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4~2005

성경읽기를 위한 단상들

LNCK 2019. 12. 29. 08:38

성경읽기를 위한 단상들                                   펀 글

 

성경과 삶

*나는 아직까지 성경을 연구하는 일이 없이 열매를 맺었다는

그리스도인을 본 일이 없다.

 

*성경책은 당신을 죄로부터 멀리하도록 지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성경책으로부터 멀리하도록 지킬 것이다.

<존 번연

 

*Clean Bible dirty mind, Dirty bible clean mind

성경책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더럽고,

성경책이 더러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다.

 

*양식은 여러 끼를 미리 먹어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끼 그른 후에 나중에 먹어서 보충되는 것도 아니다.

그 날의 양식은 그 날 먹어야 하고, 그 때의 식사는 그 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성경은 도덕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책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

그리스도는 도덕을 가르치지만 도덕 선생은 아니다.

인류의 구주이시다.

이 사실은 몇 번이든 되풀이 해 말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는 성경도 그리스도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찌무라 간조


구약과 신약의 관계

구약에는 신약이 숨겨져 있고, 신약에는 구약이 열려져 있다.

<아다 룻 하버슨

 

구약 성경은 마치 영화의 화면(영상)과 같고,

신약 성경은 마치 그 화면에 있는 자막과 같다.

자막 없이 화면만 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화면 없이 자막만 읽으면 또 그 자막이 갖는 의미를 잘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우리에게 화면으로도, 자막으로도 만들어 주신 것은

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박영선 목사

 

성경과 교리

성경을 어떤 교리나 주장에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며,

또 이용되어져서도 안 된다.

성경은 다만 성경 그대로이어야 한다.

 

성경이 나를 사용할지언정,

성경이 나의 입장이나 주장을 변호해 주기를 원해서는 안 되며,

더욱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해석자는 성경자신이어야 하며

거기에 내 생각이 가감, 혹은 각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교파의 교리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교리가 처음에는 성경에서 나왔지만

나중에는 성경이 그 교리를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교리가 성경보다 우선)

 

교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은 성경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그 교리를 조직한 "사람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로교 교리는 "칼빈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칼빈주의"는 칼빈이 성경을 보는 시각이었다.

감리교가 있고 성결교가 있는 것은 그들의 교리를 만든 사람들의

성경 보는 시각이 칼빈과 다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를 알기 전에 성경을 알아야 마땅하다.

성경을 아는 자는 칼빈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을 모르고 칼빈주의만 알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

"칼빈 신봉자"가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교리를 조직하는 자는 성경을 알고 교리를 만들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그 교리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성경을 '그 교리적 시각'에서만 이해할 뿐

성경 그 자체를 모르고

"성경적 성경"이 아닌 "교리적 성경"의 개념이 박혀

그 사람의 일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갈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은 교리를 배웠다는 것 자체가 큰 불행이 된다.

교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줄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반면에 교리적 시각은 성경을 오해하게 하는 안경일수도 있다

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not 안경이다, 단정적이 아닌 가능성)

 

성경이 모든 것의 절대기준이며,

삶과 신앙의 기초이고 교회 설립의 근거가 된다.

즉 우리 삶에 절대 표준이 될 수 있는 최종권위는 오직 성경뿐이다.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는 방법

성경을 연구하는데 두 가지 정반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하는, 즉 어떤 책 전체를 취급하여

그 가운데 흐르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현미경적 방법, 즉 한 구절을 취급하여

그것을 분석 해부하는 방법이다.

 

*나 자신이 보고, 나 자신이 묵상하며, 나 자신이 씨름하기 위해

자신의 눈으로 성경을 보라.

그것이 남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보다 나을 때가 종종 있다.

 

*당신은 생선을 먹듯 성경을 읽어야 한다.

뼈가 나오면 뼈를 골라내어 놓고 계속 생선을 먹어간다.

그 다음 다른 뼈가 또 나오면 이것도 치워두고 계속 생선을 먹는다.

뼈가 나온다고 해서 생선을 통째로 던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성경구절과 마주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치워버릴 작정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단지 그것을 내버려 두고 말씀을 계속 읽어나가라.

당분간 그것을 제쳐놓고 당신은 말씀읽기를 계속하라.

<오스왈드 J. 스미스

 

지나친 합리성을 주의하자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내일 이 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왕의 장관이 엘리사에게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이 싸워 이겨야만 하는 장벽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나치게 합리성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이다.

 

오늘 우리 믿음을 파괴하는 최대의 적은

왕의 장관 같이,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원인과 결과를 캐며

합리성이 있느냐 없느냐 따지는 불신앙의 어리석음이다.

 

이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은, 하나님의 반응은

네가 내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왕하 7:19)

 

이런 일들은 오늘날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합리적 사고는 꼭 필요하지만,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도 필요한 것이다.

 


 



'분류 없음 > 2004~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은 무엇으로 변화되는가?   (0) 2019.12.29
이웃을 돕다가 뜻밖에 받은 복  (0) 2019.12.29
말씀의 부흥을 갈망함   (0) 2019.12.29
우리 손에 들린 돌멩이   (0) 2019.12.29
바울의 무관심  (0) 2019.12.28