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Humility English 도서 스크랩, 정리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머리말 (머리말, 녹음 X)
01. 겸손: 피조물의 영광
02. 겸손: 구속의 신비
03. 예수님의 삶에 나타난 겸손
04. 예수님의 가르침이 보여준 겸손
05.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난 겸손
06. 일상생활 속의 겸손
07. 겸손과 거룩
08. 겸손과 죄
09. 겸손과 믿음
10. 겸손과 자아에 대한 죽음
11. 겸손과 행복
12. 겸손과 자기 높임
◑1장. 겸손: 피조물의 영광 계4:10~11
HUMILITY : THE GLORY OF THE CREATURE.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0-1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중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분의 완전하심과 풍성하심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여
즉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권능의 영광을,
인간을 통해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 영광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지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살아 계시고, 영원히 존재하시고, 영원히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그분 안에 만물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절대적인 의존관계로서만 존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지금도 같은 능력으로 매 순간 세상을 <보존>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매순간 붙들어주시지 않고, 즉 보존해 주시지 않으면
만물과 세상과 우주는, 한 순간에 망하거나 파괴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기원과 시작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모든 것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절대 의존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임하시고, 동행하시고, 함께 해 주시는 것이 - 관건입니다.
그때라야 비로소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존귀가
피조물인 인간을 통해 제대로 반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관심사와 최고의 덕목과 유일한 행복은
이제부터 영원까지 자신을
<빈 그릇, 즉 겸손>으로 드려서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게 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나타내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만하면
하나님이 그를 떠나버리시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과, 존귀하심과, 지혜와, 사랑 등의 성품을
아무 것도 투영하거나 반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영광>은, 단번에 부여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는 매 순간 계속해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식물이 자라듯이, 내 속에서 점점 키워지고 자라는 면도 있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완전히 의지하는 것인데
피조물의 가장 첫 번째 의무요, 피조물이 가져야 하는 가장 고상한 덕목입니다.
왜냐면 피조물이니까요,
창조주께 피조 받은 존재는 당연히 겸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피조물은 자신이 피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창조주 앞에서
자기 존재의 밑바탕에 겸손을 깔게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겸손은 피조물인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초의 덕목이며, 최고의 덕목이며, 가장 밑바탕의 근본적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을 일삼거나
<겸손>을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죄와 악의 근본적 뿌리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스스로 도취되어
스스로 만족하며 '나는 대단한 존재야!' 하는 식으로요,
이런 교만이 그들을 불손종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천국의 밝은 빛으로부터 쫓겨나
바깥 어둠으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이 타락한 것도
마귀가 '교만'의 입김을 그들에게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 그 고귀하고 존귀한 상태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 것은
교만과 스스로 자기 높임 때문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어디에서든 교만과 자기 높임은
지옥으로 이르는 문이자 지옥으로부터의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전에 잃어버린 <겸손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구속 redemption 입니다.
피조물로서 본래 창조된 의도대로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
즉 겸손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참되게 구속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진정 구속함(값을 치르고 삼)을 받고 진정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은 죄 가운데서 삶에서, 에덴 동산의 삶으로 회복되었습니까?
그 증거 중 하나는 <겸손>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겸손이 없다면.. 그건 진정 구속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겸손을 다시 가져오시고,
우리로 하여금 '겸손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버리시고 오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보는 그 겸손을, 주님은 하늘에서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겸손이 예수님을 이 땅으로 오게 하셨고,
예수님은 그 겸손을 하늘에서 이 땅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여기 이 땅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빌2:8
예수님의 영광이 어떤 것입니까?
<겸손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겸손의 비참>을 보는 게 아니라
<겸손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높으시고, 찬란하시고, 광채로우신 것은
<겸손의 영광>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투영하고 반사하기 위해서 피조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무슨 영광을 반사합니까?
<겸손의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겸손의 삶을 통해
구원과 구속의 사명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우리의 구원이 되었고,
그분의 구원은, 우리를 겸손의 존재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His humility is our salvation. His salvation is our humility.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죄로부터 구원받고
본래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즉, 겸손)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 속에서
겸손이라는 특징이 나타나야 합니다.
▲겸손 없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겸손 없이는 지속적인 믿음, 사랑, 기쁨,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겸손은 은혜가 뿌리내리는 유일한 토양입니다.
신자의 모든 부족함이나 실패의 원인은, 겸손의 결핍에 있습니다.
겸손은 다른 덕목과 더불어 나타나는 덕성이 아니라
모든 덕의 뿌리가 됩니다. 근본 토양과 바탕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겸손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게 하고,
주님이 하나님으로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하나님이 전부가 되심을 알고,
그분이 전부가 되시도록 길을 내어드릴 때 얻게 됩니다.
거룩을 추구하고 고백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겸손은 주된 표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의 표지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가르침과 모범에 있어서
'겸손'이 최고의 자리에 놓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겸손'을 마땅히 강조해야 할 만큼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진리를, 성경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하나님을 진정 알게 되면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이 아주 나의 고귀한 덕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겸손의 가치를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 거룩함이
내 속에 머물고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임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임하실 때, 그런 하나님의 성품과 덕성이
자연스레 나를 통해 나타나니까요.
진실한 크리스천의 삶에는
즉 거룩한 성품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성도에게는
겸손이 가장 큰 덕목으로, 증거로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실 겸손을 그렇게 잘 강조하지 않고, 교회에서도 등한시합니다.
▲물론 죄는 겸손에 이르게 하는 요소로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후에 회개한 사람들은 겸손케 되지요.
하지만 천사와 하늘에 있는 가장 거룩한 성도들을
그토록 겸손하게 만든 보다 넓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동기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죄를 지어서 겸손케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꼭 죄를 지은 사람만 후에 겸손케 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겸손은 곧 자신이 지극히 크고 높으신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 됨을 자각하면 할수록 나타나는 주된 표지입니다.
겸손이 바로 축복의 통로요, 신비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겸손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하나님으로서 원래 모습을 인정해 드리는
우리 피조물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마음의 온유함과 겸손이 예수님의 특징이자
그분을 따르던 사도들의 특성임을 깨닫지 못한 채
주님을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겸손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겸손해지도록 특별한 소원과 기도와 실천이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겸손의 필요성을, 일평생 아예 깨닫지 못한 신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연구해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점(겸손)에 대해
얼마나 반복해서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얼마나 더디 이해했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교만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음흉하며,
우리 시야에서 감춰져 있기에 매우 다루기 어렵고,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단호함과 인내로써 의지하는 것만이
겸손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무력한가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사모하는 것으로 채워질 때까지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성경을 통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을 벗어버리는 데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낮아질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그분의 경이로운 생명력인 이 (겸손의) 은혜를
허락하실 것임을 믿어야만 합니다.
타자 : 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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