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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빈곤의 악순환

LNCK 2019. 12. 26. 07:59

영적빈곤의 악순환                     대하28:24~25

          

박신 목사 10/19/2006. www.nosuchjesus.com 에서 발췌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자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반장관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모 마을이 풍수지리 명당으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며

그곳으로 묘 자리를 옮기려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성경의 아하스 왕을 생각나게 한다.

 

잘 나가던 나라의 우상을 가져와 섬긴 아하스 왕

에돔이 유다를 치자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에 원군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앗수르는 유다를 포위 공격한 후에 막대한 공물을 요구했다.(대하16-21)

눈앞의 환난에, 당시의 최강국에게 기대어 극복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그 후 아하스가 기껏 생각하기를

앗수르가 저렇게 강해진 이유는 다메섹의 신들 때문이라고 보고

그들을 숭배하기로 한 것이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대하28:23

 

그러나 성경은 도리어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기록하고 있다. 대하28:23

 

그렇게 명당을 찾아 묘 자리를 이장하다가는

그 신이 그런 우상숭배자들을 도리어 망케 할 것이다.

처음에는 사업이 조금 잘 되다가도, 나중에 결국은 크게 망할 것이다.


사단의 조정을 받아서 미혹에 빠진다.

아하스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자행한 이유는

그 우상의 뒤에 있는 사단이

아하스를 완전히 노예로 묶어서 조종한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든지

사단의 음흉한 조종을 받든지 둘 중 하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사단의 조종에 넘어간다는 뜻이다.

특별히 신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미 사단의 종이 되어 있는 불신자는 사단이 특별히 건드릴 필요가 없지만,

신자는 사단이 언제나 자기 종으로 삼으려는 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비록 세례를 받았지만, 일부 신자는 풍수지리를 믿는다. 정말로 믿는다.

왜 그런가?

사단의 미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하스가 더 나쁜 데로 빠지다 : 성전 문을 닫아버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대하28:24~25

 

아하스 왕이 여호와의 전의 문을 닫기까지 한 것은 보통 작심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단에게 미혹되어 있어도

조상 대대로 믿어 온 여호와를 완전히 외면하기란 두려워서라도 쉽지 않다.

 

여호와가 다메섹의 신에게 힘도 한 번 못 쓰보고 계속해서 지고 있다고

판정을 내린 것이다.

 

예수 믿다가, 사업 안 되어서, 점쟁이 찾아가는 형국이다.

이것은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성경은 그가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하28:22

곤고해진 이유는 두말 할 것 없이 현실에서 자꾸만 외적의 침입을 받아

온갖 시달림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그 원인은 유다가 우상 숭배와 온갖 죄악으로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개하여 여호와께 되돌아갈 생각은 전혀 않고

오히려 더 강해보이는 신을 섬기다 못해

아예 여호와의 전의 문까지 닫아버렸다.

도저히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전기가 누전되어 불난 것을 끄려고 물을 부은 것과 같다.

도망갈 퇴로마저 스스로 막는 것이자,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격이다.

 

영적빈곤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라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유다 땅의 한 바보 같은 왕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갈 때에 우선 하나님을 찾지만 금방 응답이 없다.

신자가 바라는 방법과 때에 아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잘못의 원인은 사단의 방해, 세상의 모순, 자신의 실수나 죄악,

하나님의 연단 등 여럿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고 자기는 그 분의 자녀이므로

원인이 어디에 있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자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도

기도나 말씀에 전혀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 피폐해지는 경우를

때때로 겪는다.

 

정말 머리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하얗게 지워진 것 같아서

무엇부터 기도해야 할지 모르고

성경을 펼쳐도 글이 한 자도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수록 억지로 무릎 꿇고 주여!”라는 외마디라도 계속 부르짖어야 하고

성경에 한 문장이라도 일부러 소리 내어서 읽어야 한다.

 

영적인 궁핍이 없어도

기도하고 말씀 볼 때에 사단의 방해가 많으므로 의지적으로 집중해야 하는데

영적으로 궁핍할 때는 더더욱 그래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때 아하스처럼, 아예 성전 문까지 닫아 버린다.

개인적으로 말씀 읽고 기도하지 않고

심지어는 교회출석까지도 멀리하게 된다.

 

이런 영적 빈곤 현상은 항상 더 악순환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더 멀어진다.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 크고 많이 짓는다.

 

사단은 항상 영적으로 빈곤해져 기도와 말씀에 게으른 자를

우는 사자같이 노리고 있다.

      

신자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멀리하게 되면

사단의 온갖 노림수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영적으로 빈곤해질수록 하나님 쪽을 향한 기도와 말씀 외에는

절대로 탈출구가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으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피폐해지면 신자 스스로 성전의 문을 닫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우상 신들에게 더 절할 수밖에 없다.

더 큰 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혹시라도 영적으로 메마르신가?

현실의 환난과 고통이 겹쳐서 완전히 힘이 빠졌는가?

그래서 기도와 말씀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정도인가?

 

다른 특별한 수단은 없다.

그럴수록 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는 수 말고는 절대로 없다.

성전 문을 스스로 닫는 어리석음만큼 신자가 저지르는 큰 잘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