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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의 원인과 치료법 / 마틴 로이드존스

LNCK 2018. 9. 5. 21:26

www.youtube.com/watch?v=IJIg6HF2rMc

◈염려의 원인과 치료법                          마6:34                    스크랩

마틴 로이드 존스 '산상 설교' 중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이 절에서 주님은 본질적으로 한 가지의 문제, 곧 이 세상과 이생의 일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의 문제를 종결을 짓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너무 중요하므로 주님은 세 번씩 말씀하신다.

 

주님은 앞의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적극적인 가르침으로

그것이 최종의 진술이며,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신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추가하심에서 주님은 한 단계 더 밀고 나가셔서,

이 문제를 가지고 미래까지 포함시키고 계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거의 죽이는 경향이 있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대한 분석을

이 대목보다 더 철저하게 분석하는 곳을 다른 어느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을

여러분은 동의해야 할 것이다.

 

결국 염려는 하나의 뚜렷한 실체이다. 그것은 힘이요, 세력이다.

염려는 와서 우리를 움켜쥐고, 우리를 통제하는 적극적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것에 패배당할 것이 확실하다.

 

염려가 우리에게 실제로 부딪쳐오는 것들의 상태를 통해서 우리로 염려하게 하고 압도할 수 없다면,

염려는 그 다음 단계를 취하여 미래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로 염려하는 사람을 도우려할 때,

여러분은 그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며 염려가 얼마나 불필요한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변함없이 계속해서 ‘예, 하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염려의 전형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이것은 염려를 의인화하는 말씀이다.

주님은 이것을 하나의 세력으로 거의 인격을 가지고 여러분을 움켜지고 다투는 세력으로 간주하신다.

 

염려는 왕성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며 온갖 유의 가능성을 상상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귀신들에 잡혀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대적 마귀는 신체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또는 지나치게 근심하는 생래적 성향을 이용하여 횡포와 지배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막강한 대적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미래에 관한 근심을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지금 하시는 말씀이 앞서의 가르침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염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어째서 너희는 이처럼 미래에 대해 염려를 허용하느냐?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길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 것으로 넉넉하다)

 

만일 현재로서도 충분히 어렵다면 어째서 미래와 대면하러 나아가는가?

하루하루 계속하는 것 차체로서 충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염려는

철저하게 쓸데없으며 효과도 없다. 여러분이 아무리 염려하더라도 이것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에서든 염려가 위협하는 파멸은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주님은 ‘너희는 현재 미래에 대해 염려함으로써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음을 보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미래에 대한 염려의 결과는 오늘 여러분의 능률을 저하시키고

미래에 대하여 여러분의 능률을 감소시키고 있다.

 

죄의 결과로 사람은 수고하며 시련과 괴로움에 직면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시련과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있다.

 

사활적으로 중요한 일은 우리에게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합산하면서

생애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렇게 한다면 이 일은 우리를 박살낼 것이다.

 

여기에 오늘을 위한 할당량이 있다. 우리는 이것에 직면하고 마주쳐야 한다.

앞으로 가서 내일의 할당량을 오늘로 끌어와 첨가시켜서도 안 된다.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의 할당량이 있다. 그러나 그 일은 내일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아닌 것이다. 어제나 내일을 지고 다니지 말라. 오늘을 위해 살라.

생활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과거를 잊는 이 놀라운 역량의 특징을 띄고 있다.

그들은 ‘나는 죽은 자들로 그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겠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염려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지 않는다.

 

오늘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내일도 같은 하나님이 되시며

내일에도 우리를 도우시리라는 것을 배워 깨달아야 한다.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문제에 실패하는 까닭은 그들이 항상 하나님을 앞질러 가려 하기 때문이다.

 

하루 단위로 살라. 날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날 그날 하기를 원하시는 일을 하라.

 

결단코 ‘내일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일을 나에게 원하실지 모르겠다’ 따위 생각에 빠지지 말라.

여러분은 매사에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을 앞지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은혜를 날마다 한 부분씩 몫을 지어 주신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오려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주실 것을 알고

하나님은 나의 필요에 따라 나와 함께 하실 것을 알며 시작한다.

 

미래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일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오늘 여러분을 붙드시는 주님은 내일도 동일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내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변함없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시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하나님께서는 항상 피할 길을 주시지 아니할 시련은 여러분에게 오지 않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나날을 하루하루씩 맞이하는 지혜를 배워 어제와 내일을 잊는 동시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이렇게 동행하며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날그날 필요한 것을 위해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절대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빠지기 쉬운 치명적 유혹은 미래를 위해 은혜를 저장해 두려 애쓰는 유혹이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보다 앞서 가심을 확신하고

미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일임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서 그 문제를 맞아주실 것이다. 하나님께로 향하라.

 

- 그리스도인이 돈을 저축하며 보험에 드는 것은 잘못인가?

농부는 밭을 갈고 돌아보아야 하고, 추수하여 곳간에 들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모두 미래를 위한 대비이다.

가만히 앉아 음식과 의복이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주님을 가르침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일들을 너무 생각하거나

너무 관심을 가져 이것들이 현재 우리 삶을 지배하거나, 우리의 유용성을 제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당한 생각과 관심의 한계를 벗어나 근심과 염려의 한계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우리 주님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고 나서 이것을 염려하고 이것에 집중하고

생활과 삶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계신다.

 

내가 만일 현재 이 순간 미래에 대한 관심 때문에 불구가 된다면 나는 염려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분별있고 정당하게 대비하며 이 순간의 내 삶을 충분히 산다면 만사가 좋은 것이다.

 

내가 늘 보험이나 은행의 잔고와 충분히 저축하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이 걱정하며 정죄하는 것이다.

 

또한 믿음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는 믿음의 은사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적의 은사나 구원의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별개의 은사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죠지 뮬러와 허드슨 테일러에게 주신 유의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특별하게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성화된 사람들 속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 믿음의 은사를 나타내는 특별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아 저축이나 보험에 드는 것이

잘못인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에 각자 자기를 살펴야 한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말자.

 

- 이 가르침을 요약하면

 

첫째,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 약속들은 모든 사람에게 하신 보편적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은 불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말씀 하시지 않는다.

 

둘째, 염려란 항상 우리가 믿음을 적용시키지 못하는 데 있다.

믿음은 자동적으로 작용하거나 자동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자라게 해야 하고 적용해야 한다.

 

셋째, 믿음의 대부분은 염려하는 생각을 물리치는 것에 있다.

믿음은 염려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것을 거부하며 나쁜 의미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짐을 질 것을 거부한다. 우리 짐은 모두 주님께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원컨대, 우리에게 지혜와 은혜를 주셔서 이 단순한 원칙을 실천할 수 있게 하옵시며,

이로써 날마다 주를 즐거워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출처: 자기부인 /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