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 고전16:22 13.09.01.동부광성교회설교
김철기 선교사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올해 오월 말, 제가 아주 훌륭한 선교사님 한분을 아마존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의료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왜 의과 대학 교수가 갖는 명예와 부와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매월 후원에 의지해야 하는 선교사가 되었느냐?’ 물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고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소유했던 것처럼
저는 주님이 세상 어떤 보화보다 값지기 때문에 명예와 부와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의료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
우리가 읽은 성경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전16:22
이 성경구절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예수 믿어주고 구주로 인정하고 착하게 살면 되었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저주를 받는다? 지독한 독설이 아닌가?
사랑만 선포해도 믿어줄까 말까인데 저주라니 참, 기가 막히는구먼!’
▲사도바울은 교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저주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복은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 큰 권력을 갖는 것, 명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매일 가난해서 쪼들리면 살아도, 질병으로 고통을 당해도,
외로움에 힘들다고 해도 그것은 저주가 아니다.
저주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표현의 긍정적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라는 강력한 부탁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생을 얻으라는 역설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즉 주님이 내 대신 죄의 값으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고 죽어주셨는데
그 주님을 모른척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퍼부으려고 하셨던 저주를 쏟아내신다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을 사랑하라는 눈물겨운 독설을 기억하시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더불어 오늘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천국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가?
▲1,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내가 선한 사람이라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1994년 말부터 한 6개월 제가 현재 선교지에 정착하기까지
저는 매일 마나우스(아마존 관문 도시)라는 도시의 공원에 나가서 개인전도를 했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개인전도를 하다 보면 천주교 전통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그런지
‘나는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다. 누구를 속인적도, 살인한 적도, 거짓말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가끔 성당이나 교회가서 예배, 기도, 헌금, 헌신한다.’
우리는 종교생활에 속아서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 또는 괜찮다.
그런 확신들을 갖습니다.
저도 전에는 항상 제가 꽤 괜찮은 선교사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어느 날 주님이 제가 가진 자기의의 옷이 벗겨진 흉악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나 제가 왕 바리새인 이었는지 정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금도 가끔 이런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꽤 괜찮은 선교사라는 자부심 말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고 믿습니까?
여러분 안에 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며 전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창세기8:21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주님은 성경에서 모든 인간을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은 어땠는가요?
얼마나 말씀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으면 ‘구별된 사람(바래새인)’들로 불려졌겠는가요?
그런데 정작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은
자기 열심 자기 믿음, 의롭다는 확신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42-44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마귀에 속한 자,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
우리는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선한 일도 하고, 선하게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집니다.
그리고 남들과 비교합니다. 마치 도토리 키재기처럼
우리 속에 악으로 충만하게 차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생활이라는 것들을 통하여 악을 숨기고서, 스스로 의인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마치 평토장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여러분은 아직도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이용하기 위하여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흥정하고 조건을 걸고 믿는 사람이다.
내 소원과 욕망을 이루어주실 능력 있는 분으로 믿고,
주님보다 선물을 기뻐하는 사람들,
내 필요에 의해서 충성과 헌신, 모든 것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전혀 박해가 없고 교회 나온다고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는
좋은 것들을 제공받기 위하여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생도 이 땅의 것들도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흥정합니다.
창4:3절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반면에 아벨은 양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 다 아담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제사까지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기가 원한,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제사는 거절되었습니다.
아벨은 그의 부모가 선악과를 먹어서 부끄러워 잎사귀로 수치를 가렸을 때,
동물을 잡아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신 구속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제물이 되는 양이 대신 죽는다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위에서 나 대신 죽으시고 내 죄를 용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우리가 매일 그분 앞에 서야 하는데,
우리 소원을 이루어주실 분으로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헌신 충성 봉사를 한다면
우리가 부처님 대신에 예수님을 부르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부처 앞에서 104배 절을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요?
내가 내 필요를 위하여 내가 만든 신, 소원을 이루어 줄 신을 믿으면
저주를 받게 되고 지옥 갈 것입니다.
지금 저는 주님과 늘 흥정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걸고 흥정을 합니다.
어떻게든 허 선교사를 치료하여 주시라고! *아내 허선교사 소천 11일 전 설교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회장 김호권 목사님과 교우들,
중보기도 팀의 간곡한 중보 기도와 치료비를 도와주시는 사랑
그리고 허 선교사가 아직 생존하는 것은 양시영 집사님(의사)의 도움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제가 하나님과 흥정하는 내용은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허 선교사를 치료하여 주십시오.
제가 이만큼 선교사로 아마존 정글 험지에서 헌신하고 수고했는데
그걸 봐서라도 좀 기적적으로 아내를 치료해 주십시오!”
주님께 헌신하신 여러분도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라고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가끔 그런 마음이 많이 듭니다.
‘아니 차라리 저를 죽여주시라고,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하면서
제발 제 아내를 치료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데,
그런데 제가 이런 절망의 끝에서 감사하는 것은
만일 제게 지금 이런 경험이 없다면
교회 안팎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 고통당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마음으로 위로할 수 없을 텐데
제 마음을 찢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과 흥정하는 사람,
조건을 걸고 믿는다. 이 내 소원과 욕망을 이루어주실 능력 있는 분으로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보다 선물을 기뻐하는 사람들,
내 필요에 의해서 충성과 헌신을 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3, <절대가치의 우선순위가 뒤바꾸어져 있는 사람>,
<주님을 따르는데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사역하는 아마존 검은강 지역에는
강바닥에 그리고 땅속에 금이 아주 많은 곳입니다.
어떤 광부가 약 10킬로의 금을 캐서 내려오다가
급류가 쏟아지는 곳에서 그만 보트가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금 자루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물속에서 금 자루를 찾아 헤매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눅14:33 ‘너희 중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설교를 시작하면서 언급한 한 의료선교사님은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하여 명예와 부와 안정된 삶을 포기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을 찾아온 어떤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 청년은 부가 주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슬픈 모습으로 주님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 라는 책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르는 것은 같이 죽자 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두개의 축복을 동시에 쥐려면 모두 잃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려도 지옥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요?
대기업의 회장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유명 인사로,
종교계의 성공한 인물로 이 땅에 이름을 남길지라도
절대가치 우선순위가 바뀌어져 있는 사람,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천국에 가려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까요?
▲1. 나는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람이다.
성경에서 하라는 모든 명령을 하나도 행할 수 없는 무자격자임을 고백하는 사람,
내속에 선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임을 아는 사람,
자기 무능력을 아는 사람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로마서 3:13~15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영적으로 선한 일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도 마음도 이기적이고 모두 나를 위한 것입니다..를
늘 인정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는 사람!
모욕을 받을 때,
불의한 일을 만날 때, 선한 일을 할 때,
우리 속에 숨어 있던 분노와 악과 교만이 마치 독사가 머리를 들고 물려는 것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면
나는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가야 마땅한,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중의 괴수임을 발견합니다.
이런 처절한 자기 절망, 자기 절규가 있는 사람
그래서 늘 회개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여름을 나면서 좀 힘들었습니다.
아마존은 365일 폭염 경보 주의보가 내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허 선교사가 (병으로) 늘 한기가 들므로 선풍기도 에어컨을 거의 안 켜고,
켜도 27~28도로 해놓고 지냈습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 실체를 봅니다.
이렇게 내 싫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
입술과 생각으로만 표현하는 그 얄팍한 사랑!
‘내가 바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가해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상한 마음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시작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분노의 표현임을 압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저렇게 죽어야 함을 아는 사람, 지옥갈 수밖에 없는 영혼인데
숨 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상한마음을 가진, 근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한마음을 평생 품고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을 품을 때, 성령이 오셔서 내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그분을 아프게 했는가를 알면서 회개가 시작되고
비로소 주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이 시작됩니다.
▲2, <고난과 책망을,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는 사람,
십자가를 기뻐하는 사람. 부끄러움과 낮아짐을 기뻐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주시고
주님의 생명을 따라 살게 하시려고
우리의 겉 사람을 죽이러 오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천사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얍복강가에서 여러 떼를 나누어서 먼저 건너가게 한 다음
자기만 혼자 남았을 때
야곱은 에서가 자기의 원수라고 생각하였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그의 원수이었습니다.
그날 밤 얍복강가에 있던 날 천사가
야곱의 겉사람을 죽이시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 주님은 우리를 어린아이처럼 다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겉사람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난으로 책망으로 찾아오십니다.
왜냐면 진정한 축복은 고난속에 책망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엡 5:11~13 사도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은 거의 모두 나를 위한 것들입니다.
가정 교회 대한민국 세계 나는 나라는 중심에서 떠나지 않고 좋은 것들을 소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나가십니다.
항상 우리의 원함과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책망하시고 고난가운데로 이끄십니다.
고난과 책망 받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빛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데려가십니다.
저희가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 중에 일찍이 이민을 가서 목사가 되신 분이 계십니다.
사모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과 딸을 그 자리에서 잃으셨습니다.
그 아픔이 너무나 커서 도저희 하나님과 화해할 수가 없어서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하고 목회도 불가능하여서
사막으로 끝이 없는 아리조나 주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갔었답니다.
열흘이 넘게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나타나셔서 해명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하나님, 오늘 밤이 지나면 이제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마지막 날 밤, 사막에 선인장들이 모두 십자가 모양으로 나타나더랍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모양을 보면서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하여
아내와 아들 딸의 죽음을 이해하고 정상의 삶으로 돌아와서
고난 받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역을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고난과 책망을 기뻐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주님과 연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73:25
내가 아닌 주님께 집중하는
그리고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중보자로서의 삶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가운데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이 삶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죽는 성도의 원형이 되는 말씀입니다.
제가 늘 맨토라고 생각하는 샤를르 드 푸꼬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주님이 어디로 어떻게 인도하더라도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겠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고백적인 시입니다.
5만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은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뮬러가
고아원을 시작한 이유에 대하여 알고 놀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면서
무려 63년동안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죽으려 하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진정한 복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1)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악한 죄인임을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2) 고난과 책망 십자가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3) 인생의 목적이 주님께 있고 그분으로 인하여 살고
그분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즉 주님과 연합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시면 저주가 없고 영생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아무쪼록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매일 더 강렬해지고 뜨거워지고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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