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일깨워 주는 가문 렘25:1~19 06.05.07.
◑1. 경건한 가문, 레갑 자손
오늘 본문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면서도(이방인임)
신실한 믿음과 경건을 소유한 레갑 족속을 통해
유다 백성들의 패역과 불순종을 대조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우리에게 신앙적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레갑의 자손같이
이 시대를 일깨워 주며 하나님 앞에 설 자들이 많이 일어나는 가문을
일으키는 믿음의 조상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앙적 기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레갑의 족속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8절, 참조/대상2:55절)
레갑의 족속은 본래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니었습니다.
즉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대상2:55절에 보면, 겐 족속으로서 아라비아 지역의 페트라 근처,
또는 미디안 광야에 정착해 있던 족속으로
성경학자들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당시 유목민으로서 유다 광야에서 목축을 하고 있었던 족속입니다.
그런데 레갑의 족속 중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자기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그들 조상들이 지키던 신앙적 관습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후 레갑의 자손들은 약 250 년 동안이나 그 관습을 잘 지켜 왔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레갑의 자손들은 원래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지만
그 선조 요나답의 신앙적 가훈에 철저히 복종하여
지금도 시대를 일깨워 주는 가문이 되어있는데
반면에 유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깨우쳐 주었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민족정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산학교가 있습니다.
1907년 12월 평북 정주군(定州郡)에 남강 이승훈(李昇薰) 장로가
민족정신의 고취와 인재양성에 뜻을 두고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교입니다.
오산 학교에는 조만식 장로님이 있었고
그 뒤에 유영모 선생이 교사를 거쳐 교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조만식 장로가 교장 재직 시 민족 지도자로서 춘원 이광수를,
과학기술의 선구자로 유영모 선생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영모 선생은 16세 때 아버지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승동 교회에 나가서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장로의 아들로서 동경물리학교를 수학하고
오산학교 교사로, 후에 교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시간을 가리켜 주는 사람들
그런데 항상 이광수 선생이 유영모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시계 같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말 보다 삶을 통해 주위 사람들과 학생들을 일깨워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훌륭한 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오산학교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일깨워 주는 사람, 시계 같은 사람,
바로 레갑의 자손들은 그 시대를 일깨워 지고
그 시대의 시간을 가리켜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 자손들의 신앙이 소문뿐인지,
아니면 정말 진정한 신앙인지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1-10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레갑의 족속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레갑의 자손들을 불러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을 놓고 마시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레갑의 자손들은 한사코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기를
① 6절,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② 7절,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③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하라 고 하면서
'그리하면 너희 생명의 날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는 우리 선조 요나답의 말에 순종하여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파종도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했다는 것입니다.
레갑의 자손들은 한마디로 가훈 을 잘 지킨 신앙의 뼈대 있는 가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약 250년 동안 방문 위에 걸려 있는 골동품 가훈이 아니라
저들의 삶과 정신을 지탱해준 신앙적 가훈입니다.
▲신학자 <클락크>에 의하면 레갑의 자손들이 준수하고 있던 생활신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경건한 삶을 의미하고 있다고 합니다.
팔레스틴이나 유럽 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포도주나 술은
일상생활에 빠질 수 없는 음료수입니다.
왜냐하면 그쪽 사람들의 집은 다 대리석 돌집입니다.
지질이 다 석회석 대리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물들이 다 석회석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셔야 만이 몸속에서 석회석이 분해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술 때문에 실수를 하고, 술 때문에 타락을 하기 때문에
아예 레갑의 자손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실정은, 정치하고 권력의 핵심에 올라갈수록
폭탄주량과 정비례한다고 합니다.
현재 정치 권력자들은 심심찮게 폭탄주 스캔들이 매스컴에 오르고 있습니다.
술 마실 줄 모르면 출세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오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레갑의 자손들은 이 세상의 출세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경건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② 집도 짓지 않고 파종을 하지 아니했다는 것은
이 땅에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1:14절
그래서 예수님은 눅 12:15절에 어리석은 부자를 이야기하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 하니라 합니다.
레갑의 자손도 사람인데, 왜 집도 짓고 농사도 지어
곳간에 양식을 쌓아 놓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마는
그러나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으로서 남는 것이 더 귀중한 삶이라는데
눈이 뜨였기 때문에 집도 파종도 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레갑의 자손들은 이 세상의 부자보다는
하나님 앞에 경건의 자손이 되기를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③ 평생에 장막에 거했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
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유목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족장들의 삶은
그야말로 장막을 치고 사는 유랑민의 삶입니다.
그러면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족장들의 삶을 단순한 장막생활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천국 본향을 사모하는 상징적인 삶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 11:9-10
즉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빌3:19절에 세상 사람들은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하지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러므로 땅의 것을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설 때를 기다리는 삶인 것을 말합니다.
레갑의 자손들은 이 땅의 영광보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았던
자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세상의 유행보다 하나님의 경건을 나타내기를 결심한 사람,
세상의 부자보다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
세상의 영광보다 하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레갑의 자손이 바벨론의 침공 시 예루살렘에 거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11절)
11절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하게 될 시점에
피난하여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록 당시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지만
레갑 자손들은 예루살렘 성에 거하면서도 저들의 신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핑계를 대지요. 농촌생활에는 신앙생활 여건이 되지만
도시 생활에서 언제 신앙생활 제대로 할 수 있나요?
오늘 도시 교회가 안고 있는 약점이 무엇입니까?
각박한 인심과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도시로 밀집되다 보니 도시 교회가 수적으로는 굉장히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점점 신앙의 수준이 저하되어져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레갑의 자손들은 도시생활 속에서도 저들의 신앙을 지켰다는 것.
당시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굉장히 도전을 주는 사람들이요.
바로 신앙의 시계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 가다보면 직장 핑계, 사업 핑계 댑니다만
하나님은 오늘도 레갑의 자손같은
신앙의 Bussinary(직장 선교사)를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당시 유대 백성들의 영적상태는 어떠합니까?
◑4. 당시 유다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으며
그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무엇입니까? (13-17절)
13-15절까지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받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레갑 자손들은, 수 백 년 전에 그 조상 요나답이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한
명령을 오늘날까지 잘 따르고 있는데 (사람 이 말한 교훈도 순종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듣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바벨론의 손에서 너희를 지켜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서 거하리라 하여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갑의 자손들은 그 선조가 명한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 하도다. 라고 탄식하십니다. 렘 35:16
▲퓨전(혼합) 문화의 위기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중대한 위기의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속문화 그리고 레저문화 나아가 사이버문화,
다원주의에서 오는 권위의 추락으로 점점 교회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 직분자가 되어서도 1부 예배드리고 오후에는 등산가고
온천 간 것을 자랑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완전히 폭력 음란 사이버 문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퓨전(섞음, 혼합) 문화의 유행으로 종교도 혼합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계 18:2절에,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고 합니다.
세상 유행 따라가다가는 함께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거대한 바벨론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만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경고를 주신다
하나님은 경고합니다. 불신앙의 결과가 어떠할 것을 말합니다.
17절,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에게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이 재앙은 바로 바벨론에 포로되어 갈 것을 말합니다.
레갑의 자손들은 그 조상의 말 한마디에
수백 년 동안이나 그 명령을 지키는데
유다 백성들은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라고 했지만
저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귀에 안 들릴 때는... 망할 징조
그 결과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은 파괴되고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갈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백성이 망하려고 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55: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살길을 열려 줍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겠다고
경고하시는 것은, 지금이라도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유다 백성들은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시며
반면에 레갑 족속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합니다.
◑5. 레갑의 족속에게 주어진 축복이 무엇이며
신앙의 부모로서 나는 자녀에 대해
어떤 신앙적 결단을 내려야겠습니까?(18-19절)
19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행한 레갑의 자손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소유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갤럽 여론 조사에 의하면
개인적 성공의 기준이 ①좋은 건강, ②든든한 직장, ③행복한 가정
④좋은 교육, ⑤마음의 평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신앙의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이 보고에 따르면 명문대학 나와서 건강하여
대기업에 종사하는 가장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성공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공은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를 깨우친 레갑 가문
레갑의 자손들에게 어떠한 직분이 맡겨졌는지 성경에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섬기는 일에 저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놀라운 축복임을 말합니다.
레갑의 자손이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영영히 끊이지 않겠다는 약속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 숨겨져 있는 교훈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란 인물은
왕하 10:15절에 나오는 여호나답을 말합니다.
여호나답은 당시 부패한 아합 왕조를 무너뜨린 예후를 도와서
아합에 속한 자를 진멸하고
나아가 바알의 모든 선지자를 멸하는데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자식들은 장관이 되고 장군이 되고 왕후가 되는 것이
역사의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그의 자손들에게 세상에서 출세할 것을 원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것을 명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조금마한 사회적인 지위만 있어도
병역을 기피하려고 하고, 조기 유학을 떠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신앙적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레갑의 자손들을 통해서
유다백성들에게 신앙의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가정의 자녀들에게
이 시대를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상징적인 가문이 될 것을 기대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레갑 족속은
어두운 세대에 시대를 깨우쳐 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유명인사가 되고 스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에 빛들의 자녀로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놓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빌 2:15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람이요
우리가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레갑의 자손은 어두워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세상에
시계와 같이 그 시대를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비록 이방인들이었지마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손이 되어
세상 유행보다, 세상의 부자 보다, 이 땅의 영광보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로 살아가는 내일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레갑 족속의 조상에 대한 모범적인 복종(펀 글) 렘35:1-11
▲1.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부탁한 생활 규범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기록하여 남긴 것 같고 자신도 철저히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의 후손들은 수대에 걸쳐서 이를 신실하게 준행하였다.
그의 후손들 모두가 요나답이 생전에 자신이 준수하였듯이 이를 준수하였음을
본문을 통하여 찾아 볼 수 있다.
그 교훈들은 두 가지로 모두 요약될 수 있다.
1) 그는 후손들에게 나실인의 계율에 따라 "포도주 마시는 것을" 금하였다.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적절히 마시도록 허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다보면 도가 지나쳐서 그것으로 인하여 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의 빛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삼는 경건한 사람은
즐거우려는 목적 때문에 술을 마실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시 4:6, 7).
따라서 전혀 포도주를 마시지 말거나 또는 디모데가 그랬던 것처럼
약으로 조금씩 사용하는 자기 부정적인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딤전 5:23).
2) 그는 그의 후손들에게 "장막에 거하며" 집을 짓지 말 것과 땅을 사거나 세를 내거나
또 땅을 점령하지도 말라고 명하였다(7절).
이러한 규례는 나실인들이 지켜야 할 규례 이상의 고행과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막은 보잘 것 없는 거주 장소이다. 그러므로 장막 생활은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또한 장막은 추위를 막아 주지 못하는 거주지이다.
따라서 장막생활은 또한 그들에게 강인함을 가르치며 몸의 안일만을 추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장막은 또한 늘 이동할 수 있는 집이다.
따라서 장막 생활은 그들에게 이 세상에 정착한다거나 뿌리를 박고
안정되게 생활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평생" 을 장막에서 거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맞아 며칠을 장막에서 지내듯이
그들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고 군인들이나 목자들처럼 여름철만 장막에서 산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고통을 견뎌내는데 익숙해 있었고
따라서 노년에도 이 생활에 곤란을 느끼지 않았다.
▲2. 요나답이 이러한 생활 규범을 전해 준 이유.
그것은 단순히 그의 권위를 보이고자 해서 한 것은 아니었고
또 그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들에게 강요함으로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이것은 그의 지혜를 보여 주는 것으로 그가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그들에게 권함으로 그들의 안녕을 염려하는 참된 관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후손들을 명령을 지키도록 서약으로 규제하지도 않았고
이 규칙들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을 가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규율이 그들 자신의 교화(敎化)에 유익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그대로 지킬 것을
충고하였고 또 11절에서와 같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대로 하지 않아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 규칙들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1) 그들이 조상들의 옛 가통(家統)을 지킬 것을 명하였다.
어떤 이들이 혹 이를 멸시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것을 지키는 것을 참으로 덕망있는 일로 생각하였다.
그의 조상들은 유목생활에 깊이 젖어 있었다(출 2:16).
따라서 그는 그의 후손들도 이 전통을 지켜 주기를 바랐다.
그는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활을 변질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실상 이스라엘은 본래 목축민으로 장막에서 거하였던 것이었다(창 46:34).
우리는 조상들의 순수한 전통이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그는 그들이 분수에 맞는 삶을 살 것을 명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귀화할 것을 희망하였다(민 10:32).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이방인으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 땅에서 나그네" 였다(7절).
그들은 이 땅에서 아무런 유산도 얻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매일 수고함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형편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적은 수입과 어려운 생활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과 같은 나그네의 형편으로서는 정착민들처럼 풍부하고 여유있게 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3) 그는 그들이 그들과 함께 사는 이웃들의 생활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동요되지 말 것을 명하였다.
나그네인 그들이 만약 재산을 모으고 떵떵거리고 산다면
이스라엘 원주민들이 그들의 부요를 탐내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시기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보게 될 것이었다(창 26:14).
그리고 그들과 시비할 트집을 찾아 그들에게 해를 입히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나답은 그들이 검소하고 겸손히 생활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라 여겼다.
왜냐하면 겸비한 삶이야말로 생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겸비한 생활을 하면 "그들이 나그네 되었던 땅에서 그들의 생명이 길리라" 는 것이
그의 교훈의 뜻한 바였다. 겸손하게 은둔하며 자족하는 생활이
흔히 최선의 정책으로 가장 확실한 자기보호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그는 그들의 사치와 세상 쾌락의 유혹에 대비하여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의 강력한 죄의 유혹에도 대비하여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요나답은 당시의 도덕의 보편적인 타락을 보았다.
에브라임 족속들 가운데는 주정군들이 많았고 따라서 그는 그의 자녀들이
이에 유혹되어서 타락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끼리 살며 농촌에 은둔해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불법적인 쾌락에 이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합법적인 쾌락의 수단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절제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요구되었고
이런 생활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유익하였다.
또한 이 생활은 장수에 도움이 되었고 생활에 용이하게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그들이 나그네되었던 땅에서"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모든 육적인 욕망을 자제할 수밖에 없으며
또 쾌락적인 생을 초월하여 살며 이러한 욕망은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그는 그들로 고통과 재난의 시기에 대비하도록 권고하였다.
요나답은 예언의 영이 없었으나
이 백성의 불쌍할 정도의 타락을 보고 그들의 파멸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일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면
고난의 와중 속에서도 평화를 지닐 수 있도록 그의 후손들에게 준비를 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잃은 것이 적게 하고자 하였고 탈취당할 시기가 임해도
그들이 적게 두려움을 먹도록 하고자 하였다.
또 그들로 하여금 소유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함으로 소유물을 탈취당할 때
덜 고통스럽게 하고자 하였다. 고통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사람들은
세상을 극기하며 자기 부정적인 생을 사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6)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도록 또 훈련 아래서 생활하는 법을 배우도록
명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생활은 유익하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유익한 것이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은
(아마 요나답도 이 훈계를 후손들에게 남겨 놓았을 때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경험의 의해서 세상의 무상함과 그 풍요한 부와 쾌락의 속에 감추인 위험스러운 함정을
알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들이 그들 뒤의 오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하도록 경고할 때
이러한 경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의 후손들이 이 규범들을 철저히 준행함(8-10절).
그 후손들은 각각 자기 세대를 맞으면서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그들에게 명한 모든 명을 순종하여 다 준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포도주가 흔한 지방에서 살았지만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다.
실상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한 훈계를 받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기를 검토해야 한다.
그들은 집도 짓지 않았고 경작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한편 그들의 조상에 대한 복종심과
또 그의 이름과 권유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한편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이 같은 고행의 생활이 유익함을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전통이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리고 고대의 덕담(德談)과 사례와 위대한 인물들이 인간들에게 미친 감화력을 생각해 보자.
거의 불가능하게 보여지던 것들이 오랜 사용과 관습에 의하여 용이하게 되고
자연적인 관례로 되어버리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각해 보자.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그 특성 몇 가지를 고찰해 보자.
▲1. 필요한 경우에는 요나답의 가훈을 어길 수도 있다는 것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요나답이 그들에게 필요한 경우 예외도 있을 수 있음을 지시한 것으로 봄이 옳다(11절).
그러므로 군대를 이끌고 "바벨론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지금까지는 천막 생활을 하였지만 그 생활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힘이 닿는데 따라서 가옥을 준비하여 생활하였다.
아무리 엄한 생활 규칙이라도 지나치게 엄해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에는 예외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서약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경우 참작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이다.
이렇게 할 때 사리가 보다 명백해지며
따라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 (전 5:6)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성격의 명령들은 제한된 범죄 내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만약 그들이 다 같이 위기에 부딪혀서 그들 가족의 규례와 관습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레갑 족속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를 불신하는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그들은 급박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앙으로 가훈을 지켰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성전의 한 방인 예언자의 방으로 인도하였다.
"방백들의 방" 이 아니라 예언자의 방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 예언자의 방은 방백들의 방 곁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의 방에서" 전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게 보여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거기서 그는 레갑 족속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따라 마실 잔까지 그들 앞에 놓았다.
이렇게 한 것은 그들로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자극적인 말을 던졌다.
"포도주를 마시라. 공짜로 주는 것이오. 예루살렘에 살러 들어왔으니
여러분은 가훈의 규례 하나를 어겼오. 그러니 포도주를 마셔도 상관없지 않소?
당신들도 이 성에 들어왔으니 이 성에 사는 사람들처럼 행해야 되지 않겠소?"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들 중 누구도 이견을 말하지 않았고 일체로 거부하였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오. 그것은 우리의 법에 저촉되는 것이오" 라고 그들은 대답하였다.
예언자(예레미야)는 벌써 그들이 자기의 요구를 거절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렇게 답변했을 때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단호하게 각오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확고한 금주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유혹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지만 그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혹은 매일 극복되어야 한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러스 알파의 우상 (0) | 2019.12.27 |
---|---|
역사학자가 본 한국교회와 언론 (0) | 2019.12.27 |
불씨만 있어도 불길은 다시 일어난다 (0) | 2019.12.27 |
이렇게 수습 하십시오 (0) | 2019.12.27 |
효도의 성경적 원리 (0) | 201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