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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두 번째 대면의 중대성 / 잭 푸닌

LNCK 2018. 6. 18. 16:10

하나님과 두 번째 대면의 중대성          창32:28               Source


잭 푸닌 / The Significance of a Second Encounter with God 

         


야곱은 하나님이 깨뜨린 사람의 고전적인 모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두 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벧엘 (28)과 브니엘 (32)이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교회)을 의미하며,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교회(벧엘)에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뵈어야합니다.

    

벧엘에서는 "해가 졌습니다"(28:11)

이것은 그 후에 야곱에게 일어났던 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다음 20년은 그에게 깊은 어둠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브니엘에서는 "해가 떴습니다"(32:31)

이 사건 이후 야곱은 마침내 하나님의 빛 가운데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 신자들은 여러 시대를 통해 야곱과 비슷한 경험을 해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하나님과 두 번 만남을 가졌습니다.

여러 번의 만남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큰 두 번의 만남입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거듭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집 (교회)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벧엘

 

두 번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을 때인데,

즉 자기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인데 *브니엘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면서, 그 후 그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천국에 이르는, 땅 위에 놓인 사닥다리를 꿈꿨습니다.

1:51에서 예수님은 그 사다리는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예수님 자신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야곱이 보았던 것은

장차 예수님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여시는것을

미리 보여준 예언적 비전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꿈에서 야곱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신상의 안전과, 육체적 건강과, 재정적 번영만을 구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자기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 여행에서 나를 돌봐주시고, 음식과 옷을 주시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게 해 주신다면, 내 수입의 10%를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진정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물질적 번영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이 세상에서만 복이 되고, 자칫 잘못하면 영생에서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후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생에서 영원히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전혀 쓸모없는 존재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또한 당신의 가정에 별로 필요 없는 존재라면,

당신이 가진 직업, 좋은 집, 많은 안락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쓸모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몹쓸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그를 다루시는 것을

벧엘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브니엘에서 두 번째로 야곱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야곱과 대면하셨습니다. 얼굴과 얼굴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처럼,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 필요합니다.

이 만남은 대개 자기 삶이 바닥을 쳤을 때,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최악의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두 번째 브니엘의 만남>이 일어납니다.

 

이 만남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고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브니엘에서 야곱은 홀로 남아있었습니다. 32:24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먼저 홀로 두십니다.

 

하나님은 그날 밤 오랜 시간 동안 야곱과 씨름을 하셨지만

야곱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씨름은, 지난 20년 동안 야곱의 생애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징합니다.

즉 하란에서 삼촌 라반의 양을 돌볼 때, 자기 육신의 힘으로

온 힘을 다해 씨름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이 완고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마침내 그의 정강이뼈를 골반에서 탈골시키셨습니다.

 

야곱은 그 당시 약 90 세였지만, 여전히 그는 매우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이 아직 장년기, 즉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후반기 인생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성기에 환도뼈가 탈골되는 것은,

즉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 된 것은

그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졸지에 장애우가 되는 것은,

자신이 장래를 위해 마련한 모든 계획을 산산조각 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견주어 그 충격을 이해하자면,

한참 원기왕성하게 뻗어 나아갈 40대 중년 남성이

하루 밤새 그의 한쪽 다리뼈가 탈골이 되고,

그 후 영원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불행한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이제는 도망칠 자기 다리마저 없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스스로 믿었던 자기 인생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남은 평생 동안 목발 없이는 걷지 못할 장애우가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는, 자아가 강건한 야곱을 깨트릴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셨지만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그에게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방법은 주효했습니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을 깨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 똑같은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를 깨트리기 위해 똑같은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닥칠 더 큰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깨트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정강이 관절을 탈골시켜놓고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어. 나는 내 할 일을 끝냈어.

이제 날 보내 줘. 너는 나를 원하지 않았어.

대신에 너는 이제껏 오직 여자와 돈만 원했어!"

 

그러자 야곱은 그 때 하나님을 고이 놓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바뀌었습니다.

마침내 변화된 것입니다!

 

지난 평생 여성과 재산을 움켜잡는 데만

목숨을 바친 이 사람 야곱은

이제는 대신에 하나님을 붙잡고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의 환도뼈가 탈골 되는 징계를 계기로,

건강하던 사람이 졸지에 장애우로 전락하는 고난을 계기로,

야곱의 마음에서 위대한 변화가 마침내 일어났는데,

그는 이제 그 무엇보다 하나님만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두 번째 만남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런 오래된 속담은 사실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남았을 때,

그제야 너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는 진리를 발견할 것이다!”

"When you have nothing left but God,

you will find that God is more than enough!"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진리를

좀 더 일찍 발견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사람들은 모든 자기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남게 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그 분 한 분으로 충분하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네 이름이 뭐니?"라고 묻습니다.

야곱은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야곱"은 사기꾼, 속이는 자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마침내 그가 사기꾼이라고 자진해서 인정합니다.

 

혹시 당신은 변화되기 전 야곱처럼, 속이는 자가 아니십니까?

당신은 자기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당신 주위의 사람들을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하나님께 정직하게,

나는 위선자입니다!’라고 고백하겠습니까?

진심으로 그걸 고백할 때, 그게 바로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당신은 얍복강의 야곱처럼, 회개하시겠습니까?

 

성경과 기독교 역사의 대부분 신앙위인들은

벧엘의 체험과 아울러 얍복강의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얍복강의 체험은 다른 말로 깊은 회개의 체험입니다.

이 체험을 거쳐야, 진정 변화된, 성숙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벧엘을 백일잔치에, *새로 태어남을 축하하는 잔치

얍복강을 성인식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장성한 사람이 시작됨을 축하함

 

20년 전, 눈이 어두웠던 부친 이삭이 그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을 때,

야곱은 자기가 에서인 척했습니다. 자기가 네 아버지 저는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정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즉시 "너는 더 이상 야곱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28

이는 너는 더 이상 속이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정말 격려가 되는 말 아닌가요!

야곱은 평생 그 음성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기만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

 

실제로 야곱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남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변화된, 성숙된, 장성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점점 더 변화되어져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인데, 야곱은 얍복강에서 이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네 이름은 이제 이스라엘 prince of God 이 되리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과 함께 겨루어 이기었음이라."

 

*이스라엘은 사라(보다)+(하나님)의 합성어인데

하나님을 보는 자입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죠.

의역하면, 하나님을 보는 자, 즉 그의 측근, 그의 아들이나 방백 prince of God 을 뜻합니다.

상당한 권세를 가진 자라는 뜻이죠.

 

속이는 자로부터 하나님의 측근에 이르는 변화는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야곱이 깨어졌을 때, 이 모든 일이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고, 그 분의 왕자로서, 그 분의 방백으로서

사탄에 대한 영적 권위를 행사하고,

사탄의 속박에 묶인 사람들을 풀어서 자유케 하는 권세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깨어짐을 통해 얍복강의 축복을 경험한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사람들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방백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세상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기는 권세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참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깨어졌을 때만 일어납니다.

벧엘의 체험만 갖고는 불가능합니다. 얍복강의 체험까지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얍복강의 체험이란, 성령의 감화가운데,

인생의 가장 밑바닥, 혹은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체험을 통해서

자신이 속이는 자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위선자로 살아왔음을

정직히 고백하고, 인정하는 순간에만,

그래서 자신의 그런 본성을 통렬히 때굴때굴 구불며 회개하는 순간에만

진정 깨어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때 이후부터 그는, 벧엘의 칠흑같은 밤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니엘의 밝은 아침 시간을 남은 평생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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