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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애국자입니까?

LNCK 2019. 12. 26. 16:48

누가 애국자인가 주용수 - YouTube

누가 애국자입니까?                   137:1-6

   

주용수 목사

   

눈물의 역사

한국의 역사는 실로 눈물의 역사였다. 피와 눈물의 역사!

수 천 년을 매 맞고 짓밟히고 조롱 받고 속임을 당하는 우리의 역사!

아직도 고난이 끝나지 않아서 남북이 총부리를 마주 대고 살아야만 하는

고통의 역사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우리 역사를 눈물이 없이는 쓰지 못하는 역사.

쓰다가도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

그러나 세익스피어는 몰라도 우리 역사는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가 또 하나 있다.

이스라엘이다. 그들의 역사도 피로 얼룩진 역사다.

압제와 항거,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뜨거운 눈물을 볼 수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눈물! 이것이 시편 137편이다.

이 시는 포로들의 노래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스라엘은 눈물 없이는 못 보는 고난을 당했다.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짐승처럼 코에 철사를 끼워 맨발로 잡혀갔다.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지금 바벨론의 강에 앉아서 조국을 그리며

강물에 눈물을 뿌리는 시가 시편 137편이다.

 

 

1, 나라를 위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을 배워야 하겠다.

 

눈물을 흘린 이스라엘 백성들

애국은 눈물과 희생이 없이는 못 가는 길이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의 길과 같이 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특별히 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본문 시편 137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내가 다시는 비파(악기)를 잡지 않겠다고,

내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자유의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사사로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비파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귀향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원수가 강제로 노래를 해보라고 조롱한다.

 

그래서 4절을 보면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하고 탄식한다.

그래서 탄식으로 노래한다. 5절을 보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는 점점 눈물로 이어진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역사는 지난 이야기다. 그런데 왜 지난 이야기를 배워야 하는가?

역사는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반추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그들이 왜 밤새 울어야 했을까?

그것은 압제의 고통과, 그것에 항거하지 못하는 나약함에 대한 비애,

조국의 운명을 그렇게 만든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고 우는 회개의 눈물이었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바벨론의 강물을 보면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상처와 고통을 깨끗이 씻고 싶었을 것이다. 137:1

 

오늘 우리에게 이런 눈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남북은 왜 아직도 총부리를 마주대고 있는가?

 

우리는 왜 이웃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지 못하는가?

이 국난 속에서도 노사는 왜 날마다 싸워야 하는 것인가?

정치인은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인가?

재벌은 돈이 된다면 국민을 팔아서라도 고혈을 거둔다.

그래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기득층과 서민은

언제나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런 조국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탈춤을 보면 상놈들이 탈을 쓰고 양반들을 마음껏 욕해댄다.

그렇다고 그 다음날 소작지가 깎인 것은 아니었다.

양반 상반이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용서와 화해는 언제나 우리 조상들이 더불어 사는 지혜였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원수이다.

 

우리는 이런 조국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단에 엎드려서 강대상을 적셔야 할 것이다.

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당리당략만 노리는 정치인들,

재판을 한다는 판사들의 비리,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다시 고개를 드는 사치풍조,

그런 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주어야 할 것이다.

 

태극기를 수건 삼아 애국가를 곡성으로 제단에 엎드려 눈물을 흘려야 한다.

제단에 흐르는 회개의 눈물이 나라를 적셔야 할 것이다.

 

눈물이 진정한 애국의 출발이다.

비판과 누구 탓을 외치기는 쉽지만, 눈물은 어렵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 땅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강물에 눈물을 뿌렸다.

 

강물은 그렇게 흘러서 눈물을 이루고

지금 시편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에 젖어드는 것이다.

 

우리도 같은 눈물로 울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같은 소리로 울어야 할 것이다.

 

도산의 눈물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회개하며 울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이 민족을 생각만 해도 나를 이렇게 가슴 벅차고, 따듯하게 감싸주는데

나는 이 민족을 위하여 한 것이 없으니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이 나라가 독립을 못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소이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이 나라 민족이 이 지경이 된 것을 그들의 책임이라고 도 전가하니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깨닫지 못하는 지..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울었다는 것이다.

 

회개는 나라를 살리는 운동이다.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

회개하면 의를 얻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패망을 얻을 뿐이다.

 

오늘날 나라를 위해 회개하자고 나서는 분들이 있어서 참 고맙다.

그런데 내심 다른 사람들을 겨냥하며 회개하자고 외치지 않기 바란다.

조용히 자기 자신부터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시편 137편처럼,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그 애국적 호소가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2, 민족적 양심을 가져야 한다.

 

민족적 상황에서 함부로 놀고 즐길 수 없었다.

2절을 보자.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던 악기인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원수가 자기들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강요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악기는 원수들의 잔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수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예루살렘에 돌아가기 전 까지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함부로 잔치와 가무를 즐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137:3-5).

 

성경은 혼자 역사 속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민족의 영욕과 같이 걸어갔다.

선지자들은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을 같이했다.

 

성도는 민족의 고통과 함께 해야 한다.

나라가 망하고 서러움을 당하고 있는데 나 혼자 안일할 수는 없다.

국토가 폐허가 되었는데 자기 혼자 사치를 누릴 수는 없다.

 

언제나 이웃과 민족을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을 잊지 말자!

*관련기사 : 한국 청소년 10% “전쟁나면 싸우겠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광야로 나갔다.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애굽의 압제를 받는 민족을 생각하면 모세는 궁궐에서 먹는 기름진 음식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았다. 애굽의 채찍에 고역을 하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자기가 누리는 부귀가 가시방석이었다.

이와 같이 민족적 양심이 살아있어야 애국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애국

 

내촌감상 선생의 성경적 애국심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을 위하는 애국이다.

일본 내촌감상 선생의 비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성경이 말하는 애국주의는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짓밟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천황은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주변 약소민족을 약탈하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애국은 치명적인 살상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을 위하는 애국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는 애국이어야 한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검사 앞에 섰을 때

"누가 독립운동을 시켰나?" 하는 질문에

"누가 시키기는 누가 시켰나? 하나님이 시켰지" 대답하셨다.

 

독립 운동도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한다.

애국도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한다.

사업도 직장도, 결혼도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한다.

 

권세를 잡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

재물을 모으기 위해 재벌을 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 뛰어 다니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

 

월남전처럼 죽는다면...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가서 많이 죽었다.

이 월남 에서 죽은 우리 젊은이 숫자만큼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피 흘려 순교해 죽었다면

세계는 벌써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를 가지자.

하나님이 애국 보다 먼저다.

하나님이 명분보다 먼저다.

하나님이 권세보다 먼저다.

 

마치는 말

비록 바벨론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것이 저들의 애국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사모하는 것이 우리의 애국이다.

 

우는 것이 애국이다.

부강한 나라는 하나님으로 무장한 나라다.

기도해야 한다. 부르짖어 기도하자.

 

민족적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나라사랑에서 출발해서, 온 세상을 섬기자.

이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인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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