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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 나타나시는가? 창12:7 스크랩
*아브라함의 일생을' 하나님의 나타나심, 임재'의 관점에서 풀어 본 설교입니다. 또한 '나는 어느 수준에 와 있나?' - 생각해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고난과 저주와 문제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는 그런 문제와 고난을 해결받기 원한다. 예배 때도 그것을 사모한다.
예배를 통해서든지, 개인기도시간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시면, 임재를 충만히 체험하면
그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지 다 해결된다. (일동 아멘!)
▲성경에 욥의 고난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많은 고난, 어두움, 질병이 있었다.
욥 자신도, 왜 자기가 그런 고난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다.
기도하고 부르짖었지만 깨닫지 못했다.
욥의 친구들도 많은 의견을 내고, 욥이 반론하면서 많은 의견을 나누었지만
그 고난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시자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된 줄 믿는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저도 15년 전에, 선교지로 가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면서
늘 기도하는 제목이
‘하나님, 제게 임재해 주시고, 제게 나타나 주셔서
이 문제를 좀 해결해 주시옵소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하나님은 잘 나타나 주시지 않으셨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셨다’는 가장 최근의 체험이 언제인가?
(혹시 수 년 된 것 아닌가?)
성경에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자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주셨다.
이런 임재의 체험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점점 성숙되어 가는데...
우리도 아브라함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줄 믿는다.
◑1st. 하나님의 임재 : 갈데아 우르를 떠났을 때 (회개할 때)
▲부르심 : 세상을 떠나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주님이 먼저 부르셨기 때문이다.
부르심에는, 세상을 떠나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 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지방의 우르에 살고 있었다.
갈데아 우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큰 두 강 사이에 둘러싸인 도시다.
갈데아 우르는 다시 말해서 세상이다. 아브라함은 세상에 둘러싸여 살았다.
▲세상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려면 반드시 그 강을 건너야 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으려면, 세상을 반드시 떠나고, 그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아브라함도 갈데아 우르 본토 친적 아비 집을 떠나기 쉽지 않았다.
그들은 우르를 떠났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란에 멈추었다. 창 11:31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비로소 아브라함은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오게 된다.
▲세상의 강을 따라 올라가서 하란에 머무는 사람들
하란은, 우르에서 유브라데 강을 거슬러 올라간 상류 지역에 위치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는다는데 세상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산다. 하란의 아브라함과 같다.
하나님을 따르지만, 그 강을 건너지 못하는(않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부르셨지만, 세상과 더불어 주님을 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삶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증대된다.
▲아브라함이 체험한 1st 임재
- 아브라함이 하란을 과감하게 떠날 때 : 세상을 떠날 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진짜 떠날 때,
그래서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로 그에게 나타나 주셨다.
아래 성경을 읽어보시라. 이것은 가나안에 도착하자마자 나타나심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 12:7
▲세상을 떠날 때, 그 강을 과감하게 건널 때
신앙생활에 처음으로(1st) 주님을 체험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온다.
어떤 이는 금식기도하며 회개하며 눈물 콧물 흘리며 주님을 만나기도 하며,
어떤 이는 회개를 통해 세상을 끊고, 주님을 만나기도 한다.
중생(거듭남)의 체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기도 한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나를 붙잡고 있던 귀신의 영들이 떠나가며,
또한 질병도 치료된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중간지역, 회색지대 하란에 머물고 있다. 혹은 양다리 걸치고 있다.
과감하게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하란으로) 올라갈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나안)의 유업도 못 받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나라(가나안)의 축복을 점점 누리게 되는데...
오늘 철야기도에 참석한 많은 성도들도 과거에 이런 회개의 체험이 있다.
과거에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반드시 있다.
그러나 이런 임재의 체험은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현재도 계속되어야 할 줄 믿는다.
◑2nd 임재 - 롯에게 양보했을 때 (주님 뜻에 따를 때)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 : 실족
사람들은 가나안에 이르면, 모든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쉽게 부어질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의 보니,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는데,
얼마 후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된다.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해 다시 애굽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세상을 건넜지만, 그래서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왔지만,
세상의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도 세상의 방법을 또다시 취하기 쉽다.
다시 세상(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애굽 땅을 그리워하였듯이...)
▲심적 고통이 따르다 : 후회
아브라함이 그랬다. 애굽에 내려가서 생존을 위하다 보니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그 덕분에 집도 얻고 재물도 얻었다. 창 12:16
그런데 세상에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를 빼앗기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물질적 어려움은 해결했더라도,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맞아, 내가 하나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했어야 했었는데...’
‘내가 애굽(세상)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 후회를 많이 했으리라 본다.
우리도, 신앙생활 중에, 중생한 후에도 한 두 번씩 세상에 내려가기도 한다.
그 때 약간의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처럼 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어...’ 후회하게 된다.
▲실패를 통한 교훈 얻음
‘내 눈에 좋아 보여서 내가 선택했지만, 그것은 결코 좋지 않구나!’ 후회한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의 안에 있음을 깨닫고 다시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
‘내가 하나님 음성 듣고 움직여야지, 내 멋대로 했다가는 큰일 나는구나!’
- 를 깨닫는다.
‘가나안에 왔다가 다시 세상에 내려가면 이렇게 어려움, 고통을 당하는구나!’
- 를 깨닫는다.
그래서 실패 후에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게 된다.
다시 믿음의 생활로 되돌아온다.
이제 내 주장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굳게 다짐한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실패를 통해, 믿음이 좀 더 성숙되었다.
그 증거가 아래 사건에서 드러나는데...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목축업에는 목초지와 물이 필수 요건이다.
그래서 서로 좋은 땅과 우물을 갖기 위해 다투니까 덕이 안 되었다.
“롯, 너와 나는 핏줄이다. 또 믿음의 형제끼리 서로 싸우는 것은 안 좋다.
네가 먼저 선택해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애굽의 실패를 통한 체험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라고 선택해 봐야 - 그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내 축복은 오직 하나님이 선택해서 주셔야 되는 것이지,
내가 움켜쥔다고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를 애굽에서 깨달았었다.
그렇다. 축복은, 내가 움켜쥐고 남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그래서 겸허해진다.
아등바등 남들과 싸워서 쟁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는 카자흐스탄 선교지에서 큰 도시, 수도(알마타)에서 사역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싸우고 다투었으면 쟁취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겸허하게 마음을 비웠다.
결과는 내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소도시(침켄트)에 계속 남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주님은 놀라운 축복을 그 소도시에 주셨다.
거기서 사역이 잘 되어 신학교도 세우고, 큰 교회도 이루고,
당회장님을 모시고 성회도 개최하는 복들을 누리게 되었다.
만약 내 스스로 선택해서 큰 도시로 나갔더라면, 그런 복은 없었을 것이다.
나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을 겸허히 따랐더니
내 원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것이 큰 축복이 된 것을 체험했다.
▲2nd 임재 - 겸허히 내 뜻을 포기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스스로 복 받으려고 애쓴다. 경쟁을 불사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겸허해져서, 기꺼이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했을 때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
▲내 뜻을 버릴 때 - 임재가 나타난다.
‘이제 나를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 - 임재가 나타난다.
그리고 동서남북을 보이시며, 보다 넓은 비전을 허락해 주신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이익과 이권 등으로 남과 다투면서
롯처럼 좋은 쪽을 취하겠다는 사람은 - 임재를 체험하기 어렵다.
자기도 싸울 수 있지만, 싸우지 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겸허히 따르는 삶을 살 때 - 하나님은 나타나 주신다.
우리는 임재의 놀라운 영광을 체험하며 살게 된다.
◑3rd 임재 - 롯을 구해주었을 때(영혼구원 사역을 할 때)
성경을 ‘임재/말씀하심’의 관점에서 순서대로 읽어보면
롯을 구해준 다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또 나타나 말씀하셨다.
창세기 15장 전체가, 임재하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14장에서 조카 롯을 구해준 다음에 일어났다.
롯을 영적으로 마귀에게서 구해주었을 때, 다시 말해 복음의 사역자가 될 때
-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주신다.
▲신앙생활이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의 영혼을 돌보며 사는 것이다.
구역장, 조장, 장로, 집사 등 각종 직분을 가지고 섬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고난과 문제들을 놓고 대신 중보기도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며 살 때 - 하나님은 나타나 주신다.
네 왕에게 붙잡혀간 롯처럼
세상 마귀에 붙잡혀서 절망과 고통을 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 교구에, 구역에, 직장에, 이웃에 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며
상담하며, 전도하며, 교회로, 주님께로 인도할 때
그들의 영혼을 구할 때 - 하나님이 나타나 주신다. 창 15장처럼.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당시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 아들이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데, 단 한 가지가 부족할 때가 있다.
꼭 기도를 응답받아야할 중요한 것 한 가지씩 - 각자에게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기도를 응답받지 못 한다.
부수적인 작은 문제들은 쉽게 응답을 받아도
나에게 가장 큰 문제, 결정적인 문제는 - 응답을 못 받을 수 있다.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처럼.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하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주님은 어느 날, 그 큰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비전을 주신다.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2, 4.
◑임재의 중단 - 이스마엘을 낳자 (육신으로 봉사하자...)
▲인내심의 고갈
아브라함은 영혼구원 사역 중에 후손의 약속을 받았다.
그렇다면 더 열심히 봉사하며, 인내하며 기다렸어야 했는데...
아내 사라가 먼저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래서 주님의 약속을 받고도, 그는 아내의 요청을 덥석 수락한다. 16:2
그래서 하갈을 취하고는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 때 아브라함은 86세였다. 16:16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17:1
앞서 75세~85세까지 수차례 나타나신 하나님이 12:4
86세~99세까지 13년 동안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왜?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는 불순종 때문에!
◑4th 임재 - 은혜로, 육신이 죽음
하나님은 그 동안 답답해하시다가 99세에 드디어 은혜로 나타나 주셨다.
어떤 의미에서 침묵의 13년은, 아브라함에게 징계의 기간이었다.
오직 은혜로, 사랑으로,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나타나 주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7:1
너는 할례를 받으라 17:11-14
▲할례의 언약을 맺으심
--할례는 구약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포피를 베면 피가 나오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그것은 침례(세례)를 의미한다.
저는 선교지에서 침례를 줄 때, 수세자를 일분 정도 물 속에 누른다.
그러면 20-30초 지나면 숨이 차서 버둥거린다. (일동 웃음)
그 이유는, 옛 사람이 죽으라고 침례를 받는 것이니
실제로 물속에서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체험을 해 보면서,
그 죽음을 잊지 말고, 남은 생애 오래도록 기억하라는 뜻이다.
▲육신이 죽어야...
교회에서 봉사할 때, 자아가 죽지 못하고, 자기 열심이 앞서는 사람 있다.
하나님은 갈 2:20절처럼,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을 원하신다.
예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고 하셨다. 요 3:6
자기 육신의 힘으로 아무리 열심히 봉사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 육신의 힘으로, 이스마엘을 낳았다.
자기 육신의 힘으로 하는 교회 봉사, 교회 개척... 주님이 노하신다.
우리는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사실은 자기 영광을 나타냄이 많다.
반드시 자기 이름, 영광을 드러내려는 사람들... 너무 많아서 탈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 많은 이스마엘을 낳았다.
우리의 열심을 낳았고, 우리 이름을 드러냈고, 우리 영광을 자랑했다.
→ 문제는, 그럴 때 하나님은 절대로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는 것!
▲자비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다.
할례를 통해, 다시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아브라함은 자기 육신이 죽고, 영적으로 더 성숙되어졌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통해, 신앙생활이란 끊임없이 자기를 영적으로
완전히 죽이는(깨어지는) 것임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철저한 육신의 깨어짐 후에, 영적 성숙 후에
아브라함은 고대하고 바라던 후손의 축복을 받게 된다.
백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얻었던 것이다.
우리가 언제 이삭 을 얻을 수 있는가?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
곧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혀 죽을 때 - 일어난다.
▲영적 침체
우리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85세 이전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임재를 자주 체험하다가
어느 순간, 주님이 통 나타나 주시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육신으로 주님을 섬기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을 낳기 때문이다.
그 때는 빨리 마음의 할례를 받고, 언약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
그런 영적 죽음과 자아의 깨어짐의 훈련을 통해서,
신앙이 점점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며
나아가 때가 되면 이삭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이다.
◑5th 임재 - 이삭을 바치라 (오직 주님만 나의 우상)
▲드디어 이삭의 축복을 받고... 가정이 회복되고 사업의 복도 받았다.
자녀들도 변화되어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고백하며
예수 믿는 것이 즐겁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우리를 시험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업의 축복을 - 거두어 바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행복을 - 주께 바치라고 하신다.
주님을 위해 쓰고, 헌신하라고 하신다.
그럴 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적인 많은 연단을 받았던 아브라함은 - 그것을 했다.
그래서 사흘 길을 가서, 이삭을 결박하고, 죽이려고 칼을 쳐들었다.
▲하나님의 임재 -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6-18
히브리서는 같은 내용을 더 강조체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히 6:14
▲이런 축복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삭의 복(직장, 자녀, 사업 등)을 받지만
그러나 그 이삭이 우상 이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상 이 되기 원하신다. (사랑하고 섬긴다는 의미로!)
그런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이삭의 축복은 -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업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영원히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 자손이 영원히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영원히 변치 않는 기업의 복을 받았다.
◑마치는 말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적어도 5번 이상 나타나 주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①세상이란 강을 건넜을 때 - 나타나 주신다.
②자기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과 복을 위해 양보할 때 - 임재해 주신다.
③다른 영혼들의 문제를 돌아보며 사역에 헌신할 때
- 임재하셔서 방패와 상급의 복을 주신다. 이삭의 약속도 받는다.
④그래서 사역을 하는데, 처음에는 내 힘과 내 열심으로 한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화도 내고, 원망도 하면서 마찰을 일으키다가
자신이 점점 깨어지면서, 다시 영적 죽음의 체험을 통과하면서
- 새롭게 임재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삭의 약속도 받는다.
⑤그래서 사역도 잘 되고, 사업도 잘 되고, 자녀도 다 잘 되는데
그 잘되는 그것도 - 바치라고 요구하실 때가 있다.
그것마저 바칠 때, 하나님은 임재하셔서 영원한 복을 주신다.
지금 나의 이삭은 무엇인가?
나는 처음에 10년만 선교사역하고, 그 후에는 다른 사역을 하기 원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보낸 지 벌써 15년이 지났는데,
‘너는 또 15년을 더 선교사역 할 수 있겠느냐?’ 라고 주님이 물으시면
나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아마 개인적으로 이것이 나의 이삭 같다.
‘15년 더 선교지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개인적으로는
‘이삭을 바치는 것’이 되는 것 같다.
옛날에 한 번 주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하나님은 계속 나타나시고 임재하셔야 한다.
계속되는 임재를 통해 큰 축복을 사모하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6-18
우리 하나님은 ‘나타나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올바른 영적 생활을 하면 - 반드시 나타나 주신다.
주님이 여러분께 다섯 번째 나타나시기를 축원드린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나타나시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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