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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LNCK 2019. 12. 24. 14:10

www.youtube.com/watch?v=jKihyn7f9RU

비전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마9:36                         도서요약

The Secret of Spiritual Fruitfulness by Zacharias Tanee Fomum

  

1. 비전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무리를보시고, 그들을불쌍히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9:36)

 

비전의 중요성은모든 사람이 다 안다.

그런데, 비전은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과 같이 짝을 이룬다.

 

선한 사마리아 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했을 때, 동정심 compassion이 솟았다.(10:33)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비록 끊어질지라도'의 마음이 있었다.(9:3)

 

느헤미야는 동족을 향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는 마음이 있었다.(1:4)

오늘 내가 비전을 가졌는데, 그 일에 compassion이 없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다.

 

비전이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확실히 보며,

보이는 그것을 향해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비전은 말 그대로 보는 것이다. 보되, 긍휼의 compassion의 눈으로본다.

    

2. 무리(군중)를 보는 눈

 

오늘날 기독교 사역의 94%의 모든 자원이 오직 6%의 인구에게만 쓰여지고 있다.

연변, 인도차이나, 실크로드, 아프리카 수많은 무리들은

불과 수 백 만원만 있으면 짓는예 배당을 못지어서 애타하고

책은 성경책 한 권 가지는 것으로 거의 만족하고 산다.

 

내 비전을 upgrade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무리를보시고불쌍히여기신예수님처럼(9:36), 무리를보는눈이필요하다.

   

3. 쓰기 전에 깨뜨리신다 

 

아이가 52어를 드렸을 때, 주님이 그 빵을 깨뜨리신후에야 기적이 일어났다.

깨뜨리기 전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깨뜨려지신 후에야 구원 사역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예수님같은 큰 멍에는 없을지라도, 작은 멍에, 작은 깨어짐은 반드시 있다.

친 아들도 깨어졌는데, 만약 깨어짐이 없으면 아들이 adopted son 아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5:8)

 

깨어져야 자기 능력, 자기 힘, 자기 자랑의 모든 것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런 깨어짐은 보통 자기 능력, 자기 힘, 자기 자랑이 최고조였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약할 때 강함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이렇게 약함으로 일한다.

강할 때 사역하면 좋겠지만, 그 때는 왠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 덤비다가 실패하기 쉽다.

 

예수님의 깨어진 상처, 손과 발의 못자욱은 부활체로 변화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영광의 흔적이었다.

하나님이 깨뜨리신 나의 영광의 상처는, 천국까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영광으로

      

4. 위험을기꺼이감수하라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사람을 여관에 데려다 주는 것은 대단히 위험했다.

자기도 똑같이 위험한데, 거동이 힘든 사람을 데려가느라 통과시간이 지체되면.

 

혹시 피해자와 강도가 원한관계라면, 피해자와 같은 편으로서 오해받을 수 있었다.

운반도중 피해자 사망 경우엔, 피해자 가족에게 과실치사로 몰릴 수도 있었다.

 

후에 경찰 조사과정에서, 그 조사에 일일이 증언하는 것도 얼마나 귀찮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도와 주고싶어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다.

 

동정심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종종 위험한 일이다.

예수님의 깨뜨리심 말고도, 마귀 공격의 위험이 이중으로 온다.

보통의 피상적 동정심 compassion으로는, 사명감당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서요약, The Secret of Spiritual Fruitfulness by Zacharias Tanee Fomum

저자는 중서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bishop 및 대학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깨어짐brokenness, (1996) 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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