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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개입 / 안수현

LNCK 2019. 12. 28. 18:31

개입                         2:4                               출처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 

 

*독후기

모든 불치병 환자들이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으로

다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의 더 깊은 뜻이 있어서 혹시 일찍 천국에 가시더라도

남은 가족들은 모두 화목하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관계로 굳게 뭉쳐지는

그런 귀한 회복과 하나 됨의 역사가 있다면

비록 조금 먼저 떠나는 발걸음이라도 ... 가볍고 또한 의미가 깊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래 보라색으로 색칠한 부분...

의사가 환자의 질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인치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바깥 날씨가 추워도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낍니다. <김지윤

 

아래 글의 저자 안수현 의사는 지난 15일 유행성출혈혈로 소천했다.

저자는 늘 예수의 흔적(스티그마)을 갖고 살기 원했는데

정말 예수님처럼 33세에 소천했다. 주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일찍 부르셨다.

 

...............

 

궁금한 일이었다.

8층 내과병동의 특실 중 한 병실. 그 병실 문 앞에는

날마다 다른 내용의 성경구절 또는 읽을거리가 바뀌어 내걸려 있었다.

보기 드문 일이어서 나와는 상관없는 과의 환자인데도

내 호기심은 모락모락 피어올라

결국 병실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어떤 환자분이 입원하셨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장암 환자인데 미국에서 치료를 시도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다시 국내로 들어오신 분이라는 정도였다.

현재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지 않아 대증적인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손쓰기에는 이미 늦은 말기 암 환자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바쁜 병원의 일정으로 그 병실 앞을 지나쳐 가는 중에도

꾸준히 연재되는 글귀들을 그냥 지나치기란결국 나는 며칠 후

몇몇 책들과 카세트 테입을 챙겨서 저녁 늦게 그 병실의 문 앞에 섰다.

 

혹시나 싶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널찍한 특실 한 편에

환자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는 딸인 듯한 자매가 깜빡 잠이 들어있었고,

저만치 소파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곤히 잠들어 계셨다.

 

눈이 움푹 패인 환자는 흰 가운을 입은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할 만한 힘도 모자라 보였다.

나는 나직이 병실 밖에 내걸린 말씀을 읽고 한번 들르고 싶었노라고

찾아온 이유를 말한 뒤 챙겨온 책과 테입을 전하면서 함께 짤막히 기도했다.

 

다음날, 병실 보호자가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제 소파에서 주무시던 그 아주머니셨다.

내가 궁금해 했던 그 성경말씀들은 바로 아주머니의 작품이었다.

 

남편을 통해 어젯밤 내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윽고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이 가정의 이야기는 마음 아픈 것이었다.

 

환자분은 역량 있는 사업가였고, 아주머니는 모 대형병원에서 오랫동안 약사로

일하셨던 경력이 있으신 분이었다.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 두 딸 또한 잘 자라주어 차례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고,

교회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던 그 다복한 가정에 고난이 찾아든 것은

한해 전이었다고 한다.

 

혈변(hematochezia)이 있어 시행한 대장내시경에서 직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국내 유수의 병원을 찾아 절제수술을 받았으나, 병은 너무 빨리 재발했다.

환자와 가족들은 이 병원의 치료방향과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확신을 가졌고,

맏딸이 국내외를 수소문해 해외에서 항암치료를 받아보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아주머니는 깊은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대신 맏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미국으로 치료를 위해 길을 떠났다.

 

MD 메릴랜드 앤더슨 병원을 찾은 환자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행 받았으나

병의 경과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별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귀국하여 대증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고,

MD 앤더슨 병원을 거쳐간 바 있는 한국의 의료진을 소개해주어 우리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는 의료진이 비록 남편의 병세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남편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또 남편이 미국에서 치료를 받는 기간동안 자신 또한 치료를 받느라

남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맏딸이 아버지의 소소한 부분들까지 챙기기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남편 곁에 있으니 가장 잘 간병할 수 있노라고,

그래서 결국엔 침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 확신을 감히 부인하기는 어색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단 그녀의 믿음에 힘을 실어주면서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에 자꾸만 화분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남편이 워낙 화분을 좋아하고,

또 맑은 공기를 많이 마시면 몸에도 좋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환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재 환자상태와 앞으로의 경과에 대한 의료진과 아주머니의 의견에는 계속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게다가 병실을 맡은 간호사와 사소한 말다툼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환자의 맏딸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부터였다.

 

조심스럽게 부모님 사이에 엿보이는 불편함의 이유가 무언지를 질문하자,

그녀는 입을 열어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진실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교회 일이다 직장이다 하면서 늘 집안을 돌보지 않았어요.

청소든 부엌 일이든저는 일찌감치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지요.

공부도 알아서 했고 동생도 제가 돌봤구요. 아버지 말상대도 되어 드렸지요.

 

어머니는 언제나 소녀 같았어요.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시는 거죠.

하지만 자식들이 당신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걸 부끄러워 하셨죠.

입학하고 나서 과()를 바꾸게 된 것도 다 엄마 성화 때문이에요.

 

그러던 중에 아빠가 암에 걸렸어요.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엄마는 아빠를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셨어요.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더니 결국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하게 됐구요.

아빠는 제가 살려야 했어요.

 

엄마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됐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전 학교를 일단 휴학하기로 했지요. 모든 자료를 뒤졌고,

MD 앤더슨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자는 결론과 모든 비행기 일정,

치료 진행과 간병 모두 제가 혼자 했어요.

 

그런데 귀국하자 엄마는 저보다 엄마가 아빠를 더 잘 알고 잘 돌볼 수 있다고 우기면서

제가 간병하는 하나하나를 문제 삼기 시작했어요.

우울증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자 이제는 아빠를 내게 뺏겼다는 생각이 엄마를 사로잡은 거에요.

 

아빠는 미국에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돌아오셨어요.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해 다시 병원을 찾게 된 건데,

엄마는 모든 걸 부인해요. 그저 아빠는 나을 거라는 이야기뿐이에요.

저도 하나님을 믿지만, 엄마의 저런 반응은 아빠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전 정말이지 저런 엄마를 엄마로 인정할 수가 없어요.“

 

점점 아주머니는 이전보다 더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과 남편의 병세가

회복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내게 털어놓았다. 병실을 찾아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환자 곁에서 희망에 찬 이야기들을 쏟아놓았지만,

환자와 맏딸의 굳어진 얼굴은 풀릴 줄을 몰랐다.

 

나는 계속되는 만남을 통해 환자와 맏딸, 그리고 아주머니 각각과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아갔고, 그들 모두에게 좋은 의사로 남아있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일그러진 관계를 바라보면서

내게는 그 관계 사이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자와 가족만의 개인 사생활이 아닌가?

내가 그 가운데 개입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 혹은 교만이 아닐까?

 

하지만 내버려두는 것도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가운데

환자의 상태는 차츰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맏딸에게 들은 이야기 내용은 모른 척 하고

자녀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역시 아주머니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맏딸은 그저 알아서 잘 커준 자녀 중 하나이며,

현재는 자신에게서 남편을 소원(疎遠)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일종의 경쟁상대 였다.

 

딸아이의 갈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다시 내게 - 당시로는 유일한 환기구였을 듯 하다 남편과

맏딸에 대한 서운함과 믿음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는 이후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야기했다.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듣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나,

나는 아주머니의 그릇된 영적인 환상(spiritual fiction)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더 필요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원만한 관계가 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한 가족의 사적(私的)인 관계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병실 앞에서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환자 병실 앞에 위치한 의대생 실습실이 비어있는 차여서

면담을 하기에는 알맞았다. 결국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모님, 그런 일들에 앞서서 먼저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큰 따님과 어머님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합니다.

두 분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해야

갈등이 해소될 것이고, 제 생각에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새 굳어지더니 흙빛으로 변했다.

보이지 않고 싶던 치부를 들킨 듯,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선생님, 너무 깊이 아신 것 같군요. 앞으로 더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녀는 서둘러 방을 떠났다.

 

이후로 한참 대화 없이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냈다.

급속도로 냉각된 관계를 바라보고 있기란 편치 않았다.

맏딸도 여간해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순환근무 일정 상 나 또한 곧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했다.

 

병원을 떠나기 전, 병실을 다시 찾았다. 병실에는 환자분 혼자 계셨다.

이 모든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감사하게도 그에게는 평안함이 있었다.

그날 밤 찾아와 준 내게 감사하다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줄 알았다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생의 끄트머리에 서있음을 말없이 공감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남은 생을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고 헤어졌다.

 

그런데, 복도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조금은 어색했지만

애써 웃으며 딸아이와 대화를 좀 해봤노라고 하셨다.

잘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다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관계개선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병원을 옮겨가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도 물론이다.

20여일 후, 일이 있어서 다시 병원에 들렀다가 그 환자의 병실을 찾아갔지만,

병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지난주에 임종하셨다고 한다.

방안 가득히 놓여있던 큼직큼직한 화분들이 사라진 병실은 더 쓸쓸해 보였다.

 

한 석 달쯤 지났나. 내 수첩에 적혀있던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찾은 나는

천천히 다이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맏딸이었다.

나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 후, 맏딸에게

그 이후에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맏딸은 담담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노라고, 아직 다는 아니지만 화해하게 되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번 학기에 복학하게 되어 다시 학업을 시작했고,

동생과 함께 교회에도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많이 걱정하고 기도했었는데

감사한 일이라고 답하며 앞으로 더욱 꿋꿋이 앞길을 헤쳐 나갈 것을 당부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일말의 근심을 덜어내면서 연락처를 적었던 종이를 천천히 찢어냈다.

주여 그 가정을 돌보아 주소서.

 

적절한 시기와 행동이었을 지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떤 환자에게 있어

육신의 질병은 빙산의 일각(一角)일 뿐이며,

그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아픔을 볼 뿐 아니라

용기 있게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환자와의 만남에서 그 선을 넘어서지 않았다면,

나 또한 죽어가는 말기 암 환자를 그저 바라보며

무력감에 빠지는 한 의료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샌가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환자가 전인격적인 존재임을 애써 부인하며,

그네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를 기피하는 불완전한 치유자에서

너무 일찍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육신의 불편함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신음하는 우리 이웃들,

환자들. 한 사람의 작은 관심과 개입이 때로는 모든 장벽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 압도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불확실함에 맞서 자신의 앞길을 설계하고 꾸려가기에 바빠

내가 여기 있음을 누군가 알고 있나요?”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그 눈빛을 날마다 놓쳐버리고 등 떠밀어 돌려보내는 우리.

 

의료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어제 일하는 모습에 도통 의욕이 없어 보여 따끔하게 질책했던

후송계 병사의 어머니가 만성 신부전(CRF)으로 수년 째 혈액투석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려나.

 

안수현 씀

2003.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