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게 살려면 전 7:11-14. 06.04.19.
박종범 목사
▲전도서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두 단어는 헛되다 와 즐기라 이다.
①솔로몬은 전도서의 전반에 걸쳐 두루 즐기라 는 말이 나온다.
마치 자포자기식 ‘쾌락주의’로 오해하게끔 만든다.
그런데 솔로몬이 뜻하는바 즐김, 쾌락 은
사람이 수고로 얻은 결과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 쾌락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이 즐거움과 쾌락을 누린다.
②모든 것이 헛된데, 심지어는 지혜, 의로움, 존귀까지 헛되다고 했다.
당연히 고상하게 여기는 것-지혜, 의로움-까지도 헛되다고 주장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궁극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모든 것은
비록 고상하고 존귀하더라도... 헛되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 죽음의 급박성,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는 모든 의로움, 지혜, 재물, 존귀 등
이런 모든 것은 헛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전도서의 즐기다, 헛되다 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 수고의 열매를 먹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소요리 문답 제 1번처럼,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전제한 즐거움, 하나님을 전제한 의로움!
이런 것들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하는 쾌락, 지혜 등 모든 것은 헛되고 의미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대로 즐기고, 헛되지 않게 사는가?)
◑1. 신앙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형통이란 - 시집장가 잘 가고, 학벌 좋고, 무슨 일을 손대도 잘 풀린다.
곤고란 - 무슨 일을 손대도 안 풀린다. 머피의 법칙처럼!
내가 대쉬dash하는 여자들은, 항상 딴 남자를 쳐다보고 있고
내가 피하는 자매들이, 항상 내 뒤를 좇아올 때... 이것도 곤고이다.
왜 형통과 곤고를 통해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는가? 7:14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앙의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것이다.
①엘리야는 성경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승리를 연출했다. 850:1의 승리!
그런 형통 뒤에, 이세벨이 회개는커녕 도리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곤고가 곧장 찾아온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광야로 피해 도망가서 죽기를 결심한다. 곤고다.
그러나 거기서 푹 쉬면서 회복한 후에, 그는 선지학교를 세운다.
많은 선지자를 배출해 내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를 발굴해 낸다.
다시 형통이 찾아온 것이다.
만약 처음 형통 뒤에 곤고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후에 선지학교를 세우거나 엘리사를 발굴하는 일이 없었을 런지도...
그러나 형통과 곤고가 뒤섞이면서,
장래 일을 헤아릴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엘리야가 했던 일은 늘 긴장 하면서 순간순간 주님을 붙드는 삶 이었다.
②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보자.
주인이 5, 2, 1 달란트를 각각 남기고 떠났다.
‘이것 갖고 장사해라’ 했지만 ‘언제 돌아오겠다.’ 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돈을 어떻게 굴리며, 얼마를 이윤으로 남기라는 말도 일절 없었다.
내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과, 반드시 회계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종들은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주인이 짓궂어서 당장 내일 돌아 올수도 있었다.
어쨌든 종들에게 남겨진 것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날마다 사는 것이었다.
③바울사도는 긴장 의 끈을 결코 늦추지 않았던 대표적 사람이다.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사람이었다.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즉, 아내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다니는 특권을 스스로 권리포기 했다.
복음을 전함으로 얻는 물질적 유익과 혜택도 모두 스스로 포기했다.
왜 그랬는가?
혹시나 내가 전하는 복음이 가짜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혹시나 하나님 나라에 지장이 될까봐... 모든 혜택을 스스로 포기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긴장한다. 마치 주님이 당장 오실 것처럼!
또한 자기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이런 긴장 을 요구했는데
처녀, 총각들에게도 웬만하면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살라고 했다.
왜? 주님이 곧 오신다는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이루었다.
▲기독교 신앙은, 칼 바르트의 표현대로, 외줄타기와 같다.
이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저쪽으로 치우쳐도 안 된다.
기우뚱 기우뚱거리면서 긴장 의 끈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과 곤고를 뒤섞어 주셔서
우리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드셨다.
마지막까지 긴장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처럼 다시금 긴장 을 다짐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제대로 즐기고, 헛되지 않게 살려면)
◑2. 자기 의존 사색 에서 벗어나라
곤고한 날에는 생각(사색) 하라 했는데 전 7:14
사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①자기 의존적 사색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의존적 사색을 끊임없이 한다.
죄의 성품은 가꾸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잘 자라듯
자기 의존적 사색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서 잡초처럼 번식력이 왕성하다.
우리가 아까운 시간 버리며 종일 묵상(자기 의존적 사색)하는 것들이란;
빌려준 돈 못 받아서 원통한 것,
얼굴에 여드름 나서 남자 친구 만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
심지어는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말씀을 걸어서 남의 단점들을 깊이 묵상한다...
②계시 의존적 사색
곤고한 날에는 생각(사색) 하라는 것은(전 7:14)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계시 의존적 사색이란 고 박윤선 목사님께서 남기신 유명한 말씀이다.
시 1편에서 보면, 악인과 선인을 나누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의 차이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사색하는 자이다.
악인은 꾀를 좇는 자이다. 자기 의존적 사색에 빠진 사람이다.
▲요즘 경제와 재태크에 관해 관심이 많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저도 경제학 서적들을 깊이 탐독해 보았다.
경제학 서적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고령화, 저출산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성장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노인들을 많아지고 일하는 젊은층은 적어져서,
생산성은 떨어지고,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미래를 대비해서 화재보험, 종신보험에 들어라!
금융자산은 너무 부동산에 집중하지 말고, 펀드 등에 분산투자해라!
지금 청년들은 앞으로 백세 시대가 반드시 오므로,
연금보험에 가입해서 퇴직 후를 대비해야 한다.... 등이다.
제가 경제학 서적들을 계속 보게 되니까
너무 현실만 바라보게 되고, 어려운 처지만 너무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결국 자기 의존적 사색에 빠져 버린 것이다.
‘내가/우리 가족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를 온종일 생각하며
사람이(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깨달았다. 말씀이 없으면 사람이 작아진다는 사실을!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서 세계와 땅 끝을 바라보게 한다.
성경을 읽으면 사람이 커 진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반드시 더 커진다.
그러나 대부분 경제학 서적들은, 현실을 보여주지만, 사람을 작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과 병행해서 현실을 보지 않으면, 나는 작아지게 되어 있다.
말씀이 없으면 땅에 투자한다.
말씀이 있으면 하늘에 투자한다.
말씀이 없으면 작아진다.
말씀이 있으면 커진다.
여러분, 명심하시라! ‘곤고한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곤고한 날에는 생각(사색) 하라....!
우리는 계시 의존적 사색으로, 말씀에 근거해서 곤고한 날들을 이길 것이다.
현실에 따라 작아지지 않고, 말씀에 따라 커지는 인간이 될 것이다.
(제대로 즐기고 헛되지 않는 날들을 살기 원하면)
◑3. 사색의 불씨에 기도의 기름을 부으라
계시 의존적 사색 같은 큰 생각은, 큰 사람을 만든다.
이런 사색을 하려면, 기도 가운데 하는 사색이다.
▲사색에 근거하지 않는 기도의 폐해
①이방인의 기도 -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기도 (마 5장)
불교 신도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아시는가?
이단과 타종교인들도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가.
아시다시피 무슬림 들은 하루에 5번 목숨 걸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 간구하는 내용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다.
모든 초점이 자기에게 맞춰진 기도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기복신앙이 이런 기도이다.
기도라기보다는 자기 염려를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타종교인의 기도 중에 주문(반복된 공식적 중얼거림)이 많다.
②중언부언의 기도 - 저희는 말 을 많이 해야 들으실 줄 착각한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기도인데, 말 이란 미사여구를 뜻한다.
이렇게 하려면, 골방은 안 되고, 시장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사여구로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기도했는데
주님은 중언부언한다고 지적하셨다. many words/meaningless repetition
말씀에 입각해서 사색에 근거한 기도가 아니면, 중언부언으로 흘러간다.
이렇듯, 우리의 기도에도 많은 사색에 필요하다. 계시 의존적 사색!
▲사색에는 한계가 있다.
사색의 기름에 기도의 불씨를 붓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계시 의존 사색이라 하더라도, 단순 사색에는 역사하는 힘이 없다.
기도는 반드시 사색에 근거해야 하고
사색은 반드시 기도로 불을 붙여야 한다.
▲사색의 기름에 기도의 불씨가 붙은 예
1907년 평양 대부흥은 1903년 원산 사경회(성경공부)로부터 기인하는데
그 주역인 하디 선교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해 내게 오셨을 때
교인들 앞에서 과거에 내 잘못과 실패를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하디 선교사는 1892년부터 원산 지역에서 의술을 베풀면서 사역하던
의사였다. 열심히 복음사역을 했는데, 열매가 없어서 그는 마음속 깊이
강퍅한 조선인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령이 역사하시자, 문제는 바로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경회 시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3년 동안 남감리회가 강원도에 세운 교회에서 애써 일해 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원인이
한국인에 있는줄 알았는데, 그 원인이 제게 있는 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정성을 다해 일한다 해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교만과 완악함과 신앙의 부족을 회개합니다.
라고 공식적으로 회개했다.
그랬더니 말씀에 근거한 회개로 말미암아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1907년 평양 부흥운동까지 확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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