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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정직한 신앙 생활 /스크랩

LNCK 2019. 9. 1. 14:07

www.youtube.com/watch?v=2PGghrrcndI&feature=youtu.be

◈신자의 정직한 신앙 생활           17:1~15          도서스크랩 

*198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앞서갔던 설교 중 한 편

 

우리가 정직하게 일해서 그 소득으로 살아가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 득으로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공짜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못 됩니다.

얼마 전에 아르헨티나에 가보니

그 나라 경제가 아주 위험한 상태 있었습니다.

 

왜 그 나라의 경제가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페론이라는 대통령이 있었는데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부자들의 농토를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생활필수품을 거의 무료로 전 국민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큰 거리에 길목마다 큰 상자에 빵을 가득 채워 놓고서는

누구든지 그 빵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때는 국민들이 모두 다 좋아했으나

결국 오늘날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그 모양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부지런히 일해서 그것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나라가 공짜로 뭐 주지 않나.. 하고 기다리니까

나라의 경제가 절대로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특별이 우리가 따르고 있는 칼빈주의에서는

은혜라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거저'란 뜻이 일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장 강조한 사람이 칼빈이었고

이런 것을 따르는 교단을 가리켜 장로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장로교 신자들,

즉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이

곧 값싼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노력(믿음의 반응)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나가면 축복을 받는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가 특별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결합하여서

한국적인 기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왜 장로교가 감리교보다

더 잘 성장하느냐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장로교는 원래 좀 딱딱한 교단이라서

다른 나라에서는 잘 부응하지 않는데

과거에 유독 한국에서만 크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가 부흥했냐하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습성을 형성하는 데

제일 중요한 영향을 미친 종교가 무속 종교인데

 

 

이것은 바로 장로교회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무속 종교는 세계 모든 종교 가운데서

가장 하급 종교에 속하는데

그 특징은 종교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그 사람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운수가 대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운수가 대통하려면, 복을 가진 귀신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속신앙이

장로교회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과 연결되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기독교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값싼 은혜를 갈구하는 신자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값싼 은혜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잘 부흥합니다.

 

사기를 치든지 탈세를 하는지 도둑질을 하든지 간에

 

열심히 기도 하고 적당히 연보만 내면 구원 받는다고 하면

종교 생활하기가 아주 싶습니다.  (*1990년대 설교, 당시의 유행)

 

특히 우리 한국 사회처럼 질서가 제대로 잡혀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양심대로 살아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럴 때에 신앙생활하기 아주 편한 방법으로

서둘러 딱 나누어 버리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기도 치고 거짓말도 하고 심지어는 강도질도 하다가

주일날에는 교회와 서 눈물도 짓고 찬송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 이중적 생활을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들에게도 시험이 되는 것은

꿩 잡는 것이 매 아니냐는 사고방식입니다.

 

우선 교회가 크고 봐야지 무슨 진리니 원칙이니 하다가

교회를 망쳐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한국 교회의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교회 많이 와서 예수 믿으면 됐지

무슨 진리니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느니 하면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성도들의 생활은 점점 이중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훌륭한 기독교인이냐?' 하는 판단이 흐려집니다.

복 받는 사람이 훌륭한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복 받지 못하고 초라하게 살면

그게 무슨 예수 잘 믿는 것이냐? .. 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1714절에서

억울함을 당한 자가 다음과 같이 기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여기에 보면 억울함을 당하고서 기도하는 사람의 원수는

이 세상에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도 축복을 받아서 자기 자신만 만족할 뿐 아니라

자기 자녀들도 만족하고 또 유산을 후손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축복인지

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17:1)'

 

이 시편의 기자는 기도할 때 자기 마음이 정직하니까

자기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16절에도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정직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공평한 재판을

요구할 것입니다. 시편 172절에 보면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은

하나님의 공평한 재판을 요구할 것입니다.

자기가 깨끗하다고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판이 공평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요한 일서에 보면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3:21)'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담대함을 얻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것이고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시편 17:3절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감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속에 이루어집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회개 기도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자기 죄가 안타까워서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이해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회개입니다.

 

아무리 땅을 치고 통곡해도 그 이튿날 고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회개입니다.

우리는 고요한 밤에 우리 자신을 정직한 마음으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17:4절에 보니까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했다'는 말은

강도질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좀 더 넓게 해석하면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하지 (부정부패) 않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대개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매우 조심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사람의 기도에 잘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화라는 것이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눈길로 우리 자신을 다 조사하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서 회개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살펴서 정직한 입술로

정직한 기도를 드려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별 수 없는 인간』中   손봉호 저  PP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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