분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여지없이 예수님께 쏟아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의 형벌에 죽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분의 신성함 때문에 악이 눈앞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서 아예 눈을 돌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그의 아들이 죄 자체가 되었고 저주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결국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죽기직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즉,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당해야 할 형벌을 그대로 남김없이 받아내셨습니다.
이것으로 단번에 끝났습니다. 서두의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물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방법은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대신 죽으셨고
덕분에 이제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죄값에 대한 선고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영향력>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여러분들은 사도바울, 유명한 종교개혁가들, 이를테면 칼빈, 루터,
청교도들,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인들 이들 모두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죽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며
결국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죄인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까요?
성경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도 죄인이 믿음으로서 의롭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의롭게 됨”은 일종의 재판상(법정적) 용어인데요,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의롭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신 일(십자가)을 믿는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주십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0%행위 100%은혜 오직 믿음으로)
나의 선행, 미덕, 성격상 장점, 예의바름 이런 것들로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이 우리의 선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에 따라 결정되는가에 대한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떤 찬송가에서 “나에게서 나온 건 하나도 없고
나는 오직 십자가만 붙드노라”라고 나와있는 이유입니다.
저의 희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로우심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감히 어떤 아름다운 석상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단한 바위에 의지하는 것과 같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 언젠간 쓸려 가버리는 헛된 모래성에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만의 종교를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지옥에 가게 됩니다.
혹시 침례받았다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지옥에 갑니다.
혹시 여러분의 선행을 믿고 있습니까? 그러면 지옥에 갑니다.
인생의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구원받기 전과 같이) 아무런 변화도 없이 여전히 죄짓기를 좋아하면
이 역시 지옥에 가고 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까?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죄와 싸웁니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가기가 귀찮아질 때도 있고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으며 언제나 죄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여전히 이런 것이 남아있을까요?
여러분이 이해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사람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반드시 이해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증거는, 구원받은 이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느냐.. 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으셨다면
실제로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거듭난 자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접하기 쉬운 문화에 있다고 해서
안전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틀린 것에 쉽게 오염되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설교에 시간투자를 하지 않고
성경읽기에 힘쓰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복음전도자들로 인해 매우 지쳐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여러분을 마치 십자군 다루듯이 합니다.
불을 끄고 사람들에게 손을 들라고 하고 머리를 숙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간증하게 하고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당신은 이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기 오늘밤에 그러한 것들 중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바로 이단 중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교회 역사상에도 없었습니다.
그냥 우리 안에서 우리가 멋대로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도신경이나 교리를 외우려고 힘쓰고,
심지어 절실하게 기도하려고 노력해도 구원은 오지 않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의 죄에 대한 회개와 복음을 믿음으로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바로 변화transform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칭의”를 얻어 죄 사함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서 반드시 “성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중생)을 단순히 말로 너무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 진리는 그동안 심하게 왜곡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오해는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여러분이 단호한 결심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중생”이라는 개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속사람이 새로 재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중생의 교리는 살아있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만물이 창조될 때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들 마음에 임하시면
그러한 사람은 말 그대로 새로운 창조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함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창조물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결신이 진실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Bible belt (기독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 남부권)에 있고
표면적으로는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느끼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침례교인, 루터교인, 복음전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 안에서 경건함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 그대로 죽은 종교는, 아무런 힘도 없는 휘파람과 같습니다.
새로 변화되는 것도 없고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도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심은 여러분에게 극히 작은 부분에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예수님’ 또한 여러분의 삶에서 극히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실제로는요? 당연히 아니죠.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또한 “여러분은 고귀한 삶을 가지고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좋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여러분은 매우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예수님만 여러분의 삶에 더해진다면
완벽 그자체가 될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크나큰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예수님과 떨어져나오는 모든 것들은
사실 그 뿌리부터 부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하고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여러분께 그리스도는 단지 천국으로 가는 보증수표가 되어 버린 게 아닙니까?
예수님은 그저 일요일마다 만나는 단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삶입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지도하고 끌어나가고 있습니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집니까?
계속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까?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방법은
예수님에 의해 의롭게 되고, 그 후로 변화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이 변화란, 일단 구원을 세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칭의-성화-영화입니다.
첫 번째 “칭의”입니다.
성경적인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사후에는 안전하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현재 저는 죄의 영향력에서 계속해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씩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욕망은 날마다 죽어가며, 하나님만이 저에게 더욱 중요해지고
모든 것보다 우선시되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점점 저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것과 경건함, 천국의 것들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구원받았고(1단계:칭의),
죄의 영향력에서는 계속해서 구원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2단계:성화).”
“저는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칭의) 죄의 영향력에서 구원받고 있으며(성화)
먼 훗날 어느 날이 되면 죄와 그 영향력에서 완전하게 해방될 것입니다(영화).”
마지막 단계를 우리는 교리적으로 “영화”라고 부릅니다.
이 영화의 과정은 마지막에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신 참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런데 마귀들도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고 덜덜 떱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심지어 떨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귀신들이 여러분보다도 더 믿음이 많아 보입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고 죄 사함 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께서 이제 여러분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많고 부패된 마음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의지가
실상 어떤 것인가에 대해도 잘 설명해줍니다.
“나는 자유의지를 가졌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 진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영향 하에 있다거나 강압적인 힘에 의하거나
조종당하는 힘 외압과 관계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의지로 무엇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문화나 친구들 또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받고
그에 조종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강압당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사람도 순수하게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로 무엇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여러분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어”
물론 좋은 의도로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그 원하는 것이 항상 인간의 부패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분들의 의지는 사실 죄의 영향력에 예속되어 있으며
외적으로 여러분의 의지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여러분의 선하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칭의”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중생”(거듭남)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셔야 하고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반드시 오셔야 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변화시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여러분이 이제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했던 것들이 이제 경건하지 못하고
마치 불결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여러분이 싫어하던 것이 이제는 경건하고 좋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면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은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죄 짓는 것을 좋아하고, 포르노를 보기도 했었고,
술에 취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을 겁니다.
부도덕성과 음행을 즐기기도 했을 겁니다.
만약 여전히 죄책감 없이 이러한 것들을 즐기고 있다면
이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얻지 못했고
이러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태어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이 세상에 주시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산다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능히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감정은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상상해봅시다. 여러분은 교회 뒷마당에 튼실한 돼지를 두고 있고,
교회 마당에서 네브라스카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곳에 음식쓰레기를 남겼습니다.
이제 그 돼지에게 말합니다.
“내가 놔줄게 네가 가고 싶은 데로 자유를 찾아 가!”
도대체 돼지가 어디에 가겠습니까?
돼지는 당연히 더러운 쓰레기로 찾아갈 겁니다.
어렵게 얻은 자유도 다 버리고, 다시 자기 옛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왜죠?
그것은 돼지의 본성입니다.
돼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원하고 쓰레기에 머리를 처박습니다.
그것은 돼지에게 있어서 문제될 것도 없고 수치심도 없으며
꿀꺽 꿀꺽 쓰레기를 삼키는 것이, 돼지의 기쁨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러분에게 돼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봅시다.
변화된 돼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돼지는 갑자기 좋아하던 것들에 구역질을 느끼기 시작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머리를 들기 시작하더니 그가 먹던 것을 토하기 시작합니다.
돼지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더러운 것들을 먹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여러분에게 나타난 변화를 설명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크리스천이 된다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무언가를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죄를 좋아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도 실은 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경건함과 신앙심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죄짓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 받고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돼지에게 일어났던 무언가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가 추구했던 것들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그대로 변화됩니다.
▶언제 제가 루마니아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루마니아어는 뿌리가 라틴어 계통이어서
제가 통역자의 통역을 1/3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 그것을 통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고 산다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통역자분이 약간 다르게 통역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을 그대로 통역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러고 있다면 당신은 망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완곡하게 하면 안됩니다. 당신의 직업은 통역자이고 제 직업은 설교자입니다.
제가 말한 것을 그대로 통역해 주세요.”
그러자 그는 “차마 그렇게 통역하지는 못하겠어요.”라고 힘들어했습니다.
통역자는 “당신 폴 워셔 목사님은, 지금 여기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까?”
“예, 정확히 맞습니다. 그대로 번역해주세요.”
저는 교리적으로 옳게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면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마음은 “내가 변화되었구나.”라고 직접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여러분의 개개인의 신앙심이 어떠했던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그랬고 신약에 있는 어떠한 사람도 그런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죽은 자신만의 신앙심을 붙들고 계십니까?
아니면 더 나쁜 믿음, 단지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만 합니까?
그리스도를 정말로 믿고 있습니까?
제게 여러분의 마음이 다음과 같이 변화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몇 년 전에 여러분은 진심으로 회개했고 여러분은
그때 당시 구원받기 위해 진심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도 그와 같은 확신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때 (몇 년 전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었고
구원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몇 년 전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부터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셨고
지금 현재도 계속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거듭난 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예수님을 사랑해왔고
계속해서 현재까지도 미래에도 그 마음은 계속 중복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거듭나면 세상의 것들을 거부하기 시작하고
하늘에 있는 영적 세계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전보다도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처음 거듭났을 때와 비교했을 때 더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새롭게 거듭나셨습니까?
여러분은 옛날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이와 같은 변화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신앙심이라는 건
이것은 개인의 확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거듭났으면 그에 대한 열매가 나올 것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이 삶이 무언가는 변화 되었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처럼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알맞은 말은 없을 겁니다.
그리스어 “회개”라는 단어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바로 마음을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여러분의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마음을 바꾸면 여러분의 모든 것들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여기 오른쪽에 앉아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여기에 계속 있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고
여러분은 이곳에 지진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생각은, 여러분의 모든 것들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상태, 걸음걸이, 맥박 등등 여러 가지를 말이죠.
그럼 사도바울을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다마스커스를 가고 있습니다.
왜 그곳으로 갔을까요?
그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려거나 최소한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그의 마음속에 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신성모독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의 대적자이고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야할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울의 생각이었고 그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다마스커스에서 갑자기 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러분의 마음이 바뀐 것처럼
그도 그가 여태까지 완전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신성모독자가 바로 그리스도이고 메시아이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의 사역은 통째로 뒤바꾸어졌습니다.
그는 한때 핍박하고자 했던 그 믿음을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바울 자신이 변화한 동시에 그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이 그동안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나 버렸다는 이 사실이 이해가 가십니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개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사실 잘못되었다고 깨달을 때에 주어집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만 살고 세상 것들을 추구하고, 돈을 숭배하고,
기쁨과 쾌락을 추구하고, 선행을 통해 업적을 쌓는 일,
좋은 교육환경을 추구하는 것, 이와 같은 다른 모든 것들,
그리고 여러분이 만든 가짜 신(우상)을 위해 살아갑니다.
복음을 들으면 “나는 여태껏 잘못된 삶을 살아왔구나”라고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각들은 잘못된 것이었고,
예수님만이 중심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습니다.
“나는 신앙심이 깊어.”, “나는 선하고 좋은 사람이야.”,
“눈이 올 때면 나는 이웃집에 내 트럭을 가져가 눈들을 치워주기까지 하지.”
또한 “나는 늙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
“이 말고도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누가 뭐래도 난 잘살아왔고 선한 사람이야!”
그러나 복음을 듣게 되면 “나는 비참한 사람이었고
지옥에 가야 마땅할 사람이었구나.
내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지옥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나의 선행은 실은 참으로 누더기 같은 것이었구나.”
라고 말하게 되고 생각이 변화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실로 변화되면 당연히 여러분의 의지도 변화됩니다.
여러분의 행동도 변화됩니다.
여러분의 감정도 점점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지었던 죄들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에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 이외에
다른 어떤 수단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교회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고
여러분의 선행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하신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셨고
여러분에게 주어져야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삼일 째 되는 날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천국 가는 사람들 중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를 제외하고 아무도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 한분만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간의 중재자 예수그리스도 한분만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에게 달려갑니다. 그를 믿습니다. 그분을 신뢰합니다.
여러분은 그분만을 배타적으로 신뢰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와서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선한 사람입니다.
아마 천국이 있다면 당신과 같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에게서 떨어지세요. 당신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갑니다. 나의 선행은 누더기와 같습니다.”
*타자 L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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