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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따르라

LNCK 2019. 12. 28. 10:00

너는 나를 (나의 사랑을) 따르라      요21:17     06.03.26. 곽선희 목사

 

왜곡된 신앙 관점

미국의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목회자이신 Max Lucado 가 쓰신

그 금요일의 여섯 시간Six Hours one Friday 에 보면,

특별히 현대 크리스천의 왜곡된 신앙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 주문쯤으로 생각한다.

아주 간편하고 쉽게 도식화한 예수님에 대한 상(이미지)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 사진을 벽에 걸어놓거나

작은 예수님 사진을 수첩,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행운을 주기를 기대한다.

차안에도 십자가를 걸어놓고, 교통체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런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전부이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나 구세주에 대한 예배는 없다. 잘못된 관점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알라딘의 마술램프 식 구세주로 생각하는 관점이다.

예수님을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한다.

 

별로 필요한 일이 없을 때는, 예수님을 마술램프 안에 꼭꼭 숨겨둔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램프를 살살 문지르는 식으로 예수님을 찾는다.

예수님이 나오셔서 내 소원 좀 들어주시라고... 역시 빗나간 관점이다.

 

세번 째는, 몬티 홀Monty Hall 식 구세주로 예수님을 이해한다.

몬티란 자신의 재력으로 친구들에게 선의의 장난을 즐기는

마음씨 좋은 백만장자인데,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되 재미있게 주려고

세 가지 문을 만들어 놓고, 그 문 뒤에 자동차 또는 자전거처럼

값비싸거나 값싼 선물을 숨겨 놓고, 방송 출연자가 잘 골라서 가지게 한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과 속으로 거래를 하게 된다.

제가 152주 아주 철저히 지키겠습니다.

아무리 지겨운 설교도 끝까지 듣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일 값비싼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위의 모든 관점들은 잘못된 이해이다.

우리가 만나고 경험하는 구주 예수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 안에만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위의 사람들처럼 예수를 믿으면, 다 실패하고 만다.

절망하고 무력감 속에서 탄식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실족하고 신앙을 떠나 허탄한 것을 쫓게 될 것이다.

 

12제자들도 잘못된 관점을 가졌다가... 실망하고 포기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녔지만, 십자가 때 모두 다 도망갔다.

철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적 공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물고기 잡던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지금 이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몇 번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 됨을 포기하고, 물고기만 잡고 있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증거>.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화려한 정복자 메시야 구세주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강도로 몰려 죽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실망이 컸고,

또한 자신들을 보더라도, 배반하고 도망간 모습 역시... 실망이 컸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갔을 때, 제자들도 덩달아 따라 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 잘 믿다가도 실족하는데

마술램프 식 예수를 믿다가 아무 것도 못 받고 실망해서 실족하기도 하고

동시에 세상 유혹에 무너지는 자신의 나약함에 스스로 실망해서 실족한다.

 

복음 중의 복음

예수님은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고기잡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본질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르쳐주시는 것이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

탕자를 영접하는 사랑,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

성도 역시 사랑으로 반응해야 옳은 관계이다.

지금 베드로에게 그것을 확인하시는 것이다.(요한복음 21)

 

그 사랑을 믿고 따라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내려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것은 -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신 것이다.

 

계시의 본질은사랑이요, 십자가에서 이뤄진 계시의 완성도사랑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다... 3:16 - 이것이 복음 중의 복음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확인하신 것은

네가 정말 내 사랑을 믿느냐?, 그래서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겁날 것이 없다. 나를 따르라! 였다.’

 

앞으로 베드로는 자기가 원치 않는 길로 데려가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생각하지 말고, 나의 사랑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예수님 따르다가 실족할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 그저 지식이 아니라, 마음속에 진짜 믿는 사람은

저도 주님을 사랑하노라며 다시 주님을 따르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자신을 무조건 던져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의존하는데 달려 있다.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사랑은 원래 속성상 강요하지 못 한다.

하나님은 이토록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믿고 따를 때, 비로소 그 사랑의이 효력이 내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정말 내 몸을 던질 정도로 믿으면

거기서 초월적 사랑의 지혜, 능력, 보호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아무리 가는 길에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잠재적 위험한 요소들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믿으므로, 주님을 기꺼이 따르기로 결심한다.

 

주님은 오늘도 험난한 길을 가는 것 때문에 주저하는 제자에게 말씀하신다;

내 사랑(보호, 공급, 예비, 인도)을 믿고 나를 따르라!

 

열 두 제자들은 삼년 동안 직접 예수님께 배웠다. 많은 능력을 경험했고,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등 많은 능력을 직접 행사도 해 보았다.

그런데 그 사랑을 깊이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맨 날 기적을 구하고, 능력을 구하고, 다른 것을 구하다가

무너지고, 고기 잡는 옛 생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믿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반복된 실수와 우리의 무능력을 잘 아시지만

또 다시 초월적인 사랑과 은혜로 나를 불러주신다.

 

그 사랑에 온전한 믿음으로응답하는 것만이

예수 그리스도의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길이다.

지식이 아니라, 사랑을 믿고, 자기 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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