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6Zd_9x4a_FQ
◈간절함과 꾸준함에 대하여 스크랩
정원 목사 <기도훈련 일기> 중에서
내가 영적인 열등생이었다는 것이
잘 안 믿어진다고 하니까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마.
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나의 이야기를 과장이나 꾸밈으로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별로 주님을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장도 일종의 거짓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들을 돕고 싶어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게 되면
결국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당장은 느려 보여도
가장 순수한 방법,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너무나 많은 영혼의 밤
고통의 눈물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쉽게 주님을 경험하면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주님을 사모하는 듯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환상과 음성과 여러 체험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내게는 많은 사모함이 있었다.
성경은 많이 읽었고 외우고 각종 줄을 치고
주석을 보고 해설서를 보고
도서관에서 온갖 설교의 귀재다 뭐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읽었던 주석이다..
그러한 평판이 있는 책들을 많이 보았지만
내 심령에 감동이 없었다.
나의 성경은 수 많은 줄과 연필 자국, 기도와 낙서로
마치 걸레와도 같았다.
내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청년 시절 교회에서 성경퀴즈 대회가 있으면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서
그 성경본문에 관한 모든 주석과 자료를 다 뒤져서 공부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했다.
나는 많은 집회에 가서 모두가 은혜받는데
오직 나 혼자만이 맹숭맹숭하여
버림받은 서글픔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수 없이 셀 수 없는
밤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주님을 체험하게 될꺼야.. 주님이 만나주실거야..
그렇게 기대하고 갔던 집회..
그리고 돌아올 때는 그저 죽고 싶었던
수 많은 날 들이 있었다.
금식도 많이 하고 회개도 많이 하고
내가 워낙 더럽고 악해서 그렇다 생각하고
온갖 회개도..
그러나 내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화가 나면 일부러 삐뚜러진 짓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다시 곤고해지면 회개하고..
그러나 그 악순환은 너무나 오랜 세월 반복되었다.
그것은 몇 년 동안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 주님은 쉽게 임하시고 만나주시고 역사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내가 그분을 더듬어 찾는 것을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영성의 원리에 대하여 조금 알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 그것은 내가 쉽게 주님을 경험했으면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수 많은 노력과 방법과 추구와 그 몸부림이 필요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것 저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은 내게 간절함을 주셨다.
그러나 그 간절함을 채워주시지는 않으셨다.
나는 마치 주님이 나를 약을 올리시는 것 같았다.
주님은 내가 오랫동안 그분을 찾게 하셨고
그분이 직접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찾아가며 발견하시도록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20여년전 어느 날 예수 전도단 초기에
명동의 YWCA에서 집회를 할 때 갔었다.
당시에는 거의 매주 화요일 마다 갔었다.
어느 집회에서 사람들이 다들 나와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간증을 했다.
그런데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집회가 끝나고 명동의 길을 걸어가는데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픈지
그냥 땅바닥에 엎어져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 때 내 앞에 어떤 자매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매가 조금 전의 집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았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와 음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주님의 음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솔깃해서 좀 더 듣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좀 길다고 하면서 괜찮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주님을 더 알고 은혜를 맛보고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지구끝까지도 갈 수 있으며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에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참 놀랍다고 했다.
그러한 간절함.. 그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주님이 채워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100%만족이 아니고
감질날 정도로 만나주셨다.
그러니 조금 알아갈수록
더 알고 싶어 더 사모하게 되는 것이었다.
바울은 형제에게 사역을 시키기 전에 그의 간절함을 시험하였다고 하였다.
간절함.. 그것은 주님의 일에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학위나 성품이나 재능이나 그 무엇보다도 주님께 대한, 주님의 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가..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된다.
그 간절함이 없이 주님을 쉽게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보면 그들은 계속 주님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너무 쉽게 얻어서 그 가치를 모르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잘 인내하지 못하며
당장에 주님이 응답하지 않으면 마치 죽을 것처럼 난리를 친다.
그러나 그러한 이들은 응답을 받아보았자 며칠이 안가서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간절함이 결여된 상태에서 주님이 임하시는 것은 그리 깊을 수가 없다.
나는 간절함 속에서 구하고 또 구하고..
그러다가 방언을 받고..
마치 하늘에 올라간 것 같았다.
방언을 입으로 소리내서 했지만
아무 느낌도 감동도 없었다.
그저 내가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나같은 이에게도 임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에
하루에 열 서너 시간씩 방언을 했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꿈에서도 방언을 했다.
그렇게 몇 달 하니까 기쁨도 오고 방언의 뜻도 알게 되었다.
밤 열시에 방언을 시작해서 정신을 차리면 새벽 여섯시.. 그렇게 방언을 했다.
내게는 은사가 워낙 늦게 임하고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일단 한번 받으면
그것이 날아갈까 걱정되어서
아침에 깨면 이 보석이 여전히 내게 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라라라라... 하다가 방언이 잘 나오면
아.. 내 방언 무사하구나.. 하고 좋아했다.
나는 입으로만 사모한다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사모가 아니다.
정말 사모한다면
그 무엇이든 대가를 지불할 수가 있는가?
오직 주님을 알기 원한다면
모든 이들에게 또라이 소리 들으면서
그렇게 주님께 미쳐갈 수 있는가?
온 몸과 마음과 생각과 뇌리 속에
주님을 붙들기 원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웅변하지 않더라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 전과 비교하면 지금 나는 어떤가
이제 주님이 역사하시는 원리들을
많이 이해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비통함은 별로 없다.
그러나 주님 그 분에 대한 사모함은 여전하고 또 여전하다.
오직 내 살아존재하는 이유도
그분을 더 알기 위한 것이다.
주의 음성을 듣고 무를을 꿇고 엎드리고
주를 부르면 주의 뜻을 구하는 것
그보다 놀라운 행복을
나는 우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많이 높인다.
무슨 영성의 거성이니 뭐니 하면서
지도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손톱만큼도 자랑스럽지 않다.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주님이 나에게 임하시는 것은
"너 같은 이도 나를 체험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도 나를 만날 수 있다.." 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것처럼
나도 한참 잘난 척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나를 높이고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고
그 뒤끝은 정말 비참하고 하무했다.
오직 주님을 높이고
그분 앞에서 엎어지는 것
그것만이 기쁨과 만족을 준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한심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한량없는 주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두르신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 은혜를 높일 때 우리에게 기쁨이 온다.
주님.. 저는 너무나 악하고 못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 주님..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기쁨이 온다.
자기의 체험을 자랑하고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에는 만족이 없으며
자신과 듣는 이를 실족케 한다.
나는 조금도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인정받고 영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가면
주님의 은총은 소멸될 것이다.
순수함을 잃어버린다면
그 순간에 주님과의 교제는 멀어질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내가 끝장나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지옥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다.
나는 그 어둠의 순간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에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하고 많은 것이 사람이다.
주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널려있는게 인간이다.
그러니 조금만 높은 마음을 품어서 주님이 오실 수 없게 된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이랴.
주님은 구데기도 사용하실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같은 마음으로
그 사모함, 간절함을 항상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간절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간절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간절한 사람은 꾸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둔한 사람은 꾸준하다.
이 두가지는 병행하기 어려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간절하면서 꾸준해야 한다.
어떤 이가 울고 불고 매달리고 찾는 다면
대체로 그런 이들은 며칠 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십여년 목회를 하고
홈페이지를 하면서 사람들을 보아도
뜨거운 이들은 오래가지 않으며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감격을 잘하는 이들은 곧 차갑게 식으며
애교가 많은 이들은 배반이 많고
비전이 큰 사람은 육성이 강하여
순수하게 주님의 열정을 꾸준히 유지하는 이들은
거의 드문 것을 보았다.
예리하고 깊은 은사를 경험하고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이
나중에 주님을 버리고 간 경우들을
나는 수 없이 보고 들었다.
주님은 그러므로 그를 구하는 이들의 인내를 시험하신다.
그들이 주님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아니면 세상의 유혹과 가족의 핍박 속에서
계속 주님을 유지할 수 있는 지 테스트하신다
내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저 멀리 앞에 있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때
저 앞에서 달리던 이들은 중간에 잠이 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경주를 하려면
우리는 그 간절함을 꾸준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영적인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깊고 높은 경지에 가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른바 영계의 거성에게 꼬리를 내리며
영적이지 않다고 보이는 이들은 우습게 알고 대한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육적 욕망과 자아이지
주님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조금 성장하여 주님이 보여주시기 전까지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많은 의식의 어둠이 있으며
일생동안 한 꺼풀씩 그것들이 단계적으로 벗겨진다.
일단 그 어둠 속에서 나와서
빛의 세계로 왔을 때
조금 전의 자신의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빛의 상태도
다시 한꺼풀이 벗겨지면
역시 어둠의 상태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가르침들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마치 돼지에게 청결하게 살라고 권면하는 것과 같다.
그저 주님의 긍휼의 때가 되어
한꺼풀 벗겨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간단하게 쓴다는 것이 또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것만 기억하거라.
우리에게 허락되는 어려움들은
오직 주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어려움을 통하여
보석같은 존재가 된다.
내 경우 주님은 아주 어렵게 오셨는데
그것은 마치 가나안의 여인에게
개들은 주인의 상에서 먹을 수 없다고 하신 것과 같았다.
그러나 나는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했을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같았다.
어떤 이들은 쉽게 주님을 경험한다.
그들은 일상의 여러 어려움에 흔들리지 말고
꾸준하게 주님을 붙드는 훈련을 해야한다.
어떤 이들은 주님 경험이 어렵다.
그들은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며
한걸음씩 주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에 대한 간절함과 꾸준함
이 두가지는 정말 너무나도 귀한 것이다.
나는 주님을 향해서 간절함과 꾸준함
이 두가지를 꼭 붙들고 있는 이들은
너무나 복받은 자들이며
영원한 곳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며
주님과 가까이 영원토록 교제하며 살 것을 믿는다.
그러한 이들은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도, 선교, 생명의 사역, 순교..
그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주님은 우주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목표이고 모든 것이시다.
그 분을 간절하게 사모하고
구하고 또 구하고 붙잡아라.
그러한 자는
이 세상에도 오는 세상에도
가장 행복한 자가 될 것이다.
'분류 없음 > 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 / 마틴 로이드존스 (0) | 2018.07.13 |
---|---|
실제 기도의 예 (0) | 2018.07.12 |
기도의 첫 번째 조건은 믿음 / 레너드 레이븐힐 (0) | 2018.07.12 |
마지막 시대에 기도의 전사들 / 프랜시스 프랜지팬 (0) | 2018.07.12 |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해야 생각(의식)이 바뀐다 (0) | 2018.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