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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용서

LNCK 2019. 12. 26. 16:11

용서              23:34            06.08.06.

   

 

위대한 이유

이스라엘 성지에 가는 분들은 두 분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하나는 헤롯 왕이다. 그 분이 지나간 지가 이 천년이 되었지만은

그 분이 지었던 건축들은 아직도 세계적이다.

너무너무 장엄하고 어마어마하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역에서

헤롯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모두 헤롯을 보러 성지로 가는 사람은 사실은 한 사람도 없다.

 

다음은 흔적 하나, 옷 한 벌 남기지 않으셨던 한 왕이 있다.

건물 하나 안 남긴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만나려고 해마다 수백만, 수천만의 성도들이 성지를 찾아가고 있다.

그분의 발자취 하나하나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왜 그런가?

바로 주님이 걸어가신 용서사랑의 발자취가 주는 감동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은 통 털어 용서의 삶이었다. 그리고 사랑의 삶이었다.

끝까지 사랑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 그리고 사랑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다.

이보다 더 큰, 영원히, 하나님 앞에 가서도 길이길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삶은 용서 그리고 사랑의 삶이다.

이것은 참으로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없는 삶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것

아무리 많이 배워도,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온갖 고생을 참는 일인가, 고난을 견디는 일인가? 아니다.

제일 어려운 일은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다.

 

여러분! 많은 사람이 세계를 정복해도 이것 못하고 이 땅을 떠나는 사람은

실패자다. 그의 생애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내 생명과 내 자녀의 생명을 빼앗아 가며,

우리 재산에 어떤 막대한 지장을 주고 손해를 끼친 사람들,

그리고 나를 비방하고 해치며 욕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교만하면 용서하기 어렵다.

겸손하면 용서하기 쉽다.

 

예수님의 용서의 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를 향하여

자기가 죽이는 사람들 정말 원수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23:34

 

우리가 단순하게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3장 전체를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모두 다 침을 뱉었다.

여러분! 침 한번 맞아 보시라!

또 전부 욕 하더라 그랬다.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며 때렸다. 채찍으로 마구 때렸다.

그리고 끌고 가서, 잔인하게 끌고 가서 십자가에 가져다 놓고서,

양손에 못을 박고 다리에 못을 박을 때

 

그 수치와 고통 속에서 그들을 용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 하셨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모두 다 무너져도,

주님의 나라가 2천년이 되어도,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온 인류를 향하여 힘차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은,

주님은 바로 용서하시고 사랑하는 그 터 위에 나라를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는 내 힘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선물(은사)이다.

위로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에 은혜.

 

주님의 사랑을 선물로 받아들여야,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거하게 되어

내가 남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도 가지는 인간적 사랑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만은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며, 상처를 주는 사랑이다.

이렇게 세상에 사랑이 풍년이 들었지만,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없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인간적 사랑은 나도 행복할 수 없고, 너도 행복할 수가 없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이여야만 한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게 된다.

 

고정원 씨의 간증

2003. 10. 19. 저녁 640,

고정원 씨는 퇴근해 자기 집에 들어가려고 벨을 누르니까 인기척이 없었다.

조용했다. 그래서 열쇠로 문을 열고 안에 들어 가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실에서 흉기에 찔려서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온 집안이 다 피투성이로 가득 차 있었고 2층에 올라가보니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4대독자 아들도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또한 내려와서 화장실 옆으로 가보니 어머니까지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이 순간 모두 다 기절하겠지만, 딱 마음속에 처음 느낌이 무엇이겠는가?

원수 갚아야 되겠다, 누군지 잡아야 되겠다,

나는 이 보다 더 이상, 더 비참하게 보복해야 되겠다, 죽여야 되겠다...’

이 느낌이 고정원씨 마음에 가득 찼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가득해서 그 이후로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는가?

편히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세상 보는 눈이 시뻘게진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 놈 잡아야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뛰면서

이 고통, 이 엄청난 슬픔 저주아래서 몸부림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교인들에 의해서 전도를 받아 가지고 교회로 오게 되었다.

예수 앞에 나왔다. 그냥 교회 인줄로 알고 나왔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하루하루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예배 중에 만났다. 주님이 찾아오셨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그 고통 가운데 있는 그의 마음에 주님이 찾아오셨다.

그 마음에 가득 차 있던 그 분노와 증오와 저주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온 우주가 모두 다 달려들어도 제거할 수 없었던 큰 바위들이,

태산 같은 마음의 저주들이... 모두 다 사라졌다. 모두 다 떠나갔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없어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주님의 사랑이, 기쁨이, 은혜가, 감사가 찾아왔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바뀌었다.

이것은 자기의 능력이 아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그리고 은혜를 받아 세례를 받고 보름 만에

그 살인범이 잡혔다.

살인마 유영철이었다.

그는 23명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런데 이 고정원씨 마음에는 증오와 분노가 이미 모두 다 떠나갔다.

유영철이 불쌍해서 그를 사랑하고 전도하게 되었으며,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지,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유영철이 낳은 애가 두 남매가 있는데,

그 두 남매를 사랑하게 되어서 내 손자로 기르고 싶다고 하였다.

 

예수를 10년 믿은 것도 아닌데, 이 엄청난 저주아래 있던 이 사람이

그 저주에서 탈출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 어떤 원수도 용서할 수 있는 용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미움과 증오도 이길 수 있는 마음에 넘치는 사랑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용서의 배후

여러분!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사람도 자기 양자로 삼았고,

지난번에 이라크에서 납치당해 비참하게 죽은 김선일씨 부모들도

모두 다 용서한다고 그랬다.

 

우리나라에 모든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에는 언제나 용서했다.’가 있다.

이런 배후에는 누가 있느냐?

성도가 있고, 성도의 배후에는 또한 누가 있느냐?

주님이 계신다.

 

주님이 있는 곳에 사랑이, 용서가 있다.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에게만 있다.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증오하고 싸우면.. 같이 싸우려고 들고 일어난다.

지금 세계의 정치, 총 들면 총 들게 되어있고,

미사일 오면 미사일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내안에 미사일이, 화살들이 모두 다 사라진다.

증오와 저주와 이 독소들이 내안에서 모두 다 예수의 보혈로 씻어진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줄로 믿는다. 할렐루야!

오늘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아름다움과 행복은 안에있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가치와 능력이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안에 있다.

흔히 모두 정신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오늘 물질이 번영하니까 행복해졌는가?

이 나라가 고속도로가 뚫려지고 집집마다 자가용 2, 3, 4대 가진다고

행복해졌는가? 사랑이 없는 곳에는 행복이 없다.

 

오늘 이렇게 이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모두 서로 고소하고, 형제간에도 소송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 사회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지식이 부족한가? 교양이 부족한가?

아니다. 주님의 사랑이, 용서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행복하게 살수가 없다.

인간의 핵심, 생명은 안에 있다. 심령에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안의 종교다. 마음의 종교다.

세상은 문제를 밖에서 모두 찾는데, 교회는 문제를 어디서 찾는가?

 

말씀에 순종해서 용서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6:27~30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6:37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식을 용서하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6:14~16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 까지 하오리이까?

네 형제가 죄를 범하였을 때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라

18:21-22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8:3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막 11:25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2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3:13

 

예배보다 더 먼저 할 것

다른 종교는 자기하고 그 신하고만 맞으면 된다.

그래서 지성을 다해서 어쨌든 빌고, 신에게 제물 받치면 응답이 온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잘 할지라도,

형제와 원수 맺고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오지 않고, 내 죄도 용서 되지 않는다.

 

주기도문에도 나오지 않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는 잘하고 이거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교인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잘 할 뿐만 아니라

내 이웃, 형제, 자매, 부모, 친척들에게도 잘해야 된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배를 드리다가도 기도하다가도 내가 누구하고 불화하고

용서하지 못한 거 생각나면, 빨리 예배드리지 말고 중간에 돌아가서

화해하고 난 뒤 와서 예배드리라는 것이다.

예배가 우선인줄 아시는가? 화해가 우선이다.

 

우리를 화해시키려고 하나님의 아들까지 이 땅에 보내어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그래서 우리가 이 화해를 주님으로부터 얻었다면

이 화해를 우리가 해야 될 것 아닌가? 용서해야 한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내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 보러 오기 전에는 절대로 부부간에 싸움하면 안 된다.

둘이 같이 나와서 앉아야 된다. 속상해도 예배드리기 전까지는 참아야 된다.

 

사랑은 덮는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우리는 자꾸 가족 간에도 덮어야 된다.

남편과 아내가 시댁, 처갓집까지 서로 들춰내면 그 집안 망한다.

 

우리의 억만 죄도 하나님이 덮어 주셨는데 내가 조그만 거 왜 들추는가?

영영 죽을 죄도 하나님이 모두 다 덮어 주셨는데 내가 왜 들추는가?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너희는 눈에 있는 티끌도 들추어낸다.” 그랬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들보도 용서해 주셨는데

요만한 티끌도 우리가 서로 용서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지금 온 나라가 그냥 이렇게 좋고 잘 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가진 힘, 축복을 가지고 전부 들추는데 사용하고 있다.

 

가정도 들추어내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데,

나라를 모두 다 들추어내려고 그러니까,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전부 다 상처받고 패가 갈라지며,

전부 고통을 주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증오하고 있다.

미움이 가득 차 있다.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4

 

미움에는 사탄이 틈탄다.

교인들이 왜 행복한가?

교인들이 왜 능력이 있고, 왜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미움과 증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늘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항상 사탄이 우리 마음에 미움을 심어주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심어주며,

 

좋은 관계도 사탄이 와서 늘 서로 원수 맺게 역사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탄을 물리치지 말고 미움과 증오를 물리치면

사탄은 저절로 물러가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다 같이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해서

항상 용서하고 서로 허물을 덮어주며 긍휼을 베풀 것을 말씀하고 있다.

 

분쟁하면 이기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다 같이 망한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서지 못 하느니라. 11:17

그렇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무너지고 만다.

 

민화民話 한 토막

세종대왕 때 민손이란 분이 있었다.

두 번째 결혼했는데 그 부인이 자기 애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 애들은 너무 너무 사랑하는데,

전 처의 아이를 너무너무 차별하고 때리며,

겨울에도 얼음 밥을 주고 너무너무 비참하게 키웠다.

 

하루는 이 아버지가 그 아들 보고 얘야! 관가로 가니까 너 좀 수레를 끌어라.’

그래서 아버지를 모시고 수레를 끌고 가는데

세상에 자기 아들이 너무너무 벌벌 떠는 것이었다.

 

그래서 얘야! 너 왜 옷을 안 입느냐? 왜 그렇게 떠냐?’

그래서 내려가서 만져보니

한 겨울에 겉으로만 옷이고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혀 놓은 것이었다.

속에 솜이 없고 베가 한 겹이었다.

 

민손은 너무 화가 났다. 그 부인이 데려온 아이들은 전부 다 솜옷을 입히면서

이 아이에게는 이렇게 한 것다. 그래서 화가 나서 집에 와서 민손이 말했다.

이럴 수 있느냐, 둘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라.’

이렇게 확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만 자기 아이가 아버지보고 말한다.

아버님!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어머님이 계셔야 우리 집이 모두 다 따뜻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용서하시옵소서.

어머니가 가시면 우리 집은 모두 다 춥게 살아야 합니다.

저 동생들도 모두 다 춥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저 하나만 추우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얼마나 그 어머니가 마음에 감동을 받았겠는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래 잘살았다는 그런 얘기가 있다. 할렐루야!

 

용서하고 나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 나아가면 가정, 나라, 교회에도 평안이 오고,

내 하나만 춥자!’ 이러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번영과 축복이 비둘기 같이 날아올 줄 믿는다.

이 세상에 무엇이 아름다운가? 무슨 대단한 일했다가 아니다.

별거 아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 세상을 살다 가신 분이 제일 훌륭한 삶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 영광스러운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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