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복음주의, 진정 거듭남인가? 딤후2:19 스크랩, 출처
Modern Evangelism... A. W. Tozer
고후5: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
오늘날 대중적인 현대 기독교는
혹시 죄를 반대하게 될까봐 아주 조심합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사람들을 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교회는 커다란 상처를 입습니다.
현대 복음주의는 군중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흥미꺼리를 사용하며,
복음에 포함된 진리의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고, 어려운 진리를 일부 숨기고서
그저 교인만 많이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교회가 새로운 피조물을 원합니까?
아니면 그저 많은 교인을 원합니까?
현대 기독교는, 사람들이 계속 오게 하기 위해
그리고 회중석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감히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매끄럽게 부드럽게 만드는데, 그것은 신약적/성경적 교회가 아닙니다.
현대 기독교는, 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의 이런 인스턴트 전도방식이,
큰 것을 좋아하며, 소란스럽고, 많은 군중, 대중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구에 굴복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나약하고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못하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것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황폐화된 기독교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힘을 다해 이에 대항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뭐든지 인스턴트 한 것을 좋아하며, 인스턴트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스턴트 기독교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쉽게 생산한 이 군중, 즉 인스턴트 교인들이
이제 교회에 어쩌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 인스턴트 기독교인들, 즉 군중들, 예수를 쉽게 영접한 사람들이
교회의 대세가 되니까,
일부 교회는 점점 극장으로 바뀌어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예배에 대해 무지하고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자도의 중요함에 대해선, 전혀 깜깜이들 입니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 헌신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인간적인 영광과 인정, 인지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런 흐름에 단호하게 등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 날, 하나님과 복음의 영광을 값싸게 팔아버리는 식으로,
즉 쉽게 인스턴트 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것은
진정한 하나님과 복음의 영광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또한 그런 식으로는 어떤 영혼도 진정으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교인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즉 가라지 신자입니다.
성령님의 전도방법은
깨끗하고 거룩하고 순결하며,
전도자를 겸손케 만듭니다.
저는 우리 교회 강단에, 마치 배우와 같은 전도자, 외부강사가 서지 못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이 세상을 교회/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세상이 교회 안에 가득 차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많은 군중들을 인스턴트하게 교회로 인도했는데,
그렇게 교회로 들어온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고,
여전히 더러우며, 성결케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전도하려다가, 거꾸로 된 셈이지요.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사역자와 예배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예배자 worshiper 를 거의 무시하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교회에서 진정한 예배자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회심은, 과거 시대와는 다르게,
별로 사람들을 변화되게 만들지 못합니다.
회개하고 마음으로 진정 돌이키지 못하고, 그저 결신만 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그저 잠시 결신의 시간으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교인이 된 후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실망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믿기 전의 과거와 달라진 게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조금 신앙생활 하다가, 다시 옛 삶의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불완전한 기독교에 용케 적응해서
인위적인 재미와 인간적 모임이 주는 흥미를 나름 즐기기도 합니다.
현대적 전도방식에 대해, 제 토저가 걱정하는 것은,
첫째로, 그렇게 믿고 교인이 된 신자들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전혀 맺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게 새롭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래디컬한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와 주로 영접하는 것은
그의 삶에, 아주 래디컬한 변화가 따라와야 합니다.
전도는, 보따리 장사가 싸구려 물건 파는 식으로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런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영광스럽게 초대하는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receive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삶의 왕과 주님으로 ‘영접 receive’하는 게 아니라
그저 쉽게 복음과 예수님을 accept, 그저 인스턴트하게 받아들이고만 있습니다.
현대 복음주의는 예수님을 ‘영접 receice’을,
‘받아들이다 accept’로, 즉 편의주의적으로, 인스턴트식으로, 쉽게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세요 accept 하세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힘없이 당신이 받아들여주기만을 기다리시는
길거리 싸구려 상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receive 것은
성령의 새창조의 역사로 되어지는 아주 독특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 Lord 임은 인정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만을 주장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No
주재이신 주님께 순종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어떻게 계속 가르칠 수가 있습니까. No
절반만 구워진 기독교는 *호7:8, 뒤집지 않은 전병
믿고 구원 받은 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또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위 구절을 암송하며, 구원을 쉽게 생각하지만
위 구절은 아래 구절들과 같은 맥락입니다.
딤후2:19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딛2:11~12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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