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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절

LNCK 2018. 12. 20. 17:55

www.youtube.com/watch?v=GAiNQRIUFHM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절            1:13~20                 펀 글 정리,    *성탄절 설교 모음

         

상향성 사회와 하향성의 첫 번째 성탄절

 

우리 인간들의 삶은 대체로 상향성(上向性)’의 충동에 따라 움직입니다.

좀 더 많은 급여, 좀 더 높은 지위, 좀 더 안락한 생활, 좀 더 많은 권력,

좀 더 풍요로운 인생...

 

그러다보니 작고 소박한 삶이라든지 겸손하고 청빈한 생활의 가치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기 어려워집니다.

상향성이라는 또 다른 우상숭배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지니고 계시는 속성은 철저하게도 하향성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을 통해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맨 밑바닥으로승리에서 섬김으로, 

부유함에서 가난함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움직이셨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활동의 정점에는 자신의 무력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

그 무력함 가운데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

즉 철저한 겸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 그냥 편하게 하나님으로 계시지 않고

때로 질퍽질퍽한 진흙탕 같고, 때로 악다구니가 끊이지 않는

전쟁터같이 소란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겸손 앞에 인간 측의 응답이 요구됩니다.

그 응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화(聖化)의 길이 될 것입니다.

 

성화의 길이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지극한 겸손에 호응하는 일,

하나님께로 발돋움하는 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것입니다.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나약한 우리 인간이지만

우리 각자의 그릇 내면을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가득 채우는 일 일 것입니다.

 

예수님 모친 마리아의 생애 역시 철저하게도 하향적이었습니다.

모친 마리아의 일생을 묵상하다보면 겸손의 덕이 어떤 것인지?

성화의 길이 어느 방향인지?

참 영성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절대로 우쭐한 법이 없었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란 하나님의 큰 사업에 가장 큰 협조자로서

뭔가 큰 보상을 기대할 만도 한데... 결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한평생 자신 앞에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진의를 찾아나갔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모친 마리아께서 인류에게 남겨주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흔쾌히 !’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의 가장 큰 업적은 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청했고,

그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고,

그 말씀을 매일의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이 되려면

 

성탄을 목전에 두고 다들 꿈꾸실 것입니다.

작년 성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성탄,

다른 해보다도 좀 더 의미 있는 성탄, 변화와 회개가 뒤따르는 성탄!

 

그러기 위해서 방법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겸손하게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과

더 겸손하셨던 모친 마리아를 따라 우리도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성육신의 신비 안에 깃든 철저한

자기낮춤의 교훈을 내 삶의 이정표로 삼는 것입니다.

 

인공적인 불빛으로 휘황찬란한 도심 한 가운데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감동을

맛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탄생하실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찬란한 별빛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동방박사들처럼 춥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부모 스가랴와 엘리사벳 역시

기적처럼 얻은 아이의 탄생을 보기까지 치러야 했던 대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가랴는 세상 떠날 날이 내일 모레인 자신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에 너무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믿지 않은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문을 막아버렸습니다.

 

노부부는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침묵과 기도 가운데

태어날 세례자 요한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구세주가 태어나실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각자 안에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우리 역시 스가랴처럼 어이없어 하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냐?’

껄껄 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시금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모시기 위한

멋진 성탄 트리나 장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탄 특순을 잘 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그분께서 탄생하시도록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우리 내면에 그분께서 머무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성탄의 핵심과 본질은 뒷전인 요란스런 행사장에

아기 예수님께서는 몇 백 년이 흘러도 탄생하지 않으십니다.

 

섬김과 나눔, 겸손과 환대, 용서와 화해와 같은

성탄의 근본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성탄 행사에

아기 예수님의 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소비향락주의 문화 속에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헤아리기란 어렵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 탄생 때부터 골고다 언덕 위의 죽음 순간까지 지속된

한 평생에 걸친 가난과 고통, 십자가의 길을 외면한 채

성육신의 신비를 파악하기란 요원할 것입니다.

 

또 다시 맞이하는 이번 성탄절,

지구촌 방방곡곡에 설치될 수많은 성탄트리와 마구간 장식 가운데서

가장 가난하게 탄생하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온 몸으로 우리에게 외치실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리며 힘겨워하는 내 자녀들아, 나를 보거라.

나는 너희들보다 훨씬 더 가난하단다.

너희들보다 훨씬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단다.

너희보다 훨씬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단다.

 

이렇게 너희를 향한 내 사랑이 극진하단다.

나는 너희 곁에서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