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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체계의 중요성 GL

LNCK 2019. 11. 5. 10:53

◈양육체계의 중요성                  고전4:15              출처
1997 OMC 주제강의 5강

하용조 목사


아기를 낳았으면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부모들은 애기 낳는 걸로 자기 일이 다 끝났습니다.

일제 시대나 6.25때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울 만한 힘이 없었고 학교 제도도 없었습니다.

아이 한 번 잘 키우려면 논 팔고 소 팔고 시골에 있는 부모들이 허리뼈 빠지게 일을 해서

학비 보내서 서울로 공부를 시켰고 일본으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날 근세 사회의 한국 사회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은 다편한 환경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기막힌 환경에서 공부를 했죠.양육이란 게 그런겁니다.


여러분‘알아서 다 크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6.25때 얘깁니다. 보리 고개 때 얘깁니다.

저희들도 6남맵니다. 남자 셋, 여자 셋인데 저희들은 형님이 목사고, 누님이 목사 부인이고,

제가 목사고, 제 누이동생 하나가 변호사 부인인데 그 친구만 좀 그러고 있고,

밑에 동생이 선교사 부인이고 막내 동생이 경배와 찬양하는 하용인 선교사에요.

저희 가정은 전부가 다 부름 받아 나선 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들이 과외 공부를 시키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애들을 그렇게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여러분 전도해서 교인들이 왔어요.

옛날에는 주일날 예배드리고, 구역 예배 드리고, 수요일 예배드리고,새벽 기도하면 됐어요.

그러면 그저 무난히 살아갔어요.


그러나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병들이 있어요.

옛날에 보지 못한 암들이 있어요. 에이즈까지 있어요. 그리고 엄청난 사람들이 이혼을 해요.


최근에 우리나라의 통계를 보면 결혼한 지 5년 미만의 이혼율이4-50%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주변 환경이에요.

얼마나 많은 폭력과 마약, 청소년들의 방황과 타락이 있습니까?

이 아이들을 옛날식으로 그냥 적당히 맡겨 놓고 너 알아서 크라고 하면 되겠냐는 거예요.


옛날에는 알아서 크는 게 됐지만,지금 시대에는 알아서 커라 그러면 깡패 돼요.

뭐 그냥 그대로 가는 거에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에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옛날에는 그저 교회 중심으로 주일 예배 드리고 심방 대심방하고 그러면 됐어요.

목회가 그 이상 별 필요가 없었지만은, 이제 현대에 80년대 90년대로 넘어오고,

2000년대로 가면서 우리들의 주변 환경은 굉장히 복잡해진 거에요.


이제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양육시키고 제대로 가꾸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바로 자랄 수 없는 위험한 환경 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

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깁니다.


여러분,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키우는 것입니다.

교인들을 전도했으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정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재생산해서,

제자를 만들고 리더쉽을 주고 영적인 비젼을 주고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의 책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육 체계의 필요성입니다.

교인들을 전도하는 것으로 끝나고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을 양육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시켜서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리더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교회가 그런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 대부분의 많은 교회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교회가 양육 체계가 없이 주먹구구식 양육을 합니다.


목사님들이 세미나 갔다 올 때마다 교인들이 고민스러워요. 왜요?

세미나 갔다 올 때마다 방법이 바뀌니까 헷갈리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목회 철학이 없다는 얘기예요. 목회 철학에 근거한 양육 체계가 없다는 것이죠.


첫째, 교회는 있어야 돼요. 성경적인 교회란 뼈대가 있어야 돼요.

교회가 무엇인가? 영광스런 주님의 교회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죠.

이것이 내 몸 속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목회자의 몸 속에 이 교회론이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그가 설교를 하든 기도를 하든,그가 상담을 하든 잠을 자든 잠을 깨든 길을 걸어가든,

것이 몸 속에 절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은 안 된다니까요.


여러분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큼 교회가 됩니다.

잠을 자도 교회, 밥을 먹어도 교회. 꿈을 꿔도 교회.

이 교회에 대한 생각이 내 몸 안에 폭 젖어 있어야 돼요.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셨던 바로 그 교회,

거룩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몸인 주님의 교회.

그리고 순종하고 헌신하는 성도들.

교회론에 의해서 목회 철학이 결정되는 것이죠.


회 철학은 같을 수가 없어요.

같은 지역에서도 교회마다 그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다 다른 거예요.


목회 철학 없이 목회하는 것은 주먹구구식의 목회, 되는대로 목회...

되는대로 목회는 되는대로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목회 철학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왜 목회 그 자리에 가셨습니까?

제가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왜 그 교회에 가셨습니까? 초청했기 때문에요?

아니에요. 초청한다고 다 가지 마세요. 부른다고 다 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야 돼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서 그냥 죽어야 돼요.


거기 가서 고민합니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어디로 가야 되나’

이건 안 되는 사람이에요. 두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면 붙잡아도 가세요. 거기 있을 필요가 없어요.

월급 많아도 가세요. 환경 좋아도 거기 있으면 안 돼요. 죽습니다. 곧 죽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주님의 뜻이면 내쫓아도 있으세요.

목을 걸고 있으세요.피를 토하고 있으세요. 그러면 주님의 교회는 되게 돼 있어요.


목회 철학이 중요한 거예요. 목회 철학이 있다면 목회 철학에 대한 방법론이 필요한 거예요.

그럼 내가 이 교회, 주님의 교회에 이러한 목회 철학을 가지고

내가 이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을 위한 이런 목회를...

주님의 교회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것이지요.


이제 여기 두 가지 중요한 큰 흐름이 나옵니다.

하나는 양육 체계, 또 하나는 설교입니다.


설교는 교회를 만들고 teaching은 교인을 만듭니다.

당신이 어떤 설교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의 캐릭터, 교회 크기, 교회의 사이즈, 교회 칼라,

교회의 이런 특징들이 결정되는 것이죠.


그러니 설교를 함부로 아무렇게 하면 안 돼요.

왜 오늘 사도행전 본문을 택했냐? 로마서를 택했냐? 왜 이사야서를 택했냐?

그냥 하면 안 돼요. 그것이 여러분의 목회 철학과 하나님의 부름에 맞게

그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죠.


마구잡이로 설교하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좋은 예화를 발견했어요. 기막힌 예화. 예화를 위한 설교를 만들더라구요.

설교를 위해서 예화가 필요하지.좋은 예화가 있다고 설교 만들면 큰일 나요.


여러분 교인들 제자 훈련해요. 제자 훈련을 왜 하세요?

제자 훈련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지금 왜 그 교재를 쓰세요? 배우는 사람, teacher, 교재가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목회 철학은 목사의 부름, 교인의 부름, 교회의 부름이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딱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나하고 안 맞으면 많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설교 같은 것은 얼마나 깎아내리느냐가 문제에요.

너무 할 말이 많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해요.

그것은 아주 대단하게 버려야 돼요.

아무리 좋아도 그 메시지에 안 맞으면 cut시켜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메시지가 살아나는 거예요.


양육 체계도 cross way를 왜 하세요? 일대일을 왜 하세요?

네비게이토 교재를 왜 쓰세요? 어떤 근거에 의해서? 어떤 체계에 의해서?

어떤 순서에 의해서? 이게 전부 있어야 돼요.


1단계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고, 2단계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고,

여러분 아기를 낳으면 어머니 젖을 초유라고 합니다.

한 번도 젖을 안 먹어 본 아이가 처음 먹을 땐 보통 우유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 우유는 농도가 짙은 거예요.

그 우유를 먹으면 설사하게 돼 있어요.

처음 우유를 주면 다 설사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 다음에 양분을 주는 우유가 나오는 거죠.


하나님이 우유 하나 만들 때도 그렇게 만드셨어요.

이 아이가 자라면서부터 어머니의 우유의 성분이 똑같지 않아요.

거기에 맞게 우유가 공급되는 거에요.

우유만 계속 먹으면 안 돼요. 그 아이는 죽을 먹어야 돼요.


계속 기어다니면 안 돼요. 걸어 다녀야 돼요.

그리고 성인이 되면 뛰어 다니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어요.


그 다음에 밥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그 다음에 고기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생체, 인체도 그렇게 만드셨는데...


우리의 영의 system, spirit의 system도 마찬가지에요.

적절하게 필요하게 공급을 해 줘야만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게 되는 것이죠.


궁극적으론 먹여 주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기 때나 먹여 주는 거지,

어른이 돼서 먹여 주면 기분이 어떠세요? 안 좋죠.


음식은 만들어 줘서 먹는 게 좋죠. 그러나 진짜 음식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서 자기 입맛에 먹을 수 있을 때, 성숙한 입맛인 거예요.


양육 체계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10년 다녔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20년 다닌 사람하고 10년 다닌 사람하고 차이가 없는 거예요.

오로지 차이가 있다면 세월만 차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은 성숙해지지 않고 테크니컬 해져요.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오래 다니면 익숙해 질 뿐이에요.

교회에 대해 테크니컬 해져요. 저는 여러분들이 목회를 함에 있어서

이 양육 체계의 중요성을 오늘 이 시간에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13절은 우리 모든 목회자가 늘 즐겨 읽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함이요. 봉사 일을 하게 함이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당신을 왜 목사로 뽑았느냐, 하나님이 당신을 왜 교사로 뽑았느냐,

당신을 왜 전도사로 뽑았느냐

우리를, 나를 왜 그 교회의 목회자로 세워 주셨느냐,

세 가지 목적 때문에 그런거예요.


첫째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에요.

목사님은 딴 짓하면 안 돼요. 총회에 넘어가시면 안 돼요. 노회에 너무 관심 있으면 곤란해요.

그것은 꼭 필요해서 갈 뿐이에요. 그게 목적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의 최대의 목적은 양들을 돌보는 거예요.

여러분의 시간의 대부분은 설교와 가르침에 쓰셔야 돼요.

단 행정의 능력 있거나 은사가 있는 기관 목사는 다르겠죠.


만약 당신이 목자라면, 아니 목사라는 말은 뺍시다. 목자라는 말이 중요해요.

목회라는 말 보다는 목양이라는 말이 좋아요.

목회. 그러면 너무 정치적이에요. 교파적이에요. 행정적이에요. 그런 뉘앙스가 있어요.


우리는 목양을 해야 됩니다.우리는 카우보이가 아니에요. shepherd에요.

카우보이는 회초리를 들고 말을 타고 소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에요.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로,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양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에요.


막대기로는 사나운 짐승을 막는 거예요.

지팡이로는 양떼들이 갈 길을 인도해 주는 거예요. 이것이 목자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개념은 목사가 아니고 목자인 것이죠.


우리가 양들을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건 목회가 아니라 목양이에요. 이게 더 중요해요.

목양이 잘되었을 때 목회가 잘되는 거죠.


목자가 잘되었을 때,목자의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했을

우리가 목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죠.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면 얼마나 비극이겠습니까?


자 하나님이 우리를 왜 목사로 불러 주셨는가,

왜 전도사로 불러 주셨는가, 부목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목사냐 목사냐 이건 안 중요한 단어에요. 목사님들 목에다 힘주지 마세요.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나 다 마찬가지에요.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를 뭐하게 하는 것이라구요? 온전하게 하는 것. 우리 임무가 이것입니다.

떼를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뭐에요?

목사님들 다른 데 시간 쓰지 마세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 중에 한 분이 옥한흠 목사님이신데, 그 분은 참 신비스러운 분이에요.

전화 걸면 항상 있어요. 방을 안 떠나세요.

그렇게 큰 목회를 하는데도. 그리고 만나도 얼마나 깍쟁이 같이 시간 관리하는지 몰라요.


교인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 목자의 심정인 거예요.

옛날엔 안 그랬는데, 저 같은 경우는 우리 부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회의를 하면 느낌이 제가 꼭 사장 같습니다. 지시를 하고, 야단을 치고,

왜 이걸 안 했냐... 이렇게 해 달라 그러고 나면 제 마음이 그렇게 씁쓸해요.


저는 심방하는 특권을 요즘 잃어버렸죠.

누구는 심방하고 누구는 심방 안 할 수 없으니까 말이죠.

그러다가 또 병든 자를 심방한다든지 특별한 경우를 심방하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축복하고 돌아오면 그날 밤은 제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제야 목사가 된 것 같습니다.


그게 목사더라구요. 우린 어쩔 수 없이 행정을 안 할 수 없지만 우린 목자가 돼야 합니다.

양을 돌봐야 되고 개인적으로 전도를 하고 있어야 되고 일년이, 이년이, 삼년이 걸려서

한 영혼을 위해서 전도하고 있어야 되구요. 성경을 가르쳐야 되구요. 중보기도하고 있어야 되구요.

그 사람이 아플 때 내가 아프지 않았으며,그 사람이 가난할 때 내가 가난하지 않았더냐.


3년 반동안 눈물을 흘리며 사도 바울이 목회를 했던 것처럼

이 목양을 했던 것처럼.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도를 위하여,온전케 하기 위해. 교인들이 적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 돌볼 수 있으니까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할 수 있잖아요.


하루에 한 번씩 편지 쓸 수 있잖아요. 그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100명 200명 눈에 뻔 하잖아요.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들, 100명 200명 놓고 왜 그렇게 거대하게 예배드리세요?


전 그것도 참 이상합니다.왜 100명 앞에서 까운을 입으세요?

지난번에 어느 교회는 또 장갑까지 끼시더라구요. 절 보고 설교하는데 장갑을 끼시래요.

그 흰 장갑을 저는 못 끼겠더라구요.여러분 왜 그렇게 폼 잡아요? 그럴 거 없어요.

그냥 가족의 house church. 30명 40명의 house church에요.


뭐 교회당 빌려서 할 거 뭐 있어요?  돈들게?

큰 집에 모여서 촛불 한 자리 갖다 놓고 성만찬하고 말씀 나누고

피아노 없으면 기타 치면 되죠. 꼭 피아노 있을 거 뭐 있어요?


그리고 눈물이 있어야 돼요. 성령님이 계셔야 돼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에요.


얼마나 우리는 따뜻해요? 서로 격려하고 축복해주고 좋은 거죠.

성도를 위하여. 온전케 하며. 그 온전케 하는 게 양육 system 이에요.

그 사람에 맞게, 어린 사람은 어리게, 미성숙한 사람은 미성숙하게 기다려 주면서,

얼려 가면서, 달래 주면서. 그런 사람은 그렇게 해 줘야 돼요.

못 먹으니까. 내가 씹어서 넣어줘야 돼요.


두 번째,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결국은 성도들을 만년 어린아이로 만들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젖을 떼야 되는데, 아이가 젖을 안 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뭘 붙이죠? 못 물게 쓴걸 붙입니다.


좀 단단한 음식을 먹여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축제에서 너무너무 기쁜 것이 여러분이 와서 기쁜 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찡그린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이 담임 목사의 기분을 아시겠어요?

우리 성도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집에 가면 할 일도 많을 텐데 여러분을 사랑해서

이렇게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 담임 목사로써 눈물 날 만큼 기쁜 거예요. 왜요?

그들이 온전케 돼서 이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니까.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입니까?교회죠. 할렐루야!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얼마나 많이 모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이는 건 의미가 없다니까요. 광장에도 많이 모이구요, 모이는 건 의미가 없어요.

숫자는 모래알과 같은 거예요.


과연 몇 명이나 정말 그들이 교회를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이번에 우리 선교사님들이 돌아 오셨습니다.우리 교회 잘 지어졌어요. 여기 있고 싶은 거예요.

너무 고생들 했기 때문에 “목사님 나 돌아오면 안 돼요? 나 여기 다시 돌아오면 안 돼요?”합니다.

농담반 진담반입니다. 너무 힘이 드니까...


그래도 주님의 가슴을 안고 그들은 또 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요.

온누리 교회가 이렇게 크고 화려해도 네가 양심에 갈등이 없는 게 왜 그런 줄 아세요?

그들이 갔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구석구석에서 땀을 흘리며 몸으로 고생하고 일하기 때문에,

이것이 영광스러운 거예요.


여러분! 100명 모이는 교회에서 100명이 다 봉사를 했다면 진짜 교회죠.

10000명이 모였는데 100명만 봉사했다고 한다면 그건 가짜 교회죠.
포인트가 이거에요.

성도를 온전케 하며,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세 번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양육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이 제일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선교사님은 일단 떠났는데 가보고 나니까 일이 많아져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을 보내 달라는 거예요. 사람 보내 주면 밤낮 싸워요.
2년동안 서로 안 맞아서...


신앙은 있어요. 열심은 있는데 방법론이 달라요.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데 2년~3년이 걸리는 거예요.

선교지에 가면 맨날 싸운다는 얘기 밖에 없어요.
일하러 갔다가 서로 성격 안 맞아서, 방법론이 달라서.


여러분! 사람 많은 게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이 하나 되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 CCC에서 네비게이토 교제 쓰는거 봤어요?

비게이토에서 CCC교재 쓰는 거 봤어요?  아무리 좋은 교제라도 안 씁니다.

왜?  자기 양육 체계하고 안 맞으니까... 다 자기 system이 있는 거예요.


그 system에서 돌아가야 그게 힘이 돼요. 좋은 거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좋은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 잘 했다고 그냥 쓰면 설사해요.

음식은 설사하면 소용없어요. 피가 되고 살이 돼야 돼요.


이게 양육 체계에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한 원리에요.

좋은 거라고 다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목회 철학과 교회론과 이것과 맞을 때,

꼭 맞을 때 이걸 쓰는거예요. 약은 많이 쓰면 사고 나요. 적당량을 써야 돼요.

그래야만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되는 것입니다.


▲은사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목회 철학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기간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희 온누리 교회는 약7년 정도의 양육 체계의 시간이 있어요.

이 양육 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국 양육자입니다. 목사는 혼자 일 다 못합니다.

사는 코치와 같습니다. 그라운드를 뛰는 사람은 운동선수에요. 피팬이나 마이클 조던이나...

이런사람이 뛰는 거에요. 코치가 뛰는 거 봤어요? 코치는 뒤에 있어야 돼요.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도 코치가 없으면 운동 못해요.


똑같은 논리에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평신도입니다.

그들이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누굴까요? 목회자에요.

뒤에서 코치해 주고 격려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어서

‘가서 뛰어라! 세상을 가서 변화시켜라!’ 이렇게 말을 해 줘야 돼요.


교회의 위기는 목사가 주인공이 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을 목사 중심으로 하다 보면 평신도들을 수행자에 볼과해요.

아니에요. 평신도들이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해요. 평신도를 스타로 만들어야 해요.


평신도가 스타가 되면 목사가 질투하면 안 돼요.

그런데 교인 가운데 좀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좋은 일 하면요

괜히 목사들이 질투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목사를 알기를 우습게 안다 이거에요.

뭘 알기를 우습게 압니까? 그냥 그런 거지요.


여러분!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우린 평신도 목사, 평신도 목자를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내 보내게 해야 돼요.

회사를 변화시키고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비전을 우리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육자를 잘 세우는 거예요.

목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건 집단 teaching이에요. 집단 teaching은 어떤 influrence는 줄 수는 있어요.


도전은 줄 수 있어서 motivation, 동기를 줄 순 있어요. 격려를 해 줄 순 있어요.

그러나 각계 전투는 안 돼요.일대일로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만나서 양육하고 도와주는 일은

양육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양육의 성패는 양육자를 얼마나 잘 세우느냐에 있다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양육자를 세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사활을 거는 문제입니다.


양육자는 담임 목사가 직접 젖줄을 대 주듯이 직접 양육해야 합니다.

양육은 그렇게 mass production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기 때문에... 양육을 잘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잘 양육시키게 돼 있어요.

내가 양육을 허술하게 받으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모델이 없으니까 자기가 배운 일이 없으니까)

국 허술하게 가르칠 수 밖에 없게 되겠죠.


▲그리고 특별히 교회에서 동반자를 잘 찾아야 합니다.

동반자는 숨어 있는 보물이에요. 여러분! 아무나 가르치면 안 돼요.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생명을 걸고 6개월 이상을 가르칠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일반 양육과 일대일  양육은 이런 의미에서 다른 거에요.

내가 한 사람을 찾을 때 정말 기도하고 준비된 그런 사람을 찾도록 기도하셔야 돼요.


죽을 고생을 합니다. 열매도 없고.. 나왔다 안 나왔다... 시간 지켰다 안 지켰다... 이랬다 저랬다...

나중에 다 서로 실족하게 되죠. 따라서 양육자를 세우는 것은 교회의 일이지만 동반자를 찾는 것은

양육자의 일이에요. 왜냐하면은 그 동반자는 곧 얼마 안 돼서 양육자로 다시 태어날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양육자로 모여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교회의 양육 체계에 소위 기둥이,근간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양육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개념이 선생이 아니라 아비라는 개념이에요.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라고 되어 있어요.


이 개념은 양육의 핵심 개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유년 주일학교 때부터,유치원 때부터 얼마나 많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선생님 중에서는 나에게 감동을 주고 내 인생에 진로를 만들어 주고

내 학문을 결정해 주는 정말 귀한 스승도 있기도 하지만, 결국 스승은 스승이죠.

우리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다 그랬어요.


양육이란 뭐냐하면 낳는 거에요.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 있어서 key, 핵심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설교는 정보가 아니라는 거에요.


정보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아요.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나? 영이 사람을 변화시켜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골치를 아프게 하죠.

가슴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해요.


여러분의 설교는 머리에서 나오면 복잡하게 만들어요.

heart에서 나오는 말씀은 사람을 움직여요.

여러분이 설교할 때 이런 말을 들어야 돼요.

‘오늘 목사님 말씀이 내 마음에 닿았습니다’ 머리에 닿았다 그러면 안 돼요, 

 

머리가 이해됐다 이게 아니고,‘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나네요’

그러면 사람은 움직여요. 행동을 합니다.


여러분! 양육의 개념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듯이 낳는 거에요. 부모하고 선생은 달라요.

선생은 정보를 줘요.가르쳐요. 그러나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은 생명을 걸고 사랑해요.

자기 아들이 살인자라 할지라도 부모는 포기 안 해요.이게 부모에요. 이게 양육자에요


교회는 선생의 개념은 많으나 양육의 개념이 없다는 거에요.

일대일로 양육하는.저희 교회에는 가장 기본적인 양육 원리가 두 가지 있는데 QT와 일대일이에요.

7주 과정을 마치는 제일 먼저 그분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QT에요.

매일매일 30분씩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러 나아가는 거에요.


이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일대일 양육이 시작되는데

원칙적으로 하면 4개월이지만 대개 한6개월이 걸려요 .

왜? 도중에 식사도 하고, 같이 또 교제도 하고 하기 때문에 공부가 한 시간에 다 안 끝나요.


어떤 시간엔 한 과 가지고 두 주를 해야 되기도 합니다.

양육은 공식이 아니에요.


여러분! 이 양육자가 말이죠, 일대일 교재라는 것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거에요.

짜 중요한 것은 일대일 교재라는 그걸 가지고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거에요.


자기의 삶을 공개하는 거에요.영적으로 아이를 낳는 거에요.

여러분 자기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못버려요. 이게 양육이에요.

내 새끼에요.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이런 관계가 없다는 거에요. 너무 사무적인 관계라는 거에요.

목사님은 왔다가 때가 되면 가는 거에요. 거기에 생명적인 관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목사와 장로의 사이가 제자 양육의 관계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꽃 튀기는 갈등이 생기는 거에요. 왜? 제자가 아니니까. 일대일이니까.

너무나 살벌할 경우가 많아요.


교인과 교인 사이에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여러분들이 이 양육의 개념.

낳는다는 개념을 여러분의 교회의 양육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제도가 아니고 가정이에요. family. 남편과 아내처럼 이 가정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많은 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다 허상이에요. 허수, 다 자신을 속이는 거에요.

나는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이 기분 나쁘지가 않아요.


왜냐면 이게 우리의 본질이니까... 우리 수준이에요.

이제 거품이 제거되는 거에요.정치적 수준... 다 과장하고 살았던 거에요. 다 덮어 놓고 살았던 거에요.


본질이 드러나는 거예요. 나는 그것을 오히려 감사해요. 왜요?

수술 받고 있으니까.위장에서 우리는 벗어 났으니까.. 이제 다시 살아나면 돼요.

난 그래서 소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과거 정치같이 이젠 안 할 거에요.


다시는 과거처럼 경제, 그렇게 안 할 거예요. 우리가 당할 만큼 당했잖아요.

수술받는 것은 좋은 겁니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니까.


문제는 미봉책입니다.덮어 놓고 사는 것, 목회 잘하는 것처럼.

많은 목사들을 만나 보십시오.다 몇 천명 모입니다. 위에 가면 다 코가 석자가 빠져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미봉책이란 얘기예요.


우리 교회에는 곪은 게 있고 갈등이 있고 무슨 일 하나 결정 못 한단 말이에요.

뭘 하고 싶은데 안 된단 말이죠. 이게 다 우리의 허상이에요.

여러분, 내일 부도날 사람도 오늘 잘 살아요. 부도 날 때까지는 이제 우리는
그런 거품을 다 제거해야 돼요.


그리고 진실해야 돼요.정직해야 돼요. 정말 교회가 있어야 돼요.

교제권이 있어야 돼요. 신뢰가 있어야 돼요. 저희 교회는 약 7년 정도 교인들에게 육을 제공합니다.

QT, 일대일, 제자양육, 헌신자 스쿨 이런 걸 쭈욱 해서 대충 정상적으로 과정을 밟아오면

빠른 사람은 5년에서 7년 정도 걸립니다. 그럼 그 분은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고 나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어디로 가냐고요?


제일 일차적으로는 “당신이 상처 받고 온 곳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어차피 여기 다 새신자가 아니니까


제가 아주 감동적인 얘기 하나 할께요. 한 장로님이 저희 교회에 오셨어요.

경영 정보를 연구하시는 분이세요. 이분 본인이 솔직히 얘기 하셨어요.

영등포 모교회의 자기 어머님이 그 교회를 개척하여 거기 장로인데

자기가 계속 있으면 담임 목사와 싸우게 되고 교회가 갈라서지게 되니,

어머님이 세운 교회를 자기는 가를 수 없다, 자기 혼자 나오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서 싸우기 보다는 본인이 조용히 나옴으로 교회에 평화를 주고 싶어 나왔다고 하시더라구요.

온누리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받아달라는 거죠. 오셨어요.

설명을 잘 듣고 또 앞 뒤 내용을 살펴 보고 그러면 저희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십시요.

그 분이 협동 장로로 5년간 우리 교회에서 봉사했어요.


그 분 사모님은 권사님이신데, 얼마나 두 분이 봉사를 열심히 하는지...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어요. 그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부터,

그 장로님 돌려 주십시오. 그 장로님 우리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편지를 장로님한테 보여 드렸어요. 그러더니, 아주 심각해하시더라구요.

‘목사님 저는 안 갈래요. 나는 가면 상처 또 받아요’

‘목사님이 이렇게 편지를 주셨는데 어떻게 합니까?’ ‘안 갈래요.’


‘그러면 계세요’ 1년 있다가 그 해에 송구 영신 예배가 끝나고 그 부부가 제 방으로 왔어요.

‘우리 부부가 기도했는데 온누리 교회에서 5년 우리가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견딜 것 같아요. 우리가 그 목사님 상처 안 줄 것 같아요.돌아가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얼마나 마음이 그 날처럼 기뻤는지. 그것이 제가 원하는 교회였거든요.

장로님 정말 결정 잘 하셨습니다. 그 날 장로님들 다 모았어요.

앉히고 우리가 다 안수하고 축복하고.“장로님! 돌아가서 그 상처를 치유하십오”


그리고 그 분은 가셨어요.그 후에 편지가 또 왔어요.‘못 견디겠어요.’ ‘그래도 계십시요.’...

지금까지 잘 계셔요. 편지 없는 것을 보니까 괜찮으신 것 같아요.


이렇게 양육해서 비젼을 가지고 ‘목사님 조건이 있어요,

제가 그 교회 가서 목사님 초청하면 오셔야 돼요’  ‘그건 제가 대답을 잘 못 하겠습니다.’

 ‘그럼 일대일 선생님 좀 보내 주세요’ ‘일대일도 장로님 우기지 마세요. 그 목사님께서 원하시면 하세요.’


▲제게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있어요.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저희는 주일날 다섯 번의 예배가 있는데 저는 네 번

설교를 합니다만, 그래서 주일날은 사람 만나는게 그렇게 힘이 들어요.

힘 빼면 다음 설교에 문제가 생기니까.


어떤 한 청년이 (부부 같기도 한)저를 찾아왔어요.“목사님 저 얘기 좀 해야 돼요.”

아니, 오늘은 주일이니까 다음 날 약속하시라고 했더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얘기해야 된다고 자꾸 쫓아다녀요.


아니 당신 나의 형편을 알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래도 얘길 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5분만 얘기하자고 제 방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얘기는 이런 거에요. 자기는 의사래요.

자기는 서울에 있는 어떤 작은 교회에서 자랐대요. 그 옆에 있는 자매도 ... 그래서 결혼을 했어요.

6개월 만에 이혼을 했어요.


‘성격 차이군요?’ ‘어떻게 아세요?’

‘보면 알지.’ 그 목사님이 그러더래요.

우리 교회를 떠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안 되니까.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추천해 준 교회가 온누리 교회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혼자 따로따로 오지. 둘 다 같이 또 왔어요.

오는 날이 장날이라. 그 때가 영적 전쟁 집회를 하던 때에요.

첫날 설교를 듣고 이게 사단의 장난이란 걸 알고 그 때부터 그들이 깨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이 교회에서 6개월동안 예배를 드리고 훈련 받으면서 회복이 됐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재결합을 했어요.

목사로서 이것처럼 기쁜 좋은 말이 없더라구요.

‘목사님의 설교 듣고 우리가 회복 돼서 재결합했다’

아니 이것보다 좋은 소리가 어딨습니까?  빈말이라도. 빈 말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그 다음 말이 “목사님,우리 둘이 결정했는데요,우리 본교회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자기들이 그렇게 상처 받았던 그 작은 교회로 가겠다 그러더라구요.

오늘이 마지막 주일이래요.

목사님은 모르시겠지만 너무 고마워서 이 얘길 하고 떠난대요.


그래서 내가 무릎 꿇으라 그랬어요. 안수해 주면서 축복했어요.

“당신 재결합한 것도 잘 한 거지만 당신 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더 잘한 일이요.”


그래요. 배우면 나를 필요로 한 곳으로 가야 돼요.

내가 상처 준데로 가야된다구요. 이게 복음이고 이게 양육이에요.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장례식 치르지 말아달라구요. 부끄러운 줄 알라구요.

우리는 우리 교인들에게 QT를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에요.

새벽 기도는 교인의10분의 1이 나와요. 10분의 9는 어떻게 해요?

리가 멀어서 아이들 도시락 싸야 되기 때문에 남편이 예수 안 믿어서 새벽 기도도 못 나와요.


그 분들에게 매일매일,자기 스스로 하나님과 더불어 묵상하고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돼요.

그것이 QT에요. 어떤 사람은 부엌에서, 어떤 사람은 응접실에서,

떤 사람은 교회까지 나와서. 매일매일 30분씩 성경 읽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적용하고

하루를 사는 이 훈련이 에요. 이것이 우리의 양육의 기본이에요.

이것을 가지고 QT 있으면 너무나 좋아요.


여러분! 생명의 삶은 나를 위해 만든 책이에요. 우리 교회를 위해 사실 만든 책이에요.

모든 교회가 나누어 쓰고 있을 뿐이에요.교재가 있는 것이 참 좋아요.

혼자 하면 어려워요.목사님이 만들어 주는 것도 몇 달 못 가요.

전문 기관에서 만들어 주는 것 쓰면 오래 갑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또 일대일이에요.일대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일대일은 6개월 걸려요.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요.

부부 같은 경우엔 또 세 사람도 가르칠 수 있겠지만, 원칙은 일대일이에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일대일이에요.

눈과 눈이 마주치니까 도망을 못가요.

집단으로 있으면 졸 수도 있고 빠져도 별 표가 안 나는데 일대일은 빠지면 없는 거에요.


그 날 배울 때는 졸아요.가르칠 때는 못 졸아요. 우리는 가르치기까지만 만들면 돼요.

그러면 알아서 살아요. 가르쳐야 하니까,

급한 사람은 본인이니까 자기가 미진한 건 가서 배워야죠.

또 그러면 사람이 제 시간에 오나요?


그 때에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해요.

여러분이 교회에 늦게 올 때 목사가 어떤 마음을 갖는

자리가 안 찼을 때 양육을 해 봐야 아는 것입니다.


이 때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숙해지는 거에요.

지난 번에 우리 교회가 일대일을5회 이상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까 약 200-300명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 1만사역자 수여식을 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으신 분, 86세이신 장로님께서 8회를 하셨더라구요.

그 날도 아침에 가르치고 올라 오셨어요.

우리는 그 분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 줄 몰라요.


여자분으로서 제일 많이 하신 분들, 72세 권사님 한분께서 42회를 했어요.

한 번 하는데 6개월이 걸려요. 2회하면 2년이 걸려요.

저는 그게 원리가 맞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아이를 한꺼번에 열둘을 낳게 하지 아니하시고, 돼지같이.

그 양육의 원리가 다 거기에 있어요. 우린 돼지가 아니라구요.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에요.

꼭 하나씩 낳게 해요. 가끔 쌍둥이도 주시지만,

그리고 몇년 보통 터울져도 2년 3년에 또 주신다구요.


어떤 급한 사람은 연년생 낳기도 하지만 그건 예외에요.

한 아이를 키워서 이제 좀 숨 돌릴만 하면 또 아기를 주시고

숨 돌릴만 하면 또 아기를 주시고 그래요.


어떤 사람이 방송하는 걸 들었어요.

자기 집은 식구가 11명인가 12명인데 자기 기억에는 어머니가 항상 배부른 것만 기억난대요.

그 말도 맞겠더라구요.

둘을 낳았는데 그러면 어머니 배부른 것 밖에 생각나지 않겠어요?


여러분 양육이 이런 거에요. 아이가 열 날 대 어머니는 찬 수건을 들고 밤을 새는 거예요.

이게 엄마에요. 피곤한 어머니는 천둥 소리에 잠을 깨지 않지만,

사랑하는 자기 아이가 뒤척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예민한 거에요.

자기 아이에 대해서. 이게 어머니에요.


어머니의 심정. 일대일 양육이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일대일 양육이 끝나면 그 사람이 공동체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해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개념이에요.


교회는 교파가 아니고 공동체입니다. 성령 공동체,예배 공동체, 선교 공동체,

그리스도 공동체, 나눔 공동체, 이게 진짜 교회죠.

제자 공동체의 삶을 훈련하고, 전도 훈련을 하고...

그 다음 저희 교회가 내년 3월에 이런 모임을 한번 더 합니다.


내년 11월 달에 제 2회 OMC,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강의도 같고 프로그램도 같아요.

우리는 이런 일을 한국 교회에 나눠 주기 위해서 계속 할 꺼에요.

이번에도 저희가 등록을 셈 해 봤더니 약 2천 명이넘더라구요.


▲내년 3월 달에 저희 교회가 이번엔 OMC이지만 VLC를 해요.

Vision & Leadership CELEBRATION.

이 비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모든 사회 지도자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 아직도 교회의 성장의 덫에 걸려서 몇 십년동안 고생하신 분들

이걸 뚫어야 됩니다. 비젼과 리더쉽.이걸 뚫으면 대로가 보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내년 3월달에 이 비젼과 리더쉽 셀러브레이션을 이런 형태로 또 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단기 선교팀을 항상 보냅니다.


이번에 천명이 다녀왔는데 내년엔 더 많이 갈 거에요.

금년엔 청년들만 갔지만 내년엔 우리 교회 집사님, 장로님들이 조장이 돼서

우리 청년들과 함께 움직일 꺼에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좋아서 흥분이 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지로 가는 것입니다.

골이든 농촌이든 제주도든 가는 거에요. 여러분도 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들에게 양육체계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아버지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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