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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결심 막14:32~42 Max Lucado
*원제 : HIS FINAL PRAYER WAS ABOUT YOU ! by Max Lucado
*부제 :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 고통을 참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4
▲비전1: 내 행복을 보심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
그 분의 기도의 중얼거림 속에는 “내가” 그 속에 있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실 때
그 분이 바라보시는 환상 가운데는 “내가” 거기 있었다.
예수님은 그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먼 훗날을 꿈꾸듯 바라보셨다.
주님 계신 천국에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는... 행복한 그 날을 꿈꾸셨다.
이렇듯, 주님의 최후의 기도는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
주님의 마지막 고통과 수난도 바로 “나를” 위해 당하신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갈등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면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같이 가자고 요청하셨다.
주님은 “내 마음이 슬픔으로 기절할 것 같고 거의 죽을 지경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시작하셨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신성으로 닥칠 일들로 내다보시고는
크게 두려워서
그 일로부터 자신을 구해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목수이신 예수님이 울듯이 간청하시는 것이었다.
인간이신 예수님은 어두운 구덩이(음부)를 내려다보시고는
하나님께 간청하셨다; “다른 길은 없나요?”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벌써 주님은 그 대답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으신가.
예수님의 인성적 마음은, 아버지께서 다른 길을 찾으시길 바라시기라도 하신건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은 빠져 나오기를 간청하신 것이었다.
‘할 수 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만약 하실 수만 있었다면, 이 모든 고난의 십자가로부터 등을 돌리시고
빠져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비전2 : 내 고통을 보심
예수님은 왜 등을 돌리실 수 없었을까?
그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 분은 “나를” 보셨기 때문이다.
이 불공평한 세상 한 복판에서 고생하는 “나를” 보셨다.
원치 않는 인생 고통의 강물에 내던져져 떠내려가는 “나를” 보셨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해 괴로워하는 “나를” 보셨다.
병든 몸을 가누느라 고생하는 “나를” 보셨고,
마음에 용기를 잃고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 나약해져가는 “나를” 보셨다.
친구도 하나 둘 다 떠나보내고 외로운, 굵은 뼈마디만 남은 “나를” 보셨다.
일생의 실패로 가득 채워진 “내 몫의 지옥 구덩이”를 응시하셨고,
나를 기다리며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내 몫의 무덤”을 뚫어질 듯 쳐다보셨다.
이것들이 예수님이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보신 것들(비전)이다.
▲비전3: 나를 바라보며 유혹을 이기심.
그 분은 거기 동산에 계시면서, 인간적 유혹을 모두 친히 체험하셨다.
그 유혹의 한 복판에서 그것을 이기신 것은.... “나를”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것을 “내가” 알기 원하신다.
그 분은, 뭔가 배반하려고 꾸미는 음모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신다.
그 분은, 마음의 혼란이 얼마나 고통이라는 것을 아신다.(체험을 통해)
두 소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신다.
그분은 아신다. 사탄의 악취(사탄의 유혹)를 냄새 맡는 것이 어떤 것임을....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분이 잘 아신 것은,
만약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시도록 간청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이 부드러운 “노”가 아니라, 엄중한 “노 No!"라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①주님은 "나를 위해" 약한 인간으로서 십자가를 피하려는 유혹을 이기셨다.
②주님은 "나를 위해" 약한 인간으로서 갈등 중에 유혹을 이기는 본을 보여 주셨다.
▲승리는 겟세마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밤 중 어느 순간에 자비의 천사가 기도하다 지치신 예수님께 내려왔다.
그리고 그 분의 기도를 도왔다.
이제 예수님이 일어서셨다.
그 분의 눈에는 번민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분의 주먹은 더 이상 꽉 쥐지 않았다.
더 이상 마음의 갈등은 없었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다.
사람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이제 승리하셨다고 생각하겠지만...
혹은 빈 무덤을 보고나서 이제 승리하셨다고 생각하겠지만...
최후 승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감람나무 아래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다가 마음이 편안해지신 것이...
바로 사탄의 권세 정복의 첫 싸인이었다.
주님이 결심하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다.
주님은, “나를 두고 천국” 보다는 차라리
“나를 위해 지옥” 편이 더 좋으셨다.
▲나의 결심
①예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내 행복을 보시고, 내가 당할 고통을 보시고
예수님은 처절한 십자가의 고난을 굳게 참기로 결심하셨다.
'내가 과연 누구이길레...?'
②겟세마네의 결심 - 그런 기도의 결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성을 가지신 주님은, 사람은 기도를 통해 어떤 유혹도 물리칠 수
있다는 본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외아들도 그런 기도의 결심이 필요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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