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과 기독교
「신학의 역사」 Historical Theology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 中 발췌, 편집
현대 미국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국가로 인정된다.
기독교는 미국에서 국내 정치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된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필그림 파더스의 영향 (1620년~)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건너 온 사람들이다.
북미의 첫 정착민은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선 신교도들이었다.
▲2. 조나단 에드워즈 중심의 대각성 운동 (1730년대)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에 약 10년간 큰 신앙부흥 운동이 있었다.
1740년대는 영국에서 건너온 조지 휘필드가 이 운동을 확대시켰다.
당시에 미국의 기성교회란 영국교회였다.
영국에서 파견된 성직자단이 신대륙의 주류교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 뒤이은 조지 휘필드(순회 설교가)의 부흥 운동은
기성교회의 성직자 권위의식을 크게 잠식시켰고,
‘기성사회질서 유지보존에 기여, 헌신하는 것이 엘리트 성직자들의 임무’
라는 (일종의 안일한) 전통적 기독교 인식에 큰 혁신을 몰고 왔다.
이들 부흥운동은,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고,
영국교회에서 파견된 식민지 성직자 교단은 큰 위협을 느꼈다.
또한 조지 휘필드는, 순회 설교가의 전통을 미국에서 세웠다.
▲국가 독립 이전에 교회 독립
미국 독립 운동의 뿌리는
미국의 새로운 민중적 종교와 영국의 기성종교 간의
점증하는 괴리현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에,
미국의 교회가 영국의 교회의 영향력과 지배로부터 먼저 독립했다는 얘기다.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 운동’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대각성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식민지 독립운동의 주역이 된다.
물론 이런 종교적 영역 이외에, 정치, 경제적 다른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 역시 결코 무시 못 할 이유를 제공해 주었다. 미국 독립운동에.
▲교회당은 독립운동의 산실
1776년 미국은 독립을 선언하자, 뒤이어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러자 교회 강단은 종종 혁명적 활동의 집결지 역할을 감당했다.
미국 시민들은 교회에 모여서, 대동단결해서,
영국교회와 영국식민통치를 몰아낸 것이다.
교회에 모여서, 그들은 단결해서 민병대를 조직해서 총을 들고 나갔던 것이다.
국난의 시기에, 교회가 민중 단합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 때 교회 내부적으로는, 모든 교파가 단합되고 일치되는 역사도 일어났다.
그래서 서부 영화에 보면,
갱들이 마을로 쳐들어 올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모여 있고,
보안관은 거기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사람들은 교회에서 흩어져 나가 각자 총을 들고 와서 다시 뭉친다.
그래서 마을을 구한다는 스토리다.
윗 글의 주제는
교회의 부흥은 반드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사회의 변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부연 : 오늘날 미국 기독교적 영향
그래서 아직도 미국 교회는,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큰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종종 대통령에 당선된다. 카터, W. 부시 등
라이스 국무장관은 피아노를 치고, 대통령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다 그렇지는 않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자주 알 카포네(마피아)의 말을 인용한다고 한다.
“단지 상냥한 말 한 마디보다는,
상냥한 말고 총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루스벨트 대통령 초상화를 걸어 놓았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가지고 다녀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상 뉴스위크, 2001년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당시 기사로 기억함)
정말 부시와 럼스펠드가 지금까지 보인 이라크와 대북 정책은
위의 뉴스위크 기자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
과거의 아름다운 미국 교회의 전통과 영향력이,
지금은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 않는가? 우려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 들어서 미국교회가 과도하게 우회전 하고 있다.
이것을 바라보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느껴야 할 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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