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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나흘간의 반전 드라마

LNCK 2019. 12. 28. 16:03

열나흘간의 반전 드라마               행27:27~44                출처

 

알렉산드리아 호를 타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 되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
사람들은 아비규환 하다가 나중에는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다. 뭐가 다를까?
세상이 깜깜해지면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1. 마음의 여유와 겸손 - 참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지고 열나흘 동안 표류할 때
환경은 불안했지만, 바울의 마음은 평안했다. 

광풍을 만나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19~20절.


성경에 보면 사흘이란 시간이 종종 나타난다. 마12:40, 행9:9, 눅2:46, 삼상9:20등.
이 사흘이란 시간은 바로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시간이다.

작심삼일 이란 말이 있다. 금식도 제일 힘든 시간이 삼일 째라고 한다.


풍랑 만나 삼일 쯤 되니 이제 희망을 포기하고 낙심하여
배의 기구도 다 내 버리고 이제 절망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럴 때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22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바울이 이렇게 사람들을 안돈시키는 말을 할 수 있었든 것은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한다. 23-25절.


마치 롬8:37절에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처럼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했을 때
제 같으면 주의 음성을 듣자마자
“할렐루야!” 하면서 당장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계시를 받고서도 시간을 기다린다.(어제 밤~)


그것도 풍랑이 일어 배 전체가 지금 박살나는 판국에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지긋이 시간을 기다린다.
여기서 바울의 마음의 여유와 겸손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여유와 겸손은 바울의 신앙인격이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다.


이 마음의 여유와 겸손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인격이요
그 사람의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인 것이다.

풍랑 만난지 열나흘이 되어 사공들이 육지에 가까워짐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재어 보니 열다섯 길이 된다.


◑2. 고난에는 끝이 있다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보니 20길, 다시 재니 15길이라 (27-28절)
이럴 때 배의 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아~! 이제 살았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인가?


이제 캄캄한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의 밤중에 부르는 노래가 있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15.

밤이 있으면 아침이 있다. 밤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도 온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도 끝은 반드시 있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란다.


너희 중에 누가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약 5:13절.


◑3. 거룻줄이 끊기다. 32절.


상황이 조금 호전되어지니 사공들은 잔꾀를 부린다.
지금이야말로 도망할 수 있는 기회다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았다. 30절.


‘고물’은 배 뒷머리, ‘이물’은 배 앞머리를 말하는데
거루는 지금 말로 하면 구명보트다.
그러니 사공들이 자기만 살려고 지금 잔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바울은 군인들에게 저 사람들이 도망가면 다 죽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구명보트를 떠내려가게 해버린다.
살만하면 도망가려고 하는 것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임을 말해준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니 거룻줄에 매달려 도망치려고 하는 사공들...
은혜를 조금 받으면 여지없이 쫄딱 미끄러지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요,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은 배에 거룻줄을 끊어 버리게 한다. 왜?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마지막 희망, 도피수단, 구명보트를 끊어버리신다.
내 인생 배에 거룻줄이 끊어지거든 - 하나님께 항복하시기 바란다.

이제 날이 새니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 진다.


◑4.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반전드라마가 나타난다.


열나흘만의 반전 드라마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33-38절.
바울은 친히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먹게 했다.
열나흘 동안 굶주리다가 먹는 떡 - 어찌 감사가 나오지 않겠는가?

사람은 형통, 성공하기만 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면이 있다.


꼭 고생 실컷 하고 헤어나야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열나흘 만에 먹는 떡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바울의 위로의 말이다.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34절.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바울의 위로는
그들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난 중에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있다.


이제 열나흘 간의 고난이 이제 순경으로 돌아선다.
여기에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바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배에 탄 276명의 생명이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바로 반전/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어떻게 열나흘간의 구원의 여망이 없는 상황 속에
바울은 어떻게 구원의 여명을 가져오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① 하나님의 비전을 가졌기 때문이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바울에게는
결박도 감옥도 유라굴로 태풍도 바울의 발걸음을 묶어 놓지 못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톤이 이런 말 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절대 죽지 않는다!
믿으시기 바란다!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 되시기 바란다.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이 예언하고, 청년들이 환상을 보고, 아비들이 꿈을 꾸듯이
성령의 은혜 받으면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이 된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그의 항해기술이 최고였거나
자금력이 풍부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그리고 비전을 향해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야 말로
나의 삶을 가장 최선의 반전/역전드라마로 만들어 놓을 줄 믿는다.


♣경희대 박물관장 이석우 교수란 분이
박물관에 있는 예술 작품들을 가만히 감상해 보고 얻은 결론은,
예술혼은 창조자를 만날 때 가장 빛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창조주를 만나서),
예술 같은 걸작품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려면
② 그날 밤의 조명이 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의 로마행은 첩첩 산중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그날 밤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가라사대
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성령의 조명이 비춰주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깨어지고 만다.


◑5. 배가 깨어지다. 그렇지만 다 구원받다.  39-44절.


파선 안 당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해류가 합쳐지는 곳에는
뱃머리는 부딪쳐 움직일 수 없고 배꼬리는 큰 파도에 깨어지고 말았다.

아마 당시 지중해를 운항하는 알렉산드리아 호 - 위세가 당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소유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처음에는 어지간히 큰 풍랑이 다가와도
‘설마 알렉산드리아 호가 어떤 배인데...’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호도 깨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내가 의지할 데가 있으면, 하나님 의지 하지 않는다.
돈이든 권력이든 재능이든 지능이든 젊음이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지, 하나님 의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런 것들은 언젠가 다 깨어지고 만다.
배가 깨어질 때 사람들은 다 그 배에서 헤엄쳐 나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 죽이지 못하게 한다.
왜? 죄수 중에는 바울도 그 중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로마 군대 백부장이지만
하나님의 불신자의 마음까지라도 움직이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마지막 44절에,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
276명이 다 구원받았다.


성도 여러분! 나 때문에 몇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가?
창12: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의 근원 삼으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했다.
오늘은 내가 아브라함 같은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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