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에버레트 쿠프 박사 이야기"
『내 영혼의 스승들』 중에서 / 필립 얀시 지음
에버레트 쿠프 Everett Koop 박사는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30년 동안 일하면서
조산아와 손상을 입은 아기들을 구하고 회복시키는 방법들을 연구한 외과의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명의 아기를 살리려 피땀 흘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아기를 제거할 수 있는 낙태시술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보며
그는 낙태를 명백한 비도덕적 행위로 여기고 열정적으로 반대했다.
내(필립 얀시, 책의 저자)가 에버레트 쿠프 박사를 알게 된 것은 한 위원회에서였다.
그는 그곳의 의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도덕적 사안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전례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 결과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1980년, 쿠프의 저서 두 권을 읽고 낙태를 반대하는 그의 강한 확신을 존경하게 된
레이건 대통령이 그를 미 공중위생국 장관으로 임명하기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쿠프는 예순넷으로 해당 직위에 대한 연령 제한을 100일 넘겼기 때문에
그의 임명에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레이건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관리 거의 모두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겼던 의회 승인 과정이 뜻밖에도 정치권의 폭풍을 만났다.
쿠프의 솔직함이 오히려 그를 괴롭히는 덫으로 작용했는데,
가족계획협회와 미국여성위원회(NCW), 그리고 여러 낙태찬성 단체들이 앞장서서
낙태와 여성의 권리와 동성애에 대한 쿠프의 극단적인 말을 집중 공격했다.
그들은 쿠프의 신념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자질, 정신 상태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 지는 ‘무자격 박사’라는 제목의 논설을 실었고,
워싱턴 포스트 지는 ‘쿠크(괴짜) 박사’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지어냈다.
사람들은 그를 극우, 또라이, 광신자로 불렀다. 미 공중보건협회마저
“쿠프를 공중위생국 장관으로 두느니 차라리 공중위생국 장관이 없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쿠프 박사는 샴 쌍둥이 분리수술과 튀어나온 심장의 복원수술 등으로
대단한 명성이 있었다.
‘레종 도뇌르’ 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받았고 여러 신문에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지역 인사’로 자주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역 언론마저 그에 대한 비난에 합세하여
쿠프 박사를 머리 두 개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잔인한 카툰을 싣기 시작했다.
워싱턴에 들어온 쿠프 부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우연히 교전 지대로 들어선 여행객과도 같았다.
쿠프는 빈 사무실 하나를 얻어 출근했는데, 그곳에서 의자 깊숙이 기대앉으면
돔 모양의 국회의사당과 커다란 성조기가 보였다.
권좌 근처까지 갔으나 그에게는 도시 전체의 조롱 외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40년 동안 하루에 12시간씩 미친 듯이 일해온 그였는데
이제 검토할 서류 한 장도, 전화도, 아무런 일정도 잡혀 있지 않았으니,
마치 사무실에 혼자 감금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를 방문했던 폴 브랜드 박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 안을 서성이는 그를 보는 순간,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에 갇혀 꼼짝 못하는 사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쿠프 자신의 회상을 들어보자.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공직을 추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홉 달 동안의 괴로운 지명 과정 동안, 저는 책상에 앉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오후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 베티가 눈물을 흘리며
워싱턴 포스트 지를 읽고 서 있었습니다. 그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어요.
나는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어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다 필요 없어!’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그러진 배후에는 어떤 뜻이 있을 것임을
상기시켜준 사람은 바로 베티였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그만두면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거예요.’”
결국 쿠프는 공중위생국 장관직을 얻었고,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공직자 중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9년간 소임을 다하고 사임을 발표했을 때,
이전의 비판자들은 한목소리로 한때 비방했던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CBS는 쿠프를 “사상 최고의 공중위생국 장관”이라고 선언했다.
쿠프의 열렬한 팬으로 돌아선 왁스먼 의원도 그 말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는 참으로 고결한 사람입니다.” 쿠프의 장관 지명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미 공중보건협회는 그의 탁월한 직무수행에 대해 최고의 상을 수여했다.
무엇 때문에 쿠프의 이미지가 그토록 확 달라졌을까?
그것은 약자와 소외계층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장관 임명 청문회 기간 동안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약하고 소외된 인간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자신만만했던 사람이
갑자기 콧대가 꺾이고 외톨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넉넉했다. 그에게는 그들의 우려에 귀기울일 시간이 많았다.
그 아홉 달 동안 쿠프는 미국 전역에서 울리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중에는 동성애권익옹호자와 낙태찬성론자들처럼
그의 장관직 임명에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쿠프 자신이 책임져야 할 미국의 일부였다.
쿠프는 이제 그 기간이 놀라운 선물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아홉 달 동안 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자세하게 정리했습니다.
결국, 제가 장관 재임 중에 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은 극도의 좌절을 겪었던
그 기간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청문회가 끝나고 장관으로 취임한 후,
그는 그간의 악명 덕분에 하는 말마다 쓰는 글마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해를 가하려는 비방자들의 노력 덕분에
쿠프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대중적 지명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직접 신임 공중위생국 장관을 만난 기자들은 그의 정중함과 솔직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얼마 후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뷰 상대가 되었다.
그는 음주 운전자를 비롯해 아동학대와 배우자 학대에 대한 대책반을 소집했으며,
청소년 성교육과 흡연, 마약 그리고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바로잡는 교육을 실시했다.
백악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담배 광고에 대한 금지를 제안했다.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쿠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최초로 에이즈의 실체를 파악하여 전국민에게 그 전염병의 위험을 자세히
다룬 책자를 무료 배포한 것도 바로 그였다.
정직한 지도자에 굶주려 있던 국민들에게 쿠프는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많은 젊은이들에겐 그것이 없습니다.”
쿠프는 주치의를 믿어주는 미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주치의는 안 좋은 소식을 전하거나
우리의 나쁜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치의가 말을 고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라고,
무엇보다 우리의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길 원한다.
미국인들에게 비친 쿠프의 이미지는 바로 국민의 주치의였다.
- 『내 영혼의 스승들』 중에서
필립 얀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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