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심은 것을 내가 거둔다 요4:37
06.10.22.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원제목 : 거두는 자의 기쁨
◑1. 심는 사람 다르고, 거두는 사람 다르다.
중국 사람에게는 이런 격언이 전해 내려온다.
“우리는 물을 마실 때마다,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
오늘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이 쌀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참으로 누군가 수고했고, 누군가 고생하며 땀을 흘렸다.
그래서 내가 오늘 그 추수의 기쁨을 누리며,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37
이와 같이 성경은, 심은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각각 다르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내가 심었으니 내가 거두겠다.’는 짧은 안목이다.
성경의 이치, 하늘의 이치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과거에 심은 것을... 지금 내고 거두고 있고
지금 내가 심는 것은... 후에 누군가 거둘 것이다.
이 이치를 명심해야 한다.
▲이 원리 속에 살면, 원망도 불평도 없다.
자기 자랑도 없어진다. 누군가 심어 놓은 것을 거두었으니까!
자기 자괴감도 없어진다. 내가 당장 못 거두어도 장차 누군가 거둘 것이니까!
이 정도가 되어야 사람다운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심어, 자기가 거두려 할 때... 큰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당장 열매가 안 보이더라도, 계속 쉬지 말고 씨를 뿌려야 한다.
◑2. 누군가 앞서 심었고, 지금 내가 거둔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요4:38
지금 우리가 거두는 것은, 누군가 노력해서 미리 심어 놓았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뿌린 기도를 내가 거두다
제 개인적 간증인데 용서하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저는 1951.1.13. 북한 황해도 장현 돌다리 마을에서 새벽기도 다녀오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1.4후퇴가 일어났고, 후퇴해서 밀려 내려오는 유엔군을 따라
그 날 저도 부득불 집을 떠나게 되었다.
아무 잘 데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돈이 있어도 통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저를 떠나보내실 때 이렇게 훈계하셨다.
“오직 성경책 하나를 들고 안심하고 떠나라.
내가 너를 위하여 새벽마다 기도할 테니까 너도 그 시간에 기도해라.
기도 중에 만나자.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서 저는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이상하게 제가 보던 성경책이 있는데도, 그건 놔두시고
아버지가 보시던 성경책을 들려주시면서 “가지고 떠나라!”고 하셨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부터 약 15년 전에 (90년대 초, 그러니까 고향을 떠난 지 40년 후)
제가 평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제 어머니에 대한 소식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 보니, 물론 어머니는 안 계시고
오직 호적 기록만 남아있었다.
그 호적에 의하면, 제가 도착하기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94세까지 사신 것이다.
저는 94세까지 사신 호적의 기록을 보고 울부짖었다.
‘이 어렵고 고달픈 세상에, 이런 악조건 속에서 왜 그렇게 오래 사셨습니까?
뭣 때문에 그렇게 오래 계셨습니까?’ 하면서 소리 내어 울며 기도했다.
그 때 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너 위해서 기도 하느라고 오래 살았다!’
그렇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서 나의 오늘이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어머님이) 앞서 심은 것을, 내가 거둔 것이었다.
▲미국에서 후한 장학금을 받은 사연
저는 5년 동안 미국 유학을 했는데, 내 돈은 백 불도 써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귀한 장학금을 다 주었고, 비행기 표까지 주었다.
누구도 나 같이 넉넉한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 장학금이 너무너무 감사해서 저는 잘 놀지도 못했다.
방학 때도 저는 절대로 놀러가지 않았다.
그냥 도서관에서 겨울, 여름방학을 지냈다.
그런데 제가 그런 후한 장학금을 받은 이유를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후에 한국에 와서 섬기는데 어떤 목사님을 만나면,
“자네가 곽선희 인가?”
“예, 그렇습니다.”
“아, 자네 할아버지가 곽시형 장로지?”
“맞습니다.”
“아, 내가 자네 할아버지 장학금 받고 공부한 사람일세!”
그런 분을 여러 분 만났다.
우리 할아버지가 가끔 장학금을 줬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 장학금 받고 공부해서 목사, 전문가가 된 사람은
그 때 내가 처음 만났던 것이다. 그런 분들이 여럿이었다.
그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것을 내가 거두는 거구나!
그것이 바로 내가 미국에서도 후한 장학금을 받은 이유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거지잔치’를 1년에 몇 번도 하시는 것을 내가 보았다.
세상 떠날 때 유언도, ‘1주일 동안 거지잔치를 하라!’ 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돌아가신 다음에, 1주일 동안 천막을 쳐놓고
온 동네, 온 면 사람들이 모여서 거지잔치 하는 것을 지켜보며 내가 자랐다.
그렇게 베푸는 삶을 사셨으니, 그 뿌린 것을 오늘날 내가 거두고 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많은 귀한 분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다.
그가 심고 내가 거두는 것이다.
내가 지금 거두는 이것은 나의 노력, 나의 선, 나의 의가 아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사
예수님은 온 인류 구원을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버리셨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신 것을 넘어서
온 몸의 피를 흘리며 인류 구원의 씨를 뿌리신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사이다.
많은 순교와 희생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부흥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오늘 우리 민족사를 놓고 봐도 그렇다.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의 피 흘림과 씨 뿌림이 있었고
수많은 선배 목사님과 선배 성도님들의 피 흘림과 희생이 있은 연고다.
그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세대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다시 씨를 뿌려야 한다. 눈물로 씨를 뿌립시다!
언제가, 누군가가 거두게 될 것이다.
◑3. 심은 것을 자르면, 아무 것도 못 거둔다.
▲인간은 서로 동생공사(同生共死)한다.
끝도 없는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 작은 오아시스가 있었다.
그 오아시스 곁에는 고독한 노인 한 분이 오두막을 짓고서
맑은 샘물과 시원한 야자수 그늘 아래서 살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생수를 한 그릇 퍼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는 일이었다.
이것이 그 노인의 생활이요,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을 퍼 주다 보니까
손님 중에 어떤 분들은 고맙다고 돈을 한 푼씩 사례금으로 주었다.
그렇게 돈을 조금씩 받다보니까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방문객들에게 돈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못 받으면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돈이 착착 쌓이니까, 이게 재미가 솔솔 더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아시스 물이 자꾸 줄어들었다.
그는 그 원인을 깊이 생각했다.
‘아하, 이 큰 야자수 나무들이 물을 전부 빨아먹어서... 물이 줄어드는 구나!’
그래서 노인은 그 야자수 나무들을 모조리 도끼로 찍어버렸다.
그랬더니 물은 아주 말라버렸다.
결국 그 노인은 목말라 죽었다.
이 조그만 사건은, 우리 인간의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야자수 나무가 샘물을 빨아먹는 것 같지만, 동시에 샘물을 공급해주고 있었다.
세상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 특별히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그들은 나의 진액을 다 빨아먹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가 존재함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자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남을 자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자르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나무를 찍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크리스천은 심는 사람
웬 노인이 산에 유실수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 묘목 나무는 적어도 수 십 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게 보였다.
노인의 나이로 봐서는, 자기 세대에 열매를 얻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 노인은, 다음 세대를 위하여
매일같이 묵묵히 벌거벗은 산에다 유실수 묘목을 심어 나갔다.
30-40년이 흘렀다. 노인도 죽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살던 그 야산에 마을이 새로 생겼다.
숲이 생기니 말랐던 시냇물이 다시 흘렀다.
그러자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새들도 다시 돌아와서 지저귀었다.
유실수 열매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숲이 생기니 동물들도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 십 년이 지나니까,
세상은 살기 좋게 바뀌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서.
▲여러분, 오늘 내가 누리는 이 풍요, 자유, 기쁨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선조들의 많은 희생이 있어서 오늘 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씨를 뿌린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무슨 씨를 뿌리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내가 씨를 뿌려야, 그래야 누군가가 또 먼 훗날에 거둘 것이 아닌가!
우리가 심을 때, 하나님은 농부로서 햇볕과 비를 주셔서 자라게 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할을 충실히 하시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역할-심는 것-만 충실히 하면 된다.
<06.10.22.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원제목 : 거두는 자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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