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삶이란? 히11:29-12:2 06.09.03.스크랩
◑결국에는 아버지를 신뢰함
랜 앤더즈가 쓴 글 가운데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5살 때,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6살 때,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8살 때,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10살 때,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14살 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21살 때, 우리 아빠?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25살 때,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오셨으니까."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달라진다.)
30살 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35살 때, 아버지에게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40살 때,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50살 때,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빠를 하늘처럼 신뢰하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에 대한 신뢰도가 변한다.
이것은 아이만 아니라,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은 믿음과 신뢰감을 계속 가지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오거나, 문제가 있거나, 답답한 일, 절망할 일이 덮치면
흔히 믿음을 내 팽개쳐 버리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려지지 않으면 믿음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는데...
◑1.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신뢰하는 것
그러나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대한 믿음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히 11장은 믿음장으로 알려진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환경, 다양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의 특징을 성경은 아래의 단 한단어로 표현해 준다.
▲"믿음으로(by faith)..."
믿음으로.. 어떤 사람의 삶은 고단했다. 어려움이 있었고, 힘들었다.
믿음으로.. 어떤 이들은 전쟁과 엄청난 박해 상황 가운데 서 있기도 했다.
믿음으로.. 사자, 칼날, 전쟁, 죽은 자, 고문, 결박, 옥에 갇힘, 돌로 치는 것,
믿음으로.. 시험, 칼, 궁핍, 환난, 학대... 이것이 그들의 처한 환경이었다.
너무나 어려운 삶의 자리였다.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인가?
성경은 오직 한 가지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믿음으로!"
환경이 좋아서, 모든 것이 잘 풀려서,
내가 원하는 대로 탄탄대로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삶의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고통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손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믿습니다)
그들의 살았던 환경이 좋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누릴 수 있었던
풍족하고 윤택한 삶이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의 삶에는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담대하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갔던 사람들이었다.
히 11:33절부터 다시 읽어보자.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주님은 이러한 위인들을 소개해 주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히 11:38
▲이 말씀을 읽으면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주님의 얼굴이다. 자세히 보면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
주님의 온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하다.(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미소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였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믿음의 영웅들일 수 있었다.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 주님의 미소! 만약 우리 일생에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생은 실패한 생이 되고 말 것이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20세기 중반 온 영국 교회가 시들어가고 있을 때
능력 있는 설교로 놀라운 영적 부흥을 이루었던 사역자였다.
그의 설교 능력과 목회적 성취를 누군가 칭찬할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만약 하나님이 미소 짓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모든 것은 허사입니다!”
오늘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시며 주님이 미소 지으실 수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내 생애가 무엇을 이루었느냐,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 한가지로 평가될 것이다; 하나님의 미소!
▲히 11장 말고도,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한 교회(데살로니가)를 향해
바울이 칭찬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칭찬으로 봐도 괜찮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 1:2-3
그들은 형편이 어려웠지만, 주님을 사랑하기에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힘이 들고, 여건이 어렵지만 그들은 주저앉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은 언젠가 그 나라에서 이룰 것을 알고 소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미소 지으시며 칭찬하실 그 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소망이 있기에 현실을 참고 인내한 것이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삶의 처한 자리에서 사랑의 수고를 하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힘차게 믿음의 행진을 하는 것이다.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관념이나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의 삶 속에서는 살아져야 하는 동사다(Faith is a verb).
◑3. 그 분의 다스리심을 신뢰하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그분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야웨 말라크)라는 말은 모든 성경에 나오는 선포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또한 교회의 가장 중심 되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설교자들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통치하심, 다스리심에 대한 선포였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믿음의 공동체가 올렸던 찬양이요,
하나님께 올렸던 기도요, 선포했던 설교였던 시편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다.
신앙 공동체의 모임과 선포의 가장 중심 되는 주제는
언제나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고백이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그를 신뢰하면서 나아가는 삶이다.
온 우주의 역사와 이 나라와 민족을 통치하시고,
오늘 나의 삶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앞에서
“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중에도, 내 인생이 꼬여가는 그곳에서도,
힘들고 답답한 순간에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3. 이제는 우리가 믿음의 경주자!
히 11장은 그렇게 살았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그들의 믿음의 삶의 결론은 히 12:1-2까지 연결된다.
▲믿음의 경주를 끝낸 영웅들
그렇게 힘차게 달렸던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의 믿음의 경주가 끝났다.
이제 그들은 경주를 마치고 응원석에 앉아 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그 뒤를 이어 달렸던 수많은 무명의 선수들도
그들의 경주를 마치고 이제 응원석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그런 간증들을 서로 나누고 있다.
“참 힘들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끝까지 달릴 수 있었지요.
감사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힘껏 달린 경주자들이었다.
▲이제 그들이 쥐고 달렸던 바턴은 어느새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참으로 영광스럽게 믿음을 지키며 승리의 경주로 감당했던 그들은,
이제 바턴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앞서 달린 선수들은 너무 훌륭했다.
그들의 환경은 어렵고 열악했으나 그들은 너무나 놀랍게 달렸다.
문제는 우리다.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고, 복음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과거도 중요했지만, 지금 바턴을 쥐고 달리고 있는 우리가 매우 중요하다.
▲히브리서 12:1을 읽다보면, 지난 군복무시절 연대 체육대회가 기억난다.
매년 국군의 날 우리 연대는, 산하 4개 대대가 대항하는 체육대회를 가졌다.
상품은 돼지 대여섯 마리가 하사품으로 주어지고, 상금 또한 기백만 원이었다.
이 체육대회의 마지막 피날레는 <계급별 릴레이> 종목이었다.
이등병부터 중령(대대장)까지 각 계급의 대표들이 한 명씩 출전해서
릴레이로 달리는 것이었다.
이 릴레이(이어달리기)에 기필코 승리를 위해,
좋은 선수를 선발해서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면서 훈련을 했다.
선임하사를 서울로 보내 좋은 러닝화도 주문해 왔다.
파악된 정보에 의하면, 특별한 변수만 없으면 우리 대대가 우승할 것 같았다.
마침내 릴레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계급의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달렸다.
예상대로 우리 대대가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했다.
저도 중위 대표로 출전해서 100m 정도를 달렸다.
소령 계급까지 계속 선두가 유지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 주자인 중령(대대장)에게 바턴이 넘어갔다.
염려했던 대로 상대팀 대대장은 잘 달렸다. 그는 육사시절 럭비 선수였다.
그래서 선두였던 저희 팀 대대장을 거의 따라 잡았다.
결승점을 불과 10여m 정도 남겨 둔 지점에 왔을 때,
우리 대대장은 상대팀 대대장이 어디쯤 따라 붙었나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얼굴도 심하게 다치고 무릎과 팔꿈치도 심하게 다쳤다.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속이 너무너무 상했다.
연병장 바닥에 고꾸라져 얼굴을 땅에 갈아서 큰 상처를 입었지만
하나도 가련하지가 않았다.
마지막 주자의 실수로 모든 사람의 수고가 일시에 허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 잘 달려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주자다.
지금 우리 세대는,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의 거의 완수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응원석의 모든 관객들이, 지금 달리는 우리를 바라보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일어서서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보낸다.
또한 모든 세대의 생존자는, 자기 세대가 항상 역사의 마지막 주자였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몰랐고, 항상 주님이 자기 세대에 오실지도 모른다던
종말적 긴장을 갖고 살던 -마지막 주자의- 세대였다.
▲그렇다. 지금 바턴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수천 년 전 아브라함이 쥐고 달렸던 그 바턴,
야곱이 받아서 힘껏 쥐고 달렸던 그 바턴,
모세가 가지고 달렸던 그 바턴,
요셉이, 엘리야가, 다니엘이, 베드로가, 바울이 쥐고 달렸던 그 바턴을
지금 우리가 쥐고 있다.
주기철 목사님이 쥐고 달렸던 그 바턴을 지금 우리가 쥐고 있다.
앞서간 많은 순교자들이 가지고 달렸던 그 바턴을,
이제 우리가 받아 쥐고 있다.
▲이런 릴레이 경주의 주자runner 의식,
이것이 가혹한 박해의 시대를 살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자기 정체성(Identity)이었다.
그 소중한 바턴을 우리가 물려받았다는 것, 이것은 감격이었다.
이것은 희열이었고, 축복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백 번씩 다짐하곤 했다.
‘나도 잘 달려야지!’
그러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은 박해와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했다.
어제 남편을,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고 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달렸다. 지금 바턴을 쥐고 달리는 자는 나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4. 대기 선수도 긴장하라!
축구 경기를 보다보면 갑자기 주전 선수가 넘어져 심한 부상을 당할 때가 있다.
경기장에는 긴장이 서린다. 관중들은 안타까움의 신음을 토해 놓는다.
어쩌면 이 경기에서 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상이다.
그때 감독이 외칩니다.
“야! 김운용, 네가 대신 나가 뛰어! 잘 뛰어야 돼, 알았어?”
나는 도저히 주전 선수 축에도 들 수 없는데, 은혜로 세움 받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주전에 들지 못한다 할지라도,
항상 주전에 들 그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성 프란시스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사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시스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바로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내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렇다. 하나님께 쓰임 받음이, 일할 수 있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이,
감격일 뿐이다.
겸손히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주전 선수로 쓰실 것이다!
◑너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이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국제어린이구호단체 Compassion International 이 있다.
한국 전쟁 때 한국 전쟁 고아를 돌보기 위해 시작되었던 단체다.
지금 전 세계 23개국의 수십만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http://www.compassion.com
그냥 돈만 보내서 하는 사역이 아니라,
현지 교회와 연결하여 효과적으로 전인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기관은 한국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의 수백 교회를 통해 수 만 명 고아들을
돌보았다. 과거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파트너 국가가 된 것은 놀랍다.
이 단체가 시작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미국 시카고에서 사역하던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 목사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미군들을 위한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방한했다.
종로 부근의 어느 숙소에서 잠을 자고 어느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서
유리창 너머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 쓰레기 트럭이 와서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청소부들이
차로 던져 넣는 쓰레기 가운데 어린아이의 손을 보고서 깜짝 놀라 뛰쳐나갔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방금 던진 쓰레기 가운데 어린 아이의 손을 보았다고
손짓 발짓하며 말을 전하는데 통하지 않자, 직접 쓰레기 트럭에 올라가서
아이의 시신을 찾으려고 하다가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트럭 안을 자세히 보니 거기에 가득 실린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길에서 동사(凍死)한 전쟁고아 어린이들의 시신이었다.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상태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제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그가 미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사역이 ‘컴패션’(긍휼) 사역이었다.
그를 통해 수십만의 전쟁고아들이 살게 되었고, 삶을 열어가게 되었다.
1993년, 이 사역은 한국에서 철수하였지만
그들의 사역은 전 세계를 향해 계속되고 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노력하고, 말씀에 붙들려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살려고 노력하는 그곳에서 놀라운 역사는 일어났다.
한 사람이 바로 서게 되니까 수많은 영혼들이 바로 서게 되고,
나아가 한 나라가 바로 서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 음성은 오늘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이제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그 음성을 듣고 결단했던 사람이 있는 곳에서 가정이 살게 되고,
자녀들이 살게 될 것이다. 교회가 살게 되고 민족이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제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06.09.03. 김운용 목사 인터넷 설교 발췌 *원제목 : 너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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