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에 나타난 은혜 엡6:24 편집장 글
빌립보서에는 "기뻐하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에베소서에는 "은혜"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12회).
▶1. 은혜를 주시기 원함
바울은 서신의 처음과 마지막을 은혜로 인사하면서, 은혜를 주기 원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6:24
이와 같이 늘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자.
늘 사랑스럽고 은혜스러운 설교/글을 쓰면서 은혜를 나누게 하옵소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9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부흥 찬송 중)
하나님 보좌(내 마음) 아래서 흘러나온 물이 헤엄할 강물이 되었다.(겔 47장)
▶2. 아들이 된 은혜를 찬양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5-6
부모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노래도 시켜보고, 피아노도 쳐보라고 한다.
그렇게 강권하는데도 자녀가 끝내 거절하면 속이 탄다.
하나님은 나를 은혜로 아들 삼으시고, 이제 찬미 받기 원하신다.
부모도 자녀로부터 사랑이 필요한 때가 있듯이,
하나님도 우리들로부터 사랑 받기 원하실 때가 있으시다.
그러나 자녀에게서 찬미가 없으면, 부모는 마음이 애탄다.
자녀가 기쁘게 찬양 드리면, 부자지간 모두에게 은혜가 풍성히 넘친다.
▶3.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2:8
「정직 도덕 그리고 양심」을 쓴 제리 화이트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땅 땅 땅!” 그는 법정에 서서 몇 가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서 꿈을 깼는데,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꿈은 그가 주의 종으로 돌아서는 회심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로 모두 유죄guilty 판정을 받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감옥에서 불러내더니 “무죄!”innocent라고 선언하신다.
그래서 그 은혜를 일평생 찬송하는 사람이 되었다.
▶4. 은혜로 직분을 받음
혹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교사의 직분을 주신 것은
“은혜로”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3: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혹은 사도로, 선지자로... 4:7~
은혜는 결코 헛되지 않다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고전 15:10
은혜 받은 사람은 반드시 헌신, 봉사, 충성의 삶을 산다.
모세는 주저하는데도 하나님은 등 떠밀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바울도 바나바가 등 떠밀다시피 해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주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은혜로 사명을 맡기셨다.
자기가 스스로 머리를 디밀면서 나오는 것은 "은혜"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 하려는 사람은 은혜가 임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5. 은혜를 받으려면 -작은 자로 돌아가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3:8
한국의 목사님들이 전도사님이었을 때보다 더 겸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장로님들이 집사님 때보다 더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시원하실까?
십일조를 한 달에 1천만 원을 드려도, 5만 원 드릴 때보다 더 겸손하면
얼마나 좋을까?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치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겔 16:43
◑몰상식적 은혜
▶은혜란 - 한 마디로 몰상식적인 것이다.
①99마리의 양떼를 "들"에 두고, "우리"에 둔 것이 아님,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 한 마리는 찾을지 모르나,
나머지 수 십 마리가 이리 떼의 공격으로 죽을 뻔했다.
그런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동이 과연 목자의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②과부의 렙돈(백 원짜리 동전) 두 닢이 고액의 헌금 기부자들보다 많다니...
그럼, 누가 기분 좋게 헌금하겠는가? 실컷 헌금 드리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데...
③저녁에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을, 종일 일한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하다니...
마지막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없다.
이런 비유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내가 99마리, 고액기부자, 종일 일한 자, 탕자의 형 입장에 서 있으면
→ 불공평하다.
그러나 내가 1마리, 과부, 1시간 일한 자, 탕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
→ 은혜이다.
바리새인, 스스로 의인의 입장에 서 있으면 예수님의 행동은 '몰상식'하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은혜'를 깨닫는다.
우리가 다른 죄인을 바라 볼 때,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비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은혜의 눈으로 보면> 긍휼한 마음이 생긴다.
현재 나는 누구의 입장(형 or 탕자)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가?
당신에게 은혜가 없다면, 당신은 바리새인의 입장이다.
▶선교사의 용서
중국 공산당은 미국 선교사의 집, 재산을 다 빼앗고 선교본부를 불 질렀다.
측근 현지인 성도 몇 명을 무참히 죽였으며, 선교사 가족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선교사는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자기들 나라에 좋은 일 해 주려는 사람을 이렇게 악하게 대접하다니...’
그는 갈등 끝에 이렇게 고백했다;
“내 속에 공산당을 향한 진정한 용서가 없다면,
내가 전하는 메시지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고,
'공의의 심판'이 뇌리를 맴돌고 기도로 나온다.
그러나 '몰상식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은혜'이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동성연애자들에게 긍휼을 or 심판을?
동성연애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거기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복음주의자의 태도가 율법주의적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워싱턴에서 동성연애자들이 모여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 복음주의자들이 확성기를 들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성연애자들은 "예수 사랑 하심을..." 찬송을 하며 행진한다.
동성연애자의 부모에게 물어본다.
"동성연애자인 당신의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들이 뭐래도, 내게는 소중한 아들입니다!"
무조건 동성연애를 정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종교우익 쪽으로 나갈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 사랑, <은혜-몰상식적인>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럼 무조건 은혜로 '잘못한 것도 잘했다고' 봐줘야 하는가?
예수님도 때로 채찍을 들기도 하셨고, "독사의 ..." 독설을 퍼붓지 않으셨는가?
<마음에 뜨거운 성령의 감동이 올 때에만 분노하자>.
저들이 회개치 않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업신여길 때 대적하자.
스스로 뉘우치며 겸손한 죄인들에게는 <몰상식적 은혜>로 대하자.
정의의 이름을 가장한 '종교 우익, 바리새인'의 난동을 철저히 경계하자.
▶도덕적인 사람의 함정
히틀러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포르노를 반대한 지도자였다.
공산주의 사회도 비슷한 도덕성?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극장이나 춤추러 가지 않는다고 결코 의인이 아니다.
<흔히 엄격성이 더한 신학교나 교회를 더 '영적'으로 보는 경향도 잘못이다>
그들은 실수 없이 피아노를 쳐서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는 연주가와 같다.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무미건조한 연주를 하고 있다...
남들 잘못을 엄히 꾸짖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틀리지 않는 삶을 살려고
남들 눈치를 늘 살피는 것은, 경건한 삶이 아니라 바리새인의 삶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규율과 더불어 <사랑, 은혜>이다.
<사랑, 은혜>가 빠진 도덕성, 규율은 바리새적인 율법주의다. 도덕성이 아니다.
▶"거긴 뭣 하러 가요?"
"거긴 뭣 하러 가요?, 괜히 가봐야 마음이 더 편치 못하고 멍드는데..."
교회 가봐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더 멍들어서 못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장애자, 걸인, 접대업 종사자 등
그러나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죄인들을 초청하셨다.
마치는 말
오늘 내 삶에 <몰상식적인 은혜>를 혹시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는 나의 태도가 나도 모르게 바리새적이 되지 않았는지...
<몰상식적인 은혜>를 자꾸 <상식적 은혜>로 바꾸어 쓰는 탕자의 형은 아닌지...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