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등잔 이야기 마5:15~16 설교녹취
이 석 목사
▲올바른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도리어 반박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 환경을 탓함
또는 “이 죄인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 자기비하
예를 들면, “돈 욕심을 버리고 살도록 애쓰라!” 라고 하면
“그러면 이 악한 세상에서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 ←환경을 탓함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그렇게 성자로 살 수 있어?”←자기비하로 빠져나감
▲어리석은 등잔 이야기
어떤 기막힌 등잔제작자가 등잔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등잔은, 빛을 비추라는 주인의 명령에
자신이 빛을 비추지 못하는 이유만 말하기 바빴다;
“방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빛을 낼 수 있어요?” ←환경 탓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고상하게 빛을 비춥니까?” ←자기비하
“기름이 충분히 있어야 빛을 내죠?” ←물질 탓
“나를 만든 당신이 어떻게 해서, 내가 빛을 내도록 해 보시죠!” ←하나님 탓
▲이것은 비유이며, 살아있는 등잔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는 빛을 비추도록 만들어진 등잔이다.
요즘 말로 그런 DNA를 타고 났다.
그런데 계속 환경 탓, 자기 비하의 변명, 심지어는 하나님 탓을 하며
빛을 낼 수 없다는 이유만을 찾기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아직 등잔이 아닌 것이다. (진실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뜻)
세상이 어둡다고 빛을 발할 수 없는 등잔은 없다.
차라리 밝은 대낮에 등잔은 빛을 잘 발할 수 없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등불은 더욱 밝은 빛을 내게 되어 있다.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그렇게 고상하게 살 수 있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게 등잔이 빛을 비출 수 있겠어?” 라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등잔제작자의 빛을 비추라는 말에 등잔이 반발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목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반발하지 말자!
▲참 그리스도인은 빛을 비추도록 만들어져 있다
빛을 비추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이요,
빛을 못 비추는 것이 도리어 부자연스러운 삶이다.
억지로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빛을 비춘다.
기름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기름이 떨어질 때면, 주인이 재충전 refill 해주신다.
그러므로 기름 없다는 핑계대지 말고,
빛부터 비추라! 그러면 기름을 충분히 주실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 자기가 빛을 발하라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까
스스로 겸손한 척 하면서, 반발하는 말들을 두둔하는 선생들조차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가 지키기 힘들어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또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듣기에 좋든/싫든 간에,
그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 말씀이 옳다고 인정해야 한다.
자기가 순종하기 힘들다고, 온갖 이유를 내세워, 진리에 반발하면 안 된다.
진리의 말씀이, 현실에 맞지 않는 ‘미사여구’라고 여론몰이 하면 안 된다.
자기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을 수술하겠다는 것은-신성모독이요, 대역죄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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