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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심령 렘42:21~22 스크랩
존 번연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무지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지혜를
비교 검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사숙고 하려고도 하지 않고
비교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결핍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리석음은 오히려 즐거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뜻합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26:11
그들에게 어리석음을 멀리 하도록 억지로 떠 밀면
그들은 어리석음과 결별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몹시 못마땅해 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음 이란 '구원에 얻는데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을 쏟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하여
모든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이 됨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어리석은 자요
가장 무감각한 어리석은 자요
자기 고집이 가장 쎈 어리석은 자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마음이 부서지지(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돌아서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분노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는 일을
많이 행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큰 열심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교만과 자긍심으로
사람들에게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자신이 실제보다 수 천 배나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마귀의 자식이며
자신들이 기독교적 신앙에 관한한
뭔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인물도 아니며
그런 대단한 인물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자, 교만과 자긍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생각이 나오겠습니까.
즉 실제로는 아직도 자신들의 죄가운데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져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상태는 내세를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다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더구나 이런 교만은
참으로 강력하고 높으며
그러면서도 그들의 마음 깊이 숨겨져 있으므로
이 지구상의 모든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철썩 같이 확신하고 있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교만이라고
아무리 납득시키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들은
이런 점에 유의하여
기만당하지 않게 하라고
자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밀려오는
모든 책망과 모든 비난과 모든 위협,
또는 모든 훈계를 경시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렘13:15
‘그리고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렘13:17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렘42:20~22에 보면, 모든 교만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집을 피웠으며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거룩한 선지자에게 지속적으로 반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렘42:21~2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2.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이렇게 교만한 사람들의 경우,
심령이 상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진정 회심하고 (회심)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상한 심령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 다음에도
자신은 거룩하고 의로운 것처럼 우쭐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
가난한 사람의 어린 양을 탈취한 죄를 범했을 뿐인 그 사람을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고
목에 힘을 주며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은 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굽히지 않았고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로
다윗이 사형을 내리라고 선고한 그 악한 부자가
바로 다윗 자신이라고 말할 때까지
다윗은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습니다. 삼하12:7
▲마음의 교만은 그 안에 힘을 가지고 있으며
철근과 쇠사슬에 비유됩니다.
교만에 의해서 사람들은 완고해지고
교만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완고함 속에
계속 머물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몰아냅니다.
시73: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레29: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교만은 바로 마귀가 지은 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죄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함(깨어짐)을 입기 전까지
그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이 상함을 받은 후에야
그 사람의 교만은 드디어 정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야 그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힘이나 인품을 자랑한다면
부러진 다리가 그를 쳐서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그를 겸손케 하실 것입니다.
마음이 상함을 받은 후에야
그 사람의 교만은 드디어 정복되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굴복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선함을 자랑한다면
상한 심령이 그를 쳐서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가 상한 심령이 되도록,
그에게 환란과 시련을 주실 것입니다. 주권적으로!
왜냐하면 상한 심령이란
하나님의 능력이 양심에 임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죄책을 느낌으로써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이 상하기 전에는
고집스럽고 꼴사나운 타락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매우 빈번하게
사람을 가리켜
‘반역자, 반항하는 자들, 불순종하는 자들’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10;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또한 완고한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완고한 말에 비유됩니다.
말은, 자기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위험한 전장터로 뛰어 들어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렘8:6
‘완고한 사람은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시12:4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완고한 사람들에 대해서
슥7: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이제 이렇게 완고한 피조물에게 약이 되는 것은
오직 폭력 뿐입니다.
완악한 아들은 반드시 돌로 쳐서 죽여야만 합니다.
탕자는 반드시 모든 것을 잃고 굶주려야만 합니다.
렘23: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밖에 다른 그 무엇이라고 해도
고집세고 완고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집 세고 완고한 마음은
상함을 입기 전 까지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로 복종하지 않습니다.
렘23:19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성경은 바로 이 사람들을 가리켜
‘마음이 완악한 자’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라고 무릅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상함을 입을 때까지
계속해서 완고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은 그 마음에 상함을 입음으로써
즉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징계를 받아서 깨어짐으로써
반드시 자기 자신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143: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이렇게 상함과 깨어짐을 통해서
회개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주제의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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