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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본질적 목적

LNCK 2019. 12. 28. 10:22

기도의 본질적 목적            엡1:15~23          06.03.12. *원제목 : 교회와 기도

 

김요셉 목사

 

1. 기도의 핵심 문제

 

우리는 기도에 관한 설교를 많이 듣는데, 그런 설교를 듣고 나면 당연히

기도를 더 열심히, 많이 해야 되겠다!’는 도전을 받게 된다.

 

기도가 무엇인가?

혹자는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염원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 깊은 염원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 불신을 막론하고)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핵심 문제는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이것들이 기도의 본질이다. (기도를 더 열심히, 더 많이 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간절한 염원(기도)이 있다.

오늘 질문은, 무엇이 우리 기도의 주제가 되어야 올바른가? 이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기도를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사실 엉뚱한 주제를 놓고 기도한다면... 본질적으로 잘못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의 깊숙한 영혼의 울부짖음과 바램은 남북통일이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갖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자녀가 성공하는 것이 간절한 염원이다.

특별히 공부에 한 맺힌 부모는, 자녀가 대신해서 자기가 못 이룬 꿈(성공)

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로 바란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바람직한가?

What are we praying for?

 

 

2. 내가 염원하는 그 기도의 소원이... 나를 만들어 준다.

You are what you pray for!

 

나의 기도하는 바가 바로 나를 만들어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형성해 준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느냐가 중요하지만

무엇을위해 기도하느냐가 더 중요하며, 나의 미래 영적 삶을 좌우한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의 기도는 무엇인가?

최근 나는 두 가지 마음 속 깊은 기도제목이 있는데,

 

제 어머님의 병환()이 낫도록.

어머님의 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암 투병하시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머님을 위한 기도가 내 삶을 점점 형성해갔다.

 

그래서 기도하는 습관부터 바뀌게 되었다.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고

운동 등,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취미생활도 많이 정리되었다.

어머니가 아파서 누워계신데, 이래도 되나?’는 마음으로

삶이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정돈되었다.

이처럼 마음의 염원이 생활습관까지 바꾸는 것을 경험했다.

 

교회 건축이다.

건축을 시작할 당시, 처음에 교회 건축을 위한 기도제목은

좋은 건물을, 안전하게, 빨리 건축하기 등이었다.

 

그런데 시일이 점점 지나면서 이제는

하나님, 건축하면서 하나님 영광 안 가리게 해 주십시오!’가 되었다.

특별히 결재해야할 건축대금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도리 없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도록 몰고 가시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긴장해서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내 마음속에 이런 주님의 질문이 든다;

너는 무엇을 위해서, 왜 기도하는가?이다.

 

왜 건축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일어나기를 나는 기도하는가?

왜 어머니의 병환이 낫도록 나는 기도하는가?

 

내 표면적인 기도의 염원은 건축을 잘 하고, 어머님 병환이 낫는 것이지만

그 표면 아래 깊숙한 곳에 있는, 본질적인 나의 염원은 과연 무엇인가?

 

내 안에 바라고 희망하는 영혼의 깊숙한 갈망함과 울부짖음,

기도를 이끌어가고 있는 바램을 한 꺼풀 걷어내면

그 밑바닥에 있는 것(본질적 염원)은 과연 무엇인가?

 

, 왜 어머님이 나으셔야 하는가?

그냥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니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혈육의 정인가?

그것이 나의 기도하는 목적의 전부인가?

 

왜 교회 건축을 완성해야 하는가?

혹시 중단하면 창피하게 되니까 그런 것은 아닌가?

혹은 교회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해서 목회가 어려워지는 것을 염려해서인가?

그런 것들이 제가 교회 잘 짓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티브(동기)인가?

 

만약 아니라면, 무엇이 궁극적인 기도의 동기가 되어야 될까?

 

 

3. 하나님을 아는 것 기도의 본질적 목적

1장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두 가지를 기도한다.

 

115~23절에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깊은 염원을 토로하고

쏟아 붓는데, 그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제대로 보는 것이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내 필요를 구하는 기도는 시발점이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기도하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의 본질적 기도의 제목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하나님께 SOS보내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런 기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아픔과 어려움들은, 기도의 도화선이 되고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의 이나 마침이 되어선 안 된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본질이 아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본질이 아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건축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본질적인 우리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더 잘 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염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루는 중학교 동창이 20년 만에 제게 전화를 걸어왔다.

저는 옛 친구 관계를 다시 맺는 것이 반갑고 기뻤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 10년 유학을 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반가운 옛 친구와 식사를 하고 한 참 만나는 중에 본론이 나왔다.

동창 친구는 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었는데,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사립 초등학교에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어쩐지 씁쓸해졌다.

 

그 친구는 저를 알고 싶어 하고, 저를 만나고 싶어 했다.

결혼은 언제 했고, 애는 몇이고 등 관심을 갖고서 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끝에는, 나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하나님을 진정 가깝게 알고 지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실상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목적이

내 꿈, 내 문제, 내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사실은 내가 이용하고 싶은 것이다.

 

파크 마머라는 저자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앎이 있다고 말했다.

 

파괴적인 앎

남을 이용하고 싶어서 알고 싶어 한다.

그를 통제(컨트롤)하고 싶거나, 호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건물에 들어가면 꼭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화장실 위치다.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은, 사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이용 때문이다.

이용, 한 번 쓰고 나면 가차 없이 버린다.

 

사랑하는 앎

그러나 제 집사람은, 이용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싶어서 알고 싶다.

똑같이 아는 것이지만, 그 목적이 다르다.

 

그런 진정한 앎을 헬라어로 에피기노스코라고 하는데

경험적, 체험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사랑과 동정(compassion)의 동기에서 알고 싶은 앎이다.

 

본문 엡 1:19, 바울이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서

알다의 단어가 에피기노스코이다.

 

정보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체험적인 앎이다.

아담이 하와를 알았다고 했을 때의 알다이다.

깊은 관계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인격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싶어서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것, 체험적, 인격적으로

- 그것이 우리 진정 기도의 목적과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이방인적인 기도를 드리지 말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6:25)

 

하나님, 제게 이것 채워주세요!’

이런 기도가 완전히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런 기도가 이 되어서는 안 되며,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병 고침받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5:16.

 

그러나 오직 병 낫는 목적 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방인의 기도다.

병 낫는 것이 나의 기도의 전부가 되어서는 된다.

 

병 나음을 통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본질적인 목적이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것을 구했다.

그랬더니 구하지도 않았던 부귀와 영화도 함께 주셨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신 것과 같았다.

그저 자기 '이용'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 적용

저는, 하나님이 제 어머니의 병을 물론 고쳐주시기를 원한다.

(이렇게 말하면 불경스러운 표현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병 고침/못 고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어머님의 암을 통해서 저와 가족들이 하나님만 더 알게 된다면

그 뜻과 그 영광과 그 나라를 더 잘 알 수 있다면

그 암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어머님을 당신 품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우리로 하나님을 더 알게 되는 길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의 선물gift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더 아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알랴!

나는 벌써 십년 동안 우리 아이랑 같이 생활해 왔지만

그래도 우리 애에 대해 잘 모르는 면이 있다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집에서 보이는 우리 딸의 모습과, 학교에서 남에게 비치는 우리 딸의 모습은

(일부 면에서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고,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를 다 안 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잘 알면서도... 잘 모르는 그런 미스테리한 면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신비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아니다.

학교 담임이 학생을, 부모가 자녀를, 남편이 아내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한 인간을 알아가는 것도 '일평생의 숙제'이건만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 이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자고하고 있다.

 

 

5. 하나님을 알아야 사람을 안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굉장히 적응에 어려웠다.

딸이 힘든 것을 보고, 아내는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그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 딸의 문제가, 아내를 주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아내는 이렇게 기도드렸다;

 

"주님, 저는 마음이 아프고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다.

은진이가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1학년이 되어서 많은 변화에 대처하려는 그 아이를 봅니다.

 

교실에는 매일 다른 선생님들이 다른 규칙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오십니다.

매일 마다 다른 특별활동이 있습니다. (중략)

 

그 아이는 학교에서 반항하는 행동을 보이며 자기 어려움들에 대처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아이는 자기 상처를 덮고 좋은 하루를 보낸 것처럼 얘기합니다.

엄마인 제가 그 아이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요?"

 

그 때 하나님이 이런 응답을 주셨다.

은진이를 더 잘 알도록 해!”

 

주님, 우리 부부는 우리 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은진이가 싫거나 좋아하는 것, 습관과 기질 등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 양육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성경말씀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으려고 잠언도 공부했습니다.

딸과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바깥 일도 포기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무엇을 더 알아야 하나요? 주님!”

 

조용한 가운데 주님이 말씀하셨다;

(주님)를 아는 것을 떠나서는 네가 진정으로 그 아이를 알 수 없단다!

나는 그 아이를 창조했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다.

(그렇다. 창조주를 알면 피조물을 알게 된다.)

 

나는 그 아이의 인생의 목적을 갖고 있고

그 아이가 나를 닮게 되도록 만들어가는 중이야.

그 힘든 시기를 통해,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결코 버리지도 않을 것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 아이가 내게 가까이 오는 것을 네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은진이가 나의 목적에 맞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그를 훈련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야.

내가 은진이를 아는 것만큼, 너희는 그 아이를 잘 알지는 못해.

나는 은진이를 위해 나의 피를 흘렸고

그래서 은진이는 나를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만들어가는 중이야.

 

그 아이를 알기 위해서 네 힘, 네 사랑, 네 지혜에 의존하지 말아라.

나를 떠나서는 아무 소용이 없단다.

나를 알도록 해,

그러면 네 아이를 알게 될거야!”

 

기도의 본질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하는 이유

이것이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염원의 본질이다.

하나님을 모르고는 진짜 우리는 인생의 참 목적을 모른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원인도 알 수 없다.

 

하나님을 정말 알지 못하면

우리가 왜 이 땅에 보내졌고

왜 이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압시다!

우리의 염원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거나,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정말 진심으로 그 분을 더 잘 알고

그 분과 더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기도의 진정한 목적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린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다른 참고 성경

-지혜, 용맹, 부함을 자랑 말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라... 9:23~24.

-예배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 호세아 6:6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17:3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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