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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삽시다

LNCK 2018. 6. 18. 19:51

 

불편하게 삽시다                         12:49                       스크랩

                  

이동휘 목사 저 <불편하게 삽시다> 에서

 

이 불이 붙었으면

 

우리 주님께 애절한 소원이 있었다. 세계가 훨훨 불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울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12:49)

그는 방화범(?)으로 오셨다. 불이란 말 자체가 힘차다.

밝고 뜨거운 것이 불의 특징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불로 세례 주시는 분(3:11)이라 했다.

소멸하는 불이 되어 세상의 죄를 말끔히 태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슴 속마다 뜨거워지기를 소원하셨다.

그래서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선포하셨다.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하는 속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주님께 드렸다.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여 주님의 입에서 뱉어질 미적지근한 피곤한 교회가 되었다.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하나님의 자녀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 된다.

십자가의 군병인가 하여 손뼉 쳤더니 어느 덧 머리 깎여 맥 빠진 삼손이 되었다.

 

기백이 없다. 삼각산을 밀어버릴 듯한 기세로 사자처럼 부르짖던 그 기도 소리가

고양이 소리로 바뀌었다. 이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생각인가?

 

이 틈을 타서 마귀는 총공세를 편다. 우상숭배와 미신을 범람시켜

오늘의 운세가 세계 신문의 흥밋거리다.

이혼율이 80%로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빠 실종세계가 되었다.

 

인간과 짐승의 복제 현상까지 일어날지 모르는 질서 파괴의 세계가 되어간다.

제 몸 하나 살찌우기에 혼이 빠졌다.

세계 구원, 이웃사랑, 충성과 성결의 삶, 성령 충만은

몇몇 사람의 소유물이 되었다.

 

북한은 남한을 완전히 초토화할 5천 톤의 화학무기를 준비해 놓고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데,

남한은 사치와 허영과 허세가 교회까지 침투해 있다.

마귀의 불을 받아 악령의 체온으로 온도가 유지되는 것 같다. 처량한 세계다.

 

성령의 불이 예레미야의 가슴에 붙었을 때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20:9)

견딜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을 소낙비같이 쏟으며 조국을 위해 울부짖었다.

 

다락방에 떨어진 불은 용광로처럼 되어 성령시대를 개막시켰고

기독교 2천년 역사에 활화산이 되었다.

 

핍박자 사울의 강팍한 마음에 번진 불은 생의 전환을 거꾸로 돌려

당시 세계를 두 발로 거의 밝아 서계 선교사의 조상이 되었다.

 

하늘 불을 몇 번이나 땅에 떨어뜨린 엘리야의 기도,

돌처럼 굳어진 형식적인 유대 종교를 향해 간담을 서늘케 한 세례 요한의

원자탄과 같은 위력적인 외침은 그 시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로마에 건너간 불은 세계 최대 강국 로마 제국의 밑기둥을 부러뜨리고

기독교 1500년 역사를 지속케 했다. 세계 도처에 조각불이 번져

선교사가 벌떼처럼 일어나 성화 봉송 주자가 되어 귀신들을 놀라게 했다.

 

20세기의 끝이 보인다. 그리고 21세기의 대문이 열린다.

선교사들이여! 성직자들이여! 한국의 크리스천들이여! 불 받아라!

성령 불 받고 나가라! 가슴이 뜨거워져라!

 

교회에서는 주여, 주여!” 하다가도

교회 문 밖으로 나가면 나요!, 나요!”하는 혈육을 녹여라.

성령 충만 받지 못하면 성질 충만 받는다는 말이 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시험 받는다. 자기의 신앙체온을 뜨겁게 하라.

그리고 세계를 불 지르라.

 

주님을 답답케 한 긴긴 세월을 청산하라. “네 설교에 불을 붙이라.

그렇지 아니하려거든 네 설교를 불 속에 집어던져라

웨슬리의 말은 간절한 충고다 할렐루야!

 

최고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서 신앙심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신 예수님은

울분을 품으신 채 질책을 퍼부으셨다.

화 받으라!” 영락없이 모양을 꼭 맞춰 구워낸 붕어빵처럼

살아 숨쉬는 물고기의 생명, 숨소리, 그리고 팔딱거리는 싱싱함은 깡그리 잃어버린 채

밀가루 팥고물로 비벼 만든 물렁한 물체가 된 것과 같다.

 

신선한 붕어는 오염으로 질식 된 지 오래고 기형아만 살아남아 장관을 이룬다.

물 떠난 고기는 예부터 사는 법이 없는데도

붕어빵은 시장터에서 잘도 팔리고 있다.

 

예수 없는 기독교인, 성령 없는 종교지도자, 현실파 사두개인들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생명 없기는 매한가지다. 창조 능력이라고는 하나도 못 갖춘 사단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곳곳에 침투해 오고 있다.

록음악이나 랩음악 속에 저주스런 음성과 음흉스런 선율을 섞어 놓았고,

영화나 TV에 소름 끼치는 귀신 장면을 안방까지 집어넣고 있다.

 

환생, 영매, 명상, 죽은 자와의 대화 등으로 인간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신도 사람도 생물도 무생물도 다 신이다. 그리고 기독교도 불교도 힌두교도,

모든 종교는 다 하나다.”라는 범신론 사상인 뉴에이지 운동이

인간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내면에 있는 신의 본질을 찾아 자신이 신이 되게 하라.”

인간 자각을 촉구하면서 유일신 하나님께 대들고 있다.

 

18세까지 5만 번의 폭력장면을 보고 자란다는 젊은이들은

난폭하고 음란스런 동물로 바뀌고 있다.

사단 숭배자들이 기독교 전도자보다 더 열성적이다.

대중매체는 악마의 손에 거의 빼앗긴 상태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아니한 자 7천명은 남아 있는 법이다.(왕상19:18)

2차 세계대전 후에 떨어진 별로만 알았던 미국 교회에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한 영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 각 곳에서 무명의 목사들이 교회 개척 몇 년 만에

수천 크리스천을 성전 안에 채워 넣는 기이한 부흥이 일고 있다.

 

현재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지역에 일어난 성령의 바람이 이것이다.

그리고 회개가 부흥의 주제가 되고 있다.

 

2의 무디 시대를 선물로 받은 것 같다. 퇴폐문화를 수출시켜

지구를 더럽힌 미국이 성령의 태풍으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징조다.

 

깡그리 말라버린 마른 뼈들로만 가득 메워진 한심한 골짜기,

한국과 세계의 현 모습이다.

발길에 채이는 천박한 뼈들이 무장을 갖춘 강력한 군대로 바뀌는

신비한 능력! 이것이 기독교다.

 

생기야 불어라! 죽은 자여 살아나라!

새파란 강물에 산 붕어가 헤엄치게 하라.

회개 없는 구원, 지옥 없는 천국, 쇼 윈도우에 진열해 놓은 마네킹 종교는

바람에 날려 보내라.

 

신음하는 지구가 생기를 얻게 하라. 목청껏 대언하라. 벌떡 일어나라.

에스겔처럼, 세례요한 처럼, 예레미야처럼 외쳐라.

귀신 문명에 감염된 세계인류를 치료할 유일의 특효약은 예수의 피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일본의 야마무로 꿈베이는 마귀는 4가지 전법으로 사람들로 범죄케 한다고

그 술책을 폭로한 바 있다.

 

첫째, 누구든지 하니까

세상에서 살려면 처세술을 따라야 한다. 믿는다는 구실로 고지식하게 처신하다가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사업의 실패자가 되면 누가 책임져 주겠는가.

 

넓은 길 멸망의 문으로 가는 자는 많고

좁은 길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적다고 하신다.

 

천명의 사람이 천말을 하고 만 명의 사람이 만 말을 할지라도

신앙의 방법을 고수해야 한다.

 

둘째, 이까짓 일이야

남자가 그렇게 소심하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복음에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닐 텐데 하고 대장부의 객기를 부려본다.

 

그러나 에서가 춥고 배고프다는 이유로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버린 그 작은 일이

얼마나 천추의 한이 되었던가.

작은 물줄기가 엄청난 댐을 구멍 낼 수 있고

벽돌 한 장 빠진 담벽에 뱀과 쥐가 침투하여 화려한 집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왜 모르는가.

 

작은 일 같지만 기도하는 일, 예배하는 일, 전도하는 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 그 어떤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그 신앙은 병들게 된다.

 

셋째, 이번 한 번만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군대 간 집의 초상은 으레 있는 일)라는

격려 글귀가 함정이 될 때가 있다.

실수 없는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따진다.

 

그리고 이번 한 번만 하고 그만 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다윗의 한 번 실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았는가?

저지른 간음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를 죽이고 왕자간의 성폭행과 살인 사건,

아들 압살롬의 부왕에 대한 칼을 들이대는 참사 등 그 얼마나 끔찍했던가?

 

한 번의 쾌락을 맛보려다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고매한 인격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죄는 언제나 황홀한 매력을 풍기는 법이다.

지도자의 경우는 한 번의 넘어짐이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KO가 되는 수가 많다.

 

넷째,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 충성하는 것, 주께 바치는 것, 전도하는 것

다 좋으니 하라고 마귀는 말한다. , 차차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오늘또는 이 시간이다. 지금 미루는 일은 영원히 미루는 일이다.

 

포기하는 자만이 예수의 제자다.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자기를 버림이다.

자기 부인은 자기 무효화, 자기 포기다.

 

왜 이다지도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요구하셨을까?

포기치 못한 부분은 마귀가 공격하는 상륙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 신학자들의 주장은 위대하면서도 자기 포기를 은폐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하나님 중심, 둘째 가정 중심, 셋째 교회(사역) 중심이라는 이론이다.

가정이 평안해야 주의 일을 맘 놓고 잘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단호히 고쳐야 한다.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가정 중심이어야 한다.

 

포기를 거부하고 주먹을 쥔 채 평범한 속인으로 남겠는가?

과감히 포기하고 하늘의 보배가 되겠는가?

천하 제일의 꼴찌로 내려앉으라. 그래야 능력의 통로가 열린다.

못난이가 되어라. 입술을 봉하라.

 

예수님만 남겨놓고 모조리 포기하라. 변론에 이기면 친구를 잃는다.

혈기싸움은 그만하자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 주가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믿자.

당신은 가능한 일을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실 것이다.”

잊어서는 안 될 명구이다.

 

주를 위해 버린 자는 영생을 물론이요

덤으로 지상에서도 백배의 복을 주신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흥분될 약속을 주셨다.

밀알 한 알맹이가 썩을 때 많은 열매가 거두게 되는 수확법칙을 기뻐하자. 할렐루야!

 

겸손한 자와 통하시는 하나님

 

인류가 대를 이어 지어오는 범죄가 교만이란 죄다. 무엇이 교만인가?

나는 교만치 않다.’ 생각하면 교만한 자다.

 

겸손한 자는 그런 말을 못한다. 겸손하다 하면 기뻐하고 기도 많이 한다 하면

그렇지 않아요.” 하면서도 기분 좋아하고

선교의 열매가 많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지요.”하면서고 흥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교만이다.

 

노력 없이 박사 가운 입는 것, 빽빽하게 이력서를 적을 명함을 과시하는 것,

나는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것, 큰 대가 없이 임무를 잘 마쳤다는 것 등을

사기죄를 동반한 교만죄이다.

 

속력을 내라 속도가 느리다.

자신에게 매질하라. 나태하면 삯군 목사다.

최후 5분간 전투에 이기면 전체를 이기는 셈이다.

예수의 피를 널리 뿌려라. 속력을 내하 현재의 속도로는 패한다. 여호와 닛시!

 

어느 뜻있는 분노를 들었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으나 제자가 없고, 정치가는 많으나 정치는 없고,

군중은 많으나 사람은 없고, 국가는 있으나 국민은 없고,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고, 종교는 있으나 진리는 없고,

학교는 있으나 배움은 없고, 신하는 많으나 충신은 없고,

모임은 많으나 목적은 없고, 물은 있으나 생수는 없고,

의사는 많으나 인술은 없고, 구제는 있으나 자선은 없다.”는 울분이다.

 

그럼 기독교는 어떠한가?

신자는 있으나 제자는 없고 예배는 있으나 은혜는 없고,

설교는 있으나 변화는 없고, 십자가는 있으나 십자가 정신은 없고,

성직자는 많으나 사도는 없고, 집사는 있으나 스데반은 없고,

선교사는 있으나 선교는 없고, 삯군은 많으나 목자는 없고,

통곡은 많으나 회개는 없고, 직분자는 많으나 전도인은 없고,

믿는 자는 많으나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없고,

권리 주장은 많으나 의무는 없고 불평은 많으나 감사는 없다.”

 

채워라! 예수로 꽉 채워라! 성령의 기름을 넘치도록 부음 받아 밝은 등불 되어라!

쭉정이가 알곡으로 염소가 양으로, 들포도는 극상품 포도로 변화를 가져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이름에 걸 맞는 무시 못 할 실력자가 되어라!

이웃 사랑과 세계구원에 주저 말고 나서라!

프란시스처럼 일생 동안 , 주여! 나의 전부!” 감격하며 흐느껴라.

 

주님 앞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도록 나른한 휴면을 이제 끝내라.

무릎 꿇어라. 불 받아라! 알차고도 당찬 일꾼이 되어라. 할렐루야!

 

 

민족을 위해 울어라

 

울자! 목 놓아 울어대자! 예수님처럼 울자!

이 염치없는 그리스도인의 낯을 가지고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

한국교회가 이방인에게 치욕을 받게 된 것이 나의 게으름이요

나의 삐뚤어진 삶 때문이라는 것을 울먹이며 통곡하자!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나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주야로 부르짖자! 1907년에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

이 땅에 짓 밝힌 그리스도의 이름을 회복시켜 높이높이 찬양 받으시도록 하자!

 

순교, 순교의 삶, 순교정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삶 속에 순교가 저장되어 있었다.

몸을 쳐 복종시키는, 자신이 자기를 죽이는 순교였다.

교회 안에서는 죽은 것 같은데 밖에만 나오면 모락모락 살아나는 이 혈기를 죽이자!

 

예수님도 순교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한결같이 순교했다.

최초의 선교사 바울도, 맨 처음의 집사 스데반도 순교로 인생의 길을 마쳤다.

 

초대교회는 으레 순교할 각오로 신앙을 지켰고

지금도 지구에 매년 20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복음을 위해 순교 당하고 있다.

 

일사각오(一死覺悟)를 가진 주기철 목사의 시퍼런 신앙고백을

일본이 꺾지 못했고

죽으면 죽으리라다짐한 안이숙은 격찬 받는 여성이 되었다.

 

신앙생활이 지루하고 마귀의 유혹에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는

순교 신앙이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고자 하는 사람만이 살도록 되어 있다.

나를 위해 죽으신 내 구주 예수님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각오를 다짐하자!

 

단 한 가지, 얼굴에 웃음을 잃지 마라. 순교자 스데반이 돌 맞아 죽기 전에

가진 천사의 얼굴로 곱게 꾸며라. 할렐루야!

 

목사도 예배드려라

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예배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2:20)

 

주님이 계시다는 약속을 믿는다면 예배 받으시려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에 와 계심을 성경적으로 믿어야 한다.

 

왕이 참석한 장소에서 경솔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티벳 라마불교는 두 손, 얼굴, , 두발 모두 땅에 대고 완전히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아침마다 700번씩 반복한다.

 

우상은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받는데

참으로 경배 받으실 창조자 우리 하나님은 못난 기독교인들 때문에

정성이 빠진 예배를 받으시는 곤욕을 치르신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무슬림 사원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발을 씻고 들어간다.

힌두교당에도 역시 신발을 벗고 간다. 불당도 마찬가지다.

세상 신발, 세상 생각, 주제넘은 자기 고집의 신발을 훌렁 벗어 버리고

겸허히 예배에 참석하라!

 

죄인의 모습으로 주 앞에 나오라!

예배 혁명이 일어나야만 생활 혁명이 일어난다.

 

사탄이 맹공격하는 21세기! 무엇으로 대항할까?

초대교회의 예배를 드려라!

성령의 기름이 흐르고 생수가 치솟는 예배를 드려라!

불 내리는 기도를 드려라!

주님과의 따뜻한 만남을 예배 때마다 경험하자!

 

그 힘 가지고 사탄 나라 허물고 하나님 왕국을 세우자!

찬란한 복음 나라를 세계 곳곳에 세워 나가자! 할렐루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아모스는 정의를, 호세아는 사랑을, 아브라함은 믿음을, 솔로몬은 물질을,

다니엘은 지혜를, 예레미야는 눈물을, 이사야는 남은 자에 대한 소명을,

누가는 의술을, 도르가는 선행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섬김을,

욥은 인내를 주님께 드렸다. 그럼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금과 은이 없어 은행 잔고가 바닥났지만

앉은뱅이를 번쩍 일르킨 베드로가 사용한 예수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독하는 괘씸한 골리앗을 물맷돌 던져 쓰러뜨린

다윗의 용기와 흑암의 세력들을 격파할 수 있는 성령이 있지 아니한가?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지팡이가 있는 이상

이슬람과 힌두교 그리고 미신 우상 집단을 조각 낼 수 있지 않을까?

 

여호수아의 손에 쥔 단창, 삼손이 사용한 나귀턱뼈로

음란과 폭력으로 얼룩진 소돔성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유대인과 골 깊은 원한으로 천대만 받던 사마리아성을

기쁨 가득한 도시로 변화시킨 빌립의 복음이 우리 가슴에 풍만하지 않은가?

우리는 벌써 풍성한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자이다.

 

성 무너져 내리는 곳에 버티고 서 있는 한 사람

골리앗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의 위기를 극복한 소년 다윗,

유대 민족 구원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던 에스더,

빗나간 사울을 위해 밤새워 울며 기도한 선지자 사무엘,

소돔성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6번이나 허리 굽혀 애걸한 아브라함,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큰 근심과 그칮 않은 고통을 품고 살았던 바울,

파괴되기 직전 요압을 설득시켜 어미 같은 성읍 세바 성을 구출한

지혜로운 여인(삼하20:22),

아람의 무서운 공격을 수 없이 차단시켜 이스라엘의 국방과 마병이 된 엘리사.

 

우리 도시는 누가 지킬 것인가?

이 나라 위에 쏟아지는 재앙을 누가 막을 것인가?

이 세계를 뒤덮은 더러운 악령과는 누가 감히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땅을 마구 파괴시키는 포악한 영을 누가 결박시킬 것인가?

 

진정 십자가 군병이라면 자기 성읍이나 선교지

혹은 조국을 기도의 그물로 덮어 씌워야 한다.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세를 사용하라!

동서남복을 바라보며 그 땅을 두발로 밟아 가면서

세계는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선포하라! 이제 탈환작전에 들어가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