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Unlocking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1 / David Pawson

LNCK 2020. 1. 15. 19:06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1 / 데이빗 파슨 Unlocking the Bible - YouTube

Unlocking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1                  출처

David Pawson                                                 

 

이제 우리는 바울의 생애에서 그가 쓴 마지막 서신에 이르렀습니다

짧은 세 서신서를 묶어서 <목회서신 pastoral epistles> 이라 부르는데요

 

조금 후에 여러분에게 이 호칭 pastoral epistles은 정말 터무니없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이 짧은 세 권의 서신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여러가지 면에서 매우 다릅니다

이 세 편지는 (다른 서신과 달리) 개인에게 보낸 것이고, 내용, 문체, 단어 등 여러 방면에서도

모두 매우 (다른 바울서신과)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 세 권의 서신은 매우 비슷합니다

동일한 시기에 같은 사람이 쓴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경 학자들이 이 서신은 바울이 기록한 것인지 의심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 주석에서도 모두 이 세 서신서를 두고 논쟁하는데요

많은 사람들도 이 서신은 바울이 쓴 것이 아니기를 바랄까봐 저는 염려스럽습니다

그런 그들은 숨은 동기가 있는데요

 

그 주된 한가지 동기는 페미니즘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몇 권의 서신에서 여인에 대한 가르침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강렬한 반대를 당했는데

여성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고, 여성들에 대한 이 가르침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딤전2: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페미니스트들은 이 서신에 대해 강한 비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서신이 사도나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한다면,

이 서신서들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가 성립됩니다

 

바울이 이 몇 권의 서신에서 말하기를

여자들은 남녀 회중이 있는 교회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물론 오늘날 인권주의자들의 생각을 크게 위반한 것이지요

 

심지어 (일부) 교회에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서신은 사도가 쓴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바죠

 

자 먼저 이 서신서들의 다른 점을 설명하겠습니다

이 서신서들의 기록연대가 다른 서신들보다 늦는데요

이 책이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가지 이유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선교) 여정과 맞지 않다고 합니다

 

맞아요 안 맞습니다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그레데를 언급하는데,

사도행전에는 그가 그레데에서 머물렀다고 언급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들(반대자)은 바울의 선교여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아주 명백한데, 목회서신은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석방된 후 기간에 쓰여진 것입니다

(*소위4차선교여행)

 

사도행전은 바울이 첫번째 재판을 받기 직전에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서에서, 그가 석방될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5

 

그는 기꺼이 처형되기를 바랬지만,

동시에 그는 '내가 기대하기를 이 재판이 잘 끝나서 내가 풀려나서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1:25~26

 

이렇게 된 것은 의사 누가가 (법정에 제출한) 상세한 기록의 공로였습니다

*아마 사도행전

 

이제 다시 (4) 여행을 시작했는데 그레데와 다른 지역으로 갔죠

이 후에 바울은 알렉산더에게 배신 당하여 다시 체포됩니다 이때 그는 알았습니다

이번엔 자신이 풀려나지 못할 것을!

 

그래서 사도행전이 거기에서 멈추었습니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동행했는데요

누가가 바울 이야기를 (사도행전) 이후로 계속 썼으면 좋았을텐데요

 

하지만 바울이 누가에게 말하기를 '더는 쓰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석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이번에는 내가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누가야 그래서 나를 구하려고 하자 마라, 네가 계속 쓰면 하나님의 뜻에 항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3차여행까지만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울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사도행전)은 바울 처음 재판의 변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석방되었다가 나중에 두 번째 체포되었는데

이번은 가택연금이 아니라 사형수들의 감옥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이 세 권을 쓴 것입니다 *딤전후, 디도서

 

그래서 이것은 다른 서신들과 아주 다르죠

그는 더 나이가 늙고, 죽음을 앞둔 시점이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은 사람의 생각과 말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서신의 스타일과 내용은 (다른 서신들과)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그레데가) 바울의 여정에 없다'는 반박은 충분히 설명되어집니다

 

그는 석방 후에 계속 전도여행을 했고 이때 그레데(오늘날 크레타)를 방문했고

거기에 디도를 남겨두었습니다 *1:5

 

그리고 에베소에 돌아와 디모데를 거기 남겨두었고.. 모든 게 (성경 기록과) 맞는 것입니다 *딤전1:3

그래서 우리는... 저는 이 세 권이 바울의 저작이라고 봅니다

 

이때 바울은 늙었고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교회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교회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지금 나이가 많은데)

개인이나 교회가 나이가 많으면 죽을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것은 교회가 죽는 것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면 교회가 오래 되면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데요

다음 세대에게 똑같은 믿음의 열정을 물려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겨우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명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제가 앞서 '목회서신 Pastoral Epistles' 이란 호칭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요

이 호칭은 1703년부터 부르기 시작했는데 누가 이렇게 불렀는지

정말로 매우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세 권을 목회서신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도 목회적 가르침이 있습니다

 

바울이 쓴 모든 서신서에는 목회적 필요와 목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 권을 목회서신이라 부르는 것의 위험은 사람들이

이 서신서들을 목회자들을 위한 간단한 교본(수첩)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교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장로와 교회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목회자들을 위한 매뉴얼 정도로 여기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어떻게 장로들을 뽑을 건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투표로 할 건지, 어떻게 할 것인지 안 나옵니다

또 교회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서신서들을 목회자들을 위한 핸드북으로 취급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 목적으로 바울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적'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러면 이 서신들이 교회 내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사실 이 서신들을 쓴 바울의 초점은 외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에 있습니다

이 서신들의 주 목적은 세상을 복음화 하기 위해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지면(책임을 다하면)

세상이 구원 받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은 항상 세상(복음화)에 있었고, 교회는 세상 복음화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서신들을 '목회서신'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어쨌든요

 

여러분은 이 서신서들을 '복음전도서신' 이라 부를 수 있어요

왜냐면 그게 궁극적인 저술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교회의 전도의 효과는, 궁극적으로 교회의 성격에 달려있습니다

교회가 미치는 영향력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말했죠 *딤후4:5

 

그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전도 서신'이라 부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불러도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서신들을 '사도 서신'이라 부르기 원해요 *apostolic letters 

왜냐면 디모데와 디도가 사도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서신서에 보면 그들의 첫번째 임무는 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전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바울이 그들을 거기 보낸 첫째 목적은 그들을 '사도 대표(위임자)'로 보낸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사도로서 자기 팀들과 함께 교회들을 개척할 때

그가 떠난 후에는 세 형태를 띠게 되었어요

 

1 그가 그 교회를 다시 방문해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직접 보는 것과

2 그가 서신서를 그들에게 보내(양육하)거나

3 그가 팀원 중 한 명을 다시 보내거나 거기 남겨서 그 일을 마치도록 했어요 이해되시죠?

 

디모데와 디도는 목회자로서 또는 전도자로서 그레데와 에베소에 보내지지 않았어요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이 편지를 보낼 때 디도는 그레데에 있었고,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그곳에 '사도 위임(받은)'로 보냈어요 문제해결사로 보낸 것입니다

문제들을 잘 해결하라고요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 두 사람에게 문제를 속히 해결하라고 하였고,

그리고 로마로 와서 그와 합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목회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었고,

그들더러 거기에 남아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보내어 일을 마치게 하고,

그리고 너희들은 속히 로마에 와서 나와 합류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잠시 간 것이었고,

주요 임무는 교회를 위해 문제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잠시 후에 우리가 무슨 문제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이 두 교회의 문제를, 편지를 써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디모데와 디도 두명 대표(위임자)를 보내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이미 디모데와 디도를 사용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고전4:17, 고후12:18

그때 디모데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디도가 그의 임무를 완성하였고,

그 두 사람의 스타일은 정말로 달랐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바울이 두 사람에게 보낸 편지 방식도 많이 달랐습니다

 

디모데는 격려가 매우 많이 필요했는데 그는 겁장이였기 때문입니다 *딤후1:7

티미드 티모시였죠 *언어유희

디도는 타프 타이터스(강한 디도)입니다 *언어유희

 

여러분은 이걸 아시면 그들에게 필요한게 뭔지 알게 되죠

디도는 그냥 뭘 해야되는지 말만 해주면 됩니다

디모데는 많은 (격려) '네게 있는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딤후1:6'

'두려운 마음이 아니요 딤후1:7'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7 디모데야 해봐라 너는 할수 있다!

 

디도는 본래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바울이 지시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디도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 개인적인 느낌인데, 디모데는 바울이 여러 사람들 중에 특별히 가족처럼 가깝게 느낀 사람이었죠

바울의 디모데와의 관계는 각별했습니다

 

제 생각에 바울은 디모데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자기 뒤를 잇기 원했던 모양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성격, 배경 등 여러 방면에서 비록 매우 달랐지만

바울의 마음에는 디모데를 각별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가 디모데를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나의 유일한 진짜 아들'이라 불렀거든요 *딤전1:2

지금 '사도적 위임자 apostolic delegate' 살피는 중인데요

 

'사도'라는 뜻은 개척자를 뜻하며

사도는 '일시적인' 직위입니다

사도는, 교회가 제 스스로 독립할 때까지만 머물다가

그다음에 다른 곳에 가서 다시 (개척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머물러서 교회의 감독bishop / episcopal 직을 하지 않고

그는 계속 나아가서 다른 교회들을 세웁니다

 

▲신약성경에 몇 가지 봉사하는 직책이 있는데, 각각 뜻이 달랐습니다

하나는 아포스톨로스(사도)’라고 부르는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고, (개척을) 끊임없이 합니다

 

‘episcopes 감독이 있는데, 여기서 영어 '감독 episcopal'이란 말이 나왔죠

감독은 한 교회에 머물러 주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집사 diaconos’는 종이라는 뜻이고, 교회의 실제적인 일을 돌보는데

그 역시 머무르는 직분이죠

 

그래서 사도는 교회를 건립하고, 교회가 견고한 기초를 세우게 되면,

그는 교회를 감독과 집사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바로 장로와 집사이며, episcopesdiaconos입니다

'장로'라는 헬라어 말에는 또 프레스뷔테로스 가 있는데,

여기서 영어 '장로교 presbyterian'란 말이 나왔죠

 

장로와 감독은 서로 바꿔쓸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성숙되고 일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크리스천을 가리키죠

 

장로 elder 는 그 직책의 특성을,

감독 episcopal 은 그 직잭의 기능을 나타내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직책 모두는 항상 복수형으로 나옵니다

신약성경에 한 사람이 다 하는 사역은 없습니다

당시에 사도 팀으로 되어있고, 장로들 팀이 있었고, 그리고 집사들 팀이 있습니다

 

당시 한 교회에 감독이 여러 명 있었고, 여러 교회에 한 감독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현재는 신약성경의 방법과 완전히 거꾸로 되었습니다

 

사역에 복수의 리더십은 항상 안전합니다

한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항상 위험합니다 여러 사람이 할 때 안전합니다

 

성경에서 한 사람이 사도, 감독, 집사, 세 가지 신분이 겸하였는데, 여러분 누군지 아십니까?

신약성경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분께 상금 5파운드를 드리겠습니다

그의 이름을 크게 말씀해 주세요 한 사람만이 세 가지 신분을 겸하였고,

신약성경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인데, 아시는 분은 크게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 아니에요 바울? 아니에요 스데반? 아니에요 요한? 아니에요

좋습니다 제 돈이 굳었네요 시간이 없어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의 이름은 가룟 유다입니다 여러분은 생각도 못했지요?

 

여러분이 행1장을 자세히 읽으시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반드시 유다 대신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찾아서

그를 대신하여 사도, (감독) 집사를 맡아야 하느니라' *1:25 '봉사와 사도의 직무' (2개만 나옴)

 

그래서 전례를 보니 이 세 가지를 겸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가 재무도 관리를 했는데 결국

그는 돈에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봉사(집사의 일)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기초가 견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독과 집사가 세워지면 사도는 떠나는 것입니다 자기 일이 끝났거든요

 

예를 들면 바울이 디도에게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1:5

 

각 성에 장로를 세우고, 일이 완성되면 그리고 네가 오면, 너를 다른 곳에 보내겠다

이것은 뜻깊은 패턴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1세기 이래로 사도와 감독의 직분이 혼동되었고,

한 감독이 많은 교회를 관리하는 제도로 (오늘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자유로운 교회의 감독은 자기를 사도라고 칭했는데,

이는 신약시대의 상황과 매우 달랐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와 디도는 '사도팀'의 성원이었어요 바울은, 디도에게는 그레데에 남게 하였고,

디모데는 에베소에 보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그 두 곳에서 '사도적 임무(교회 세움)'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건강한 지도자가 있게 되고, 그리고 건강한 성도들이 있게 되면

그 두 사람은 거기를 떠날 것입니다

 

모든 경우에서 바울은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했습니다

바울은 질적인 지도자들을 원했고, 또한 질적인 성도를 바랬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양적 성장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해되시죠?

 

그는 교회가 얼마나 큰지를 묻지 않았고, 그는 단지 목회자의 질과 성도의 질만 신경썼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게 하였는데,

목적은 바로 거기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오히려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두 편지의 다른 점입니다

 

디도서는 사도는 어떤 <성도>

양육해서 남겨야 하는가에 대해 논했는데

하지만 디모데전후서는 사도는 응당 어떤 <지도자>를 양육해서 남기고 떠나야 하는가를 논했습니다

 

좋아요 이제 여러분들이 이 세 권의 서신서를 이해하는 키를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 시각으로 이 서신서들을 볼 수 있는데

1 저자의 시각이고, 지금 우리가 봅니다

2 편지의 수신자인데 디도와 디모데이며

3 마지막에 그레데와 에베소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그 두 곳은 사도적 위임자의 지도가 필요했지요

 

1 먼저 바울을 살펴봅시다 이 서신은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을

정말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여러분은 이 몇 권의 서신서들에서

바울의 일생을 구성해 그려볼 수 있어요

이 서신들은 바울에 대한 개인적 정보를 다른 서신서들보다 더 많이 알려줍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까?

 

이는 이 서신서의 저자가 거짓말한 걸 고소하는 셈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성경의 일부를

고소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이 서신에서 바울의 일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 자신의 변화를 논했고,

여기서 그는 노년인데도

과거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고,

그게 여전히 양심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편에 있었었죠

 

그래서 그는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로 불렀습니다 *딤전1:15

그런데 chief of sinners 는 좋지 못한 번역입니다

실제로는 'the worst of sinners' 입니다  *죄인 중에 가장 악한 자 (더 강조)

'죄인중의 두목''동급 죄인' 정도의 느낌만을 주죠

 

'나는 크리스천들을 핍박한

죄인들 중에서도 최고 악한 죄인이다!'

 

바울은 이 일을 영원히 잊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을 사하신 그 분은 당신의 죄를 잊었는데, 하지만 당신은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을 용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고 또한 죄를 잊습니다

왜냐면 그분은 자신의 기억력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있지요

 

이것은 매우 슬픈 비극이며,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합니다..

바울은 지난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였죠

하지만 그는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에게 넘어갔고, 그의 종이 되었으며,

그가 나를 구속하였느니라!

 

이것은 제가 이미 말했는데 그의 삶의 경험도 매우 분명하게 기록하였고,

현재의 처지도 매우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로마감옥에서 풀려나서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요 (소위 4차여행)

그는 고린도, 밀레도, 드로아, 그레데 심지어 스페인에도 갔습니다

 

그가 이 서신에서 나의 처음 재판은 매우 잘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두번째 재판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여기 다 나옵니다

그래서 그가 석방된 후 동,서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고,

지금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가택연금이 아니라

사형수들을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그런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구리장인 알렉산더에게 배반당했다' 딤후4:4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배신 당했는지는 상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배신당했다는 말은 분명히 나오죠 *돈을 받고?

 

바울은 급하게 체포되어서 외투와 그리고 노트한 책까지도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속히 자기 노트 책과 겨울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딤후4:13

아마 컴컴한 감옥 안이 매우 싸늘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일면이 드러나 있고, 그는 죽음을 대면하는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그는 미래의 소망이 있었는데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다 마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딤후4:7

매우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딤후4:8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는가도 가르칩니다

 

버킹검쇼어 지역에 한 크리스천이 살았는데, 의사가 몇 주 못 산다고 알려주자,

그는 자기 친척들에게 편지를 써서 '와서 나와 함께 지냅시다

여러분은 와서 크리스천이 어떻게 죽는지 보세요!' 라고 했어요 참 좋은 특별한 초청이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가진 디모데후서는 바로 바울의 유서이고, 그리고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쓴 마지막 글입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하는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하죠

 

당시 네로 황제의 성질이 매우 불확실해서 옳고 바르게 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과연 그는 결국 성문에서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를 가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바울이 당시 목 베임을 당한 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생애가

그곳에서 끝났습니다

 

이제 바울은 바통을 누구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았고

릴레이에서 누구에게 넘겨주듯이요

그는 이 바통을 디모데에게 넘겨주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기에서 막대기를 디모데에게 넘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디모데야, 나는 마지막이 되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 젊다 그래서 너는 이 사역을 계승해서 수행하기 바란다 이것은 감격스러운 편지였으며,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그의 미래는 암담하지만 영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주 훌륭했습니다
이 몇 권의 서신은 바울의 인생을 분명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의 목적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은 제가 이미 많이 논해서 더는 상세히 논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복음에는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이 있는데 반드시 둘을 겸해야 합니다 여러분, ‘에베소서를 기억하십니까?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다른 주제가 있었죠 하지만 여기 공동서신에는 조금 다르게(객관적 복음, 주관적 복음으로) 나옵니다
바울은 언제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을 논했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최우선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가끔 잊고 있습니다
바울이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삼위 중) 가장 중요하신 위격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놀라운 칭호들이 있는데, 흥미로은 것은 바울은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을 항상 '구세주'로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구세주'를 불러보신 적이 최근에 언제이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셨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해 주신 줄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생각한 해결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분은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왕이십니다성경에서 가장 중점은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비교적 성경을 (처음~) 많이 읽고 나서야 하나님이 '아버지' 라는 것을 볼 수 있고, 성경을 끝까지 읽고서야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발견되는 것은 '하나님은 왕이시다' '그의 통치는 바다 이끝에서 저끝까지 이른다' '그의 보좌는 영원하다'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세주시고, 왕이십니다 이것이 이 몇 권 (목회) 서신서의 강조점입니다 이어서 그가 예수님을 논했고, 예수님을 구세주라고도 불렀고, 예수님을 심판주 라고 불렀는데, 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하나님을 심판주 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세주라 불렀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은 구세주이시고 예수님이 심판주 이셨습니다 왜냐면 심판날에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최후심판을 대면할 때 하나님이 백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심판의 임무를 한 분에게 위임해 주셨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저는 예수님께 심판받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심판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어느 날 모하메드가 예수님 앞에 서서 심판 받을 것이며, 부처도, 공자도 예수님 앞에 서서 심판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예수님 앞에 서서 심판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인류를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딤후4:8 그분이 양과 염소를 분리하실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격려도 되고 동시에 실망도 줍니다 격려가 되는 것은 이 심판장이 사람이어서 그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며, (실망은) 그분이 우리를 꿰뚫어보시고,우리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성령을 논할 때 성령에 관해 두 측면을 언급했는데 먼저는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네가 안수 받을 때 받은 은사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딤후1:6
그 다음에 바울은 성령의 은사의 사용에 대해 말했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은사가 일어나게 해라! *딤후1:6 계속 사용해라 네가 받은 성령 은사를 잊어버리기 쉽다 계속 사용해라 은사가 불일듯 하게 해서 사용해라
그래서 이제까지가 (구원의) 객관적 면이고, '신적인 명령 Divine Indicative' 이라고 부르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성취했으며 또한 곧 성취하실 (객관적인) 일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의) 주관적 측면은 매우 다른데, 바울은, 구원에는 우리가 해야될 세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1. 경험적 측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롭게 해 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거듭나는 것을 자기가 경험해야 합니다
2 윤리적 측면인데, 구원의 현재 상태로 구원받은 사람은 성화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삽니다
3 그리고 미래 종말론적 측면의 구원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구원받다 save’ 라는 동사를 사용할 때 세가지 다른 시제를 사용했는데, 즉 우리가 이미 구원 받은 것, 계속적으로 구원 되는 것, 장래에 구원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 (위의 1-2-3)
우리 중에 아직 아무도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며, 로 여행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14:6
저는 걱정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 저녁에 7명이 구원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을요 제가 말합니다 당신 말의 의미는 '주일 저녁에7명이 구원의 여정을 시작했다' 는 말입니다7명이 아직 완전히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already not yet
사람들은 쉽게 구원의 사역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사실 아직 미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현재의 구원과정에는 여전히 계속 (성화를) 완성해 가야 합니다 이 점은 제가 다시 상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도표에서 우리는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다시 구원의 주관적 측면을 계속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그가 이미 당신을 위해 구원을 완성하였고,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 완성을 향하여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 '그가 너희 속에 역사하신다' 1:6'하나님이 너희 속에 역사하신다'그래서 '너희는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명하십니다
바로 칭의(과거), 거룩(현재), 영광(미래)인데, 이 세 가지를 합치면 구원이 완성됩니다 우리가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구원 받았습니다
'한 번 구원 (영원 구원)' 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목적지까지 가야 구원 여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때, 찰스 웨슬리가 이렇게 노래했죠 '주 안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네!' 이것이 구원이 완성될 때입니다
잠깐 말씀드립니다 제 아내가 믿음이 큰 사람인데, 하지만 한가지 일이 그녀의 믿음을 긁어서(시험해서) 벼랑까지 몰고갔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장래 언젠가는 당신의 남편이 흠 없이 완벽하게 변할 것입니다라고 했거든요
아내는 제 설교를 대부분 받아들이는 편인데, 하지만 이 말은 믿기 어려워했습니다그러나 이 말은 사실입니다하나님은 아직 저의 구원을 완성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구원의) 선한 일을 계속해 가기 원하십니다 빌1:6 그분은 내 속에서 시작하신 선한 사역을 그날까지 계속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목적인데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구원'이란 말은 잘 쓰지 않고 대신에 '재활용'이라는 말을 씁니다 낯선 사람이 제 직업이 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글쎄, 저는 재활용 사업을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저를 쳐다보며 '멋지네요!' '그럼 당신은 뭘 재활용 하십니까, 종이, 금속?''아뇨, 사람입니다!'왜냐면 이 지구를 정말 오염시키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람이 재활용(구원) 되어져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시 지음 받은 목적대로 회복되지 못하면 아직 '재활용(구원)되었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재활용 종이처럼 다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지옥은 거대한 쓰레기 장이고, 하나님께 소용이 없는 사람은 거기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바깥의 '쓰레기장'지옥-게헨나의 상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재생 안 되면 끝!
제 사명은 사람들을 쓰레기장에서 건져내어 하나님께 쓰임받도록 재활용 사업하는 것입니다마치 오네시모처럼!
그처럼 당신이 완전히 재활용 되기까지는 아직 당신은 구원(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디도서35절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구절인데, 하지만 이 구절로 설교하는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디도서3:5 ‘하나님이 물 세례와 성령의 세례로 우리를 구속하였느니라
요한복음 35절과 매우 비슷한데,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하느니라' 여러분이 제가 쓴 <정상적인 신자의 탄생> 책을 읽었다면, 바울이 '물세례' 와 아울러 '성령의 세례'를 구원 받는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 것을 그 책에 설명했습니다
제가 번역하면,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는 재활용의 필수 조건이다' 아시겠죠? 우리는 구원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티켓을 얻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데, 이런 잘못된 개념이 '두가지 세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은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성령세례는 그 과정의 일부이자, 필수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5 '그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셨느니라' :6
재활용이 ()세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어서 성령의 세례입니다 (공장에서) 재활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먼저 깨끗하게 씻습니다 (구원도) 씻는 과정입니다
바울은 이 두가지 세례를 특별히 강조했는데, 왜냐면 이렇게 해야 구원이 시작되죠 그게 중생의 시작이고, 모든 구원 과정의 시작입니다
그 다음에 성화는 부정적/긍정적 측면을 다 가집니다 부정적인 면은 죄악과 분리되는 것이고, 긍정적인 면은 거룩하게 따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별 sanctified'은 그저 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쓰임받도록 따로 구별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성전에 있는 그릇들을 정결하게 했는데, 그것들은 그저 깨끗한 그릇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결은 수동적(정결)이 아니라 능동적(사용됨)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을만큼 정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바울은 이어서 영광을 논했습니다 목회서신에서 견인(끝가지 견디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중도에 믿음에서 파산한 사람들에 대해 매우 슬퍼게 말했습니다 자기들의 신앙을 부정하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왜냐면 구원은 (한 번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끊임없이 주님을 믿고 의지해 나가는 (견인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기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이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을 인용했으며, 딤전1:15, 4:9, 딤후2:11, 바울은 이 목회서신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을 군데 군데 인용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교회에서 유행하는 짧은 격언들을 인용했는데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주와 함께 살리라' 딤후2:11'우리가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딤후2:12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딤후2:12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죠 마10:33
이 편지들에서 견인(끝까지 견딤)의 필요성을 논했으며, 견인을 강조했습니다 계속해라, 참으라! 여러분은 그런 단어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디모데야, 너는 참고 견뎌라, 계속 나아가라!'
바울이 말씀했죠 '만약 네가 지속적으로 믿음을 지키면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리라' 딤전4:16 저는 이 말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네가 네 자신과 네 가르침doctrine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딤전4:16
'네가 그들 가운데서 참고 견디면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리라' *4:16의 해석
지금 바울은 미래적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완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영광스런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과 교리가운데 참고 견디십시오 그것을 지키고 그리스도께 가까이 머무십시오 '그러면 너는 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우리는 이를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 지금 끝날 시간인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5분 정도? 5분만 더 합시다
우리가 빠르게 디모데와 디도 두 사람을 보겠습니다 이 두 사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디도는 이방인이고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유대인 외할머니를 가졌고, 그들은 그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배경이 있었는데, 디도는 이방인 배경이었습니다
디모데는 할례를 받지 못했는데, 왜냐면 그의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는데, 그게 디모데에게 무슨 유익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울과 함께 유대 회당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행16:3
이로써 디모데는 할례를 받아서 기꺼이 성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받아야 인정해주니까) 성인으로서 할례받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디모데는 받기를 원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유대 회당에 가서 설교하기 위해서였는데, 이것이 할례를 행한 유일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와 디도 두 사람의 기질이 완전히 달랐는데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여기는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먼저 방문했던 도시 중의 하나였으며 루스드라 교회가 후에 바울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알려주기를 여기에 매우 촉망받는 한 젊은이가 있는데, 만약 당신이 그와 함께 선교를 하면 그가 당신에게 매우 도움될 것입니다교회가 그를 친히 추천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디모데는 계속해서 바울을 따라 선교여행을 했죠 그들의 관계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이방인이었으며, 어머니와 외할머니 모두는 경건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예언에 의해 구별되어졌습니다 이전에 디모데는 3가지 임무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가 전에 바울을 대표하여 데살로니가, 고린도와 빌립보로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적어도 여섯 통의 편지를 썼으며,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그리고 빌레몬서 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는 바울과 계속 동역했는데 하지만 그는 아팠으며 자주 위장병이 들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바울이 그더러 배에 술로 마사지하라고 했다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그는 위장병때문에 포도주를 조금 써야 했습니다
디모데는 많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너는 군사가 되어야 한다 운동선수가 되어야 한다 너는 반드시 스스로를 훈육해야 된다 사나이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생명이 거의 끝날 때 그는 디모데가 누구보다 가장 슬퍼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디모데는 마치 바울의 친 아들같았, 그들의 관계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문제를 가능한 속히 해결하고, 그리고 내게 와서 함께 남은 몇 주간을 보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디모데가 바울이 처형 당하기 전에 도착했는지를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의 열망을 이 편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시 너를 에베소에 남기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너는 반드시 속히 문제를 해결하고, 가능한 겨울이 오기 전에 나를 보러 오라딤전1:3, 딤후4:21
그러나 여러분이 디도서를 보시면 이렇게 개인적인 말이 안 나옵니다 우리는 디도가 매우 훌륭한 일꾼 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탁월한 동역자였고, 일을 잘 했으며, 바울은 그에 대해 신뢰가 있었습니다 디도는 강한 이방인이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그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는 어떤 격려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강했죠)
바울이 디도에게 '스스로 굳세라'는 등의 격려를 주지 않았습니다 '담대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바울이 디도에게 했던 말은 단지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디모데와) 매우 다른 접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권의 서신에서 바울이 사람됨을 볼 수 있고, 행간에서 디도와 디모데의 사람됨을 볼 수 있고, 바울과 그 두 사람의 관계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권 서신의 중점은 다음 회에 우리가 논할 것인데, 바로 그레데와 에베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디도와 디모데를 바울로부터 떨어지게 했을까요?
바울은 마지막 시간에 가장 그들이 필요했던 시기인데, 두 지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바울은 그들 두 사람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기를 원했지만 한쪽으로는 교회의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그의 뜻은 만약 교회가 너희를 나보다 더욱 필요로 하면 너희는 거기에 있을 것이고, 하지만 너희들은 가능한 속히 빨리 내게 오라
우리는 다음에 이 몇 권의 (목회)서신 내용을 다시 논하겠습니다 P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