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rQu0e78ihg
◈마리아의 목마른 갈망 요20:15, 시42:1 06.04.16. *원제목 : 울며 누구를 찾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요20:15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42:1
갈급한 심정, 깨어진 마음, 목마른 갈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점점 멀어진다는 말인데, 사실이다.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시고, 장례까지 치렀으니... 마음도 멀어질 만 하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갔다.
주님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무덤 문이 열려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장 동네로 돌아가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요한이 걸음이 빨라 먼저 도착했으나, 무덤에 먼저 들어간 것은 베드로였다.
그들은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명색이 수제자라는 사람이, 명색이 가장 사랑받는 제자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생각도 않고, 황급히 집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아마 베드로와 요한은 염려가 앞섰던 모양이다.
시신이 사라져 버렸는데, 거기 무덤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시신을 도둑질해 간 용의자로 체포될 것을 염려했던 모양이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예수님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울며 무덤 곁에 남아있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갈급함 때문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체험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자인가?
과거에 일곱 귀신이 들렸었고, 전직도 의심스러운 여자이었다.
예수님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면, 지도자인 사도들에게 먼저 알려서
그들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질서도 있고, 합당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가장 미천한 여자 중에 더 미천한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다.
예수님은 오늘도, 지체 높은 사람, 명망 있는 사람보다는
비록 미천하더라도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신다.
물론 지체 높은 사람을 역차별 해서도 안 된다.
요지는, 누구든지, 주님을 간절히 찾기에 갈급한 사람에게
주님은 나타내시고 만나 주신다.
▲시편에 무명의 저자들도 많다.
시 2, 3, 4, 6, 7, 9, 11, 42, 43편과 그 외에도 많은 시편들이,
각각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거기엔 임금과 장군 등 지체 높은 사람도 있었으나,
성막에서 그저 봉사하던 이름 없는 사람도 있었다.
뛰어난 지도자도 있었지만, 무명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를 갈망하나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믿음의 수준이 높아진다.
하나님의 사람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도사였고, 신학자였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퀴나스를 내려다보니
그는 수시로 금식하며 무엇인가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은 기도 할 때 그에게 나타나셨다.
“사랑하는 내 종 아퀴나스야, 네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길래
그렇게 눈물로 나를 찾느냐?”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내 종아,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금식하고 고행하며
울며 내 이름을 부르느냐?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랴?”
그 때 아퀴나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게 무엇인가 주시고 싶으시다면
주님 자신을 제게 주옵소서!
주님은 저의 것이고,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가 간구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 이었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후 아퀴나스는 놀랍게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가 쓴 그 유명한「신학대전」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훗날 친구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미완성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후
이제껏 써 놓은 나의 작품이 부끄러워서
더 이상 펜을 들 수가 없었다네...”
▲주님을 만나는 지극한 행복 체험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나게 되자
슬픔과 공포, 실의 속에 휩싸여있던 이 여인에게
무덤 속에 비친 그 찬란한 빛만큼이나 환하게 밝은 기쁨 이
그녀의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되었다.
여러분, 왜 우울하게 사시는지 아시는가?
일이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사람들이 괴롭혀서? 건강이 안 좋아서?
아니다. 주님이 안 계셔서 그렇다.
보시라. 이 여인에게 바꿔진 처지가 무엇이 있는가?
거기서 울다가도 군인들이 오면 잡혀갔을, 여전히 불쌍한 처지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니까,
그 환한 영광 의 빛이 가득 이 여인의 마음속을 채웠다.
주님의 임재 를 경험하니까
빈 무덤 같이 공허했던 그녀의 마음이
기쁨과 희락, 영광과 존영으로 가득 찬 그런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해져서 사도들에게 달려갔다.
▲부흥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나타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고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간 후에,
끈질기게 남아있던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의 임재를 체험했듯이...
교회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실망하고) 다 집에 돌아간 후에, 부흥이 임한 경우가 많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사경회 마지막 날 저녁, 끝나는 시간에도 성령은 임하지 않으셨다.
사회자가 광고하기를
이제 사경회는 모두 끝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시고
더 기도하실 분들은 남아서 함께 기도하십시다!
1천6~7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절반 이상 집으로 돌아갔고
8~9백 명 남았는데, 집회 후에 그들끼리 모여서 기도했을 때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위대한 ‘1907년 평양대부흥’ 이 나타났다.
주님은 당신을 향한 목마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즐겨 나타나신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
주님은,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주님을 갈망하는 기도
주님, 저희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구하고 찾게 해 주옵소서.
풍부와 비천 어떠한 삶의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갈급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 온 마음과 뜻을 대해 주님의 얼굴을 구하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옵소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향한 목마른 마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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