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19:30 06.04.09.
곽선희 목사
타임지와 라이프지의 창설자 클레어 루스 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단 한 줄로 기억된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도 단 한 줄로 기록하면;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이다. 요19:30
예수님을 본 받아, 우리 각자도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이루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 의미를 살펴보자.
◑ “다 이루었다!” 는 뜻
▲1. 화해를 이루셨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장벽을 허물어뜨리셨고,
우리는 예수 피로 깨끗하게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기 허물과 죄를 사함 받은 사람은. 또한 서로 화목하게 산다.
자기가 아버지께 범한 큰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이웃이 자기에게 범한 작은 죄를 기꺼이 용서하며 화목하게 산다.
그래서 성경은 막힌 담을 허셨다고 했다. 엡 2:14
하나님과 사람사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상전과 하인 사이, 원수와
원수 사이 등,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언제나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다.
1813년 제인 오스틴 여사가 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에
보면, 요즘 영화로도 상영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아주 단순하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모두가 나름대로의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 사이에 장벽이 생기고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스스로의 '오만과 편견' 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자.
▲2. 성육신의 사명을 다 이루셨다.
둘째 아담으로서, 모든 인간의 대표로서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십자가를 다 감당하신 것이다.
“내가 목마르다...” 하시면서 인간으로서 절규하셨다.
우리와 다른 어떤 슈퍼맨으로서, 십자가를 쉽게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의 대표자로서 십자가를 지셨고
마침내 그 처절한 십자가를 지는 사명을 “다 이루셨다”
▲3.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승리를 다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예수 이름으로 이기고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다.
▲4. 완성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안 믿는다.
로마 사람도 안 믿는다. 바리새인들도 안 믿고, 제자들은 도망간다.
아직 끝마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우리는 손놓고 간다.
그러나 자기 사명을 다 이루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딤후 4:7
하나님이 그에게 정한 지경이 있다. 그것을 다 이루고 가는 것이다.
▲5. 기쁨과 만족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사람으로서 가장 완전하고 온전하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셨다. 마지막 순간에는 이제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전적으로 의탁된 삶으로써 하나님 뜻에 순종하신다.
그 악한 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내어주셨다.
아주 무능력하고 수치스럽게 내어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셨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다.
이 때 기쁨과 만족과 은혜가 찾아온다.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사람에게도, 기쁨과 만족이 있다.
대궐에서 화려하게 죽은 사람에게도, 절망과 탄식이 있을 수 있다.
▲6. 영원한 안식으로서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 모든 크리스천에게
죽음 후에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 그 영광의 보좌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으로서의 영광(감격, 감사, 찬양)을 주신다.
◑ 짧았지만 ‘다 이루었다!’ - 윌리엄 보덴
선교 역사에 윌리엄 보덴 William Boden 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부모가 대부호여서, 그는 고교 졸업 후에 세계 일주 여행을 다녔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을 다녀보니
아주 불쌍하고 가난하며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마음에 큰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저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그는 성경 안에 당시 자기 심정을 잘 표현하는 글을
한 문장 남겼다; No Reserve! 지체할 수 없다! 는 뜻이다.
(앞서 클레어 루스가 말한 한 문장, 예수님의 한 문장을 염두에 두시면서)
그는 이제 예일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였지만
그는 모든 기회를 마다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 때 그는 다시 성경 안에 이렇게 기록했다;
No Retreat! 절대 후퇴할 수 없다 는 뜻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그 유산을 모두 이슬람 선교를 위해 헌금으로 드리고
자기는 선교지로 떠났다.
그런데 가서 넉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척수뇌막염에 걸린다.
그리고 그 병에 걸린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이렇게들 말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거야...’
‘헛된 일을 했구먼..’
그러나 그는 마지막 유언에 또 한 마디를 남겼다;
No Regret! 절대 후회 없음
그의 묘지에 이런 비문이 적혔다고 한다;
윌리엄 보덴 1887~19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실패한 삶, 버려진 삶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선 가장 성공한 삶이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삶이다.
그는 실제 자기가 직접 살아서 전도한 것보다
죽어서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선교사로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윌리엄 보덴, 그토록 짧은 삶이었지만
그에게는 정해진 삶이요, 다 이룬 삶이었다.
우리가 지금 만약 죽게 된다면
윌리엄 보덴처럼 “No Regret! 절대 후회 없음” 이라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전 생애를 축약할 한 마디 말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 현재 나의 삶을 축약한다면, 한 마디 말은 과연 무엇인가?
◑ 기독교의 근간은 십자가 신학
종교 개혁자 루터는 기독교의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이며, 기독교의 진리는 십자가의 진리다.
그래서 신학자 에밀 부르너 는 십자가 신학을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고, 교회의 상징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상징이다.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했던
종교개혁의 모든 투쟁은
단지 십자가의 바른 해석을 위한 투쟁이었다.”
십자가를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이해한다.
십자가 안에 복음의 중심, 하나님의 사랑의 그 계시의 완성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차원에서, 가장 인격적인 차원 안에서
하나님의 그 뜻과 사랑이 계시되어 있다.
그라나 사람들은 십자가보다는 능력을 구한다.
기적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자 한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수많은 기적이 나타나는데
출애굽 때 열 가지 기적,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시각장애자가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난 것 등
기적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코자 한다.
기적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잘 “만나지” 못 했다.
단지 “깜짝 놀랐다”고만 되어 있다.
▲기적으로 사람이 중생하지 않는다.
기적은 그저 잠깐 놀랐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러나 가장 인격적 방법인 십자가에서는, 그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자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랑의 극치에 깊은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십자가는 율법의 완성
구약 전체 율법을 단 한 말씀으로 요약하면
The Great Commandment 즉 위대한 계명이다.
이것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바로 이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하셔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다.
또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신 계명을 이루셨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그 아래서 자기 옷을 제비 뽑고 낄낄대는 군병들을 저주하지 않으셨고,
도리어 “저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며 위해 기도하셨다.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발버둥치셨다.
그래서 곁에 달린 한 강도를 구원하시고,
또한 육신의 어머니까지 사랑하셔서, 그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이렇게 극심한 고통 중에도 이웃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이웃 사랑의 극치를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고, 실천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요, 율법의 완성이며,
나아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깊이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사랑에 깊이 접촉된 자는... 반드시 심령이 변화된다.
우리는 표적 중심이 아니라, 십자가 진리 중심의 신앙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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