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그리스도께 복종케 될 때

LNCK 2020. 9. 21. 08:19

◈그리스도께 복종케 될 때                     고후10:3~6                        아마2007년 설교녹취

 

 

◑두 싸움

 

성도에게는 2가지 싸움의 영역이 있다.

 

▲1. 출애굽의 싸움 ... 가만히 있으면 승리한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지난 다음에 가나안에 들어간다.

출애굽은.. ‘옛생활, 옛사람에서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가 떠나고 버려야할 옛생활에서의 구원이다.

 

그때 애굽 군대가 뒤를 추격해 왔는데, 이스라엘은 그 군대와 싸우지 않았다.

그냥 앞만 향해 나아갔고, 홍해가 갈라졌다. 애굽 군대를 다시 볼 필요가 없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14:13  

 

▲2. 가나안 땅의 싸움 ... 싸워서 취해야 한다.

그런데 진짜 싸움의 영역은 가나안 땅에 있었다.

거기는 뒤를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있다.

내가 들어가면, 가나안 생활을 하게 되고,

내가 들어가지 못하면, 계속 광야 생활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 뒤돌아보지 않고, 싸우지 않고, 피하면 되는 ‘애굽과 같은 세상’이 있지만,

우리 앞에 있는, 우리가 싸워 취해야할 영역이 있다. 피할 수 없다.

<가나안 땅은 성령 안에서의 승리의 삶>을 상징한다.  

                                  *출애굽은 옛 사람, 옛생활에서 구원을 뜻한다면...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도, 여전히 내 속에 영적인 (죄와, 나의 자아와) 싸움이 있다.

내 속에 마치 여리고성에 비유되는 ‘견고한 진’이 있다.

여러분, 그 싸움을 피하거나, 덮어두지 마시기 바란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도무지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진(요새)’stronghold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여리고 성을 만난 것처럼

우리 앞에 견고한 진에 맞딱뜨리게 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후10:4

 

그 싸움은 우리가 먼저 공세를 취해야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셨다.

우리가 우세하고, 마귀의 권세가 열세하다는 뜻이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어떤 때는 싸움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결코 기쁨과 평강을 맛보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때, 피하고 싶어 한다.

 

▲다시 ‘두 싸움’을 비교하면

출애굽 때(구원 받을 때)는, ‘가만히 있으면 되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14:13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모든 것을 일해 주셨다.              God for me

 

그런데 가나안 땅의 싸움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   God in me, God through me.

그러므로 내 속에서 뭔가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럴 때는 도와달라고 주님 앞에 기도를 해도

주님은 ‘나만 바라보지 말고, 네가 가서 취하라’고 하신다. 여호수아에게 그러셨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이렇게 두 가지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뒤 안 돌아보고 피해 가야할 영역이 있고, (옛 사람, 옛 세상) 하나님이 해 주신다.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싸워서 이기고 취하여야 할 영역이 있다. (견고한 진) 내가!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야 한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5

 

가나안 땅의 정탐꾼 중에 두 사람은,

자기들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켰다. 환경보다 말씀을 믿었다.

그런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얻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환경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적에게 패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종살이한 사람들이 있었다.

애굽에서 종살이 했는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또 종살이 했던 것이다.

내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고는/ 내 견고한 진을 파하지 않고는,

환경에 눌려서 살다가는/ 자기와의 싸움에 지다가는... 거기서도 종살이 하게 된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10:6

 

가나안 땅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내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에 내게 온전히 복종하게 될 때.. 승리하게 된다.↙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10:6

 

◑적용

 

▲순종은.. 내 이성을 초월하는 것

눅5장에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때 목수이신 주님이 ‘깊은데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어부 입장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생각을 사로잡아 그 말씀에 자기를 복종시켰다.

그랬더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타났다.

 

여러분, 우리가 내 이성적으로 될 만한 곳에 항상 일을 추진한다.

그래서 주님이 하실 일이 별로 없게 된다.

그런데 내 머리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그 곳에, 이해가 안 되는 그 일을

주님이 시키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그렇게 시키신다.

 

그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성경에 두려워말라고 365번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살게 되어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종들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을 순종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성에 묶여 있어서

자기 이성에 이해되는 일에만 순종한다.

그래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인간적 역사는 일어날지언정,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반드시 책임지신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은 반드시 나를 책임지신다. 두려워하지 마시라.

주님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살고,   ←믿음의 삶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죽는다. ←이성적 삶

 

일례로, 포도주가 바닥났는데, 거기에 물로 채우는 사람은.. 이성을 초월한 순종이었다.

성경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창조(시작부터)가 기적이고, 마침(종말)이 기적이다.

그 중간에도 모든 기적이 가득 차 있다.

기적을 일부러 사모할 필요는 없지만, 내 이성을 초월해서 순종할 때

오늘날에도 기적은 반드시 일어난다. (대부분 긴가민가 하는 기적임)

내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만 하면!

 

▲예수께 복종은.. 성령님께 복종

여러분, 나와 동행하시고 내 곁에서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부단히 의지하시기 바란다.

마치 내 곁에 누가 서 계신 것처럼, 그 분은 인격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그 분과 늘 대화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란다.

간혹 내 이성에 초월하는 일들을 명령하실 때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나를 강권적으로 몰아가실 때도 있다.

이 때가 ‘하나님의 역사,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5

오늘날 그리스도는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성령께) 내 모든 생각이 사로잡혀 복종하는 것이다.

 

▲내 고통, 내 환란을 통해서 내가 변화되면.. 내가 세상에 축복이 된다.

시편은 다윗이 극한 어려움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기록이 아니라,

자기가 변화된 기록이다.

신앙생활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이전에

내가 변화 받아, 그 죄악되고 불합리한 세상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여러분, 혹시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계시는가?

도무지 해결 안 되는 가나안이 내 앞에 버티고 있으신가?

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내 계획, 내 소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나의 견고한 진을 파해야 한다.

 

그래서 변화된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은 복을 받고, 변화될 것이다.

 

▲그냥 나를 드리면 된다.

여러분, 라합의 삶을 보시고, 요셉의 삶을 보시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자기가 노력해서/계획해서.. 자기 예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을 복종시켰다. 드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이 저절로 되어졌다. 그냥 이루어졌다. 기적이었다.

심지어는 요셉을 대적하려는 자들도, 결국에는 도와주는 형국이 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나 자신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나머지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가 뭘 애써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원리가 그렇다.

내가 애써서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을 순종의 삶에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오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뒤돌아보니까 주님이 내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셨다’고 한다.

뒤돌아보니까 믿겠는데, 3년 전, 5년 전에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재는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믿지 못한다.

또 3년 후에, 나중에 뒤돌아보면서 그 때는 비로소 믿는다. ‘나를 인도하셨다고’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어리석다.

나중에, 미래에 믿을 것이라면, 오늘 현재도 반드시 그렇게 믿어야 한다.

‘주님이 오늘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고!’

 

여러분, 요셉이 애굽에 팔려갈 때, 우리 ‘이성’은 그가 빨리 풀려나야 한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우리 ‘이성’은 그가 속히 석방되어야 한다.

그런 우리 ‘이성’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을 보면.. 내 이성은 틀렸고, 하나님의 계획이 맞았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갈 때

‘오늘’ 하나님이 요셉을 떠나신 것 같지만, 아니었다.

‘오늘’(감옥에서) 하나님은 요셉을 떠나신 것 같지만, 아니다. 함께 하셨다. 창39:2, 23등

 

요셉의 삶이 그렇거니와, 여러분의 ‘오늘’도 이성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오늘,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라! 

 

http://blog.daum.net/rfcdrfcd/15976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