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의 비즉응성 Unavailability 딤전5:22
송봉모 著 「본질을 사는 인간」중에서 발췌
‘그대는 누구를 막론하고 너무 서둘러서 안수해 주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딤전 5:22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에 따르면
주님의 사역자들에게는 '비즉응성'(非卽應性, unavailability)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즉시卽 응답하지應 않는非 태도性'이다.
비즉응성이란, 목회적 요청이 들어왔을 때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나우웬은, 사도적(목회적) 활동이 아무리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련된
것이라 해도, 즉시 응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 요구를 주님 앞에 갖고 가서 기도로 아뢰어야 한다.
만약 무슨 부탁이든, 그때 그때 기도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내일로 만들어 버리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즉응성을 따라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즉응성의 원칙을 가장 모범적으로 사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다.
하나님께 파견 받아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자주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시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그때 그때 병 고쳐 달라는 등 사람들의 요구에 즉각 응답해야 할 때도 많았지만,
자주 외딴 곳으로 물러가시어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찾았다.
만약 비즉응성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적 상태는 무질서함과 피곤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사도직 수행에 필요한 힘과 권위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주님과 함께 고독 속에 머물며 그러한 힘과 권위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소명을 완수할 수 있겠는가.
▲구원 도착증
헨리 나우웬은 비즉응성을 살아가지 못하고 정신없이 복음 전파와
봉사활동에 몰두하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구원 도착증(倒錯症)에 걸린 사람'이라고 평한다.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은, 모임이란 모임에는 다 쫓아다니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즉시 뛰어간다.
아무리 몸이 피곤하더라도 아무리 정신이 지쳐 있다 하더라도.
언뜻 보면 그는 파견 받은 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원 도착증'이다. 아니면 ‘야심’이 큰 사람이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조차도 당신 생애 동안
온 세상을 다 개종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서
모든 자리,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으셨다.
그 분은 팔레스티나에서만 주로 활동하시었다.
온 세상의 구원은 성령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이루시도록 남겨놓으셨다.
그런데 ‘구원 도착증’에 걸린 사람은 모든 구원사업을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기나 하듯이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구원 도착증에 걸린 사람은 신부, 수녀 등 일선 사목자뿐 아니라
종종 열심 있는 평신도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구원 도착증에 걸린 사람들은 순수한 봉사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기에
복음이 분주함 속에 숨 막혀 죽어버리고,
남은 것은 사업가 정신뿐인 경우가 많다.
예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일 중심, 이해관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자칭 파견된 사람'은 무엇인가를 할 때 확신을 갖고 그 일을 한다고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면 쉽게 낙담하고 무너진다.
사도직(목회직)을 수행하는 힘이 하나님 능력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서 오기에 어려움이 생기면 극복할 힘이 없는 것이다.
한편 파견된 사람은 그를 파견하신 주님의 힘으로 일하기에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타격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와 용기를 갖는다.
파견된 사람은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안다. (전도회 회장, 성가대장 등)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은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은 내가 없이도 얼마든지 일을 하실 수 있고
그분이 나를 제쳐두기로 결정하시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을 써서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인다.
▲미국 목회자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경험담이다.
한 번은 그가 주일 강론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급히 상담을 하고 싶은데요?"
그래서 고든은 먼저 이름과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젊은 시절의 고든이었다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즉시 만나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고든은 '파견받아 활동하는 것'이 '주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고든은 면담을 요청한 여인을 즉시 만나주는 대신
무슨 일로 급히 만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결혼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느끼신 지가 얼마나 되는지요?" 고든이 물었다.
"4일 전부터예요.”
"언제부터 부부간에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까?"
"한 5년 됩니다."
"부부 사이의 어려움이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지금 당장 저를 만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인이 대답했다; "하도 마음이 답답하고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상담을 받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서요."
고든 목사님은 인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부간의 어려움이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동안 그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셨겠지요.
그리고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 날 문제도 아닌 것 같구요.
죄송합니다만 지금 저는 주일 강론을 세 개나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온 신경이 그 쪽에 쏠려 있어서
부인을 만난다고 해도 제대로 도와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월요일에 다시 전화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마음에 여유를 갖고 만나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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