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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LNCK 2019. 9. 24. 21:33

 

◈기억하라                      신명기15 :15           2005.08.21. 설교녹취

 

▲감격의 광복 60년  (2005년 8월 설교)
지난 주간이 해방 60돌 기념주간이었다. 
이 해방에 대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

 

시인 심훈은“그날이 오면”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 그 날(해방)이 오면
   내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종로 행렬의 선봉에 서리이다
   그 날이 오면!"

 

그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날을 보았던 이 민족은 이렇게 노래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과거에는 그저 밀어닥치는 바닷물이었으나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에게 바닷물도 춤을 췄고, 나무도 노래했다

 

올해가 해방 60돐, 그 감격과 기쁨을 누린지 어언 60년이 되었다. 
이 감격의 해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기억하라”

 

신명기는 애굽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억하라”이다.

 

기억하는 것은 감사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기억할때 감사한다. 기억하지 않을때 배은망덕한다.

 

“너는애굽땅에서종되었던것과, 네하나님여호와께서너를속하셨음을기억하라!”
(신명기 15 :15)

 

이스라엘은 이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유월절을 해마다 지켰다. 
쓴나물과 누룩없는 딱딱한 떡을 먹으면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뿌리면서…

주께서 애굽에서 저들을 어떻게 해방시켜 주셨는지 기억했다.

 

초막절 절기 지킴을 통해서
- 주께서 40년동안 광야에서 저들을 어떻게 인도해주셨는가를 기억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을 떠나 초막(풀집)을 짓고 거기서 일주일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런 환경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인도해 주셨음을 기억했다.

 

고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늘 기억해야 한다.

기억할때 감사가 나온다.
종은 칠때 종이 되고, 불은 탈때 불이 되듯이
믿음은 감사할 때 비로소 믿음이 된다.
아직 내게 감사가 없으면 믿음 아니다. 그냥 기분이고, 자기 확신일 수 있다. 

 

 

◑2. 해방 60돐 맞은 우리,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의 초라했던 과거를 기억하라
이씨 왕조때를 돌이켜 보자.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보듯이
별로 변변치 못한 왕 한 사람을 위해 전 국민이 살았었다.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보편화되느냐> – 이것을 역사발전이라 말한다.
그러니 이씨 왕조는, 마지막 순종 때까지 아무 역사발전 없이 지냈다.

그 후 일제 식민지로 나라 잃은 수모를 겪었다. 

 

해방이 된 직후 우리 나라 GNP는 불과 23$였다.
지금은 1만4천$을 넘었다.  (2005년)

1960년대, 제가 대학 졸업후 받았던 봉급이 7~8천원이었는데, 
당시 환률이 480:1이었기 때문에 17$이었다. 
우리의 시작은 “그 수준”이었다.

 

▲경제 발전은 세계 역사에 유래없는 기적이다. 
주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어떤 사람은 독일의라인강의 기적, 일본의 동경만의 기적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 비교하면 기적이라 말 할 수 없다. 
그 두 나라 독일과 일본은
이미 세계를 대항해 전쟁할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패전해서 잠깐 고개를 숙였지만
자기 기본 국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쉽게 들 수 있었다.

 

혹자는 싱가폴, 홍콩, 타이완(한국을 포함 아시아의 4마리 용)을 
경제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 비교하면 기적이라 말 할 수 없다. 

 

이미 저들에게는 화교의 막강한 자금력과, 세계에 구축되어져 있던 시장력,
저들은 그 돈으로 물건을 만들어 그 곳에 팔았다. 
그래서 이 세 도시 국가들은 모두 큰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기술도, 자본도, 시장력도, 경험도 … 아무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민족상잔 육이오를 겪으면서 깡그리 무너진 국가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한국 자동차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거 한국차는 중고차 가격이 약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인들 인식속에 ‘한국차는 고장이 적다’고 해서
중고차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일본차 못지 않게 될 것이다.

저는 어렸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더라’는 
말을 듣고는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마을에 어쩌다가 자동차가 한 대 들어오면
너무 신기해서 배기가스에 코를 박고 냄새를 들이키며 차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런데 지금 세계 막강의 토요다가 중국에서 한국 현대 자동차에게 밀리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중앙아시아, 러시아에서도, 일본 차는 지금 한국 차에게 밀리고 있다. 기적이다.

쏘니는 세계 가전업체의 상징적 회사였다. 

 

그런데 쏘니는, 카메라 이외에는, 삼성과  LG에 완전히 눌려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기적이다.

 

▲정치발전도 기적이다
이씨 왕조 때, 왕 한 사람을 위해서 살았던 나라였다. 
직후에 일제식민지 – 아무 정치 경험이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런 정치적 자유를 갖게 되었는지…
멋진 엘리트들이 펼쳤던 사회주의가 정치발전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데
우리들은 강정구씨가 뭐라고 얘기해도 코웃음 칠만큼 – 정치가 발전되었다.

 

여러분 세계를 돌아다녀보시라, 우리 나라처럼 놀랍게 발전한 나라가 또 있는지?
일본도 천황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못 한다. 

 

그런데 우리는 노대통령을 개그 거리로 삼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군부 독재가 어제같은데…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문화 발전도 기적이다
코네티컷 음대, 커티스, 쥴리어드 교수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았다. 
거기에 한국인 교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그 학교에 거의 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무슨 콩쿨에 입상했다는 것은 신문에도 안 날 정도로 다반사가 되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 필하모니와 필라델피아 필하모니 악장이
모두 한국의 20대 청년들이다.

 

이제 한국의 좋은 연주가들을 모으면, 뉴욕 필하모니보다, 베를린 필하모니보다
더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유럽에 가 보면 오페라 공연을 많이 하며, 도시마다 오페라 극단이 있다. 
거기 오페라에 한국 사람 주역이 아닌 곳이 없다. 
지금 우리는 밀라노자 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보다 
더 좋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기적이다.

 

▲체육 발전도 기적이다
장창석이 올림픽에서 처음 은메달 땄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금메달은 우리에게 역부족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양정모가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니까
그 날 학교를 쉬는 등 전국이 야단법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금메달 한 두개에는 눈 꿈쩍도 안 하고, 세계 몇 위를 논하고 있다.

월드컵은 4강까지 진출해서 세계를 한국인의 축제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축복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발전한 근거는 무엇인가?
해방 후, 정치지도자 중에 한 사람도 백성들의 지지를 온전히 받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정치를 잘 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경제 주체들, 많은  CEO들이 민족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발전한 근거가 무엇인가?

 

기적이다. – 이것말고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이다.

 

▲영적 부흥의 기적
제 어린 시절에는 ‘백만 그리스도인’ 외치면서 자랐다. 
1970년대 초, 복음화 대회를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5만9천 모든 자연 마을에 교회 세워 주시고, 
하나님, 세워지는 빌딩마다 성경공부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가 오늘날 모두 현실화되었고, 
백만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천이백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기적이었다.

 

한국의 모든 분야의 발전은 – 교회의 발전 비율(%)과 같은 비율로 성장했다. 
요즘 한국 교회 성장이 정지하니까 →한국 경제 성장도 같이 정지하고 있다.

이것은 기적이다. 이것을 기억하시라. 기억하면 기적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거저 의미없는 사건으로 끝나지만, 기억하면 감사요, 기적이다.
그 모든 역사를 우리 주님께서 붙잡고 계셨다.

우리는 우리가 시작했던 비참한 그 때를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 절대 교만할 수 없다. 
지나온 60년 여정을 생각하면,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맛본 자들이 해야 할 일

 

네 동족 히브리 남자가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신명기 15 :12~14)

 

▲곧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들에게 주라(신15 :14)

이스라엘은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케되는 놀라운 복을 받았지만
<아직 그 복을 받지 못한 동족에게 그 복을 같이 누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누구와 이 복을 나눌 것인가? 바로 북한 동포들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 축복이 같이 전달되도록 하라. 주님의 명령이다.


▲나눔 사례 1: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보내게 된 사연
1992년부터 [남북나눔모임] 일을 했다. 
몇 년 해 봐도 신통하지 않아서, ‘이것 정말 의미가 있는가?’ 몹시 회의스러웠다. 
‘올 해는 그만 접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자매가 저를 찾아왔다.

 

이 분은 터론토 대학교 간호학 교수였다. 
남편 와인 가르트 는 [세계 식량 기구] 평양 주재원으로 있었다. 
이 자매는 안식년을 얻어서, 평양에서 남편과 함께 일 년을 지냈었다. 

 

그 후 귀임하는 길에 이들 부부가 서울에 들러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이 얘기는 제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가는 길에) 말씀드리고 갑니다.
목사님, 북한의 어린 아이들, 지금 형편이 어떤지 아십니까?

북한 보건성과 유럽 의사회와 평양 주재 의료단체 NGO들이 모여서 
평양 근교 아이들 영양표본조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수단, 소말리아, 에디오피아, 르완다 등에서도 봉사를 했었다. 
내전의 와중에 이리 저리 쫓기는 난민 어린이들에게도 같은 영양표본조사를 했다.
그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12%
평양 근교 어린이들은 16.8%의 결과가 나왔다. (더 나쁜 결과로 보임)
그러자 평양 당국은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문을 닫아 버렸다.

 

“목사님 기억해 주십시오.
어린아이는 24개월내 장기의 대부분이 한 번 자라고
그 후 사춘기때 두번째 자랍니다. 
그런데 24개월 이내에 아이들 장기가 작게 자라면
잔이 작은 컵에 아무리 물을 많이 부어도 넘쳐버리는것 처럼
나중에 아무리 영양을 공급해도 자라지 않습니다.

 

목사님, 보십시오, 
지금 북한 20~30대 아이들의 키가 155센티 넘는 아이가 드물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쪽에 와 보니까, 인종이 서로 다른 것 같더군요.”

 

이 말을 듣자 나는 마음이 섬짓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더 심각한 얘기를 계속했다.

 

“뇌는 95%가 생후 24개월 이내에 자랍니다. 
그 때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들 대부분이 정신지체아가 됩니다. 
목사님, 지금 아이들에게 우유를 공급해 주지않으면
한 세대의 아이들이 대부분 정신지체아로 자랄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적 재앙입니다…”그녀는 울면서 제게 이렇게 말했다.

 

그 때부터 저를 <친북파>로 매도하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었고
그 아이들에게 우유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한 번도 빠짐없이 북한에 우유를 보내고 있다.

 

제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625직후에 외국 형제들이 보내준 우유를 제가 먹고 자랐습니다. 
그들이 보내준 담요로 저는 추위를 막고 살았습니다.

 

어떨 때는 북한에 가서 돕는 일이 참 마음에 안 드는 때도 많다.(당의 방해로) 
그러나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쳐다보면, 그 모든 어려움들이 극복된다. 
울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형편을 보면…


▲나눔 사례 2: 연해주에 고려인 농장을 세우게 된 사연
(여기서 감자를 재배해서 기아에 처한 북한에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세계 모든 이민은 자기 삶의 질을 보다 향상하기 위해 떠나는 이민이다. 

 

그런데 나라가 지지리 못나서, 140년 전에, 조선인들은 국경선이 어딘지도 모르고 
연해주로 이민을 떠나서 경작을 하면서 살았다. 이것이 연해주 최초 이민 역사이다.

 

그러던 중 나라가 망하자 조국을 찾기 전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독립운동때 최후 항전한 사람들은 모두 연해주 출신이었다.
윤봉길 의사만 제외하고, ‘의사’가 붙은 사람은 거의 모두 연해주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1937년, 연해주가 재외동포 역사상 3번째 큰 재난을 당한다.
첫째,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사건
둘째, 관동 대지진
셋째,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넷째, 로스엔젤레스 흑인 폭동

이것이 재외동포들이 외국에서 당한 네 가지 큰 재앙이다. 

 

그 중에서 가장 극심했던 재앙은 블라디보스톡과 연해주에서 당한 일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사건

 

러시아인들은 고려인들을 콜레라 병원균의 주체로 매도해서 도시에서 쫓아냈다. 
그래서 그들은 한반도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신한촌’(신 대한제국 마을)
을 만들었다.

거기서 모든 독립운동의 기초를 닦아갔다. 

 

일제가 그 마을을 침공해서 불지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모른다.

*1937년 강제 이주는 더 큰 고통을 당한다. 
18만의 고려인들을 이주하기 위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설명도 없이 
공포감을 조성해서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먼저 3천명의 지도자들을 마을 어귀에 잡아다 즉결처단했다.

 

그래서 화물차 짐칸에 18만명이 40일동안 실려갔는데,
40일 동안 가는 도중에 벌써 1만5천명이 사망했다. 
장례식은 달리는 기차에서 시신을 차밖으로 내어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중앙아시아, 아무 농업 기반도 없이, 아무 설비도 없는 처지에 뿌려놓았다. 
첫 해 흉년을 지나면서 다섯 살 이하의 아이들은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통, 그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저들은 노력했다. 

 

그래서 공산체제 아래서 공부를 많이 시켜서 고위공직자, 의사, 교수로 키웠다. 
그러던 중 1989년 즈음에 소비에트 연맹이 무너지고, 공화국들이 독립했다.

 

그래서 옛날에 점령군이었던 러시안들을 러시아로 되돌려보내거나 무시하고,
또한 러시안 옆에서 출세가도 달리던 고려인들도 찬밥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60년 만에… 
총 55만명으로 추정되는 고려인 인구 중에 근 8~10만명이 벌써 되돌아왔다. 

 

(1937년 당시 18만이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70년 지난 지금 55만으로 추정)

8년전에, 내가 그곳 연해주를 방문해 보니, 
영하 30~40도 추위에 눈구덩이에 빠진 야생동물처럼 오들오들 떨며 살고 있었다.

 

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쌍해서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영하 10도, 난방도 제대로 안 된 집에서 살다보니 
자식이 자다가 이불 조금만 걷어차도 아침에는 자식이 얼어죽어 나온다. 

 

그래서 아침에 자식의 싸늘한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던 부모의 울음을 들었었다.

(이제 여기 연해주에 정부로 부터 땅을 임차해서 집단농장을 만들고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는 고려인들과, 또한 중국 조선족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그 수확물을 우리 교회가 사서 북한에 구호물자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려인/조선족도 돕고, 북한 동포들도 돕는 이중의 효과를 낳고 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저들을 놓아주라,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너도 그렇게 하라,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명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복이 우리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반드시 썩게 된다. 
그러나 그 복을 퍼내기 시작하면, 마르지 않는 샘이 된다.

우리가 이렇게 나누는 복스런 삶을 살면, 통일한국도 주실 줄 믿는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준비되었는데, 안 주시는 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아직 통일을 주시지 않는 것은 – 우리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준비되면 기적의 방법으로 주실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기적이고, 한국 문화가 기적이고, 한국 정치가 기적인데
통일에도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 통일을 선물로 주시면, 통일된 큰 나라를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를 복음으로 섬기는 [선교한국]으로 살아야 겠다. 
순서는 [성서한국] → [통일한국] → [선교한국]이다.

우리 한 번 다같이 크게 외쳐 보자!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


<남서울은혜교회홍정길목사님 0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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