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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결정이 당신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 잭 푸닌

LNCK 2018. 6. 19. 08:08

www.youtube.com/watch?v=7WgrfXjAJ64

오늘 당신의 결정이 당신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요6:38        source

 

잭 푸닌 / Your Decisions Determine What You Become

   

예수님은 이 땅에 무엇을 하기 위해 왔는지

그분의 말씀으로 여기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전 생애의

매일 매일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사렛과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살아온 30년은 숨겨진 해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위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 30 년 동안, 매일 하신 일을 계시해 주십니다.

즉 그분은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하셨을 때

자신의 뜻을 부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뜻은 아버지의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육체로 지상에 오셨을 때,

그 육신은 매일의 삶 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에 반대될 수도 있는 자기 의지 self-will’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매일 <자신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매일 <자신의 의지를 부정>하는 삶을 사시다가

마침내 그 절정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매일 자기 의지를 부정하셨기 때문에, 결국 <십자가>라는

큰 자기 뜻과 의지의 부정, 자아의 죽음까지 기꺼이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길을 앞서 가셨던 예수님은

오늘날 그 분을 뒤따르는 우리 각자에게도

-자신의 뜻과 의지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요청하십니다.

 

공생애 때 예수님을, 남다른 영적인 사람, 영적 권위의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자기 부인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를 똑같이

영적인 사람, 영적 권위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열쇠입니다.

 

그 자기 부인이, 매일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이

결국 큰 십자가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self-denial, 자기 뜻의 부인, 자기 의지의 부인이

안 되는 사람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부인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는 다양한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합니다.

우리는 돈이나 여가 시간, 대화 방식,

또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는 성경읽기와 교회 봉사에 시간을 어떻게 할애할지 결정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말과 행동에 대해 반응합니다.

그 응대하는 방식도 나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매일 적어도 1백가지의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결정들은 딱 두 방향인데,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기쁘게 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물론 우리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은 의식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 습관적인 행동조차도

평소 자기의 의식적 결정이나 결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때조차도 우리는

-즉 우리 자신을 스스로 기쁘게 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행동합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예수 믿은 이후로 우리가 내린

수백만 가지의 결정을 생각해보십시오.

 

매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지금 영적으로 변화, 성숙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죄를 용서받음만 기뻐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을 기쁘게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여전히 ​​육체대로 사는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 그 결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사람이 자신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하게 하고 있나요?

어떤 사람이 후회 없는, 의미 있는 인생을 현재 살아가고 있나요?

-자기 육신의 뜻대로 산 사람입니까?

-아니면 매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몸부림 친 사람입니까?

 

성숙된 믿음, 장성한 신앙은
한 번 예수 믿기로 결심했다고, 한 번 세례 받았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의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매일, 매 주간, 매 해마다 살려고 몸부림 치며 행한 결과입니다.

개종 한 지 10 년 후인 두 형제 (같은 날 그리스도에게 회심 함)

영적 상태를 생각해보십시오.

 

-한 사람은 이제 영적 분별력을 가진 성숙한 형제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명을 맡기셔서,

지금 교회에서 많은 책임을 맡아서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분별력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를

돌봐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어린아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시람 사이에 큰 차이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것은 지난 십 년 간의 신앙생활 중에

각자가 내린 매일 매일의 작은 결정들!

그 결과에 따라, 10년 후 오늘의 모습이 각각 결정된 것입니다.

지난 십년간 각자는, 매일 조금씩 자기 미래의 모습을 조각해 왔던 것입니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문제는 앞으로의 10년입니다.

만약 그들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산다면, 또 다른 10 년 후에,

그들 사이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에서, 그들의 각자의 영광은

2000 와트 전구와

5 와트 전구에 의해 방출되는 빛만큼 다를 것입니다!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며" 고전15:41

 

교회 바깥에서 교우랑 만난 상황을 가정해 보십시다.

이때 신자들은 보통 그 자리에 없는 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말, 가십, 험담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또 그런 말을 들은 사람도

맞장구를 치거나 같이 험담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때 당신은 그 유혹과 굴욕에 굴복 할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거부하고 입을 굳게 다물겠습니까?

오늘의 이런 작은 결정들이, 10년 후의 내 모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장 남몰래 험담이나 비방을 하더라도

아무도 그 즉시로 나병이나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죄가 자기 삶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습관처럼 계속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자기 육신이 원하는 일을 행할 때마다

어떻게 자신을 조금씩 파괴해왔는지 10, 20년 후에는 반드시 깨달을 것입니다.

그 열매를 고스란히 자기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계에 이르러서는

그 후회가, 지금 지상에서 하는 후회보다 훨씬 더 막심할 것입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그들의 삶을 낭비하고 스스로 망가트린 과거를

처절하게 후회할 것입니다.

 

험담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몰래 먹는 떡이 잠깐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10년이 지나면, 두 갈래 길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진

격차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30년 동안 비슷한 상황에서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숨겨진 공생애 기간에 기록이 거의 없지만, 이런 기록은 있습니다.

"언제든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15:3)

 

그는 항상 자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언제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는 영역을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배고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별로 뚜렷이 할 일이 없어서

디저트 식당에 들어가거나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걸 딱히 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말해줍니다.

 

돈이 있으니 쇼핑도 쓸데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나서, 시장에 나들이를 가고, 눈에 띄는 물건들을

이것 저것 습관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게 꼭 명백한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본성적 방식으로 행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서 행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쓸데없이 늦게 잡니다.

별 다른 이유 없이 자기가 늦게 자고 싶어서 늦게 자고, 그래서 늦게 일어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최종 결과는

비록 당신이 주일날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고

매일 성경을 읽는다 하더라도

십 년 후에 무엇을 거두게 될까요?

 

<결심, 결단>없이 되는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저 마음으로만 예수님을 믿고, 행함이 없는 믿음이 많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가?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가?

 

-오늘 내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온 지난 10년의 결과가 아닌가?

-오늘 내 모습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온 지난 10년의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다른 형제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훈련시키며 신앙생활합니다.

 

*‘도를 닦는다는 표현이 타종교에서 쓰는 말이라서 적절하지 않지만

제자 훈련이런 말을 전통적 방식으로 표현하면 득도의 길입니다.
예수님도 나는 길 way 이요라고 하셨는데

way을 다른 말로 하면 도입니다.

구도求道 역시 아주 좋은 표현인데,

타종교에서 쓰는 말이라서 기독교에서 그 점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배고프지 않을 때, 불필요하게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결코 사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 15분 더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합니다.

 

누군가 화를 내며 자기에게 말하면, 부드럽게 대답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안 되더라도, 자꾸자꾸 회개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는 정욕을 자극하는 뉴스를 읽지 않습니다.

음란물이 자기 영혼의 순결을 해치지 못하도록 자기 영혼을 지킵니다.

 

모든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겸손하게하고

혹시 잘못했을 때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자기를 세상으로 물들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외롭더라도, 특정 우정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자기 육을 기쁘게 하는 결정이나 선택을

자기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부정하고

 

대신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정이나 선택을

자기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내립니다.

 

그 날이 다 지나고, 그 밤에 그가 얻었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 그가 얻은 열매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10년을 산 사람이, 아무렇게나 육신대로 10년을 산 사람과

그 차이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기뻐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사명을 맡기실까요?

 

작은 일에 꾸준히 충실한 사람은

몇 년 안에 하나님의 신뢰할 수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 지식 때문에가 아니라

그가 취하고 선택하는 작은 결정에 충실하기 때문에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승진할 것입니다.

영원한 기업을 얻고, 그 얻은 것을 계속 키워나갈 것입니다.

 

자신은 의지가 약하다고 변명, 합리화 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이 자신을 늘 인도해 주십사고 매일, 매 순간 부탁하십시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5:14

 

‘(새번역) 단단한 음식물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기 의지를 행사하십시오.

'성숙한 크리스천은

수년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그들의 뜻을 행사하면서

연습과 경험을 통해

자기 감각이 선악을 분별하도록 훈련 받았은 사람입니다.' 5:14

 

예를 들어, 두 명의 뚱뚱한 남자들이 살을 빼기 위해 의사에게 갔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12개월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하라고 처방합니다.

 

한 사람은 매일 결심하고 운동합니다.

그 결과 그는 살이 빠지고 근육이 강해집니다.

 

다른 남자는 처음 며칠 동안은 운동을 하지만

점차 느슨해지며 마침내 포기합니다.

마침내 그는 계속 더 비만하게 되며, 나중에는 건강까지 해치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자기 의지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아래서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의지 없는, 결단 없는, 결심 없는 신자들을 양산해 냅니다.

그 결과 마귀가 그런 신자들을 마음대로 공략하고,

그들은 10, 20년 동안 계속 약하고 약한 채로 남겨집니다.

비록 예수를 믿지만 말입니다.

 

젊은 사역자들에게 권고합니다.

비록 건전한 ​​TV프로그램만 보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 거기에 낭비하는 사람은,

결코 10년 후에 영적인 사역자로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영적인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종들은

과거에 TV를 보고자 하는 자신의 육신을 (그것이 건전한 채널이라 하더라도)

쳐서 복종시킨 사람들입니다.

남들처럼 볼 것 다 본 사람들이, 오늘날 영적인 사역자로 변모해 있고

우뚝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지난 10년 동안 취한 작은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양육하는 사역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계속 TV를 통해 건전한 프로그램들을 절제 없이 보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오늘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많은 사역을 맡기지 않으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부지런히 그분을 찾는 사람에겐 상 주시며

그분에게 편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역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 당신은 당신 자신을 부정하거나

음식, , 수면, 독서 등의 분야에서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과 관련하여

내린 많고 많은 작은 결정들로 인해 오늘날 당신이 결정되었습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갑니다.

지금 50세 이상인데

여전히 자신의 삶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좋은 해를 낭비했기 때문에

지금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 많이 헌신할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50대 사이의 30년간의 삶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조차도

그 사라진 시간들을 당신에게 돌이켜 회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인생의 남은 후반기에는

하나님을 위해 유용한 일들을 하며, 최대한 만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십대 시절과 20 대 초반에 아직도 있는 사람들에게

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하셔서

당신이 장차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도구로 만들어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30대에, 40대에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앞으로 10년 동안

당신의 인생에서 충실한지 faithful 지켜보실 것입니다,

 

10년 후 당신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뜻이 성취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도구로 쓰시겠습니까?

 

당신이 지금부터 충실 faithful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과거 생활에서 얼마나 실패했는지에 상관없이,

앞으로 미래에는 영원한 후회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진지하게 인생을 사십시오.

이신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예수님께서 젊은 시절 갈릴리에서 여러분 나이 때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해보고 그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오직 한 번 생명을 주셨고,

시간은 빨리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훈련되고 온전한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없는

당신 주위에 많은 신자들을 발견 할 것입니다.

그들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처럼 그들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자신의 소명, 사명에 충실하십시오.

다시는 우리 미래를 떠돌이처럼 방황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 자기 소명, 사명에 충실한 삶은

남들 눈에 보이는 외적으로 그럴 듯한 규모있는 사역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내리는 작은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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