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살전1:4 0 6.07.23.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4
▲하나님이 택하신 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가 확 달라졌다.
이 사실을 자각할 때... 스스로 자기 가치가 확 올라감을 인식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 청년 형제들과 자매들이 여럿 모여 있다.
거기서 한 형제가 한 자매를 ‘찍었다.’(선택했다)
그 때부터 유독 그 자매의 가치는 확 올라간다.
모든 자매가 서로 엇비슷하지만, 선택된 이후
그 자매는 마치 할미꽃 속의 백합화처럼 모두에게 대우받는다.
한 형제가 별 뚜렷한 이유 없이(객관적으로 보면 그렇다)
한 자매를 선택한 그 날부터, 교회에서 그 자매의 가치는 확 달라지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중에 “꽃”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들판에 꽃이 무수히 늘려 있으니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 주변에 많은 꽃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꽃을 불러 줄 때에,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다.
불러주기 전에는 마치 잡초와 같은, 들판에 늘려있는 무수한 풀의 일종이다.
꽃이지만,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마치 풀과 같은 꽃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의 가능성을 “꽃”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다.
불러주면 가치가 발생한다.
▲“당신 같은 음악 연주가는 처음 봤습니다.
당신은 제게 마에스트로(대가)이십니다!”
그렇게 불러주면, 정말 그렇게 되는 면이 있다.
“당신은 제게 영적 멘토가 되십니다!” 라고 불러주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정말 계속 영적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나를 부르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것은 - 그런 의미에서 큰 가치를 갖는다.
이것이 자각되어질 때, 우리 인생은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장로교회가 가르치는 선택 교리의 중요성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가 택함 받았다’는 데서
가치가 나오고 능력이 나온다.
불러줘야 의미를 찾는다. 택해줘야 의미를 갖는다.
부름이 중요하다.
▲박지성 선수가 「끊임없는 도전」이란 책을 썼다.
자기가 히딩크 감독 때 국가대표 선수로 뽑혔는데,
거기 53명의 선수 중에 절반은 주전 A팀, 절반은 후보 B팀으로 분류되었다.
박지성은 처음에 후보군인 B팀에 소속되었다.
그래서 그는 A팀에 소속되기 위해 죽어라고 뛰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히딩크 감독은 “저 친구, 정신력 하나만은 대단하네!”로 칭찬했다.
이 칭찬 한 마디가 박지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에 그는, 히딩크가 이렇게 칭찬해주는 말을 또다시 들었다.
“지성, 너는 정신력이 뛰어나므로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될거야!”
(여전히 그가 아직 무명이었을 때였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박지성 선수의 마음속에는
‘나는 선택받았구나!’ 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그런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이
그로 하여금 더 열심히 뛰는 선수가 되게 만드는 정신자원이 되었다.
히딩크 역시 명장임은 틀림없다.
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너는 꽃이야!”며 그 이름을 불러주었다.
하물며 히딩크 감독이 몇 마디 불러줘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데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너는 내 아들이야!’라고 불러주신다면... 얼마나 대단하고 흥분되는 일인가!
▲우리 주변에 신데렐라는 많다.
그런데 대부분 시녀같이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러주는 왕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하셨는데도, 그것을 뼈저리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
누구나 불러주는 왕자만 있으면, 멋진 신데렐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많은 자매들이 있는데,
어떤 형제가 와서 무도회에서 ‘저랑 한 번 춤 같이 추시죠?’ 하면
그 자매는 몇일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신데렐라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불러주는 왕자가 부족한 것이다.
집에서는 누구나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왕자, 공주라는 소리를 듣는다.
부모는 자녀들을 왕자와 공주로 불러주기 때문이다.
지금 왕자와 공주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왕자와 공주로 불러주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러주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주신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4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었다.
①이런 자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남이야 뭐라든...
이렇게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신분에 의지해서 사역하는 사람들이다.
이 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자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부단히 말씀과 기도로 은혜 체험을 해야 한다)
②리더는 이렇게 남을 불러줄 줄 아는, 칭찬과 격려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름이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선택 교리가 주는 유익
①구원받은 자에게 감격이 있다.
구원받을만한 근거가 내게는 없는데, 은혜로 불러주셔서 구원받았으니까...
‘내가 무엇이관대..’라는 고백이 늘 나온다.
일을 죽도록 하고도 ‘내가 무엇이관대..’라는 감사와 감격이 나온다.
바울은 그런 감사와 감격을 이렇게 표현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②담대함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는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롬 8:32 하는 담대함이다.
0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는다는 담대함의 고백이다.
③반면에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좌절과 교만뿐이다.
좌절함은... 뭘 하다가 안 되면 ‘나는 혹시 버림받았나?’ 좌절한다.
교만함은... 뭘 이루면, ‘내가 이루었다’고 교만해 한다.(↔선택)
바꾸어 말해서, 선택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과 교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자랑할 근거는 자기에게는 없다.
왕자가 선택해주었기 때문에 많은 시녀들 중에서 신데렐라가 된 것 뿐이다.
▲베드로는 우유부단하고, 경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베드로라고 부르셔서, 원래의 시몬이 반석이 되었다.
사도행전을 보라. 진정한 반석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이 나오려면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불러주면 가치 있게 된다. 인생이 달라진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가치 있게 만들었듯이,
성도의 사명도 남을 불러줘서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의 사명 중에 하나는 기대해 주는 것이다.
탁월한 헌신자로 기대해 주고, 그렇게 불러준다.
예술계의 탁월한 마에스트로로 기대해주고, 그렇게 불러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데렐라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불러주는 왕자가 없을 뿐이다. 신데렐라를 불러주는 왕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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