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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3 마가복음

LNCK 2018. 12. 27. 20:51
마가복음                                       영어 녹취록                      출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가복음을 시작하면서,

먼저 이전 시간에 마태복음에서 언급하였던 몇 가지 중점에 대해 복습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비디오를 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으니

먼저 간단하게 복습하겠습니다.

 

복음서는 특수한 문학 양식에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전기도, 역사서도 아닙니다. 사실상 이는 뉴스 공고입니다. news bulletin

 

어떤 사람들은 전체 성경을 정리하여 신문처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성경이 바로 거대한 신문이며, 그 내용도 모두 뉴스입니다.

세상을 바꾼 거대한 사건에 대한 뉴스입니다.

 

복음서는 사실 뉴스 보도입니다. *옛날에는 뉴스를 한 사람이 광장에서 공포했음

때문에 이는 뉴스를 보도하는 것과 같이 큰 소리로 읽혀져야 합니다.

 

▲4복음서가 발전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서는 총 4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4권으로 되어 있나요?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유명 인사가 세상을 떠날 때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데, 3단계로 그 관심이 발전합니다.


1) 첫 단계는, 유명 인사가 죽자마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행사를 즉시 급하게, 대강 기록합니다.

사망 당시 부고訃告에 보면, 그 사람의 '행사'가 간략히 나와 있습니다. *행사: 행동이나 일/ 마가복음

 

2) 그러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사람들은 그가 했던 말들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연설과 그의 서신을 모으게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의 행사에서 그의 어록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마태, 누가복음

 

3) 시간이 더 흘러서 마지막 단계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전기 같은 것을 쓰면서,

그 사람을 좀 더 탐구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그의 인품은 어떠했는가?

그의 기질은 어떠했는가? 그의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등을 살핍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 깊이 알고 싶어 합니다. *요한복음

 

흥미롭게도 사복음서는 정확히 이런 양식에 맞아 떨어집니다.

제일 처음으로 완성된 복음서는, 우리가 잠시 후에 공부할 마가복음입니다.

 

1) 이 책의 요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계속 행동하는 분으로 말합니다. 좀 있다 그 원인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2)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비교적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태는 예수님의 "설교"에 관심을 두고 있고

누가는 예수님의 "비유"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 두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모아두었습니다.

 

3) 제일 마지막에 나온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은 예수님, 그의 위격 person에 관하여 연구하고,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관해 연구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요한복음은 내부에서 예수님을 보고 기록하는데요.

반면에 마태, 마가, 누가는 외부에서 예수님을 쳐다보고 기록합니다.

,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말씀하신 것에 대해,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님 속으로(인격과 성품과 본질을) 파고듭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중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복음서는, 유명인사가 죽을 때 일어나는 관심의 자연적인 발전과정과 같습니다.

 

계속해서 좀 더 깊이 들어가겠는데요,

우리는 4개 방면으로 예수님을 더 깊이 연구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4가지 각기 다른 각도에서 글을 쓰게 됩니다.

때문에 사복음서의 네 저자들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4가지 면모를 보게 되는데,

그 네 모습이 모아져서 하나의 온전한 그림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보여주고

마가는 예수님이 인자이심을 보여주고

누가는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보여주고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줍니다.

 

위에 있는 이 4가지 예수님의 모습이 합쳐져서, 한 폭의 완전한 그림을 완성합니다.

이 네 가지 면모를 합쳐야만 놀라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250가지의 이름과 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이래로 이렇게 많은 이름과 칭호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이름 250개를 모두 종이에 쓰게 되면, 경건에 유익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30개 혹은 40개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총 250여 개나 됩니다.

 

   역사이래로 누구도 이렇게 많은 이름과 칭호를 가진 자가 없으므로

   예수님은 정말로 대단한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4복음서를 보기를 원합니다.

이때까지 우리는 모두 저자의 관점에서 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가 독자의 관점에서 보기 원합니다.

 

4복음서가 누구를 대상으로 쓰여졌습니까?

왜냐하면 그 대상은, 각 복음서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복음서를 쓴 저자의 각도나 시각 뿐만 아니라,

그 저자들은, 누가 자기의 복음서를 읽기를 원하였던가요?

 

이렇게 볼 때, 각 두 권씩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는데요.

두 권은, 믿는 신자를 대상으로 썼고, 그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고,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목적으로 썼습니다.

 

다른 두 권은, 비신자들을 상대로 썼습니다.

그래서 목표한 독자들이 모두 다릅니다. 그리하여 쓰여진 복음서의 내용도 현저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모든 구절의 정황은, 바로 그 책입니다.

    그 전체 책의 정황 속에서 각 구절이 쓰여졌기 때문인데요,

    *왜냐하면 성경의 매 구절은 그 구절의 앞뒤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권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그 책이 쓰여진 상황 속으로 되돌려 넣어야 합니다. *요절만 달랑 빼내지 말고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신자들을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마태는 어린 신자들, 새 신자들을 위해서 쓰여졌고요.

 

그래서 새로 회심한 신자가 읽기에 마태복음은 이상적인 책입니다.

이 책은, 그들이 지금 들어온 새로운 왕국에 대해, 진정한 통찰력을 줍니다.

그 마태복음은, 5편의 가르침(설교)로 되어있죠.

 

첫 편 설교는, 그 왕국의 생활양식입니다. *산상수훈

두 번째 설교는, 그 왕국의 전도의 사명입니다. *10장의 둘씩 파송시 설교

세 번째는, 그 왕국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13장의 천국비유

네 번째는, 그 왕국의 공동체에 관한 것입니다. *18, 교회에 관하여

다섯 번째는, 그 왕국의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24~25장 종말

 

이렇게 마태복음에는 새 회심자가 공부해야 할 5편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대상은, 오래 믿은 신자들입니다.

요한 자신이 그렇게 말했지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요한복음을 쓴 목적은, 이미 오랫동안 믿어온 성도들에게

신앙을 지속적으로 갖고서,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반면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분명히 비신자를 위해서 쓴 글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이 누구에게 복음을 권유하고 싶다면,

먼저 그분이 신자인지/비신자 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어떤 복음서를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한복음은 비신자가 읽기에는 제일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서는, 복음전도에 제일 많이 사용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하건대,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요3:16절을 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구절이 요한복음서에 있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은, *마가와 누가

신자가 아니라, 비신자를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때문에 이 두 복음서는, 예수님에 관해 흥미를 가지고 알기 원하는 친구들에게 소개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시며, 무슨 말을 하였고, 또 무슨 일을 하였는가를 통해

더 많이 예수님을 알게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지금 우리는 마가복음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는 오늘 나눌 주제입니다.       7:00~

 

마가복음의 저자는, 다른 사복음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흔적만 남겨서, 저자가 누구인지를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저자라고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독자들이 예수님에게 모든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를 바라며,

저자인 자기를 주목하지 말라는 뜻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독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했지, 자신들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는. 이것은 마가의 복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죠. 1:1

우리는 마가의 복음으로 알지만, 그는 그런 사실에 사람들이 주목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먼저 우리가 놀라는 것은, 그는 3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의 이름은, 여러분이 절대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가라는 이름은 들었는데요, 이는 라틴(로마)어 이름 마르쿠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는 비록 유대인이지만

아마 로마와 어떤 공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큰 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에서 뛰어났고, 적어도 한 명의 하녀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혹은 라틴과 아마 연관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라틴식 이름인, 마르쿠스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이름이 있었는데, ‘요하난입니다.

우리는 요한으로 알고 있지요.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나오지요. *행12:12. 25, 15:37

 

요하난의 의미는 야웨께서 은혜를 베푸셨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혹시 그는 화요일에 출생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화요일 출생한 아이에게는,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는,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시 구절인 모양입니다.

 

마가 요한을 살펴보았고, 이제 그의 세 번째 이름은,

여러분이 절대 맞추지 못할 터인데, <마가 요한 뭉툭손>입니다.

 

콜로보덱트로스(뭉툭손)’, 여러분이 의미를 짐작할 수도 있는데, 뭉툭손입니다.

그 의미는,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이 가련한 아기는,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타고 났습니다.

하지만 그 짧고 뭉툭한 손가락에서, 역사상 첫 복음서가 쓰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3가지 이름을 살펴보았고요.

-하나는 별명, 그리스 이름이며, *뭉툭손

-하나는 라틴어 이름이며 *마가, 마르쿠스

-하나는 히브리 이름입니다. *요하난, 요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도, 십자가에 3가지 언어로,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도 3가지 언어의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그가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십자가 위의 패에 3가지 언어로 쓰였는데,

마가가 썼습니다. *19:20, 더 연구 요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히브리 이름은 미리암입니다.

우리는 추정하기를, 마가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는데

그는 물 항아리를 메고 간 남자로 추정합니다. *여자가 보통 하는 일을 남자가. 눈에 확 띄는 싸인.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실 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를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가 잘 준비된 방을 보일 것이다.’ *14:13, 22:10

 

그래서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다락방은, 바로 마가의 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이 복음서의 저자는 마가일 것이라고 힌트를 얻습니다.

*14:15의 다락방을, 12:12절의 마가요한의 다락방과 동일시 함.

 

다른 하나의 힌트는, 우리의 시선을 겟세마네 동산으로 옮깁시다.

이곳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저녁에,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가운데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예사롭지 않는 한 에피소드를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잠이 들었고, 예수님은 밤이 깊도록 기도하실 때

성전 경비병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마가복음은 말하기를, 이 군인들이 당시 젊은 소년을 붙잡았는데

그는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는 그 홑이불을 군인의 손에 버리고, 벌거벗은 채로 그 밤에 도망칩니다. 14:52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아마 뭉툭 손 마가요한일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뒤따라 왔습니다. 하나의 이불을 걸치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좇아와서

감람나무 뒤에 숨어서, 모든 벌어지는 일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시 기도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마가는 그걸 들었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있었어요. 바로 거기에 있었어요.’

 

마가는 벗은 몸으로 집으로 뛰어서 돌아갔습니다.

자기 홑이불을 성전 경비병의 손에 남겨 두었습니다.

이 젊은 사람이,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마가입니다.

 

분명히 마가는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마가는 신약성경에 결코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약에 자주 언급되지만, 그러나 항상 2인자로,

항상 누구의 개인조력자로, 개인 비서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수많은 헌신적인 조연들이 필요합니다.

주연으로 나서는 자들은 많거든요. 조연은 부족합니다. 제 말을 이해하셨지요?

 

하나님의 나라에는, 충성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마가요한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는, 4명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의 조력자였습니다.

4명의 기독교 지도자 중 첫째로는, 그의 사촌 형인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와서, 훈련시키고, 할 일을 주었습니다.

 

바나바로부터, 마가는 무엇보다도 바울의 조력자로 연결되었습니다.

*바울은, 말년에는 마가를 인정합니다. ‘마가를 데려오라. 그는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4:11

 

몇 년이 지난 후 마가는, 로마에서 누가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텐데요.


마지막으로 마가는, 베드로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순교한 후에,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했고,

베드로는 마가를, 자기 통역자로 썼습니다.

마가가 라틴어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베드로는 라틴어(로마어)를 몰랐습니다.

 

당시 갈릴리의 어부들은 대다수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때문에 베드로는 당시 로마에 왔을 때,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저 파슨도 종종 통역을 필요로 하지요.

 

우리는 통역자들을, ‘끼어드는 자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들은 매우 장난이 심합니다.

*농담으로 interpretor 대신에 interrupter로 부름

 

통역자들은, 강사의 설교 시간을 절반이나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로마에 왔을 때, 마가를 자기 통역자로 사용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라틴어로 통역했습니다.

 

▲<첫 복음서>는 이렇게 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에 하루는, 로마교회의 교인들이 마가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가여,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주실 수 있는가요?’

 

마가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요?’

그들은 말하기를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의 설교를 영구히 보관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에 관한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해 주세요.

왜냐하면 베드로가, 앞으로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베드로는 정말 당국자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지금은 폭군 네로 황제 때니까요.”

 

때문에 그들은 말하기를 베드로의 설교를 문서로 기록해 주세요.

왜냐면 그는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던 사도들 중의 한 분이고,

우리는 그의 설교를, 문서로 남기기 원합니다.”

 

그래서 마가는 베드로를 찾아가, 그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일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마가복음?) 기록을 보면, 그는 기록하는 마가를 방해하지도 않고, 격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마가가 알아서 하도록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당신이 할 수 있으면 하세요. 나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런 일에 대해, 비슷한 감정이 드는데요.

   왜냐하면 오래 전 교회에서, 교인 한 사람이 찾아 와서

   ‘제가 파슨 목사님의 설교를 녹음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저도 베드로와 같이, 반응했습니다.

   ‘저는 찬성도 반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면 하십시오.’

 

그런데 이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지 못한 결과로 변화되어,

마가나 베드로도, 이 책이 이천 년이나 연구되어지고, 또한 전세계에서 읽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항상 놀랍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그 일의 결과와, 그 일이 발생할 시간을 전혀 깨닫지 못하더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영향력은 광범위하게, 멀리까지 미칩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마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한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겨주세요.

우리는 그걸 보관하기 원합니다.’

 

베드로는, ‘마가여, 당신이 좋다면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나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뭉툭손 (손가락이 짧고 포동포동한) 마가가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지금 여러분의 손안에 들려 있습니다.

 

이 복음서는 처음에 사람들에 의해 베드로의 복음서로 불렸는데,

왜냐하면 사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내용은, 먼저 메시지가 선포되었고

후에 그 메시지를 기록하였습니다. 때문에 내용들이 생동적입니다. *구어체입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들은 문법적으로 그렇게 정확하지 않는데

이는 왜냐하면 말한 것들을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학처럼 글로 먼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복음서는 소리내어 읽기에 적합 합니다.

복음은, 선포되어져야 하며,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복음은 아닙니다. *보통은 마음속으로 읽음

 

복음은, 큰 소리로 읽도록 (선포하도록) 의도된 것이며,

여러분이 실제로 그렇게 하시면, 매우 흥분될 것입니다.

 

제 기억에는 몇 년 전에 우리 부부가 런던의 한 극장에 갔는데, 아마 무지개 극장일 것입니다.

이것은 템스 강 하류에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 알렉 맥코윈의 혼자서 하는 쑈를 보러 갔는데요,

여러분 중에 일부는, 그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두 시간 반의 공연 동안에, 그가 한 일은, 무대에는 오직 그와 하나의 의자와 책상뿐 이었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관중들은 그의 마가복음 낭송을, 홀린듯이 들었습니다.

그게 그가 공연한 전부였습니다.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로 우리보다 두 줄 앞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듣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그 극장은 사람들로 매일 차고 넘쳤습니다.

 

후에는 런던의 서쪽 끝에 있는 큰 극장으로 옮겼고,

그는 단순히 마가복음만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런데 수 천 명의 관중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이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알렉 맥코윈은 말하기를 저의 조부는 경건한 분입니다.

자기가 어릴 때, 경건한 사람인 그의 조부는,

그로 하여금 카펫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부는 그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며 말하기를

어느 날 너는 수 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복음서를 낭독하게 될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크리스천인지 잘 모르지만, 하지만 그가 마가복음을 읽을 때

관중들은 그렇게 도취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전할 때,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베드로 할아버지를, 저는 액션 맨’(행동파)으로 부릅니다.

그의 성격은 경솔한데, 그건 마치 저 파슨과 비슷합니다.

 

저도 역시 구제역을 앓고 있는데, *foot and mouth disease, 발과 입이 병적으로 빠른 사람을 빗댄 말

매번 베드로가 입을 열 때마다, 잘못 말하고, 그것도 재삼재사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충동적인 기질로, 그만 오직 물위로 걷기를 원했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 위로 걷기를 원한 사람이었고,

요한이 저기 주님이 해변에 계신다고 말할 때, 급하게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이후에도, 베드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는 급히 고기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내내, 그가 숨도 안 쉬고 급하게 움직이는 흥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한 글자가 41차례나 나오는데, “즉시, 즉시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곧장이라고 나오지요.

 

그는 배를 탔고, 그 배는 곧장갈릴리 바다 반대편으로 건너갔는데,

8마일 거리를 아마 2초 만에 간 것처럼 기록합니다.

 

모든 일들이 즉시, 즉시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마음도 함께, 숨 쉴 틈도 없이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곧 베드로의 설교 스타일입니다. 마가는 충실하게 이것을 기록해 냈습니다.

때문에 마가복음은 4복음서 가운데 제일 선명하고 생생합니다.

읽기 시작하면 제일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킵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설교 했고, 마가가 신실하게 그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서는, 사복음서 중에, 가장 활동적이고 생생한 책입니다. *베드로의 성격이 드러나 있으니까.

마가복음을 큰 소리로 읽으면, 가장 흥분스럽습니다.


제 생각에, 베드로는 긴 설교에 흥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가복음에)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전체에, 오직 한편의 긴 설교만 있습니다. *4장 씨 뿌리는 비유?

틀림없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설교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기억하고 있었고, 마가가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중점은, 예수님의 설교에 있지 않고,

이 책엔 산상수훈도 없으며, 오직 액션(행적)만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읽으면, 흥분되고, 열정적이 되는 것은, 바로 베드로 때문이며,

이로써 우리는, 신약시대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의 여러 다른 기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강점보다 그의 약점을 강조합니다. 이 점이 흥미롭지요?

이 책에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갈지어다라는 구절을 보게 되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너는 베드로다.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리라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계속적으로 자기의 약점에 대해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간혹 주님을 실망시키지만, 그는 절대로 스스로 자기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약점뿐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 하는 사건은 기록하는데

그의 믿음이 다시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베드로가 회복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나 마가복음에는 오직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이야기만 기록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설교하고, 마가 요한이 기록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해,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마태/ 누가/ 요한복음보다 더 많은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치로 보면, 마가복음에는 18개의 기적이 나오고,

비유는 마가복음에 오직 4개만 기록 되어있습니다.

반면에 비유는, 마태복음에는 18, 누가복음은 19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베드로는 기적에 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집니다만

비유에 대해서는 흥미가 적습니다.

베드로의 관심은, 예수님의 행하심에 있지, 그의 말씀에 있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베드로의 무지와 또한 그의 얕은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해, 어디서 어떻게 등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그의 설교에서도, 그리고 그의 서신에서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요단강에서부터 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이 그들을 예수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지식은, 그때부터 시작되어, 주님의 부활까지입니다.

때문에 마가복음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볼 수 없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기 시작 한 때부터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성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전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마가복음이, 베드로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볼 것은, 마가는 이 복음서를 매우 뛰어나게 편집했고

잘 정돈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많은 자료를 수집한 후, 이들을 하나의 구조 framework 속에 넣었습니다.

마태와 누가도 이런 구조를 이어서 계속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 분에게 차트를 보여 주겠습니다.

처음에 보면,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제가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이 차트를 너무 크게 만들었군요. 펴기에도 불편합니다. 차트를 보십시다.


 

이 세 개의 큰 부분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차트에서 분홍색인데, 녹색이 군데 군데 아주 조금 섞여 있습니다. 보이시죠?

 

분홍색은 3개의 공관복음서에서 공통되는 부분입니다.

녹색 되는 부분은 오직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차트를 척 보시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자료를 사용했고,

그건 누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가의 자료를 사용했지요.

 

마태는, 마가복음을 조금씩 잘게 쪼개어, 마태복음에 군데군데 섞어버렸고,

누가는, 마가복음을 큰 덩어리로 가져와서 사용(인용)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나의 논쟁이 있는데,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주로 사용하고, 추가로 확장했는가,

-아니면 마가복음이 마태와 누가복음을 축소했는가.. 입니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토대로, 확장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또 다른 색으로, 파란색 부분이 있는데, 이는 마태복음의 특유한 내용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노란색은 누가복음만 소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주의 할 것은,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앞부분에도 있습니다.

 

미안 합니다. 파란 색이 마태가 아니라, 흰색이 마태복음의 고유한 내용들입니다.

파란색은 마태와 누가에 나오지만, 마가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입니다.

좀 복잡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의 내용은, 마태와 누가에 모두 나오는 핑크색 부분입니다.

마가는 예수님 이야기의 기본적인 윤곽을 언급했고,

마태와 누가는 이것을 채택했습니다.


   (또 다른 사진을 가리키며)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사진

   그 사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계속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제 마가복음의 구조에 대해 보기로 합시다.                                  24:10~

 

제가 될 수 있는 한 상징적인 방식(아래의 그림)으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추상적이지는 않습니다.

 

먼저 볼 것은, 마가복음에 포함된 3년간의 시간인데

이는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신 3년입니다.

 

3년을 보면, 마가복음은 아주 명확한 곡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처음 2년 반은, 계속 올라가고,

그 다음 6개월 동안은, 모든 상황이 하향선을 그리는데,

헐먼산이 마치 분수령과 같습니다.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요단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요단강은 지구에서 지표면이 가장 낮은 곳입니다.

여기는 요단강이고, 이곳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요단강에서 출발하여, 갈릴리로 옮겨갑니다.

그 후 항상 내내 오르막길을 갑니다. 지리적으로도 오르막길입니다. 

 

결국은 약속의 땅의 가장 높은 지점에 도착하는데, 그곳이 바로 헐먼산입니다.

헐먼산 자락에 작은 성읍이 있는데,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처음 2년 반의 이야기는, 이 시간(가이사랴 빌립보의 신앙고백)을 위해 길을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이 클라이막스(신앙고백)에 도달하는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지점에 이르자마자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십자가 지시러

 

(헐먼산 이후로는) 내내 내리막길인데, 실제로 지리적으로도 내려오십니다.

즉 가장 높은 곳에서 유다로 향합니다. 요단강 동편의 작은 지역 베뢰아를 지나서요. *9:52?

 

그래서 예수님의 행적은 북쪽의 헐먼산으로부터

요단 동편에 있는 베레아를 지나 유다로 가십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시지요.

 

여러분의 보기에는 어떤 부분이 중요하게 보이는가요?

예수님은 무엇을 기다리셨던가요?

 

모든 사건들이 이 위기(신앙고백)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습니다.

(신앙고백) , 갑자기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마지막 6개월과, 앞서 2년 반을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지막 한 주간이 바로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걸 보기 전에, 먼저 마가복음 가운데서 갈릴리 부분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기간은 2년 반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요단강으로부터 헐먼산까지입니다.

 

이 기간에서의 사역은, 3개 국면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세 국면이, 바로 마가복음의 주제입니다.

 

1) 첫 국면은, 예수님은 많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와서 병 고침을 받았고,

온 나라에서 예수님을 회자했습니다.

 

때문에 1장부터 3장까지는 예수님께서 모든 곳에서 환영을 받고 인기가 상승하며

예수님을 떠받들어 모셨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따랐고, 매우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2) 두 번째 국면은, 반대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제일 첫 번째 의견 충돌은, 안식일 문제입니다.

이 갈등은 점점 커졌으며, 얼마 후 예수님이 적대자들이 예수님의 친구들보다 많아집니다.

 

3) 그래서 3번째 국면이 시작되는데, 7~ 9장까지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12명에게 집중하십니다. 12명의 남자 제자들입니다.

 

몇 천 명으로부터.. 그러나 지금은 12명만을 데리고 시간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막1~9장에 2년 반의 행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10장은 그 후 6개월의 시간동안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리고 11~16장까지는, 마지막 한 주가 포함됩니다.

 

지금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이곳(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무슨 일이 벌어 진 것인가요?

뜻밖에 무슨 일로 예수님의 사역이 완전히 방향을 바꾼 것인가요?

잠시 다시 사진을 보십시다.

 

왼쪽 사진은, 헐먼산 아래에서 찍은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인데, 이곳은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이것은 (왼쪽 사진은) 요단강의 발원지입니다.

요단강의 폭은 약 10~13미터입니다.

요단강은, 헐먼산 자락에 있는 절벽에서 흘러 나옵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반석에서 나온 물'입니다.

 

요단강은 확실히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이는 (요단강 발원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사실 가능한 설명은, 요단강은, 헐먼 산꼭대기의 눈이 녹아서

그 산의 땅속 틈 속으로 스며들어갔다가,

산 자락(아랫부분)의 강 바닥 구멍에서 다시 스며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은 이 강의실 넓이만 합니다. *10~13미터 폭

그리고 산 자락에서 절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여러분이 상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묘한 자연 현상이, 당연히 미신과 사교숭배를 불러오게 됩니다.

 

수 백 년 동안 이곳은, 바로 이방종교 숭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물이 떨어지는 절벽 위쪽에는 (여러분이 사진이 잘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기 저기에

절벽 경사지를 움푹 들어가게 깎아서 동굴처럼 만든 곳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일부는, 이미 가서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움푹 들어간 동굴같은 곳에, 우상의 형상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두 개의 신상을 설명하기 원합니다.

-하나는 희랍의 판 Pan 신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은 파니아스 또는 바니아스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이사의 동상입니다.

이는 헤롯 왕의 아들 중 하나인 빌립이 세운 신상입니다.

헤롯이 죽은 후 빌립이 이 땅을 계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과, 로마 황제를 가져와서 이 지역을 명명합니다.

그래서 빌립은 이곳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 지역 이름이, 두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희랍 신 판의 동상이 있고,

그는 희랍의 신이지만,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희랍신이 그렇지요.

여기에 또 가이사의 동상이 있는데, 그는 사람이지만 신으로 불렸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12제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왜 예수님이 여기서그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지금 예수님 바로 뒤에는,

하나는 신이 사람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하나는 사람이 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질문하십니다.

그럼 나는 누구이고, 나의 위치(지위)는 어디에 있느냐?’

 

제자들은 대답하기를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선지자가 다시 태어 나셨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30대인데도, 당신의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당신은 과거에 아마 위대한 사람일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럼 나는 과거의 누구인가?’

제자들은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예수님은 이 질문 묻기를, 2년 반이나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답은 베드로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이 세상은 아니고 하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사셨습니다. 그렇지요?

당신은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한 첫 번째 남자입니다.

이 말을 한 여자가 누구인지를, 여러분이 알기를 원하는데

이 때로 부터 몇 주가 지난 후..  마르다입니다.

그는 요리가 뛰어 날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처음으로 이 말을 한 사입니다.

남자로서 처음은 베드로고요.

  

이제 비로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두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두 가지는, 예수님이 이전에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것은

이제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예수님은 바로 이 순간이 되기까지 교회라는 말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선포하셨고, 치료하셨고, 무리들을 먹이셨고, 폭풍을 잔잔케 하셨지만

'교회'는 결코 언급하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제야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때까지, 교회를 세우실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져야 합니다.

그때가 교회가 시작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름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인데요,

그의 본명은 시몬인데, 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시몬, 너는 갈대야. 하지만 내가 너를 반석이 되게 할 것이다.”

매우 감동적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고 말하자마자,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말하니

주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때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처음으로 언급하신 때입니다.

제자들은 2년 반 동안 함께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힌트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점이 공생애 사역의 분수령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때 베드로가 불쑥 끼어들어 말을 합니다.

그는 금방까지 예수님이 왕이요, 그리스도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또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십자가에 죽지 못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왕이 어떤 사람인가요? 예수님 당신은 왕입니다.

왕이신 분이신데, 내가 당신을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내 위에 교회를 세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곧바로 예수님은 엄격하게 베드로를 질책하십니다.

 

이 헐먼산 자락이 바로 예수님 공생애의 분수령입니다. *헐먼산은 지리적으로 분수령이죠 

당시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눈 덮인 곳까지 올라갑니다.

헐먼 산 정상은 일년 내내 눈이 덮여 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옷이 세상에서 세척제로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세척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당시에도 오늘날 같은 세척제가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빛이 그 옷 속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일 이후,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곧장 걸어 가셨습니다.

계속 남쪽으로 향하여 죽음까지 이릅니다. *헐먼산은 북단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의 구조입니다.

마태와 마가 모두 이 구조를 기초로 해서 기록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마가복음을 총괄해서 보기를 원합니다.        33:50~

 

마가복음의 중요성은 무엇인가요?

 

▲1. 첫째,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위격을 정확히 알려 줍니다.

여러분이 마가복음을 읽을 때 이 점을 주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선택하여 몇 절의 성경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구절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려 주지 않겠지만,

이 모든 구절은, 1~9장 사이에서 뽑은 것들입니다.


그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귀신들이 그가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이다.”

잠잠하라. 예수님은 엄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를 보내시며 강력히 말씀하기를 네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신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강력히 명하셨다.”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엄히 명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도 그 사실을 알기를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예수님은 그를 집으로 보내면서 말씀하기를,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분부하여 말하기를 본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마태, 누가, 요한복음에는 이런 것(자신을 알리지 말라)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처음 2년 반 동안,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이년 반이 지난 후 그는 제자들에게 비로소 내가 누구니,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여러분은, 주님이 어떻게 제자들을 준비시키셨는지 보십니까?

 

그는 제자들이 스스로 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주는 그리스도), 그들이 영매나 악령이나 다른 누구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누구신지를 직접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메시야적 비밀*예수님이 처음에는 자기 정체를 숨기신 것

마가복음의 특색 중 하나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님은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하셨으며,

사람들이나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말하는 것을 금하셨으며,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그들의 설익은 생각을 제약하셨습니다.

그들이 충분이 보고 들었다고 느끼실 때까지요.

 

   헐먼 산 자락의 이 순간을 대 신앙고백 the great confession’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이 전체의 주제를 전환 시킵니다.

 

▲2. 때문에 마가복음의 두 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역(십자가)입니다.

마가복음의 제일 현저한 특색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가복음은 마치 급행열차가 천천히 정지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마가복음은, 처음 2년 반 동안은 급속도로 몇 페이지에 할애해서 써 버립니다.

그 후 공생애 몇 달(여섯 달)은 몇 장에 좀 천천히 기록하고,

그 후 최후 일주일은 더 천천히(즉 자세히) 몇 장에 걸쳐 기록하고,

그 후 최후 하루는 더 천천히 (즉 자세히) 몇 장에 걸쳐 기록했습니다.

최후의 시간은 더 천천히요. *천천히.. 자세히 강조한다는 뜻

 

제일 마지막으로는 골고다에 와서 정지합니다.

첫 시작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그 후 천천히 감속하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보여주면서, 끝납니다.

십자가가 바로 목적지였던 것이지요.

 

이 책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하여 설명할 때, 인성과 신성의 양면을 강조합니다.

먼저 인성 방면을 보면, 예수님은 신성 모독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현대의 살만 루시디가 신성모독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 같지요.

이슬람의 율법이나 모세 율법에서, 신성모독죄는 모두 사형에 해당 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로 재판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 율법에, 그것은 중범죄로 사형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동의하는 증인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증인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판사(대제사장), 법을 어기는 한 가지 일을 하는데

그는 예수님에게 묻기를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가 누구인지를 나에게 말하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거론하니, 유대인인 예수님은 당연히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관(대제사장)네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주님은 말씀 하시기를 내가 그렇다

 

재판관은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여러분들도 들었도다. 여러분의 판결은 무엇이냐?’

70명이 이구동성으로 사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공식적으로 누구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법에는, 신성모독이 범죄로 인정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그들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죄목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앞에 끌고 가서, 신성모독죄가 아니라

국가 반역죄로 고소합니다.

마가는 상세하게 이 사건들을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다로는, 국가 반역죄가 성립되지 않으니까,

예수님이 내가 왕이다.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도 않았고, 나라에도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옭아 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신적인 divine 방면의 설명으로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바,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은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드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배신당하시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계획하셨고, 그래서 그 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시험하여 십자가에서 도망하라고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가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위격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생생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마가복음은, 불신자들이 읽기에 매우 적합한 복음서입니다.

      

▲3. 마가복음에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과 믿음입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두려움입니까, 혹은 믿음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지요?

예수님이 배위에 서있고, 제자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왜 우리를 돌보시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 없는 자여!’

 

마가복음 내내, 이 주제가 나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입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을 때,

마가는 솔직하게 기록하기를,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서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지 않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반복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희가 왜 두려워하느냐?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믿기만 하라!’

 

여기에서 우리는 정확히 예수님의 위격,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우리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나게 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항상 비신자들에게 마가복음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전혀 모른다면, 마가복음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

1. 즉 그리스도의 위격,

2. 그리스도가 하신 일,

3. 그리고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독특한 결말 문제                     41:10~


마가복음을 끝마치기 전에, 한 가지를 제가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

왜냐면 제가 언급하지 않으면, 많은 질문을 하실 것 같아서입니다.

 

그것은 마가복음의 독특한 결말입니다.

사실상 마가복음은, 문장 중간에서.. 다 끝내지 않고 끝납니다.

 

초기 마가복음의 사본에는, 168절의 중간 에서 끝납니다.

매우 이상하게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그렇게 마가복음이 끝나 버립니다.

 

영어번역은 조금 더 다듬어져 있는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워했다.” 혹은 그들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확실히 문장이 갑자기 중간에서 끊어지기 때문에

결말이 두렵다는 단어에 중점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영어성경에 문장을 완성해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주제가, ‘두려워 말고 믿음을 가지라이었는데,

마가복음이 두려웠다로 끝나면, 그건 문제가 야기되지요.

 

그럼 나머지 부분(16:9~20)은 어떻게 된 겁니까?

마가복음은 왜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았을까요?

 

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요?

오직 빈 무덤만 기록하고, 사람이 발견한 무덤은 비어 있었고,

하지만 부활 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복음서 가운데서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원래 사본이 16:8에서 끝난다고 볼 때

 

제 생각에는 적어도 3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고의로 미완성의 결말을 남겨서, 사람으로 상상하게 하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결말에 대한 설명으로는 매우 이상합니다.

 

그는 오직 기록하기를 여자들은 아무것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두려워서..’ 16:8

여러분이 생각해도 이러한 복음서의 결말은 이상할 것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마가복음이 결말을 맺지 못한 원인은,

마가복음을 쓸 때 갑자기 뭔가 끼어들어서 방해했다는 것이지요.

그 시점에 마가 체포되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마가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원고를 마무리 하지 못했다는 설입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결말은 모종의 원인으로 끝부분을 분실했기 때문에,

즉 끝 부분이 찢어져 없어졌거나, 원고가 훼손 되어서입니다.

 

베드로가 이 끝부분을 찢어서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서는 사실 베드로의 복음서로서,

예수님에 대해,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신 대상은 베드로였습니다.

 

비록 우리는 그 시간과 장소를 모르지만,

그래도 부활 후 제일 처음 제자(남자)로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기록은 없습니다.


파슨의 생각에는 베드로가 이것을 매우 귀하고 친밀하고 매우 개인적이어서 

공개적으로 나타내기를 원하기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찢어버렸다면

 

우리는 모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물어볼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이런 것을 꼭 물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략하게 설명드리는 겁니다.

 

▲비록 우리는 모르지만, 후세 사람 누군가가 결말(16:9~20)을 넣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 사본들에는, 16:8절 이후의 결말이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깁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길거나/짧은 결말의 문제일 뿐이지 *그게 그거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마가복음을 덧붙여서, 지금 우리는 완전한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경은 긴 결말인데, 9절에서 20절까지 더해진 것인데,

제자들의 두려움과 믿음을 동시에 균형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본 것을 믿지 않음도 확실히 기록하고 있지만요. 16:11, 13, 14


그러나 긴 결말(16:9~20)’, 놀라운 예수님의 말씀을 일부 언급하는데,(:15~:18)

사람들은 이 내용을 좋아하지 않아서, ‘긴 결말을 의심하고, 제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이곳에서 방언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유일하게 방언에 대해 말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또 귀신을 내쫓는 일, 병든 자를 고치는 일,

뱀을 잡고도 해를 받지 않는 일 이.. 모든 일은 바울이 멜리데에서 다 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부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은사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은, 이곳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꼭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16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믿고 세례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일부 사람들이 아마 좋아하지 않는 구절인데.

그래서 후에 이 문제로 쟁론하게 됩니다.

 

그런데 비록 이 긴 결말(16:9~20)’을 마가가 쓰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지만 적어도 초대교회의 어떤 사람이 썼을 것입니다.

 

이 '긴 결말, 예수님이 승천 전에 마지막 결말을 어떻게 맺으셨는지를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믿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초대교회 사람인 누군가가 썼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복음서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합니다.

즉 여기 마가복음 결말에서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생긴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16:12~13

그리고 마태복음의 대위임령 같은 것도 나옵니다. 16:15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빼내서

마가복음을 결말을 짜깁기로 완성한 것처럼 봅니다.

 

우리가 이후에 천국에 올라가면, 이 모든 것에 대해 물어보고,

뭐가 정확한지를 알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 파슨은, ‘긴 결말, 하나님의 말씀의 한 부분으로 믿습니다.

왜냐면 그 부분은,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부분을 베드로가 불러주고, 마가가 받아쓰지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

이것으로 마가복음 연구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