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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인 거룩과 순결

LNCK 2019. 11. 4. 21:41

◈교회의 본질인 거룩과 순결          엡1:4          출처
1997 OMC 주제강의 2,  하용조 목사님

 

여러분,방법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누리가 이번에 하는 축제의 방법론은, 3년이 지나면 또 다 바뀌어질 것입니다.

이 방법론을 카피하지 마십시오. 더 좋은 것을 여러분은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규명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생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만약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바로 예수님이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 보여주셨던 그 교회,

그 본질에 가까이 우리가 접근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여러분의 지역에서 여러분의 은사에 따라서

바로 오늘 이것을 찾고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본질을 찾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온누리 교회가 처음 단계에서는 거룩과 순결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열 두 가정이 지하실에서 제자 훈련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말씀 사역에 눈을 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1985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 우리는 남자들 중심으로 교회를 끌고 가기 시작했는데

왜냐면 한국 교회는 너무나 여자 중심이어서 남자들이 기를 못 펴는 것을 보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여자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나는 남자들하고 목회를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분들의 동의를 얻고 남자들 중심의 목회를 시작한 것이 온누리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목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자를 좀 세워줄까?

여러분 여자가 변하면 가정이 변하지만 남자가 변하면 사회가 변화더라구요.

오늘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은 남자들이 변하기 않아서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여전도회의 사이즈와 남전도회의 사이즈는 아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40대 이후 남자들은 교회에서 할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그 분들이 세상에서는 다 전문성과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만 들어오면 할 일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말씀 사역 단계를 거쳤습니다.

제자 사역을 열심히 하니까 교회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몇 천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인 제 눈에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 교회를 시작한지6, 7년째 되어가던 해인데 교회가 날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도 많이 모이고 헌금도 많고 똑똑한 한 사람도, 비전도 많은데

교회가 날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비행기는 날아야 합니다. 아무리 비행기모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날지 않으면

자동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날긴 날되 일정한 시간, 일정한 거리에서 떠야 됩니다.

그 시간을 놓치면 날지 못하는 것이지요.

 

날지 못하는 교회들이 참 많습니다. 일단 시간이 지나가면 좌절감에 빠져버립니다.

덫에 거린 거지요. 그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가는 겁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에서 그러한 위기를 직감했습니다.

그 때가 제가 안식년을 가던 해입니다. 안식년을 떠났습니다.

저는 안식년 때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안식년, 지금도 안식년 기간인데요,

아주 큰 은혜를 받습니다. 쉰다는 것은 정말 일보후퇴는 일보 전진을 위한 것이더라구요.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가 하면 성령 사역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돌아가라.성령 목회를 해라.’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실, 그런 가르침을 받는 것이 고통스러웠는데

왜냐면 극단주의적인 성령주의자들 때문에 저는 시험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저는 계속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성령님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일방적으로 균형을 잃고 가는 것을 보며 좋으면서도

접근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꾸 제자 사역, 말씀사역으로만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저를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성령 사역으로 저를 끌고 가셨습니다.

 

항복을 했지요. 그리고 안식년에서 돌아오자마자 교회에 성령 사역을 선포했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교회가 뜨기 시작하더라구요.할렐루야!

 

저는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성령 사역, 성령 집회를 할 때,

교회 생긴 사상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본 적이 없을 정도였는데,

제가 선 설교단 외에는 사람이 다 찼고 식당,

1층로비, 층계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사모하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 때 제가 배운 게 있습니다.

‘목사는 교인보다 한 수 늦다.’ 교인들이 오히려 한 수 빠릅니다.

말을 안하고 있을 뿐이지, 다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냥 목사님에게 순종하고 있을 뿐인 것이지요.

 

여러분이 정말 성령님에 대해 마음을 열어 보십시오.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해 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메뚜기 떼들 같이 모여들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시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전이 있고 성령님의 강조가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는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두 번째 단계였습니다. ‘성령 사역’.

그리고 갑자기 사람이 불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고

여러 가지 영적인 사건들이 마구 일어나기 시작하니까

자연히 저는 기도사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러분 성령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땔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산불이 일어나도 땔감이 없으면 언젠가 꺼지게 돼 있더라고요.

이 성령의 불이 계속 지펴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계속 나타나기 위해서는

‘기도’라는 땔감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기도의 연료를 보급해 줄때는 영원히 불이 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온누리 교회가, 특별히 제가 새벽 기도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릎 꿇고 제단에서 기도하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안심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기도하는 쪽으로 몰고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1994년부터 우리가 중보기도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중보기도 사역에 우리가 눈을 뜬지가

교회적으로 보면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기도하면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기 내면을 들어다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자기의 내면을 들어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더러운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이

이러한 자기 내면적인 문제들을 다 적당히 숨긴 채 사역에만 미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님께 헌신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꾸 문제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부는 기도를 할 때만 보입니다.

전도할 때도 안 보이고 봉사할 때도 안보입니다.

구제할 때도 안보이고 사역이 신날 때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영웅처럼, 순교자처럼 보일 뿐이지요.

 

그래서 많은 교회가 성장한 다음에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이라는 사고도 있지만

하나의 사고는 ‘순결한 거룩’의 문제에 걸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내부를 조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를 조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래서 우리가 정직하게 해답을 내리면서 내놓은 표어가 바로‘거룩과 순결’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거룩과 순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교회가 얼마나 큰가하는 것에 있지 아니하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네가 얼마나 거룩하고 흠없고 티없는 내 자녀인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실 일로 따진다고 한다면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일하겠습니까?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사역할 수 있겠습니까?

 

쥐꼬리만한 사역을 가지고 자꾸 우리는 율법같이 하나님께 내놓는 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교회가 이렇게 큽니다.몇 부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몇 명 파송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합리화하기가 쉽다는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관심이 없으세요.

 

하나님이 정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교회의 거룩’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거룩한가, 성도가 얼마나 순결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이 많고 돈의 위력이 높고 복잡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이 세상 가운데서

과연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신부로써 존재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과 순결을 지키려면

얼마나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오래전에 그런 얘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형제 가운데 한 분이 음악을 하고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인데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세계일보, 즉 통일교죠. 그 쪽에서 섭외가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당시 2천만원짜리니까 지금은 대략 1억 정도에 해당하는

그런 적은 프로그램이 아닌 섭외가 들어온 것입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신앙은 신앙이다.

이것은 비지니스니까 내가 중앙일보 일을 하든 세계일보 일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 일이 좋으니까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보니깐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저를 찾아 온 것은 일을 하겠다는,

소위 “목사님! 술집 차려도 됩니까?”하고 허락받아 술집 차리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형제님이 결정하십시오. 나한테 묻지 마세요. 형제님은 대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제가 오히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밝은 얼굴로 왔습니다.

“목사님! 일 안하기로 결심했어요. 2천만원을 포기하니까 2천만원짜리 기쁨이 있네요!”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유혹과 쾌락을, 이익을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서 집을 짓는다든지, 무언가를 할 때,

여러분!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치는 그런 합리성을 갖기 쉽습니다.

교회 일이니까, 주님의 일이니까, 이런 건 넘어가도 괜찮겠지? 이런 건 눈 감아줘도 괜찮겠지?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도덕을 무디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전도한다는 이유로, 교회 부흥이라는 이유로

남의 양들을 사정없이 훔치는데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도덕과 양심을 쉽게 팽개쳐버리는, 그렇게 해서 교회도 성장했고 유명해졌지만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영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짜 꽃은 영향력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여러분, 들에 핀 작은 민들레는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크냐,작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거룩하냐, 순결하냐 하지 않느냐에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순결과 거룩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순종과 헌신입니다.

 

저는 교회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거룩해야합니다 성도는 순결해야합니다.

 

계시록을 보십시오.창녀와 음녀와 신부가 싸우고 있습니다.

결국에 이 세상은, 계시록적인 그림에 보면 마지막은 음녀와 신부의 싸움입니다.

음녀가 바벨론 도시를 타고 있지 않습니까? 짐승을 올라타고 (간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오늘 날 우리가 보고 있는 미래 사회인 것입니다.

 

미래 사회에서 신부가 어떻게 광야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외로움과 고독과 갈등과 신음 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교회의 본질은 거룩과 순결이라는 것이죠.

 

많은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교회는 교파로, 건물로, 제도로 이해하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일 날 성도들이 온누리 교회라는 건물에 들어오시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생명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12년 목회 생활에서 부단히 싸우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교회 안에서 어떤 세력이나 조직, 어떤 제도가 생기면 무차별 사격해 버리는 것입니다.

유를 불문하고 다 깨버립니다.

그것이 있으면 교회가 죽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교회는 순수한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생명으로 움직이는 것이죠.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씀 중에 우리가 '교회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에베소서 1장이죠.

 

에배소서 1장에 보면 하늘의 신령한 목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원하는데

거룩하고 흠없고 티 없는 백성으로 우리를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네 가지 질문을 이런 각도에서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거룩하고 순결한가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옥합을 정말 깨뜨렸는가?

 

우리가 헌신했는데 정말 헌신했냐고 다시 물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헌신하셨습니까? 여러분 정말 옥합을 깨뜨리셨습니까?

기에 아직도 우리의 해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모든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교인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 목사의 설교를 듣고 문제가 생겼거든요, 결국 목사 책임입니다. 우리 설교의 문제입니다.

 

설교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 영적 지도자들은 거룩하고 순결한가?교회 헌금 많이 내는 것이 유익한가?

적게 내더라도 거룩하게 사는 것이 유익한가?

 

저는 저희 교회에 실버DTS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것을 여러분에게 정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실버 DTS는 은퇴 연령에 가까우신 분들이 교회에 헌신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선교사로 가기도 그렇고 또 특별히 선교사로 가려면 이렇게 말씀 전하고

전도하는 은사도 같있는 것이 좋은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은행에서30년 계셨던 장로님이 한분 계시는데

그 분이 은퇴를 놔두고 사임을 하고서 저희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냥 교회에 봉사하는게 아니라 그 분은 교회 직원으로 오셨습니다.

단 월급만 받지 않으십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6시에 퇴근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30년 동안 겪었던

세상의 경험을 가지고 교회에 봉사를 합니다.

수입이 없기 때문에 그 분을 가만히 보니까

자동차를 바꾸시더라구요. 작은 차로,

집도 작은 것으로 바꾸고 생활수준을 줄이시더라구요.

그래도 다른 곳에서 돈 받고 사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삶에서 거룩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자기를 제한하고 누릴 수 있지만 안 누리고, 가질 수 있지만 안 갖고,

유명해질 수 있지만 안하고, 주님을 위하여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 그것이 거룩입니다.

 

그렇다고 그 분의 삶이 완벽한가,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 비슷한 분이 한 분, 두 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분은 사장하시던 분도 은퇴를 하고는

다른 직장을 갖지 않고 그 일을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저희 교회 최고 연령 선교사님이72세인데 그분은 68세에 떠나셨습니다.

저희 교회 첫 번째 장로님은 현역 투스타로 계시다가 제대하자마자 1년 지난 후에

일본으로 가셔서 신학교에 들어가셨습니다.

큰 집에서 살던 것 다 포기하고 십 년 동안 조그마한 기숙사에서..

그렇게 그분은 58세에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 나이에 부부가 신학생이 되고 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졸업하고 지바현에서 일본사람 세사람과 교회도 없어 다다미방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냥 응접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영적지도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당신의 교회의 장로의 모델은 무엇입니까?

 

또 어떤분은 50세 때 저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의사로써 이만큼 잘 살아왔습니다.

(그때가 마침 조선족 연변족이 소개되었을 때입니다)

나는 저분들을 위해 내 남은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

 

병원을 처리하고 그 좋은 집 다 팔고 농장 다 팔고 지금도 중국의 한 모처에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누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여러분 과연 우리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요?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요?

고민하고 몸부림치고 있는가?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 공동체라는 것이 거룩한가?

교회공동체가 추구하는 그 목표가 거룩하고 순결한가?

우리 성도들의 삶은 거룩하고 순결한가를 물어야 됩니다.

 

여러분, 교인이 많을 수 있습니다.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도 빠지지 않는 축에 속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시점에서 다시 교회를 반성해 보고 비판해 볼 때

그것이 중요하지 않더라구요. 많다고 영향력 주지 않더라구요.

 

유명한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 이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혹시 목회에 숫자가 작아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계시는 분들은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적기 떄문에 영향력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영향력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정말 거룩하고 순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셨던 그 교회에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시대에 영향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참 신비로운 거예요.

‘교회가 하고 있는 사역은 거룩한가?’

 

첫째, 교회의 본질은 거룩과 순결입니다.

두 번째, 성도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에겐 순종과 헌신의 삶이 필요 합니다.

 

에베소서1:4~5절에 보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흠 없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가?

교회의 목표가 거룩이라고 한다면 성도들은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제가 현재 교회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좌절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오늘 날과 같은 교회 시스템을 가지고 세상이 변화될까? 저는 자신 없습니다.

 

주일 날 교회 오고 수요일 날 교회 오고 새벽 기도 좀 나오고 그리고 장로 되고 집사 되고 목사되고...

그렇게 사는 것으로 세상은 변할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가, 같은가?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교회 다니는 것 외에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과연 당신은 다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어디 있을까?

 

저는 그런 부분에 들어오면 자신감을 잃습니다.

이 마귀는요, 너무나 똑똑해서 우리보다 항상 앞섭니다.

구원이 중요하니까 구원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강조하면 '당신은 구원파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것 중에 또 뭐 가 있는 줄 아십니까?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너무 중요한데 극단적인 이상한 성령파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접근하려다가도 그 분들을 보면 시험 들어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게 성령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구원 얘기 안하고 재림 얘기 안하고 성령 얘기 안하면 무엇을 얘기합니까?

아무것도 얘기 안해야죠. 그게 현실적인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공동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공동체는 크라이막스입니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의 삶이 진짜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알기 때문에 통일교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오대양을 먼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박태선 신앙촌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 공동체로 같이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근본적으로 우리 마음에 좌절감을 심어놓은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교회와 같은 형태에 조직, 구역, 순 이러한 것을 가지고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근본적인 힘이 없다는 것이죠.

 

여전도회, 남전도회 가지고서는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떤 힘을 갖기 어렵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기 위하여 공동체적으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죠.

사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구원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강조해야 합니다.

다미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재림을, 영광스런 재림을 얘기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성령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에 대한 그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며

공동체에 위기가 많이 있을지라도 기독교의 공동체는 다시 재건되어야합니다.

때 세상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 헌신자 학교인데요,

삼사십명이 합숙을 하며 월요일에 교회로 퇴근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밤11시까지 훈련을 받습니다. 잠을 잡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 시간 공부를 하고 밥 먹고 직장을 갑니다.

월, 화, 수,목, 금, 토, 금요일 까지 그렇게 합니다.

토요일에 빨랫감을 가지고 집으로 갑니다.

토요일, 주일에는 집에서 살면서 교회에 봉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에 교회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4개월을 합니다.

회가 그러기를 쉽지 않지만 시도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4개월을 훈련받고 나면 1년, 2년

교회를 다니는 것보다 신앙이 점핑을 합니다.

 

조금 더 헌신하고 싶은 사람들은 강원도에 있는 용평에 헌신자 스쿨이 있습니다.

한 20~30명 들어갈 수 있는 집인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학교도 휴학을 하고 직장도 포기를 하고 그곳에 들어갑니다.

월, 화, 수, 목,금까지 그곳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훈련받고

성만찬을 하고 간증하고 교제하고 그렇게 두 달,세 달을 보냅니다.

 

조금 더 헌신하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근처나

번동 같은 곳에 사역지를 만들어 놓고 사역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 줍니다.

 

일년 정도를 자비량으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죠.

그것보다 조금 더 헌신하고 싶은 사람들은 선교사님 계신 곳에 인턴쉽으로 파송을 합니다.

 

그 중에는 여러 가지 조금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교인들이 헌신 공동체로, 순종하는 공동체로,

주의 말씀에 헌신하는 그런 공동체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제 자신도 감동을 받은 프로그램입니다만

이번 여름에 작년에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약 한 8백여명이 국내로 아웃리치를 갔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작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준비를 해서 약 1천여명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일대로 미국, 맥시코까지 단기 선교를 천명이 떠났습니다.

 

그 천명이 어떻게 해서 떠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이 바로 그런 헌신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갑자기 하자고 하면 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헌신자 스쿨, 번동, 하나로, 열린 이웃,

끝임 없이 이러한 도전과 연습,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가 “단기 선교를 떠납시다”라고 말했을 때 천여명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대학생이 150명, 청년들이850명, 54개팀, 23개국 나라에

약 한 11일에서 20일 정도 전부 아웃리치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굉장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개교회가 말이죠, 천 명이 청년들이 아웃리치를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일은 돌아와서 그들 중에 2백명이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론 당장 다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 몇 십명은 이미 선교 훈련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로 순종하고 헌신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선교사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선교사로 갈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 10%로나 20%정도의 사람일 겁니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직장을 선교지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월급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장을 복음화 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런 믿음과 그런 철학과 사명을 가지고 그 직장에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순종과 헌신 프로그램입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자기의 삶을 헌신하도록 유도해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온누리 교회의 이상은 마음을 드리는데 있지 않고 몸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몸까지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받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헌신 없는 교회, 헌신 없는 공동체,

순종하지 않는 교인들,

교회가 순종하지 않고 헌신하지 아니하면 교회는 딴 생각을합니다.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기 시작하고 분열하고 싸우는데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고 순종하고 거룩과 순결을 추구하다 보면

놀랍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들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 큰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누리 이미지라는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누리 인들은 이런 성품을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성품의 이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설교에 나오는 8가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의 이미지로,

우리의 성품으로 생각을 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온누리맨의 생활 양식, 로마서 12장에 나타나고 있는 크리스챤의 삶의 양식을

우리의 지표로 삼아서

이런 두 방향으로 온누리 교인들이 성장하고 헌신하고 순종하고

거룩과 순결의 삶을 살도록 유도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과 로마서 12장은 여러분들이 다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의 교회에 그런 성도들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끌고 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태복음5장에 나타난 8 가지 성품을 한 번 보십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신과 이웃과 사회를 보면서 애통해 하는 사람,

성품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어려운 이웃을 보면 언제나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하고 언어가 정직한 사람, 미움과 분쟁이 있는 곳에는 사랑과 화평을 심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이것이 바로 온누리 맨들이 갖고 싶은 이상과 목표입니다.

 

이렇게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과 순결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만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녹색은 녹음 안 함) 저는 온누리 교회 목회하면서 마음을 하나 먹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우리 교회 집사님들 경우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집사님이다, 순장님이다 이러시면

   세 번,네 번은 나오시는데, 저는 일주일 다 나왔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가끔 미안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족은, 사업은 어떻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목표는 이 분들 시간을 뺏는 것입니다.

 

   제 목표는 성도들의 시간을 예수님께 다 뺏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성도의 돈을 다 뺏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위한 최대의 축복이더라구요.저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 시간을 뺏고 예수님께 미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데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은사는 다 예수님을 위해 쓰도록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이 교회를 안오면 어디로 갈까?

   교회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면 저는 말리지 않습니다.

 

   교회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서 더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가도 좋다는 것이죠.

   그런데 대게 보니까 교회보다 못한데 가더라구요.

   TV앞에 앉아 있다던가, 연속극을 본다던가,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 헌신시켜라! 철저하게 헌신 시켜라!

예수님 앞에...

 

사람 앞에 헌신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라는 제도 앞에 헌신시키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그의 삶을 헌신을 시켜라!

저는 거기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니까.....

 

저는 선교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헌신한들 선교사님만큼 하겠냐는 것이지요. 그분들은 삶 전체를 포기하고 가서

거기서 정말 외롭고 고독하게 사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타이틀 있는 목사가 있고 타이틀 없는 목사가 있다.

나는 타이틀 있는 목사고 여러분은 타이틀이 없는 목사다.’ 우린 다 똑같다는 것이죠.

부름도 헌신도 똑같은 것이고 수준이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선교사고 누구는 선교사 아니고 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가야한다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전 교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변합니다.

예수를 믿는 집단과 믿지않는 집단과는 무슨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 있는 10가지,

우리 온누리 맨의 생활 양식을 말씀해 보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사람,

이 세상과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

자신의 영적 은사를 최선을 다해 사용하는 사람,

사랑으로써 서로 존경하고 먼저 받드는 사람,

다섯 번째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사람,

여섯 번째,소망과 인내의 기도의 사람.

일곱 번째, 마음과 몸과 물질로 사람을 섬기는 사람.

여덟 번째,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

아홉 번째, 마음을 같이 하고 낮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

열 번째,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

 

▲우리 교회가 2000명 선교사를 보내고 만 명의 사역자를 보내는 비전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장로님께서 “목사님 생각이세요?하나님이 정말 그런거세요?” 하고 물으시더라구요.

 

저도 2000명 선교사 보내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것도 10년 사이에. 눈 뜨고 생각해보면 안 될 것 같고 눈 감으면 될 것 같습니다.

기도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고 생각해 보면 안됩니다.

 

그래서 눈감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삼백 한 오십여명의 선교사를 supporting하고 있더라구요.

그 중에 약 70여명은 우리 교인들입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변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순종하고 헌신의 삶을 살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다 사역자로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아까 (경북 봉화에 내려가 개척한) 한 자매가 간증을 했죠?

그런 간증을 예로 들자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그 자매의 간증을 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분이 아니거든요.

 

라채광 의사는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간증의 대상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게 되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러나 보통 미용사 하시는 분도 그런 헌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수준에, 자기 영역에 맞게, 이것이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누구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는 무엇인가? 바로 거룩과 순결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는 무엇인가? 순종과 헌신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같이 공동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경배와 찬양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긴 치마에다가 화장도 안하고 머리도 길게 땋고...

하지만 경배와 찬양하면,제가 볼 때마다 감동을 합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체육관에서 모임을 했는데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운동장에 뺑 둘러 손을 들고서 비가 아무리 오고 추워도 비 맞고 한 시간, 두 시간씩 있는것입니다.

 

똑똑한 크리스쳔들, 그거 하겠습니까? 안합니다.

이번에도 우리 식구들 봉사를 많이 했는데 일감이 있어야 봉사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교회에 봉사하러 왔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목사님! 사람을 오게 했으면 일을 줘야죠.”

 

제가 뭐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거기 서 있는 것이 일이라고.

그냥 세 시간 서 계시라고. 꼭 성취감이 있는 일이 아니라 해도 그것이 봉사고 헌신이라구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개인적으로 두란노도 있고 온누리도 있고 일이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바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바쁘게 생각하는 것이지 저는 안 바쁩니다.

왜 안 바쁜 줄 아십니까?
헌신하면 안 바쁩니다.

 

저는 온누리하고 두란노에만 헌신했거든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부탁해도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온누리가 뭐라고 하면 저는 순종하고

두란노가 뭐라 그러면 순종합니다.

 

헌신했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일에 시간 안 뺏긴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중국에 헌신했을 겁니다.

 

그 사람은 아프리카에는 안 바쁜 사람이에요. 중국의 일에만 미치는 것이죠.

이것이 헌신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킨 일만 하는 겁니다.

 

그 때 시간은 여유가 있습니다. 할 일이 없거든요. 가만히 있는 겁니다.

일한다고 일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일입니다.

일정한 시간에 내가 일을 해도 되고 일을 안해도 되는 겁니다.

 

땀을 뻘뻘 흘려야만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순종과 헌신이 그런 것입니다.

 

그 분에게로 헌신하기로 결정했으면 일을 시켜도 헌신이고 안 시켜도 헌신입니다.

그 분에게로 순종하기로 결정했으면 이해가 되도 순종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시키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일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일 내용 가지고 일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 그 사람에게 순종하기로 했으면 그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해도 듣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해도 듣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그러면 떠나는 겁니다.어디로 갈꺼냐?

잘 모릅니다.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본질은 거룩과 순결입니다. 여기에 집중해 보십시오.

우리 영적 지도자들의 삶에 거룩과 순결에 집중해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상하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적 권위가 생기는 것을 여러분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가 벌벌 떠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요? 돈은 굴러다니는게 돈이요, 내 주머니에 들어오느냐 안 들어오느냐가 문제지.

돈 걱정하지 마십시오. 돈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과 순결을 사모하고 가고 있다면

그 돈은 다 여러분의 주머니에 굴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오고 돈도 다 옵니다.

문제는 거룩과 순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양적으로 비교하지 마십시오! 다 은사가 다를 뿐입니다.

 

작은 교회 하고 싶어서 작은 교회하신 분 있습니까?

큰 교회하고 싶어서 큰 교회하신 분 있습니까?

큰 교회가 되니까 큰 교회 하는거고, 작은교회 됐으니까 작은 교회 하는 겁니다.

있는대로 만족하고 사십시요.

그것을 가지고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다 은혜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있는 성도들을 축복을 해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교인들이 한 명 모였는데 이 목사가 생각하기를

‘나는 1천명 목회를 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마음으로 100명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저하되겠습니까?

그런 눈으로 보고 그런 눈으로 설교하지 마십시오.

 

왜 나에게는 1000명이 없는가 하지 마십시오.

100명이 과분하다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이런 영광스런 주님의 신부들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기막힌 이 기적을 감사하고 감격하고 정성으로 섬기고 발을 닦아주면,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런 축복이 여러분의 교회에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거룩과 순결을 생각하십시오. 교회의 본질은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의 목표는 성도들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이냐, 순종과 헌신에 있습니다.

 

삶을 헌신시키십시오. 여러분의 교회 목회에서 신학생 하나 못 만들어 냈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 목사가 좋아 보여야 합니다. 다 따라 갑니다.

‘나도 해야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모델이 여러분은 되셔야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두 번째 시간에 저희들이 순종과 헌신,거룩과 순결을

그리고 순종과 헌신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거룩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영적 지도자들이 순결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순종하고 헌신의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게 시간 뺏기지 않게 도와주옵시

스물네시간 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교회가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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