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제자를 양육하고 계신가요? 눅14:25~35, 막16:15 source, 정리
Are You Making Disciples Or Converts? <정리>
잭 푸닌 Zac Poonen
◑위대한 사명 The Great Commission에 실제로 순종하기
위대한 사명은 마태복음에도 나오고, 마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고 마28:19
마가복음에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입니다. 막16:15
제 잭 푸닌이 늘 강조하는 것은 성경을 두루두루 보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명 The Great Commission 에 관해서도 두루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사명’, 얼마나 그 사명이 중요하기에
‘위대한 사명’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사명이요,
거기에 대한 순종을 자기 일생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데요.
이 ‘위대한 사명’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해서 볼 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전도이고 (마가복음의 대 사명)
-또 하나는 제자 삼기입니다. (마태복음의 대 사명)
성숙한 신자는, 예수님의 모든 계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순종하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즈음 ‘위대한 사명’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거기에 대해 기도하지 않거나, 그 일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면
적어도 당신은 성숙한 신자, 성숙한 제자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1. 전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사실 이 명령에 진짜 자기가 순종하려고 할 때,
쉽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온 천하에 다니는 것도 쉽지 않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그래서 성령이 임한 성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는
거의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임무,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
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신자들이 엡4:11의 ‘복음 전하는 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사명’, 즉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명령임에 틀림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단기 선교라도 가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왜냐면 모든 사람은 그분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witness
모든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부름 받지는 않았지만요. *evangelist
‘증인 witness’은 그저 복음만 전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가 믿든지 말든지.. 그건 차제의 일입니다.
일단 증거하고, 전도하는 일을 수행함으로써,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복음 전하는 자 evangelist’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종국에는 거기에 교회까지 세우는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사도, 선지자, 목사 같은 다른 직임의 도움을 받게 되고
동역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궁극적 목표는 전도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입니다. 즉 교회까지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면, 목사에게 맡기고, 그는 또 다른 개척지로 향해 떠나게 됩니다.
물론 그를 통해 세워진 교회가, 그를 위해 기도하며 뒷받침 하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현실적 문제점을 감히 언급하자면,
복음전도자가 전도를 해도,
그렇게 만들어진 새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잘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지역교회가 건강하지 못한 경우.. 그렇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전도 방식 역시 우려스럽습니다.
회개를 통한 회심에 의해서 전도되어지지 않고,
결단주의에 의해서 값싼 은혜로 신자들이 쉽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점들이 있지만, 오늘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반드시 올바른 방식의,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아서 되어지는 ‘전도’와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오늘날에도 쉼 없이, 그 역사를 계속해 나가는 줄 믿습니다.
특히 인도에서 대형전도집회 때 정치인을 초대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초대된 정치인 중에 신실한 크리스천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
예수님은 안나스, 가야바, 헤롯, 빌라도를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그분의 복음전도 집회를 가졌다고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저 푸닌은 값싼 은혜에 의한 대규모 결신에 대해
좀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 이런 말씀도 있거든요.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전도 집회에 수고하시는 분들을 싸잡아 비판하게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서투른, 교세 확장 식 전도 집회는
자칫 잘못하면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탄의 그런 궤계를 우리가 깨어있어 미리 사전에 막아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하는 전도와 결신이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참 전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눅15:10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의 몸’에 잘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물에 구멍이 너무 커서, 다시 바다로 나가버리고,
그러다가 다시 그물에 잡히고, 또 그물 구멍으로 빠져나가서 바다로 돌아가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촘촘한 그물’ 즉 성경적인 복음 전도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일부는 표적과 기사를 동반해서, 병도 고치고 기적도 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도 조심해야 되는데요, 만약 그렇게 병도 나아서 또는 표적을 보고서
예수를 믿게 된 새신자들이, 건강하게 교회에서 정착되지 못한다면,
역시 그물에 큰 구멍이 뚫려서 바다로 다시 돌아가버리게 된다면,
그런 표적과 기사 방식의 전도방식도 그물을 다시 촘촘하게 수선해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보다 중요한 것은
참 복음을 듣고, 죄인이 회개하고, 회심하고,
그가 옛 사람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제자’로서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위대한 사명’에 순종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28:19
그 방향을 상실하고, 그저 기적만 행해 보여주기 식의 전도방식 역시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가 기뻐하는 전도도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전도에 수고하시는 분들, ‘복음전도자’분들의 애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타난 전도, 예수님이 당부하신 전도는
그저 전도로 끝나지 않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되고,
그래서 거기서 그리스도의 제자로까지 성숙될 수 있도록,
그 목표와 방향성을 향해서 나아가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2. 제자 삼기
오늘날 교회에, ‘제자 삼기’는 정말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제자를 양육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제자들이 양육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혹시 근본적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회심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성장하는 ‘제자도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전도’가 너무 결단주의에 의해
그저 복 받기 바라고, 그저 문제 해결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왔으니까, 마치 9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들이 태어나서
대단히 위태위태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또한 교회와 목사에게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습니다.
알곡 신자들을 모으지 못하고,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으니까
아무리 제자훈련을 한다고 해도, (가라지들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회개의 복음’으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신자로 거듭나야 하며,
그제야 제자도의 길로, 성숙의 길로, 자연히 인도되어질 것입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서 잔치하는 사람은,
‘회개한 신자’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기뻐하기는커녕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진정 회개한 신자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처럼 자기가 사기 친 것은 보상하고 되갚는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미워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하며, 말씀에 순종해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비록 하루 아침에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거룩의 방향성’을 지향하며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복 받고, 문제 해결’의 방향으로 지향해 나아간다면
그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입니다. 회개 없이 신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가볍게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도다’를 선포하지 말아야 합니다. 눅19:9
예수님이 삭게오의 집에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고,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라고 선포하신 것은
삭게오가 철저히 자신을 회개하고 자기가 사기 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한 후 였습니다.
즉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보시고, 예수님은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값싼 구원의 남발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지상명령, 위대한 사명으로 부탁하신 것은
이렇게 전도로 끝나지 말고,
계속해서 그를 제자로 양육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숙한 크리스천 리더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이렇게 ‘전도’와 ‘제자 양육’에 자기 사역의 목표를 맞추고
늘 그 목표를 향해 조정해 나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 이러한 거룩한 목표에, 필요하면 얼마든지 서로 동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도 받고, 저기 가서 제자양육 받고서
또 더 훌륭한 스승 아래서 더 성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어떤 개인적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 교회’, ‘내 성도’, ‘내 제자’ .. 이런 의식은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통해 전도를 받고서, 그가 다른 교회로 떠나간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의 성도’, ‘그리스도의 제자’이므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이런 일에 방해를 놓는 사역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추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눅14:25~35절은 제자가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 비유에 보면, 예수님은 건물을 짓기 시작했으나
기초만 놓은 채 완공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의 예를 드십니다.
왜냐면 그는 처음에, 전체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건축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제자가 되려면
어떤 비용 지불을, 애당초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제자가 되는데 따르는 대가, 또는 비용을
아직 한 번도 계산해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신자는, 맛을 잃어 사람들 발에 밟히는 소금 신세가 될 뿐입니다.
그 제자가 되는데 치르는 대가라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된다면, 가족이나 친척이라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져야 하며 눅14:26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며 :27
-물질 등의 소유에 대한 자기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33
이 세 가지가 제자가 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치르는 대가, 요구조건입니다.
이 세 가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가족을 미워함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구절을 오해하면, 가족을 져버리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기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면,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정말 가족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면 전에는 그저 인간적인 정으로, 또는 내 욕심으로
가족을 사랑했었지만,
이제는 거룩한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고, 섬기고, 헌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그분의 모범을 보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미망인 어머니를 사랑 하셨지만
(아버지 요셉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일에서도 하늘 아버지의 온전한 뜻에서 벗어나도록
가족이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가나에서의 혼인잔치에서도 이 사실을 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속삭임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요2:4
그렇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사랑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고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고,
실제로 전승(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에 의하면, 사도요한은, 모친 마리아를
나중에 그가 에베소 교회를 섬길 때까지도, 끝까지 돌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마16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길을 막았을 때
얼마나 그를 엄하게 꾸짖으셨는지 보십시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그 뜻을 행함을, 형제 사랑보다 더 우선하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미워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런 제안을 했죠. 그러나 인간적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가 미워서 그런 꾸짖음을 하신 게 아닙니다.
베드로를 사랑했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제자도’에 관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제자가 치르는 대가가 있는데, 첫 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간적인 가족이나 형제 사랑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방면에 훈련되고 헌신된 사람이 ‘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셔서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를 물으시고
세 번이나 확인하신 후에, 양 떼를 치고 돌보는 일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제자가 되고,
또한 제자를 키우는 사람은, 그 분의 양떼를 치는 목자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그 선결조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는
계2장에 보면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사랑이 없음’은, 곧바로 지도자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그런데 간혹 예배시간에, 간절히 경배찬양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신자도 있습니다. 참 감동적입니다만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감정적으로 고조된 사랑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처럼 요14:21
예수님의 계명에 충실한 그 사람이,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2. 제자가 되는 조건 두 번째 – 자신을 미워함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을 한 번 더 강조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신자들이 가장 무시하는, 순종하기를 건너 뛰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눅9:23에서
제자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매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매일 성경을 읽어라, 매일 전도하라고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 지는 일은 ‘매일’ 해야 하는 것으로 가르치셨어요.
이렇게 볼 때, 매일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생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그 물려받은 자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죽일 수 있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삶을 싫어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 우리가 자아를 미워하지 않으면, 즉 스스로 자아를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그 옛사람, 그 변화되지 않은 내 자아가,
나를 죽입니다. 나를 삶의 구렁텅이와 낭떠러지로 빠뜨립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그 주범이 바로 나의 옛사람, 옛 성품, 즉 나의 옛 자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큰 적입니다.
성경은 다른 말로 이것을 '육체'라고 부릅니다.
육체는 우리 안에 악한 정욕의 상점입니다.
우리 자신의 유익, 자기 자신의 기쁨, 자신의 정욕, 우리 자신의 길 등을
추구하라고
항상 우리 자신의 뜻을 행할 것을 유혹합니다.
그 결과는 파멸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미워하거나
잃는 것에 관해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복음서에서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마10: 39, 16:25, 막8:35, 눅9:24, 14:26, 요12:25).
우리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의 명성을 찾지 않고, 우리 자신의 야망과 이익을 버리고,
우리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그만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기꺼이 자신의 옛자아를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만요!
그것도 매일!
▲3. 제자가 되는 세 번째 조건은
우리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33)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소유란, 물질만을 뜻하지 않고
물질을 포함한 우리 모든 것들을 광범위하게 뜻합니다.
우리의 소유물을 버린다,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모든 소유를 포기한 예를,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예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든 소유와도 같았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단호히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단에 바치려 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시험을 통과하고 ‘열방의 아비’로서 살아갈 수 있었는데요.
그 후에 자기 집에 여전히 이삭이 거했지만,
그는 이삭을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 모든 소유를, 주님을 위해 거뜬히 버린 사람으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뭘 부족해서 우리 것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상으로 섬기면,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리면, 오히려 몇 배로 더 얻습니다. 진짜 버리는 게 아니라요.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놓고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우리의 우상들을 기꺼이, 단호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스레 끼고 있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는 될 수 없습니다.
제자가 못 될뿐더러, 어쩌면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보듯이, 우상숭배자는 언제나 멸망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집을 하나님의 소유로 간주해야 합니다.
90평생 사는데, 하나님이 빌려주신, 임대해 주신 집입니다.
그렇게 집을 포함한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그 외 우리의 자산에는 은행 계좌, 재산, 직업, 자격증, 재능, 아내, 자녀 및
이 지구상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진정한 제자가 되고 싶다면 우리는 번제단 위에 다 그걸 다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귀하신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구원은,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더욱이 나의 소유물들이, 내게 우상이 되어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데 지장이 되고, 나를 범죄로 인도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들을 다 번제단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구원에 꼭 필요하니까,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관념적 믿음이 아니라, 다 포기한 증거로 딱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바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더 많은 소유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된 것처럼요!
▲제자 양육은 좁은 길
예수님은 마28:20에서 '제자를 삼으라'는 위대한 사명을 주시면서
덧붙여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 지역교회 안에서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나요?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려는 제자들이 있나요? 있으면 몇 명이나 되나요?
일례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만 봐도 그렇습니다.
정말 교우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 교회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부 교회나 선교회는 자기 공동체에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난다고 스스로 만족하지만
혹시 전도에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할 지 모르지만,
제자 양육은 '모든 계명을 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그 목표와 기준을 선명하게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사역 하실 때
기사와 표적을 보이시며 전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꼭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제자양육입니다.
그리고 제자도에 관해서도 가르치셨음을, 우리는 눅14장을 통해서,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소 12명의 제자를 양육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양육에 관련된 말씀을 가르치시자
많은 군중들의 반응은 ‘그 말씀이 어렵도다’ 하였고
또한 실제로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떠나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만 달랑 남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요6장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수많은 무리의 ‘군중’들이 아니라
몇 사람 밖에 안 되는 소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마치는 말
그래서 오늘날 21세기에서도
우리는 1세기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들의 사역을 그대로 계승해서 똑같이 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위대한 사명 the great commission’을 주셨는데
-그것은 전도와
-제자양육입니다.
제자양육이란,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
-자기 모든 소유를, 그 우상을 버리는 사람이며
-나아가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다 지키는 사람입니다. 마28:19
오늘날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지키게 하겠다’는
소원을 품은 사람,
즉 제자양육의 소원을 품은 사람을, 찾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디엔가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난 2천년을 계속 이어서 이어서 내려왔거든요.
그런 진정한 제자들이 없었고,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실종되었다면
기독교는 과거 역사의 어느 시점에 무너지고, 끊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길이 좁고 협착하며 찾는 이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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