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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독신 3

LNCK 2019. 5. 1. 07:19

결혼과 독신             고전7:25~40         유튜브 '가정 설교' 모음          출처

     결혼과 독신 1

      결혼과 독신 2    

 

우선 매 시간마다 고전 7장부터는 이런 염두를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이 주제들은,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서 특수하게 벌어진 어떤 혼란의 문제들,

혼란의 주제들을 옥신각신 하다가

이것을 에베소에 있던 사도바울에게 질의한 것입니다.

 

그 질의의 내용에 대한 답변서가 고전7~16장까지입니다.

이것을 어떤 주제는 오늘날 원리로 일반화시키는 일도 조심해야 되고

항상 해석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오류가 생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7~16장은 그런 배경 가운데 쓰여진 본문 임을 잊어버리지 마시고

무엇보다 여기에 나타난 원리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선 7:25부터 봅니다.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예수께서 사도들에게나 또 특별히 사도바울에게 직접

처녀들에 대해서는 이러 이러한 원리로 인생을 살도록

결혼을 하도록 가르쳐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에 대해서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순전히 사도바울의 개인적 견해 아닌가!’

그럴 수 있죠.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이런 거죠. 성경에 송목사가 5월 첫째 주에는

양복을 밝은 색으로 입고 나가라’ .. 이런 지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매사에 직접 계시를 받아야 할까요?

주여, 오늘은 어느 색깔의 양복을 입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그날 자기가 느낌에 따라서

입고 싶은 양복 입고 나가면 됩니다.

그런 것까지 성경에서 일일이 세밀하게 말하지도 않고, 기록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

중요한 어떤 원리 외에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두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혼의 문제가 뜻밖에도 그런 요소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독신주의입니다.

이걸 이렇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독신주의자는 금욕주의자다!

그건 다릅니다.

독신주의는 금욕을 하는 것이지, 금욕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독신이냐, 아니냐를 보통 은사라고 하는데

이 은사를 어떻게 가늠해야 될까요?

나는 이성이 생각도 나지 않고, 여자나 남자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전혀 그런데 관심 없으니까 나는 독신주의자인가 보다..’

이렇게 어떤 자기 조건이나 만족도에 따라서

자기가 독신주의자다/아니다를 가늠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접근입니다.

 

독신의 은사 라는 은사 자체가

카리스마(은사) 자체는 위에서 내려오는 선물입니다.

 

독신이냐, 결혼이냐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접근해야 합니다.

자기 느낌이나 그때 처한 환경에 따라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가 독신의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독신이 은사인줄 알았어요.

 

제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괴물이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오늘 독신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말한 시대적 정황을 잘 보셔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이 문제를 거론할 때는 그 시대가 갖는 특수한 배경, 문화, 상황, 교회적 입장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서 살펴야 합니다.

 

자 그런 차원에서 26절을 봅니다.

 

7: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임박한 환란을 일단 염두에 두십시오.

 

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후부터 아내 없는 자같이 생각하라

 

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 세상은 곧 지나간다

지금 여러분이 읽은 위의 세 구절을 잘 생각해 보세요.

 

임박한 환란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세상은 곧 지나간다

이 세 구절이 사실은 사도바울이 독신의 문제를 말하게 되었던

중요한 시대적 배경입니다.

 

그러면 이 세 구절이 가지는 공통점이 뭡니까?

곧 세상이 끝난다는 종말의식입니다.

 

자 그래서 당시 로마제국 치하에 세상이 그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보셔야 됩니다.

 

2천년 전 로마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지독한 기근이 임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필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지진들이 있었어요.

터키 지방을 중심으로 다 폐허가 되었어요.

 

그런데도 유독 자급자족 할 수 있었던 라오디게아 지방입니다.

거기는 재정이 유족했습니다.

모든 도시들이 다 무너져 로마 중앙정부로부터 지원 받아야 했는데

딱 한 도시 라오디게아 지방만은 돈이 유족해서

자급자족해서 도시를 다시 건설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기근, 지진이 그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처처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기들을 포함해서.

 

1990년대 초에 북한에 2~3백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소위 고난의 행군시기

이것은 부끄러운 재앙입니다.

그때 북한주민들 얘기는 한 세대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들이 먹지 못해서 많이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근의 재앙이 최근 북한에도 있었죠.

 

그런데 2천년 로마제국도 그 이상으로 기근이 심했습니다.

날씨 말고도, 지진이 온 땅을 뒤집어서 농사를 못하게 된 원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6절에 곧 임박한 환란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그런 정황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후부터 아내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이게 무슨 얘기냐면, 이 편지를 사도바울이 쓰고 나서

15년 후에 로마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공격당하고 함락됩니다.

 

그러니까 유대역사에 끔찍한 재앙이 일어나는 거죠.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생전에 예언했던 것입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이것을 사도바울이 영적으로 직감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이런 시대적 징조, 그리고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재난이

이때 임했어요. *주후 70년 경

 

그러면 여러분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주후55년경

예를 들어 만약 북에서 전쟁을 시작하면 제일 첫 번째 타깃이 용산구라고 합니다.

왜냐면 육군본부가 있기 때문이죠.

만약 그런 전쟁이 벌어져서 피난 가고 난리가 났어요.

 

그러면 혼기를 꽉 채운 젊은이들이 이런 결혼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을

할까요, 안 할까요?

고민 될까요, 안 될까요? (됩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걸 사도바울게 물은 것입니다.

지금 시대가 이렇게 긴박하게 마치 파도가 쳐서

시대의 가랑잎 같은 배가 파도 끝에 올라가 있는 형국입니다.

이럴 때 결혼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이런 실질적 고민과 질문이 왜 안 나오겠습니까?

나오죠.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사도바울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그 편지는 성경에 안 나와있죠.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낸 편지)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오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독신이 결혼보다 더 낫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쓴 게 아닙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라는 식으로 바울이 말씀한 것은

그 진의는,

결혼 생활이 그만큼 소중하기에

그런 상황 속에서는 차라리 나처럼 혼자 지내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독신이 결혼보다 더 낫다는 쪽으로 성경이 강조한다고.. 오해합니다.

 

사도바울이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물론 그는 결론적으로 그런 상황속에서는

차라리 나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낫다고 강조하지만

 

그런데 그 이면에, 진짜 바울의 진의는

결혼이 그만큼 중요하다,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여러분, 결혼이라는 것은

저도 이제 결혼 25주년인데,

참 긴 헌신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모로서 살기는 쉬웠는데, 아내로서는 살기가 어려웠다

 

제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 말은,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겁니다.

결혼은 그만큼 한 번 주 안에서 언약이 맺어지면

정말 길고 긴 인내와 기다림과 참음과 모든 것을 감당하고 감내해야 되는

길고 긴 헌신입니다.

 

이게 하찮게 여겨지겠습니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래서 결혼은 너무 소중하니까

만약 시대적 정황이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나처럼 혼자 지내는 게 낫다.. 라고 말씀한 것을

우리가 자꾸 독신이 더 좋은 것처럼 이해하면 안 됩니다.

 

사도바울이 엡5장에서 설명하기를

결혼의 아름다움과 풍성함과 놀라운 가치를 강조했는데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같이,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지라

무슨 얘기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 이야기요,

남자의 여자의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배워간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결혼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본문에 와서 왜 독신 문제를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거론했는가 하면,

결혼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므로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 경영이라는 말은 절대 세속적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적 가치인데 두 가지 히브리적 개념이 합쳐진 말입니다.

 

1)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과

2) 그래서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될 지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위 둘을 합한 것을 경영 능력이라 말합니다.

 

그럼 중요하기 때문에 꼭 먼저 해야 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직장생활 하다 보면, ‘이건 중요하니까 후에(나중에) 해야 되겠다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그런 이치에서 지금 독신과 결혼의 문제를

상충되듯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둘 다 중요한 가치로서

설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워렌 위어즈비는 독신과 결혼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5가지 질문을 이렇게 던졌습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은사는 무엇인가?

내가 독신의 은사(선물)를 가졌는가, 결혼의 은사를 가졌는가?

 

여러분, 결혼도 은사입니다.

많이들 하니까 결혼은 은사가 아닌 줄 압니다만, 은사입니다.

마찬가지로 독신도 은사이듯이요.

 

2) 이 독신의 은사를 판가름하는 그 결정적 기준이

자기 만족이나 자기 환경이 기초되어서는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나는 신자와 결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가?

 

▲7:39 (과부들에게 한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리가 감춰져 있습니다.)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매여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지고,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자기 뜻대로 시집 갑니다. 그런데 전제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만 할 (시집갈) 것이니라

이것은 중요한 성경적 기준입니다.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는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요.

 

그런데 가끔 가다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로 자매쪽에서!

왜냐면 워낙 형제들이 숫자적으로 모자라니까

자매 쪽에서 그런 갈등을 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목사님, 이 형제가 지금은 안 믿지만

나와 결혼한 후에 신앙을 갖게 될지 모르잖아요?’

 

여러분, 그 자매가 왜 그런 질문을 할까요?

교회에 어떤 부부가 있었는가 하면

대단한 권사님인데, (한 가지 특수한 예인데 그걸 원리화(일반화) 시키지는 마십시오)

딸 넷을 일부러 전부 안 믿는 집안에다 시집을 보냈어요.

너 그 집안에 선교사가 되라대단한 엄마죠.

 

근데 그 권사님은 그 기도를 굉장히 오랜 세월을 해 왔어요.

딸 넷을 전부 안 믿는 집에다 시집을 보내서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 믿던 집안과 사위들이 모두 주안으로 돌아왔어요.

 

그럼 여러분은 길고 먼 결혼의 길을

그런 한 판의 도박을 걸 듯, 그렇게 도박하는 마음으로 저지르겠습니까?

이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 권사님 집안은 제가 잘 압니다.

그 권사님은 굉장한 기도의 사람이고, 오래 기도한 분입니다.

아마 주님의 음성을 들었겠죠. 이런 경우는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의 케이스를 너무 많이 봤어요.

믿지 않는 형제와 결혼합니다. 전도의 가능성을 갖고요.

결국 아픔을 겪고, 헤어지고, 깊은 인생의 흔적을 가지고

아프게 여생을 살아가는 자매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형제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지침입니다.

주 안에서만 할지니라

 

워렌 위어즈비가 두 번째 물었던 질문은

나는 신자와 결혼하리라는 의도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가?

 

3) 주변 환경이 결혼이 합당함을 보여주고 있는가?

무슨 말입니까?

 

예를 들어 어느 형제가 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늘 평생에 부담을 갖고 살았어요.

거기 가서 아이들을 위해서 내 인생을 던져야 될 텐데..’

그런데 내일모레부터 학기말 시험입니다.

두 개를 한꺼번에 못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여름 선교를 갈 때도

동해, 제주도, 대만을 세 곳 다 가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있는데

세 곳을 다 갈 수 있는 청년들은 사정이 그렇게 안 됩니다.

직장 휴가도 길지 않고, 또 학업이나 가정 일도 해야 되고...

 

사도바울이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럴 때는 나는 내 지금 처해 있는 부르심 그대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대로라는 말이 7장에서 반복됩니다.)

결혼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덜 귀하다는 말도 아니고요.

 

충성심이 나눠져서 둘 다 못할 수도 있어요.

32절을 보세요.

 

7: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나는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귀족들이 사냥을 나가는데, 정한 시간에 누가 더 사냥을 잘 하느냐 하고

게임을 합니다.

그러면 숲에서 토끼를 발견했는데, 갑자기 옆에서 노루 한 마리가 튀어나왔어요.

창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창 하나도 동시에 두 마리를 향해 던질 수 없어요.

하나는 내려놔야 돼요.

무엇이 더 영원한 이익인가의 문제를 놓고

하나를 내려놔야 됩니다. 그래서 토끼를 내려놨습니다.

 

그러면 그 토끼를 내려놓은 게 죄입니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것이 내 정황에 합당하냐의 문제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결혼과 독신의 문제를 두고서 하는 말은

어떤 사람은 아내와 몸을 합하여 결혼 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더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이런 부류에 속하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게 안 되죠.

 

그래서 32절부터 제일 자주 등장하는 말이

염려없기를 원하노라

염려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주의 일을 염려하여’ :34

이런 식으로 무려 8번이나 나옵니다.

 

제일 많이 등장한 단어가 염려입니다.

염려가 헬라어로 나눠진 일, 쪼개진 마음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판단근거가 뭐냐면

워렌 위어즈비가 4번째 이런 얘길 합니다.

 

4) 결혼이 그리스도를 위한 나의 헌신과 섬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자기가 자기 개인적 정황을 기초로해서

나는 혼자 지내는 게 차라리 주님의 영광과 헌신을 위해서 낫겠다

라고 판단하면 독신으로 지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닐 경우,

~ 나는 이 자매와/형제와 만나서 이런 아름다운 가정을 모델로

나는 주님의 부요를, 주님의 행복을 드러내고 싶다

그럼 그는 결혼을 하면 됩니다.

 

이 둘은 어느 쪽이 낫다/못하다 또는 맞다/틀린다의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사실상 결혼을 더 소중히 여겼기에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홀로 가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5) 나는 이런 연합된 관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예를 들면, 내가 어떤 형제/자매와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나에게 주신 은사가 결혼의 은사라면

나는 그렇게 부부로 연합되어 궁극적인 목표가 주님을 기쁘게 하고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연합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실제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독신이냐/아니냐?’에 가장 중요한 기초는 성경말씀이어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어디 가서 점 보듯 다른 계시를 찾아다니지 마세요.

점 보듯 예언 기도 어디 가서 받지 마세요.

 

성경말씀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좋은 믿음의 선배의 조언을

반드시 참조하십시오.

여러분보다 앞서 걸어간 경험자들의 이야기가

다 백프로 옳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도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의 지도와 인도가 가장 중요하고

이런 문제로 점보듯 기도 받으러, 계시 받으러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목회자를 통해서 상담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7:39~40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결국 사도바울이 마지막에 결론 맺는 것은

여기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닥쳐온 환란을 대비해서

너무도 결혼이란 것은 긴 여정의 헌신이 동반되는 수고요 섬김이기에

 

그만큼 중요하기에 나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라는 말은

사실상 독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결혼생활도 그만큼 그 이상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이야기를 마치는 것입니다.

 

2013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청년들에게 좋은 배필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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