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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2 마태복음 P2 / 교정 및 자막 예정

LNCK 2018. 12. 27. 20:52

마태복음(2)                                                     이기디언 Gideon 초벌번역



전에 우리가 마태복음은 유대인들 위해 쓰여 졌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 사고 방식대로 자기의 논점을 밝히었고, 그가 예수님의 복음은 구약성경을 계승받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유대인을 보살피기 위해 마태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일부러 피하여 ‘천국’이라는 단어로 대신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태복음이 크리스찬들에 대한 의미를 나누겠는데, 마태복음은 주요로 신자들이 보아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복음서 중 두 부분은 죄인들 위해 기록했고, 다른 두 부분은 크리스찬들 위해 기록했는데, 이것이 사복음서의 기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여러분들이 응당 분별할 수 있을 것인데,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아니에요. 여러분이 틀리지 않도록 제가 대답해 드릴게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신자들을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고 죄인을 위해 기록하였는데, 비크리스찬들과 예수님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매우 합당합니다. 누가복음에는 멋진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탕자,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 등 익숙한 이야기들이지요. 그러므로 크게 말하자면 저는 비크리스찬들이 누가복음 읽는 것을 건의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읽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한심한 것은 많은 부흥사들이 요한복음 가지고 설교하기를 좋아하는데, 요한복음은 아주 깊고 비밀스러운 내용이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1장 앞 세 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뒤에 내용은 더욱 말할것도 없지요. 우리는 요한복음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마 상대방이 3장의 내용을 읽기를 바라겠지요. 거기에는 ‘사람은 반드시 중생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언급 되어 있으니입니다. 좋기는 그들이 계속 읽어야 하고, 요한복음3:16절에 와서 복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로 복음 전하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신자를 위해 기록되했고, 크리스찬들 위해 기록했습니다. 이미 주님을 믿은 사람들이 그 당시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은 외부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었고, 신자들 절반 이상이 ‘제자’라고 자칭했습니다.
제자는 마태복음에서의 중요한 단어입니다. 마태복음은 주님을 따르기를 결심하고, 예수님 닮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제자들을 위해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은 ‘교회’라는 단어를 유일하게 언급한 복음서인데, 여러분은 이 점을 주의하였습니까? 마가복음에는 언급하지 않았고, 누가, 요한도 이 점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마태복음은 ‘교회’라는 단어를 두 번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 언급한 ‘교회’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것이었습니다. 처음 언급한 곳은 16장인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30개월 북방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방향을 바꾸어서 남방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젠 내가 두 가지 사명을 완성하러 가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그가 사용하지 않으셨던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는데, 왜냐하면 마침내 반석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는 무리만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이어서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젠 십자가에 죽어도 될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2년반 동안 한 번도 ‘교회’와 ‘십자가’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가 누구인지 아시는 자들이 있으니 그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의 사명을 완성하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여운 베드로, 여러분이 그는 자주 말에 잘못을 저지르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거의 맞는 말을 해 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이번은 제대로 말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니 예수님 대답하시기를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이젠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듣고 너무 기뻤으며, 특히 자기가 반석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젠 십자가에 올라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방금 예수님을 왕이시라고 말해놓고 지금 와서 예수님을 조종하려 하는데, 참으로 너무 웃깁니다. 크리스찬들이 정말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도 자주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히 말하는 ‘교회’는 세속적 교회를 가리키는데, 바로 그리스도 교회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건축한 교회는 단 하나 뿐 입니다. 우리더러 건축하라 하지 않고 그 자신이 교회를 건축하여 감사하고, 교회는 예수님 자신이 건축하였습니다.
그가 18장에서 ‘교회’를 두 번째로 언급했는데, 여기서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씀한 것은 ‘만약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고, 만일 듣지 않거든 다른 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증거하되,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여기서 언급한 교회가 세속적 교회라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 비행기에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언급하는 ‘교회’는 협상할 곳을 찾을 수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에서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뜻은 없으며, 종파 교회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그 자신이 건축한 것이고, 지방 교회는 세속적 교회의 일부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의견이 있다면 지방 교회를 찾아가서 논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교회를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록 목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기록의 목적을 앞에 두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기록의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목적을 제일 마지막에 두었습니다. 요한복음이 바로 이런것인데, 나중에 우리 요한복음도 볼것입니다. 마태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에 예수님 승천하실 때 우리에게 하신 부탁과 그가 다시 오시기 전에 완성해야 할 큰 사명을 기록하였는데, 바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어떤 나라든 상관없이 어떤 종족이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분부한 말씀을 원래 그대로 제자들에게 가르치라는 분부였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제자 훈련 수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신약에서 초신자를 이끄는데 제일 합당한 책이며, 또 몸에 맞춘 것 같은 제자훈련 수첩이라고 말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 제자가 되게 훈련하는 전문적인 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그를 도와 무엇을 결정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는 우리더러 제자 훈련을 시키라고 하였으며, 모든 것을 결정함으로 시작하라고 하였습니다. 결정은 몇 분이지만 제자 훈련은 몇 년이 걸리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 훈련은 그들더러 땅에서 어떻게 하늘에서 같은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며, 마태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바로 우리더러 예수님 제자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인데, 이것은 그가 이 책을 신약성경 제일 처음에 놓여진 또 다른 원인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기초를 터득하는 제일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고, 금방 주님을 믿은 크리스찬이 읽기에 가장 합당한 복음서가 바로 마태복음입니다. 이렇게도 합당한 이유는 이 책의 주제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곳의 천국은 가까이 있는 천국이며, 손이 닿는 천국이고,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입니다. 죽기를 기다릴 필요없이 당신이 지금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려면 한 가지 특별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고, 천국 자녀의 모양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이스라엘 유대인, 그리고 크리스찬과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였는데, 왜냐하면 이 또한 성경 전체의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는 바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 뜻이 이 지구에서 운행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뜻은 유대인과 크리스찬이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대하리라고 믿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크리스찬들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믿는 것인데, 그러나 이 주님의 뜻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게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강의했는데, 제가 한가지 사건을 여러분에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과 크리스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에 도대체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우리 함께 무슨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보겠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말하자면 천국은 미래이며,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내세’라 합니다. 모든 유대인은 지금도 아름다운 ‘내세’가 속히 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내세에 임하실 것이라고 하며, 메시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어느 9월 혹은 10월에 오실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매년 9-10월이면 그들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메시야 강림을 경축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초막절을 지킵니다. 그들은 이 왕이 이 세상에 천국을 가지고 오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사탄이 통치하고 있으며, 마귀는 이 세계의 왕이고, 그는 이 세계의 통치자이며, 이 세계의 신입니다. 이 직함은 예수님과 바울이 그에게 주었는데, 유대인으로 말하자면 아주 익숙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탄이 통치한 악한 세대에서 살고 있는데, 하지만 어느날엔가 바로 9월 혹은10월 초막절 때 메시야가 강림하면, 그가 새로운 세대를 가져 올 것이고, 하나님 나라도 임할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기대는 바로 메시야가 강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찬이 미래에 대한 기대는 메시야가 이미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가 다시 또 오시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이를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비밀’은 바로 메시야가 한 번 아니고 두 번 강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한 번 오셨고, 그러니 미래의 세대는 이미 임한것입니다. 도표에는 점선으로 표시했는데, 여러분 보셨습니까? 미래의 세대는 벌써 이미 임하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은 지금 이 순간, 사악한 세대에 이미 확실하게 임하였으며, 천국은 이 세상을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기대는 천국이 임하면 이 세계는 끝이라는 것이며, 메시야는 한 번만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야는 두 번 오시는데, 천국과 세계가 겹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에서 천국과 세계가 공존하는 도리를 명확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당하고, 끊이없이 좌절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천국과 세계가 공존하는 세대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우리의 임무는 이 세상 사람들을 끌어내어 천국으로 들여보내는 것인데,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 원인은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너무 잘한다고 생각하여 직접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유대인에게 ‘자신을 깨끗게 해야 하고, 더러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며, 자기의 죄를 깨끗게 씻고, 천국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메시야가 정말로 한 번만 강림한다면, 이 사악한 세대는 끝났고, 이 세계의 죄인들 모두 죽었습니다. 누가 살아 남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는 처음에 반드시 오셔야 했으며, 사람들에게 천국 맞이할 준비를 하게 도와 주었으며, ‘자기 죄를 깨끗게 씻고, 자신을 준비시켜 그 때가 되면 만족하고, 천국은 완전하게 임하게 되느니라’는 것입니다.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 가서 하나님 왕권 아래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은 천국과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마다 자신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고, 나는 하나님의 선민이고, 나는 반드시 천국 들어갈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달려와 말하기를 ‘천국 잔치에 앉은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네가 잔치에 참석하리라고 확신하냐?’라고 반문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을 불러 내어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대’는 사실상 이미 임하였고, 우리는 미래에 속한 사람들이며,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아직 임하지 않았고, 아직은 사악한 세대가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나라와 그리스도 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있는데, 사태가 아주 긴장합니다. 하지만 수천만명 사람들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고, 매 분마다 45명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매 주마다 2000개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사람들은 변하고 있고, 그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빼내어 와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더러 그리스도 나라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해야 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 나라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목적은 현재 어떻게 천국 삶을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마태는 예수님 생애의 가르침을 다 섯개 주제로 묶었는데, 즉 다 섯번의 설교로 가르친 것입니다. 이 다 섯번의 설교 가르침 중에 가장 유명한 설교는 바로 산상수훈인데, 하지만 다 섯번 가르침 모두 똑같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제 그 중의 것을 보겠는데, 제가 이 다 섯번의 설교 가르침 모두에 이름을 붙혀 보았습니다. 이 다 섯번의 설교 가르침 중 하나만 산에서 하신 설교이고, 나머지 모두는 다른 곳에서 하신 것입니다. 이 다 섯번의 설교 가르침 내용 모두는 어떻게 천국 백성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라이면 왕이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하며, 좋은 왕과 좋은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다섯 개 주제입니다.
첫 번째는 산상수훈인데, 천국 삶의 방식을 논하는데, 바로 어떻게 천국 삶을 살 수 있느냐입니다. 산상수훈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삶의 방식은 크리스찬으로서도 아주 힘든 삶인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 말할 것 없고, 이것은 크리스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을 말씀한 것이었고, 새로 지음 받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조금 후에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설교는 제5-7장까지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다른 시간, 지점에서 가르치신 것을 합하였는데, 주님의 뜻은 ‘천국의 사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찬에게는 한 가지 사명이 있는데, 바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사람도 데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설교 가르침은 9-10장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다른 시기와 지점에서 가르침을 합하여서 주님의 뜻은 ‘천국의 사명’라고 하였지요. 그리스도인에게 한 가지 사명 있다면 바로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도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빨리 시작할수록 쉬운것이고, 늦게 시작할수록 힘든 것입니다. 방금 주를 믿은 사람이 복음 전하기에 가장 합당합니다. 그들이 일단 어떻게 천국 같은 삶을 사는 것을 배우게 되면 다른 사람더러 주님을 믿게 인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9-10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복음 전하는 것이 매우 간단한데, 두 사람 한 팀이 되어하여 나가기만 하면 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고, 그리고 그들에게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알려주는데, 바로 이렇습니다. 사람들더러 보게 하고, 그리고 듣게 하고, 기적을 행하고, 다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렇게 간단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들더러 먼저 복을 듣게 하고, 다음 기적을 보게 하는데, 사실 먼저 보게 하고 다시 듣게 하는 것이 비교적 좋습니다. 저는 야곱과 요한이 첫 번째 성 거리에서 귀신이 들린 사람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상상이 됩니다. 갑자기 시장거리에서 미친 사람을 그들이 보았고, 야곱이 말하기를 ‘요한, 내가 앞에 식당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거기 가서 밥부터 먹자. 만약 내일 아침에 그가 계속 여기에 있다면, 우리 가서 도와주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말하기를 ‘아니야 야곱, 넌 겁쟁이야. 첫 번째는 네가 먼저 하고 다음 두 번째는 내가 한다. 네가 그에게 봉사할 때 내가 거리 모퉁이에서 너를 위해 기도할게’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그들이 왜서 나갔는지 알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올 때 모두 흥분에 겨워 있었기 때문이었고. 마귀도 그들의 말대로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아주 대단해, 하지만 이로 능력 때문에 흥분하지 말고, 너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아주 흥분되어 말하기를 ‘내가 방금 사탄이 번개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사용한 동사가 ‘내가 방금 보았느니라’를 주의해 보세요. 너희들이 방금 두 사람 한팀으로 나갔을 때 내가 사탄의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기뻐서 외치기를 ‘아버지, 당신이 총명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고, 이 젊은 무리를 사용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공하리라고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이름과 성령의 능력이라면 평범한 사람도 사탄을 좇아낼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의 하신다면 ‘할렐루야’라고 말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9-10장을 읽으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 전해야 되고, 어떻게 반대 세력들을 대하고, 어떻게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번째 설교 가르침은 13장인데, 여기서 우리의 소망을 논하였습니다. 의지가 매우 중요한데, 의지는 전쟁 중에서 당신이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게 하는 요소를 결정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많은 천국의 비유를 논했는데, 우선 먼저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개의 씨 중에서 3개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1개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뿌린 씨가 딱딱한 땅이나 혹은 잡초속에 뿌려졌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수확 때에 우리는 가치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어서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성장하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가라지 뽑으려고 하지 말라. 이는 네 사역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찬들이 어떤 때는 가라지 뽑으려고 하는 일을 곡식 심는 일보다 더욱 열중하려고 합니다. 제가 한 말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가라지 뽑는데 열중하지 맙시다. 가라지는 그래도 계속 자라날 것이고, 사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곁에서 같이 자라날 것이며, 두 개가 같이 자랍니다. 하지만 걱정 하지 마십시오. 거둘 때 자연히 분별 될 것이며,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커도 걱정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도 갈수록 커져 가고, 두 개가 같이 성장하며, 그는 우리더러 소망에 충만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겨자씨 비유를 들었는데, 겨자씨 자체가 아주 작아서 약 50개 정도의 겨자씨를 손에 놓아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이렇게 작은 것이 나중에 커서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하였는데, 확실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11명의 제자 뿐이었는데, 지금은 15억명 정도의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유일하게 죽음으로 고객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체입니다. 그렇지요? 그는 작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커져 갔으며, 한 알의 작은 겨자씨로부터 자라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갔습니다. 이 모든 비유는 13장에 있는데, 기가 꺽이고 실망될 때 13장을 읽으십시오. 천국의 성장인데, 천국은 마치 상인이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어떤것보다 크고 아름다운것을 발견하면 그 진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내게 필요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대해 있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혹시 이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데, 하지만 가장 존귀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여 바꿀 수 있는 가치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악행을 행하는 크리스찬을 위해 마음에 불평을 가지지 말라 왜냐하면 천국은 마치 바다에 그물을 던져 각종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모는 것과 같으니라. 그물이 차기까지 기다렸다가 그물을 끌어 올리면 어부가 알아서 고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목사님들이 이 비유로 강의 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백 명의 좋은 성도를 요구할지언정 천명의 나쁜 성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물에 물고기를 가득히 채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목사님은 그 잃어버린 어린양 한 마리 찾기를 좋아합니다. 목사님은 전도자와 같지 않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전도자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목사님은 낚시대로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천국에 관한 네 번째 설교는 천국의 사회인데, 여기에서 교회를 언급했고,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타락한 크리스찬을 찾으라고 권면했고, 또 나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대하라는 것도 언급하였는데, 바로 교회에게 알리고, 교회더러 덮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규범이고, 이 모든 것 또한 초신자들이 알도록 가르쳐야 하고, 이 모든 것 또한 방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의 주제입니다.
마지막으로 24-25장인데, 주님의 뜻은 천국의 미래와 왕이 다시 오시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죽기 얼마 전에 그가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어느 때에 다시 오시고, 다시 오실 때 어떠한 징조들이 있을 것이고, 그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확한 네 가지 징조를 알려주었습니다. 저 지금 알려주지 않고, 답안은 다음 프로에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네 개의 명확한 징조를 알려주었는데, 그들더러 무엇을 기다려야 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면서 마지막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보고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간단명료한 비유 몇 개를 들었는데, 12제자에게만 말씀하였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준비하여 왕이 다시 오시는 것을 맞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바로 비유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라는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자신을 준비하여 주님의 오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 시험은 만약 그가 다음주 화요일에 온다면 쉬울 것인데, 만약 그가 천 년 후에 오신다면 참말로 어려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가 오시기 몇 일 전에 당신이 무엇을 하였는가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가 떠났을 이 동안에 당신이 무엇을 하였는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충성하였는가? 혹시 은사를 사용하여 자기의 빛을 발휘하지는 않았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의 관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의를 행하자고 하는데,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가 어느 때 다시 오던, 바로 지금 의의 길로 가야 합니다.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살아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세의 율법을 들었느니라. 하지만 나의 율법은 조금 다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율법에는 사람더러 죽으라고 하는 말이 살인한 것이고, 사람에게 바보라고 욕하는 것이 살인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엄격하지 않습니까? 모세 율법에는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성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지만 예수님의 율법에는 눈으로 보고, 음욕을 품어도 안되고, 재혼하려고 이혼해도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매우 어렵지요? 그 중 제일 어려운 점은 예수님이 우리더러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찬들이 염려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매번 제가 이렇게 말할 때 여러분은 왜서 웃으십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웃으라고 하신 말씀 아닌데, 우리가 웃는 것은 듣기에 너무 풍자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웃어서 제가 당신을 깔보는 것은 아니고 저 자신도 웃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염려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동식물에 관심있고, 자기 자녀한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들의 백합화를 지키고, 공중의 새를 먹여 주는데, 하지만 저는 그냥 그분의 자녀이고, 염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보십시오.
제가 댈러스 섬에서 산책할 때 어떤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가 제가 한 말을 듣고 묻기를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자 또 프리메이슨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제가 한 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저한테 2분이라는 시간을 줄테니 5분 내에 증명할 수 있으면 자신이 탄복하겠는 것입니다. 제가 좋다고 하였어요. 그래서 제가 시계를 앞에 놓고 시간을 정해 놓았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천국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가 사람더러 죽으라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프리메이슨에 가입하면 먼저 피로 약속을 세워야 하고,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죽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맹세가 진정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말하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가입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에게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라. 마음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솔직히 말하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아요. 2분 되었네요. 그가 그 말들을 듣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 내용은 확실히 매우 실용적입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보복 같은 것 등을 논하였습니다. 비록 하기가 어렵지만 이것은 천국의 삶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데리고 마태복음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에 대해 가르쳤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천국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떻게 천국 같을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천국을 전해야 하며, 어떻게 천국에서 성장하고, 어떻게 준비를 잘해야 하며, 천국의 사회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고, 즉 교회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다시 오시는 것에 영접하는 준비인데, 지금 이 순간보터 천국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특별한 주제들이 있는데, 여러분이 먼저 제가 여기에 무엇을 기록하였지를 보겠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서 44번이나 언급한 중점인데, 우리는 천국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하고, 만왕의 왕 즉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마태복음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다른 복음서보다 많습니다. 마가, 누가가 많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태는 자주 언급하였으며, 44번이나 언급하였습니다. 제가 세어 보았는데, 마가는 4번, 누가 마가보다 조금 많은데 17번이고, 마태는 44번이나 언급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분이 천국 백성 뿐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백성이자 또한 그의 아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 점은 나중에 갈라디아서 나눌 때 더욱 깊이 나누겠습니다. 율법주의는 크리스찬 생명에서의 큰 적입니다. 율법에 일단 빠지면, 이 백성의 신분만 기억하여 매우 중요한 일을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계속하여 마태복음의 마지막 중요한 점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주제가 있는데, 이 세 가지 주제는 천국 제자 훈련의 기초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른 후 어떻게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주제가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바로 믿음입니다. 천국의 백성, 하나님 아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끊임없는 믿음을 지속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먼저 믿음에 대해 논하지 않고, 나중에 요한복음 강의 할 때 더욱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나를 믿느냐?’라고 묻습니다. 내가 한 말을 믿느냐? 내가 이 일을 할 줄 믿는냐? 네가 믿느냐?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첫번째 갖추어야 할 요소인데, 바로 예수님을 확고히 믿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두 번째 주제인데,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바로 ‘의’라는 주제입니다. ‘의’는 행위와 믿음의 배합이 필요한 것인데, 먼저 믿고, 그리고 반드시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아주 짧은 비유가 있는데, 저는 누구가 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번은 그가 아들들더러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들은 입으로 하겠노라 하면서 하지 않았고, 다른 아들은 입으로는 거절하였지만 나중에 갔습니다. 어느 아들이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사실 이 비유는 제일 짧고 제일 간단한 비유인데, 하지만 사람들이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행동을 말하는데, 아주 좋은 비유입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네가 무슨 말을 했는가가 아니고 네가 무엇을 했는가입니다. 한 사람의 고백은 거짓이 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거짓말을 밖에서 하는 것보다 더욱 많이 하고, 보통 시가를 통하여 하는데, 어떤 복음성가 후렴 가사 내용을 자세히 보면, 사실 제가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부르면 자신을 속이는 격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부르는 가사 내용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실제 행위에 관심있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그의 제자라고 믿었으면, 우리는 ‘의’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왜서 세례 받았는가를 알려줍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은 세례 받을 필요없다고 하면 그 분은 예수님이실 것입니다. 그는 죄가 없어서 하나님이 정결케 할 필요가 없는데, 그는 오히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제가 응당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저는 세례 요한이 세례를 받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말을 침례교 성도들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어쨌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제가 당신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야, 네가 나를 위하여 세례를 베풀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본본기였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막론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그가 세례 받음은 회개를 대표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대표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더러 하라고 하니 그가 하신 것입니다. 그는 쟁론하지 않았고, ‘아버지여 저는 세례 받을 필요가 없지요’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또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의를 가장 잘 준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매주 금식을 두 번했고, 십일조도 똑바로 지켰습니다. 그들은 바다든 육지든 다니면서 사람들 교회로 인도하는데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헌금을 합니다. 예수님이 너희들은 이렇게 하는 저들보다 더욱 잘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그들보다 하나님 의도 더욱 잘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으며, 구원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반드시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태복음의 뜻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마태복음을 읽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크리스찬이라면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찬이라면 물론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지만 먼저 크리스찬이 되어야 합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더러 마태복음을 읽으라고 하지 마세요. 믿지 않는 사람이 마태복음을 읽으면 자기더러 선한 사람이 되어라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하지만 선한 행위가 있다고 해서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고, 죄사함 받고 난 후 의로운 행위로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에 관한 세 번째인데, 바로 마지막 주제입니다. 심판을 말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에서 나눈 심판은 다른 세 개의 복음서보다 많이 언급되어 있고, 이것은 이미 주님을 믿은 성도들더러 보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제가 방금 또 책 한권을 완성했는데, 금요일에 출판했습니다. 이 책이 이미 적지 않는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지옥에 관한 책인데, 저는 이 책이 적지 않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리라고 믿으며, 저는 가능한한 성경에 충성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예 믿지 않는데, 여러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예수님이 믿었던 것인데, 저는 예수님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책에 언급한 것은 확실히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습니다. 지옥에 관한 절반 이상의 가르침이 바울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요한으로 부터 온 것도 아니고 예수님으로부터 왔으며, 구약에서는 더욱이 지옥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고, 모두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매번 사람들이 저한테 자바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누구보다 더욱 잘 알고 계신데, 하지만 그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저는 예수님이 거짓말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는데, 우리가 지옥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님 입에서 나온 것 외, 대부분은 마태복음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 기록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문장 전후의 경고를 자시히 읽으면 이 모든 경고는 다만 두 개의 경고 외에 모두 중생하여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쓰여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할 것입니다. 제가 지옥에 관한 책을 적지 않게 읽고 탐구했는데, 이 책들 모두가 년대가 오래된 것들인데, 왜냐하면 근대에 와서 이런 유형의 책을 쓰는 사람들이 매우 적으며, 이 일에 주의해 보는 사람들 또한 매우 적습니다. 모두가 지옥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주는데, 이는 매우 나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되고, 나만 괜찮으면 되고, 나는 천당에 갈테니 너는 지옥이나 가라고 하는데, 모두가 지옥에 가는 것은 두려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경고했으며, 그는 두 번이나 바리새인에게 경고하였는데, 하지만 죄인에게는 한 번도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요. 하지만 나머지 경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경고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하신 말씀인데, 여러분이 이 몇 마디 말씀이 낯설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것일까요? 죄인? 아닙니다. 바리새인? 그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마침 그들을 내보내어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였는데, 바로 마태복음 10장에 있으며, 그것은 선교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죄인에게 가서 그들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알려주라고 하지 않았고, 제자들에게 지옥에 떨어지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어떠한 일이든 무서워 하지 말고, 다만 전능하신 하나님만 경외하고, 다른 어떤 것도 무엇이든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하니 자연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신약성경 전체에서 마태복음에만 지옥에 관해 언급하였다면 크리스찬들은 하나님의 쓰레기 통에 던지워 질까 응당 겁에 질려 꼼짝 못했을 것입니다. 흰놈 골짜기가 바로 인간 지옥이었고, 거기는 예루살렘 근교 산곡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쓰레기는 거기에 던지워 불에 태워 버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아주 엄격한 하나의 복음서입니다. 이 책은 제자들에게 진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길을 확실히 준행하라고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로 가르치기에 좋으며, 또 읽고 배우기에 좋은 복음서입니다.
여러분, 마태가 왜서 이 모든 가르침과 다 섯편의 설교를 마가복음 구조에 넣었는 알고 싶습니까? 그가 왜서 이 모든 것을 차라리 제자 훈련 수첩으로 기록하여 단도직업적으로 제자에게 가르치지 않았는지를 알고 싶습니까? 모든 믿는 사람마다 이 제자 훈련 수첩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익숙하게 읽으라고 하면 될거 잖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왜서인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언론과 행위를 분리하면 안되고, 또한 십자가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었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그들 위해 죽은 것을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 크리스찬 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한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것 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만 알고 있으면, 우리는 교만하여 바리새인이 되고,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선행만 행하는 크리스찬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감사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참 총명한데, 그는 제자 훈련 가르침을 복음의 구조 위에 세우셨습니다. 제자를 훈련시켜 파송한 예수님은 바로 병을 고치셨고, 사람을 살리셨고,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결론인데, ‘가라’, ‘볼찌어다’라고 했는데, 하지만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기’만 원하고 ‘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는 조건이 있으며, 가서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를 삼을 때 그분이 우리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가 저한테 저는 하나님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저는 그더러 사람에게 전도하여 주님을 믿게 하면 하나님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당장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약속은 단지 가라는 것이며, ‘볼찌어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항상 있을지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